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타(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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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ta
로타
파일:Escudo_de_Lota.svg
문양
국가
칠레

비오 비오주
Región del Biobío
면적
135.8km²
인구
47,339명
(2012년 기준)
시간대
UTC -4
서머타임: UTC -3
고도
82m


Lota.







파일:Lota_Puerto.jpg
파일:29927259650_35c34af5c7_b.jpg

1. 개요
2. 역사
3. 흥미로운 장소들
4. 인구 통계
5. 행정




1. 개요[편집]


로타(Lota)는 칠레 아라우코 만 연안에 위치한 도시이다. 비오비오 주 남부에 위치하며, 콘셉시온에서 남쪽으로 39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콘셉시온 대도시권을 구성하는 10개 도시 중 하나이다. 칠레의 전통적인 석탄 채굴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지만, 1990년대에 광업이 종료되었다.


2. 역사[편집]


스페인 최초의 정착지인 산타 마리아 데 과달루페는 1662년 10월 12일 총독 앙헬 데 페레도에 의해 세워졌지만, 아라우코 전쟁의 적대감 속에서 오래 살아남지 못했다. 현대 도시는 19세기에 시작된 탄광 산업과 연결되어 있다. 최초로 착취된 석탄층은 거의 지면에 놓여있기 때문에 작업하기가 쉬웠다. 석탄 채굴은 탈카우아노 항구에 증기선이 도착한 후 시작되었다. 대부분 영국에서 온 이 증기선들은 처음에는 석탄을 매우 싸게 샀다. 산업가 마티아스 쿠시뇨는 1852년 로타에서 광산 사업을 시작했다. 석탄 채굴은 로타를 19세기 중반 인구밀도가 낮은 국경지대에서 20세기까지 칠레 전역에서 이민자들을 끌어들이는 큰 산업 중심지로 변화시켰다.

로타는 1875년 1월 5일에 공식적으로 마을로 설립되었고 1881년 11월 30일에 도시가 되었다. 로타라는 이름은 작은 땅을 의미하는 마푸둥군 단어 루타에서 유래된 것으로 생각된다.

1960년에 광부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시작했다. 시위대가 콘셉시온에서 행진을 하던 중 1960년 콘셉시온 지진이 이 지역을 강타하여 파업이 종결되었다. 20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도시는 친소 공산주의의 거점이었다. 1971년 살바도르 아옌데에 의해 탄광이 국유화되었다. 아옌데가 전복되고 군사 독재 정권이 수립되었을 때, 로타의 정당과 강력한 노동조합은 금지되었다. 이러한 단체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은 박해받았고, 어떤 경우에는 군대에 의해 살해되었다. 대부분의 지역 언론은 노동조합이나 정당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탄압을 받았다.

20세기 후반 로타의 석탄 산업은 석탄의 중요한 구매자들이었던 선박 산업과 기차가 다른 에너지원으로 이동하면서 시장 쟁탈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석탄에 의존하는 지역 경제의 취약성에 대한 우려가 일찍이 1920년대에 있었다. 로타의 석탄 산업의 문제 중 하나는 석탄층이 얇고 많은 지질학적 결함으로 인해 대체되었기 때문에 기계화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목재 채굴 지원이 비싸지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석탄층이 고갈되고 해저 아래에서 채굴을 해야 함에 따라 비용도 증가했다. 1990년대에 로타의 석탄 자원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고 값싼 콜롬비아산 석탄이 시장에 출시되면서 로타 주민들이 빈곤에 빠지면서 광산은 1990년대에 폐쇄되었다. 1997년에 엠프레사 나시오날 델 카본이 광산을 폐쇄하고 산업 장비를 매각하면서 끝이 났다. 그 후, 지뢰가 범람했다.

관광, 임업, 장인어업, 소규모 기업가정신이 광업을 고용원으로 대체했지만 나이든 광부들은 적응하기 어려웠다. 석탄 산업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로타 공동체는 계속해서 석탄과 동일시하고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비해 도시는 매우 비정치적이다; 이것의 증거는 일부 복음주의 교회들이 정당들의 사무실보다 더 많은 수행자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3. 흥미로운 장소들[편집]



블랑카 해변

콜쿠라 해변

치빌링고 수력발전소

엘 치플론 델 디아블로

이시도라 고예네체아 데 쿠시뇨 공원

파벨론 83


4. 인구 통계[편집]


2002년 기준으로 로타의 면적은 135.8km2, 인구는 49,089명(남자 23,944명, 여자 25,145명)이다. 이 중 4만8,975명(99.8%)이 도시에, 114명(0.2%)이 농촌에 거주하고 있다. 1992년과 2002년 사이에 인구는 2.3%(1167명) 감소했다. 2000년대 말에는 인구가 4만 명 이하로 떨어졌는데, 이는 1980년대 이후 인구가 약 8만 명 정도로 절반으로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5. 행정[편집]


로타(Lota)는 칠레의 3급 행정 구역으로, 알칼데가 4년마다 직접 선출한다. 2008-2012년 알칼데는 파트리치오 마르칸트 울로아 (PDC)였다.

칠레의 선거구 내에서 로타는 마누엘 몬살베(PS)와 이반 노람부에나(UDI)가 46번째 선거구(로타, 레부, 아라우코, 쿠라닐라우에, 로스알라모스, 카예테, 콘툴모, 티루아)의 의원으로 구성되었다. 빅토르 페레스 바렐라(UDI)와 마리아노 루이스-에스퀴데 자라(PDC)가 제13선거구(비오코스트)에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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