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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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박재송(朴載松)
본관무안 박씨
생몰1884년 6월 29일 ~ 1945년 4월 14일
출생지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1]
사망지경상북도 영덕군
추서대통령표창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박재송은 1884년 6월 29일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8일 영덕군 영해읍 장날에 발발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해 2,000여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성내동 장터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주도하였다. 그리고 그는 시위군중들과 함께 경찰주재소로 달려가 일경들을 포위하고 독립만세를 따라 부르게 하기도 하였다.

그후 장터로 돌아가 계속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던 중, 다시 시위군중과 함께 주재소로 가 곤봉과 돌멩이로 주재소를 파괴하고 일경을 구타하였다. 이어 일본인 소학교·우편소·면사무소로 시위행진하며 건물을 파괴한 후, 다시 주재소로 몰려갔다. 이때 주재소의 응원 요청을 받고 영덕경찰서에서 4명의 경찰이 긴급 출동하여 이를 제지하다가, 시위군중의 위세에 눌려 도주하였는데, 박재송은 격분한 사위군중과 함께 그들을 추적 포위하여 구타·응징하였다.

이곳의 만세시위는 이튿날까지 계속되어, 대구 보병 80연대 병력 17명의 지원을 받은 일경과 헌병들의 무차별 사격으로 수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강제 해산되었다. 이후 체포된 그는 1919년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보안법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이후 영덕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5년 4월 1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박재송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1] 무안 박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박경종·박원종·박익찬·박종태·박재각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