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현만(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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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2. 상세


1. 개요[편집]


명현만이 (임금에게) 아뢰었다.

“나라의 불안한 형국에 가족으로서 예를 저버림을 무릅쓰고 관산현의 조용한 마을에서 여생을 보내겠사옵니다.”

不遇 阿達羅泥師今干 失禮耶郡事 我其萬死餘生 冠山縣非是 無以養老

삼국사기 제8권 신라본기 제4

신라 전기의 명씨 귀족. (120~172) 신라 8대 아달라 이사금 3번째 첩의 외당질이다. 명진명의 독남이었고, 그 당시에는 흔치 않은 독신으로 생을 마감했다.


2. 상세[편집]


귀족임에도 여러가지 불우한 당시 상황 때문에 신라의 요직에 오르지 못했다.

청년기에 접어들어서는 산수에 심취하여 궁에 박혀있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가 남긴 수학 저서[1]의 일부에는 18세기 후대에 레온하르트 오일러가 창안한 스도쿠와 비슷한 문제를 남기기도 했다.[2]

말년에는 자취를 감춰 현재 문경시에 위치한 외딴 마을에서 은거했다. 172년, 52세에 폐렴으로 추정되는 지병을 앓다 사망했다.
그를 다루는 역사서가 신라본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나오지 않거나, 그와 동일인물로 추정되는 여러 다른 이름을 가진 (종만, 박세진 등) 인물이 있는 만큼 후속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52세가 아닌 56세에 사망했다는 학계의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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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2] 삼국유사에서 국사의 내용을 인용한 부분에 해당 내용이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