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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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박순구(朴順九)
생몰
1888년 11월 6일 ~ ?
출생지
강원도 춘천군 북산면 물노리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박순구는 1888년 11월 6일 강원도 춘천군 북산면 물노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마도현의 친족으로, 1907년 자신의 부친 박영관이 마도현의 부친 마정삼과 함께 의병 활동을 벌이다가 일본군에게 체포된 뒤 살해되자 복수를 결심하고 1921년 9월 마도현, 마만봉, 마남룡, 마뇌병 등과 함께 장총단(長銃團)을 조직했다. 그는 화승총을 휴대하고 마씨 형제들과 함께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자은리에 소재한 경찰관 주재소의 경찰관을 향해 발포하였으나 사살에 실패했다.

1922년 10월 5일, 박순구는 마만봉과 함께 춘천군 동면 품걸리에 소재한 김영주(金泳柱)의 집에 침입하여 일제 원절식(元折式) 12구경 엽총 1자루와 실탄을 입수하였다. 1923년 6월 3일 두 사람은 다시 홍천군 두촌면 자은리 주재소에 근무하는 순사 츠루사키 요시오(津留崎良夫)에게 발포했지만 빗나갔다. 1924년 9월 14일 마만봉의 지휘 아래 마도현·안이순(安二淳)과 함께 총을 휴대하고 강원도 인제군 남면 어론리에 거주하는 김수룡(金洙龍)에게 자신들이 상해임시정부 위원임을 자처하며 군자금을 요구하여 36원을 모집하였다.

1924년 12월 3일 마뇌병, 안이순과 함께 홍천군 두촌면 천치이에 거주하는 장성칠(張聖七)에게 군자금을 모금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 후에도 그는 마씨 형제들과 함께 1927년 11월까지 강원도 인제에 있는 가리산을 근거지로 함에 인제군 일대와 홍천, 춘천, 양구 등지에 걸쳐 24개소의 경찰관서를 공격하고 군자금을 모집했다.

그러나 1927년 12월 체포된 그는 1928년 10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살인미수·강도·강도살인·강도미수죄로 징역 13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35년 4월 17일 가출옥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박순구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