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 캐슬호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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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모로 캐슬 화재.jpg
1. 개요
2. 모로 캐슬
3. 사고 당시
4. 화재 원인
5. 사고 이후



1. 개요[편집]


SS Morro Castle

1934년 9월 8일 하바나 인근 해상에서 일어난 선박 화재.


2. 모로 캐슬[편집]


1841년 제임스 오티스 워드(James Otis Ward)가 화물 운송 회사 Ward Line을 설립했다. 이 회사에서 만든 배가 SS 모로 캐슬, 자매선으로 오리엔트(SS Oriente)도 있었다. 이름은 하바나의 동명 관광지에서 따온, 같은 회사에서 1900년대부터 1924년까지 활약한 배의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버지니아 주의 뉴포트 뉴스의 조선소에서 1929년에 제작을 시작해 1930년 3월 5일에 진수식을 치루고 1930년 8월 23일에 첫 항해를 시작했다. 이 배는 1800대가 넘는 배를 디자인한 테오도르 페리스(Theodore Ferris)의 작품이었다. 무게는 11,520톤, 길이는 154미터였다. 배엔 14,000마력의 증기 엔진이 있어 시속 20노트로 움직일 수 있었다. 내부는 갑판부터 시작해 승객실 까지 나무로 장식되어 있었다.

당시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의 충격이 가지 않았던 때라 배에는 12대의 구명보트가 추가되어 2000명을 대피시킬 수 있었고, 각 갑판과 복도마다 화재 방지를 위한 방화벽이 설치됐고, 비상시를 대비해 사람들이 대피할 줄을 발사해주는 라일건#까지 배치되었다. 각 갑판마다 화재감지기가 설치되었고, 소화전도 42개나 있었다. 하지만 방화벽마다 6인치 가량의 틈이 있었고, 앞서 말했듯이 내부를 나무로 도배하는 등 화재를 완벽히 방지한게 아니었다. 거기다 승객들을 위해 화재 등 비상시 대피 훈련을 해야 했으나 이를 하지 않았고, 소화전 중 고장나거나 막힌 곳도 많았고, 배를 칠할 때 쓴 페인트도 유성 페인트인데다, 몇몇 화재감지기가 오작동 한다는 이유로 아예 끈 상태였다.

또 선상파티를 빙자하고 내부에서 성매매마약 등 안좋은 행위가 열리기도 했다.


3. 사고 당시[편집]



1934년 9월 7일 오후 7시. 모로 캐슬호가 하바나 북쪽에서 뉴욕으로 향하는 항해를 시작했다. 모로 캐슬의 174번째 항해였다. 당시 배엔 승객과 승무원 모두 549명이 탑승했었고, 선장은 55세의 로버트 레니슨 윌머트(Robert Rennison Willmott)으로, 모로 캐슬이 건조되던 때 부터 있었던 인물로, 30년간 일하면서 모로 캐슬의 모든 항해를 책임졌었다. 입담도 좋아서 항해 때 마다 승객들과 즐거운 대화가 오고 갔다. 때문에 이 선장이 배를 운항하는지 알라보고 배를 타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의 이면에는 열정페이를 당해 항의 시위를 벌인 선원들이 있었다.

7일 밤, 로버트 선장은 갑자기 복통을 호소했다. 선장 본인은 저녁을 많이 먹어서라 생각했고, 방에 들어가 잠시 쉬었다. 얼마 안가 배의 엔지니어 에반 애버트(Eban Abbott)가 보일러 한대에 문제가 생겼다며 선장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선장은 받지 않았다. 선장은 숨진 채 발견됐다.

선장이 사망하면서 배의 총괄은 기관장 윌리엄 웜즈(William Warms)가 이어받았다. 밤에 열릴 예정이었던 선상 파티는 취소됐다. 날씨도 좋지 않아 승객들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모로 캐슬호는 선장이 사망한 관계로 뉴욕 항구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 2시 45분(쿠바 기준) B 구역 갑판 퍼스트 클래스의 라이팅 룸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화재를 처음 목격한 승객 다니엘 캠벨(Daniel Campbell)이 화재 진압을 시도했으나 실패, 야간 경비를 서던 아서 펜더(Arthur Pender)에게 화재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펜더는 화재 규모가 작으리라 판단하 화재를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화재는 펜더의 생각보다 훨씬 컸다. 새벽 3시 10분에 불이 모로 캐슬의 전기선까지 태워버리면서 모로 캐슬은 암흑에 빠졌다. 승객들 대다수는 아직 잠자는 중이라 화재 사실을 알지 못했다.

화재 사실을 안 윌리엄 웜즈는 배를 인근 해변에 세우려 했으나, 화재가 너무 빨리 퍼져 불가능했다. 차라리 배를 버리는게 나은 상황이었다. 새벽 3시 24분 인근에 SOS 신호를 보냈다. SOS신호는 근처 라디오 방송국에서 먼저 수신했고, 이후 방송국에서 인근 배에 상황을 알렸다. 몇몇 승무원은 불을 끄려고 소화전을 사용했다. 하지만 소화전이 여러대 있었음에도 최대 6개만 사용 가능하고, 그 이상 쓸 경우 역으로 수압이 약해지는 구조였다. 때문에 일찍 불을 진화하는데 실패했다.

새벽 4시, 대피가 시작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구명보트 12대 중 6대만 겨우 내려갔다. 이 6대도 408명이 탑승 가능했지만 겨우 85명만 탑승한 채 내려갔다. 그마저도 승객이 아닌 선원이 대다수였다. 선원들 대다수가 대피한 가운데, 크루지 디렉터였던 밥 스미스(Bob Smith)는 승객들을 조금이라도 안전한 갑판으로 대피시켰다. 하지만 불이 점점 커지면서 배를 집어 삼키고, 바닥이 너무 뜨거워져 승객 신발에 불이 붙는 지경에 이르자 겁에 질린 승객들은 바다로 뛰어내렸다. 그러나 배 프로펠러가 아직 돌아가는 중이라 뛰어내린 승객들 사이서도 피해자가 나왔다. 살아남은 승객들은 인근 해안까지 헤엄쳐 가서 겨우 살아남았다. 사고 소식을 들은 방송국에서 카메라로 찍기 시작했고, 때문에 1930년대에 일어난 화재임에도 관련 영상 자료가 많이 남아있다.

승객 구조를 위해 제일 먼저 달려온 배는 화물선 SS 안드레아 F.루켄바흐(Andrea F. Luckenbach)였다. 새벽 4시 15분에 도착한 배는 아직 바다에 떠다니던 승객들을 구조했다. 새벽 5시엔 SS 모나크 오브 버뮤다(Mornach of Bermuda)도 현장에 도착, 15분 뒤 SS 시티 오브 사바나(City of Savannah)도 현장에 와 승객들을 구조했다. 인근을 지나던 어선 파라마운트호(Paramount)도 승객 67명을 구조했다. 해안 구조대는 당시 날씨 문제로 다소 늦게 출발했고, 카훈(Cahoone)과 탬파(Tampa)가 아침 8시 직전에 도착해 승객들을 구조하려 했다. 뉴저지의 주지사 해리 무어(Harry Moore)는 개인용 비행기까지 타고 와 아직 남아있는 승객들을 구출하려 했다. 해안 인근까지 헤엄치는 데는 성공했으나 힘이 다해 해변에는 못 다다른 이들은 인근 해상구조대가 구조했다.

결국 화재로 137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 중 40명의 시신은 결국 찾을 수 없었다. 승객 중엔 30%가 사망했고, 승무원 중엔 18%가 사망했다.


4. 화재 원인[편집]


미국 정부와 경찰, FBI까지 화재 원인을 조사하려 했지만 결국 아직까지 밝혀지지 못했다. 앞서 말한, 화재를 키운 원인만 밝혀졌다.

전기 합선, 굴뚝 과열 등의 설이 있으나, 선장이 갑자기 사망한 것, 선장과 승무원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 때문에 방화로 인한것이 아니냐는 설도 있다. 하지만 화재 때문에 선장의 시신도 못찾아 부검될 일도 없었기에 선장의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방화가 명확한 원인인지조차 현재는 알지 못한다. 선장의 사인은 현재까진 '갑작스런 심근경색'으로 추측될 뿐이다.

모로 캐슬에서 근무하던 인원 중에는 라디오 오펀레이터로 일한 조지 화이트 로저스(George White Rogers)도 있었다. 그는 화재 당시 SOS 신호를 보냈으나, 화재가 지나고 38분이나 지난 뒤 신호를 보냈다. 거기다 사고 이후 살인 혐의로 체포되어 감옥에서 옥사했다. 때문에 일각에선 이 사람이 불을 지른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5. 사고 이후[편집]


파일: 모로 캐슬 화재 이후.jpg
전소된 모로 캐슬은 예인선으로 끌어오려 했으나, 예인선 줄이 끊어진 채 바람과 파도에 움직이다 애스버리 파크(Asbury Park)의 해변에 떠밀려왔다. 이후 뉴욕의 그레이브센드 만으로 옮겨졌고, 다시 발티모어로 옮겨진 뒤 1935년 3월 29일 스크랩 처리됐다.

사고 이후 배에는 나무와 유성 페인트를 적게 쓰도록 법으로 규정됐고, 배에 불이 나는 등 비상상황 발생시 바로 SOS를 보내는 법안이 발표됐다.

시신과 부상자가 떠밀려왔던 뉴저지의 애즈버리 파크에는 모로 캐슬호 화재 추모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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