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월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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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조지 3세의 동생인 윌리엄 헨리 왕자의 왕자비.
2. 생애[편집]
1743년에 영국의 초대 수상인 로버트 월폴의 아들 에드워드 월폴의 딸로 태어났다. 마리아의 어머니인 도로시 클레멘트는 바느질로 생계를 꾸리던 가난한 집안의 여성이었다. 도로시는 월폴 가에서 하녀로 일하기도 했는데, 로버트 월폴의 2남인 에드워드와 사랑에 빠졌다. 도로시는 에드워드와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았지만 네명의 딸을 낳았다. 마리아는 그 중에서 둘째딸이었다.
마리아는 아름다운 처녀로 자랐다. 그녀의 삼촌 호레이스 월폴은 마리아를 '아름다움 그 자체'라고 불렀다. 호레이스는 43세의 발트그레이브 백작 제임스 발트그레이브에게 22살의 조카딸을 소개했다. 발트그레이브 백작은 마리아에게 매료되어 청혼했고, 1759년 5월 15일에 결혼식을 올렸다. 권세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사생아였기에 사회적 지위가 낮았던 마리아에게 백작과의 결혼은 굉장한 신분 상승이었다. 이를 두고 영국 사교계의 유명인이자 작가인 메리 워틀리 몬태규는 '나는 발트그레이브 부인의 행운에 놀라지 않았다. 아름다움은 큰 특권이다.'라고 하였다.
1763년에 발트그레이브 백작이 천연두로 사망하였다. 마리아는 짧은 결혼생활 동안 세명의 딸을 낳았다. 백작의 지위와 재산은 백작의 동생이 물려받았고 마리아와 세 딸은 빈궁한 생활을 하였다. 마리아는 딸들과 함께 호레이스가 임대해준 거처에서 머물렀다.
얼마 후 영국 사교계에 한 스캔들이 터졌다. 조지 3세의 동생인 윌리엄 헨리가 7살 연상의 과부 마리아 월폴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대부분의 귀족들은 마리아가 윌리엄 헨리의 정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766년에 두 사람은 비밀리에 결혼했다.
두 사람의 혼인은 예상치 못한 일로 들통이 났다. 1771년에 윌리엄 헨리의 바로 밑에 동생인 컴벌랜드 공작 헨리 왕자가 평민 출신 과부인 앤 호튼과 결혼했다. 격이 맞지 않는 결혼에 화가 난 조지 3세는 국왕의 허락없이 왕족이 혼인할 수 없게 왕실결혼법을 제정했다. 이 과정에서 윌리엄 헨리와 마리아가 결혼했다는 사실이 조지 3세의 귀에 들어왔다. 조지 3세는 두 동생의 결혼을 취소하려 했으나 왕실결혼법이 제정되기 전에 이루어진 결혼이기에 두 쌍의 부부는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다. 조지 3세는 화가 풀리지 않아 앤과 마리아의 궁정 출입을 금했다.
마리아는 윌리엄 헨리와의 사이에서 1남 2녀를 낳고 천수를 누리다 1807년에 사망하였다.
3. 자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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