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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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박영서(朴永瑞)
생몰
1880년 ~ ?
출생지
황해도 장연군 장연읍 읍후리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박영서는 1880년생이며 황해도 장연군 장연읍 읍후리 출신이다. 그는 1919년 3월 9일 여현구의 집에서 강원보 등과 함께 모여 비밀 회의를 열고 3월 11일 장날을 기해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이후 그들은 태극기를 제작하는 한편 장연군 각지에 계획을 전파하였다. 그리고 거사에 앞서 독립선언서를 장연읍 남문 성벽에 붙여서 독립선언의 사실을 미리 공표하였다. 이에 따라 시위 당일 경찰들이 삼엄한 경계를 서는 가운데, 오후 1시 경 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200여 명의 시위대가 시장으로 모였다.

박영서는 태극기를 앞세우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에 참여하였다. 경찰이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을 체포하자 시위대는 경찰서로 몰려가서 이들의 석방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그러나 경찰이 총으로 위협하고 마침내 발포하게 되니 무모한 희생을 피하기 위해 해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체포된 그는 해주지방법원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그는 “조선 민족으로서 조선 국기를 들고 조선의 독립만세를 부른 것은 천심(天心)으로 되는 일이다. 천심에 의한 만세운동이 무슨 죄가 되는가?”라고 상고하였으나, 1919년 5월 24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박영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