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히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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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묵주기도
2. 역사
3. 되는 방법
4. 출신 인물



1. 개요[편집]


바히타위 또는 바타위 (ባሕታዊ, bahitawi, bahtawi, ba'atawi)는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은수자들이다.

에티오피아 정교회수도자들은 바히타위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으즈어로 바히타위는 "광야에 사는 사람"을 의미한다. 주로 노란색 수도복을 입는 이 사람들은 숲과 동굴에서 발견되고는 한다. 일반적으로 에티오피아 중부 고지대에 있는 랄리벨라 근처에 있다. 에티오피아는 4세기부터 기독교를 실천한 가장 오래된 기독교 국가이며 솔로몬 왕이 시바의 여왕으로도 알려진 에티오피아 여왕 마케다와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전승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바히타위는 세례자 요한의 전통을 대표하는 은수자 계급이다. 이들의 일부는 사회와 완전히 격리되어 모든 인간의 눈에 띄지 않고 산다. 때때로 아주 외딴 곳에서 그들의 뼈가 발견되기도 한다. 다른 수도승들은 주로 큰 나무나 땅에 뚫린 작은 굴에 산다. 종종 그들은 잎과 쓴 뿌리로 살며, 수면을 줄여 최소화 한다. 어떤 수도승은 눈 속에서 반쯤 벌거벗은 채 기도하는 것이 발견된 이후 정신병원에 이송되기까지도 했다.

서방교회에서는 사라진지 오래지만, 에티오피아에서는 여전히 은수생활이 널리 퍼져 있다. 거의 모든 수도원에는 많은 수도자들이 있다. 이들은 공동기도에 참석하지 않는다. 음식은 임무를 맡은 수도자 1명이 매일 오두막으로 가져다 준다. 은수자는 일요일과 축일에만 성찬예배를 위해 교회에 나간다. 일반적으로 그들의 암자는 수도원 경내에 있으나, 때로는 근처에 있다. 예를 들어, 데브레다모의 은둔자는 수도원 밑의 깎아지른 절벽의 접근하기 어려운 동굴에 산다. 수도원의 은둔자들 외에도, 에티오피아 전역의 외진 숲과 동굴에는 수많은 은수자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완전히 거부하고, 눈에 띄지 않으려고 밤에 몰래 성당에 간다. 이들은 자연이 제공하는 야생 과일과 허브로만 연명한다. 이들 중 소수는 그들의 공동체를 떠난 수도사제들이나, 대다수는 그냥 평수사들이다. 바히타위는 에티오피아 수도원의 수도승일 수도 있으나,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오늘날에도 많은 남녀들이 세상을 등지고 일터나 집터에서 갑자기 사라지고는 한다고 한다.

통상적으로 이들은 길고 헝클어진 드레드락을 하며, 손톱을 자르지 않는다. 이것은 그들이 육신을 신경쓰지 않으며, 영적인 것만 바라본다는 상징과 같다. 이들은 민수기 6장의 나지르인을 표방한다. 상당수의 바히타위들은 동굴을 떠나지 않기에, 결국 신체가 쇠약해지고, 매우 가냘프게 된다. 이들은 다양하고 극단적인 고행을 한다. 모든 바히타위들은 수도승이며 대다수는 물에 불린 병아리콩 한 줌, 볶은 또는 보리 한 줌을 하루에 아주 적은 양만 먹는다. 심지어 그들중 일부는 이마저도 거부하고 몇년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영으로만 지낸다.[1] 그런가하면, 어떤 이들은 침묵을 서약하거나, 절대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새워 기도명상을 한다. 일부는 몇년동안 똑바로 서 있거나 움직이지 않고 한자리에 앉아 있는다.

본질적으로 에티오피아] 전역의 수도원의 문화의 생활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수도원 제도는 콥트 정교회로부터 에티오피아 땅까지 퍼졌으며, 에티오피아 은수자들은 원시 전통을 철저히 지킨다. 오늘날에도 이들은 자신들이 사막 교부들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에티오피아 북부의 숲 속에는 인류를 위해 중보하는 수많은 은둔자들이 살고 있다.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우주론에 따르면, 은둔자들은 천사 바로 다음으로 중요한 존재들이다.

사실 바히타위들은 하느님께 직접 권위를 얻으며, 주교나 수도원장에게 복종하지 않기 때문에, 수도자보다는 신비가들에 더 가깝게 보이기도 한다. 이들은 찍은 사진에서 보이지 않거나, 야생동물의 공격을 받지 않거나, 동물과 대화를 하거나, 폭우 속에서도 젖지 않는 등의 기적을 보이기도 한다.

1.1. 묵주기도[편집]


에티오피아 정교회 전통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기도묵주는 메쿠테리아(Mequteria)라고도 알려진 41개, 64개의 구슬로 이루어진 것이다

41은 예수께서 채찍질을 받은 횟수이고 64는 성모님의 승천당시 나이이다. 일부 수도자와 은둔자는 150~300개 또는 그 이상의 구슬을 사용하기도 한다.

41개의 구슬 메쿠테리아를 사용할 때 낭독하는 기도문은 다음과 같다.


  • 먼저 주님의 기도를 바친다.
  • (그 다음 가브리엘의 인사를 바친다)
동정녀 마리아여,
천사 가브리엘의 인사로 당신께 히레드리나이다.
당신의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동정녀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찬양하오니,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서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이도 복되시나이다.
은총이 가득한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시나이다.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 우리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를 위해 빌어주소서.
그분께서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12회)

  •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41회)

  • 마리아의 이름으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41번)

  • 키리에 엘레이손(41회)
  • 사도르, 알라도르(오른손에 찌르기), 다나트(왼쪽 손바닥에 찌르기), 아데라(오른발에 찌르기), 로다스(왼발에 찌르기) ( 41회)

  • 아, 하느님이시어 (41회)
  • 아, 그리스도여 (41회)
  •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의 이름으로 우리를 진노에서 구하시고 당신의 자비로 우리를 구원하소서(41회)
  • 우리 말을 들어보시오, 우리의 하나님과 구원자 (41회)

  • 엘로헤! (“엘로히”로 발음되며 마태오복음 27장 46절에 언급된 “엘로이”와 동일함) (41회)
  • 예! 예! 예! (Ye! Ye! Ye!)(“나에게 화가 있다”는 뜻의 “야에”로 발음)

  • 맙소사, 나를 보소서! (41회)

  • 우리의 죄가 아닌 당신 자비에 따라 행하시는 하느님이시로다 (12번)

  • 주여 당신의 나라에서 우리를 기억하소서 (12번)

  • 성모 마리아님, 우리는 당신께 절합니다. 우리 어머니 마리아께 기도드리나이다. 사악한 짐승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오! 동정녀시여, 당신의 어머니 안나와 당신의 아버지 요아킴의 이름으로 오늘 우리 회중을 축복하소서! 아멘,

  • 마리아의 노래(루카복음서 1, 46-55)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고 내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내 마음 기뻐 뛰노네.
그분은 비천한 당신 종을 굽어보셨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복되다 하리라.
전능하신 분이 나에게 큰일을 하셨으니 그 이름은 거룩하신 분이시다.
그분 자비는 세세 대대로 그분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미치리라.
그분은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네.
권세 있는 자를 자리에서 내치시고 비천한 이를 들어 올리셨네.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고 부유한 자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네.
당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돌보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그분의 자비 영원하리라. 아멘. (7회)


이것은 메쿠테리아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낭송하는 14가지 기도문이다.

그러나 개인의 필요나 관심 사항에 따라 더 추가할 수 있다. 64개의 구슬 메쿼테리아를 사용하면 41번 낭송되는 모든 기도문이 64번 낭송된다.

단, 7번, 12번 낭송하는 기도는 그대로이다.


2. 역사[편집]


에티오피아 정교회수도원은 6세기 악숨 시대부터 영적 실천, 금욕주의, 은둔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비잔티움 제국의 아홉 성인은 에티오피아 수도원주의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이는 자그웨와 솔로몬 시대에도 계속되었다.


3. 되는 방법[편집]


아직 한국에는 바히타위는 고사하고 오리엔트 정교회조차도 거의 인지도가 없는 수준이라 사실상 한국인이 바히타위가 되는 방법은 서울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에티오피아 정교회에 직접 문의를 해보는 것 외에는 거의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4. 출신 인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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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방정교회의 아토스수도원에도 1년에 한 끼 정도만 먹는 극단적인 고행자들이 살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