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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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박영창(1956).jpg
朴永昌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무협소설 작가, 번역가. 현재는 명리학 연구자 및 교육자로 활동하고 있다.

1956년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났다. 1978년 연세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해 1985년 졸업했다.

대학교 4학년에 재학중이던 1981년 집필한 무협소설 『무림파천황』으로 인한 필화 사건이 유명하다. 이 사건으로 고초를 겪었는데, 1981년 9월 구속돼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1983년 광복절특사[1][2]로 출소했다.

1980~90년대 번역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소오강호, 천룡팔부, 녹정기 등 다수의 중화권 무협소설을 번역했다. 1997년 스포츠조선 기사에 의하면 "감방에서 중국어를 독학"해서 15년간 무려 100질, 500여권을 번역했다고 한다.[3]

2011년 공주대학교 대학원 사회교육학과에서 교육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 2012년부터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동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4][5] 2023년 동양학대학 학장에 임명되었다.[6]


2. 작품[편집]


  • 구마경 (1979년)
데뷔작. 대본소용으로 추정되나 자세한 내용은 알려진 게 없다.
대본소용 출간되었으며 필화 사건으로 모두 회수·폐기되었다. 1993년 도서출판 천마를 통해 전3권(상·중·하)으로 재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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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3-08-11), 광복절 특사자명단 일부, 중앙일보.[2] 1984년 광복절특사로 출소했다고도 알려져 있으나(예: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의 2003년도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보고서 『국가보안법 적용상에서 나타난 인권 실태』 137쪽) 언론을 통해 발표된 특사 명단을 확인해 보면 1983년 광복절특사가 맞다. 아마도 박영창 본인이 2년간 감옥에 있었다고 밝혔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선고시점(1982년 이후)이 아닌 구속시점(1981년 9월)부터 감옥에 있었다고 보면 그가 옥살이를 한 것은 대략 2년이 맞다.[3] (1997-11-14), [인물] 박영창씨-학생운동가에서 무협지 번역가로, 스포츠조선.[4] 정유철 (2018-11-14), "어려운 인생 문제를 코칭하는 전문가를 양성합니다", K스피릿.[5]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동양학과 > 학과소개 > 교수진 소개 > 박영창[6] 이영수 (2023-07-10),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동양학대학, 박영창 교수 학장 임명, 쿠키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