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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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박인항(朴仁恒)
본관
순천 박씨
생몰
1898년 2월 2일 ~ 1947년 3월 7일
출생지
평안북도 선천군 태산면 원봉동[1]
사망지
평안북도 신의주시
위패
국립대전현충원
추서
건국훈장 독립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박인각의 형이다.

2. 생애[편집]


박인항은 1898년 2월 2일 평안북도 선천군 태산면 원봉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0년 초에 선천에서 임시정부와 연락을 취하여 박승도(朴承道)[2], 자신의 형 박인혁(朴仁赫), 엄승도, 유영춘(劉永春) 등과 함께 대한청년단을 조직하여 독립운동 자금의 조달과 독립신문의 배포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일경에 밀고한 평북 태산면장(台山面長) 김병준(金炳駿)과 서기 1명을 사살한 후 상하이로 망명했다.

이에 일제는 1921년 3월 11일 신의주지청에서 진행한 궐석재판에서 그에게 무기징역 판결을 내렸다. 이후 박인항의 동생인 박인각은 일경의 혹독한 고문 끝에 옥사했고, 그는 일제 경찰의 추적을 피하여 베트남 하노이시로 재차 망명하였다. 1938년 상하이로 돌아오던 중 일본 영사관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국내로 송환된 뒤 1938년 12월 27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살인 및 제령 7호 위반 혐의로 10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경성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40년 징역 7년6개월로 감형되었고, 1943년에 병보석으로 출옥하였다. 이후 신의주시에서 여생을 보내다 1947년 3월 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박인항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국립대전현충원에 그를 기리는 위패를 세웠다.
[1] 순천 박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박규명·박만옥·박인각도 이 마을 출신이다.[2]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박승도와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