디안(메멘토 모리)

'박사님 오늘 건 어디에?'

박사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없이 나에게 자료를
건넸다.

내 주인인 이 연구원은 붙임성이 없는 여자라고
불리지만, 나는 그녀가 그저 서툴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요즘은 연구가 뜻대로 되지 않는 모양인지, 조금
피곤한 기색이다.

조금이라도 피로를 풀어주려고 홍차를 내어갔지
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홍차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사는 이 나라는 마녀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
다.
박사님은 저주의 짐승 전문이라는데,
그녀가 자기 일에 대해서는 별로 말이 없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까진 모른다.

게다가 나도 굳이 묻지는 않았다.

자력으로 생활할 마음이 없는 박사님 대신에
집안일을 하거나, 연구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의학을 공부하거나....

나는 충실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이미 그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나는 박사님과 함께 연구소를 방문하게
되었다.

일하는 걸 별로 남에게 보여죽호 싶어 하지 않는
박사님이 초대라니... 희한한 일이었다.

그녀는 연구소에 도착하자마자
몇 권의 자료를 내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걸 가지고 지금 당장 이 나라를 떠나라'

...무슨 말인지 바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나는 그녀에게 뭔가 실수라도 해버린 걸까?

하지만 이유를 물어보려 해도, 그녀는 한사코
아무것도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나는 방으로 돌아와 망연자실하면서 짐을 꾸리고
있었따.

박사님에게 버림받았다.
결국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왜... 어째서... 이유조차 가르쳐 주지 않는
겁니까?)

그렇게도 생각해도 그녀의 말은 변함없다.

내가 울면서 그녀가 맡긴 자료를 가방에 넣으려
하다...손이 멈췄다.

'인체실험에 관한 보고... 뭐야, 이건?'

자료의 내용은, 이 나라가 진행하고 있는 연구의
일부를 국왕에게 직소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비인도적인 소행들이 빽빽이 적혀있었
다.

내가 그것에 눈치챈 것과 동시에
등 뒤의 문이 열렸다.

'배신자의 마녀. 그 자료를 넘겨라.'

그곳에 있던 것은 교회의 병사 몇몇과
목줄이 채워진 저주의 짐승이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 짐승은... 설마...!!

그리고 나의 의식은 검게 물들어 갔다.

박사님... 저는 그때 당신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신뢰 관계 따윈 처음부터 없었고,
내 환상에 지나지 않았었구나, 라고.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저를 지켜주려고 했습니다.
보지 못한 것은,
이해하지 못한 것은 오히려 나였죠.

결국 나는 '박사님의 기대를 져버렸다.
박사님이 마지막에 맡겨준 것마저
헛되게 만들어 버렸다.

왜 알아차리지 못해던 걸까.
어째서... 나는 이렇게도 무력한 걸까....

오랜 악몽 끝에,
나는 주인님의 저택으로 불렸다.

주인님과 함께 있으면 그 저주의 짐승을, 박사님
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나를 구해준 주인님을...
이번에야말로 끝까지 곁에서 지키기 위해서.

그러니, 박사님...
저는 잠시 동안 휴가를 받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게 정리된 그때에는...
제가 우려낸 홍차를 마셔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