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추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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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천광역시의 역사적 지명
2. 위 1에서 유래한 인천광역시의 자치구


彌鄒忽

1. 인천광역시의 역사적 지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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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시대부터 미추홀이라 불렸다. 비류온조 형제가 고구려를 떠나 남하하던 중 비류가 지금의 인천광역시 지역에 머물러 미추홀국을 세웠으나, 얼마 후 온조가 위례성[1]에 터를 잡고 세운 백제에 합병되었다.

여기서 미추홀의 홀(忽)은 고구려백제의 특징적인 지명어로서,[2] 한자어 ‘성(城)’으로 쓰인다. 따라서 미추홀을 미추성으로 바꾸어 표기해도 무방한데, 실제로 광개토대왕릉비의 제2면 1행에 '미추성(彌鄒城)'이라는 표기가 나온다.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 討伐殘國. 軍▨▨首攻取 … 彌鄒城 …▨▨▨▨▨其國城.

영락 6년(396) 병신년에 왕이 친히 군을 이끌고 백잔국을 토벌하였다. 고구려군이 … 미추성 … 을 공격하여 취하고 그 도성에 다다랐다.

광개토대왕릉비

이후 고구려는 이곳을 매소홀(買召忽)이라 하였는데, 삼국사기에서는 미추홀(彌鄒忽)의 다른 표기로 언급되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는 매소홀현(買召忽縣)이 설치되었으며, 매소홀현은 경덕왕 때 이름을 고쳐 소성현(邵城縣)이 되었다. 삼국사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邵城縣 本高句麗買召忽縣 景德王改名 今仁州 【一云慶原 買召一作彌鄒】

소성현은 본래 고구려의 매소홀현으로 경덕왕 때 이름을 고쳤으니, 지금의 인주(仁州)이다.

【경원(慶原)이라고도 한다. 매소(買召)는 미추(彌鄒)로도 쓴다.】

삼국사기》 권35 〈잡지〉 제4 지리 2 신라

실제 발음은 ‘mit-kol/mi-kol’로 추정된다고 한다.[3] 여기서 ‘mit’은 물(水)의 뜻을 가진 어휘로, 밑(本, 始, 底), 뭍(陸), 미르(龍), 믿-(信) 등의 다양한 어휘로 분화되는 어휘이다.[4]


2. 위 1에서 유래한 인천광역시의 자치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미추홀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본래는 인천광역시 남구였으나 2018년 7월 1일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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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확한 위치는 미상. 현재도 위례성의 위치가 어디인가에 대해 여러 설이 오가고 있다.[2] 정확히는 백제의 경우 한성백제시대.[3] 김종택(1999). 고대국어 음절 말 자음의 음성 실현. 한글(245), 5-20[4] ≪국어 어휘 분화의 기제; mit계 어휘 분화의 구조도≫(난정 남 광우 박사 화갑 기념 논총, 일조각, 1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