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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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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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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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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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대 20년
파시스트 기원
XXIII ~ XXIV
이슬람력
1364년 ~ 1365년
히브리력
5705년 ~ 5706년
페르시아력
1323년 ~ 1324년
에티오피아력
1937년 ~ 1938년
인류세력
11945년
로마 숫자
MCMXLV
탄소측정연대
BP[1] 5년
1. 개요
2. 기후
3. 사건
3.1. 실제
3.1.1. 1 ~ 3월
3.1.2. 4월
3.1.3. 5 ~ 6월
3.1.4. 7월
3.1.5. 8월
3.1.6. 9월
3.1.7. 10월
3.1.8. 11월
3.1.9. 12월
3.2. 가상
4. 탄생
4.1. 실제
4.1.1. 1월
4.1.2. 2월
4.1.3. 3월
4.1.4. 4월
4.1.5. 5월
4.1.6. 6월
4.1.7. 7월
4.1.8. 8월
4.1.9. 9월
4.1.10. 10월
4.1.11. 11월
4.1.12. 12월
4.1.13. 일자불명
4.2. 가상
5. 사망
5.1. 실제
5.2. 가상
6. 출시 상품
7. 달력



1. 개요[편집]


인류 역사에 가장 큰 분기점이 되었던 연도 중 하나로, 이 해에 세계는 파시즘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머쥔다. 한때 전 유럽을 석권했던 나치 독일은 동서 양면에서 독일 본토로 진격해 오던 연합국의 공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소련군에 수도 베를린이 점령당하며 패망했다. 총통 아돌프 히틀러는 지하 벙커에서 자살하고 주요 나치 인사는 연합국에 의해 체포되거나 체포되기 전에 자살했다.

일본 제국 역시 이 해에 도쿄 대공습으로 대표되는 일본 본토 공습에서 주요 도시가 미군의 폭격에 파괴되었으며 결국 1945년 8월 두 차례 투하된 원자폭탄에 의해 엄청난 인명피해를 겪고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며 연합국에 의한 점령 기간에 들어갔다.

이렇게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되어 6년간이나 이어진 제2차 세계 대전이 마침내 끝났으며 5,000만~7,000만 명에 이르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다쳤으며 수많은 유가족들이 남겨졌다. 화려한 번영을 구가하던 유럽과 열강의 식민지배를 받을 망정 현대 문명이 싹트던 아시아는 잿더미로 변했다. 그나마 스웨덴, 스위스,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키프로스만이 전쟁의 화마에서 비껴나가 평화를 유지하였다.

독일은 나치 독일의 패망 후 연합국의 관리하에 서독동독으로 분단되고 오스트리아와의 민족 통합을 금지당하며 오데르-나이세 선 이동의 동방 영토를 영구 상실하는 등 비극의 역사를 맞았으며 45년의 세월 동안 긴장과 고난 속에서 통일을 기다려야만 하였다.

일본 제국은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과 패전으로 국가적인 타격과 후유증을 앓게 되었으며 동시에 식민지로 거느렸던 한반도대만, 자국 본토로 합병했던 쿠릴 열도, 남사할린 등 여러 영토들을 일제히 상실하였다. 그리고 일본 본토에는 미국 주도의 GHQ가 설치되어 향후 7년간 전후 일본을 통치했다.

또한 미국은 12년간 미국을 통치했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연임한 지 한 달만에 갑자기 서거함에 따라 후임인 해리 S. 트루먼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계승하여 미국의 제33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으며 전후 문제까지 책임지게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희망과 내일을 보고 다시 시작했다. 비록 이후에 냉전이 시작되었지만, 적어도 2023년 현재까지는 더 이상 세계 대전이 터지지 않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남긴 교훈이었다.

이 교훈을 거울삼아 세계평화를 추구하는 목적으로 10월 국제연합(UN)이 창설되었다. 비록 UN의 탄생과 존재에도 곳곳에서는 내전과 분쟁이 끊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통제력, 구속력이 몹시 약했던 이전의 국제연맹보다는 낫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에서는 보통 1945년을 근대현대의 경계선으로 삼는다. 한국사에서 근대의 시작 기준이 1860년(동학의 발생), 1864년(대원군 집권), 1876년(강화도 조약), 1894년(갑오개혁), 1897년(대한제국 칭제건원) 등으로 모호한 것과 비교하면 현대의 시작 기준은 명확한 편이다. 이 해에 태어난 사람이나 기업, 단체, 기관들을 '해방둥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2. 기후[편집]


이 해 겨울은(1944년 말 - 1945년 초) 기상관측이래 가장 겨울 평균기온이 낮은 겨울이었으나 극값은 -20°C 이상을 넘지 못 했다. 그리고 4월[2]을 제외하고 광복 전까지 이상 저온이 계속 이어졌다. 특히 5월이 이상 저온이 매우 심했다. 8월 상순에도 저온 현상이 지속되어 순평균기온 최저 3위를 기록했으나 8월 15일에 폭염이 찾아와서 처서에 37°C로 절정을 찍었고 가을철인 9~11월도 높은 편이었으나 12월은 월평균 기온이 -1.7℃로 평년 수준이였다.

서울의 연극값과 연교차는 다음과 같다.
연 최저기온
연 최고기온
연교차
-19.1 °C(0127)
37.0 °C(0823)
56.1 °C

3. 사건[편집]



3.1. 실제[편집]



3.1.1. 1 ~ 3월[편집]




3.1.2. 4월[편집]




3.1.3. 5 ~ 6월[편집]




3.1.4. 7월[편집]




3.1.5. 8월[편집]


  • 8월 6일: 미국이 히로시마에 리틀 보이를 떨어트림으로써 인류 최초의 핵폭격이 단행되었다.
  • 8월 7일: 아시아 최초로 만들어진 제트기가 첫 비행을 했다.
  • 8월 8일: 소련이 소·일 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일본 제국에 선전포고하는 것과 동시에 만주에 대한 전면 침공을 개시했다.
  • 8월 9일: 미국이 나가사키에 팻 맨을 떨어뜨렸다. 이렇게 인류의 2번째 핵폭격이자 인류 마지막 핵폭격이 단행되었다.[3]
  • 8월 11일: 소련군이 함경북도 경흥군에 진주해 일본군을 무장해제시켰다. 이후 다음날 나진시, 13일 청진시, 21일 함경남도 원산시에 이르기까지 일본군을 무장 해제시켰다.
  • 8월 15일
  • 8월 16일
    • 몽양 여운형아베 노부유키 총독과의 교섭에 따라 독립 투사들이 석방되면서 한국 국민들은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만세를 맘껏 외쳤다. 자세한 정보는 8.15 광복 문서 참조.
    • 좌익계열 문화단체인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8월 17일
    • 광복 이후 우리 손으로 세운 통신사 '해방통신'이 세워졌다.
    • 일제 징병 출신 귀환장병들이 모여 '귀환장병대'를 만들었다.
    • 건준 중앙조직이 완료되면서 보안대, 치안대, 학도대가 전국 각지에 생겨났다.
    • 조선학술원이 발족되었다.
    •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해방 후 첫 신문인 <건국시보>가 창간되었다. 그러나 이 신문은 일본군의 방해로 3일 만에 발행이 제지되었다.
    • 이날부터 미군이 11월에 있을 상륙에 대비해 일본 전역과 제주도에 함포 사격, 대규모 전략폭격을 무차별적으로 가할 예정이었다.
  • 8월 18일
    • 아베 노부유키 조선 총독이 행정권 이양을 취소한다고 발표하였다.
    • 원래는 이날 이후 날씨가 좋은 날을 골라 3번째 핵폭격이 고쿠라나 니가타에 실시될 예정이었다. 물론 일본의 항복으로 취소.
    • 일본 제국의 괴뢰국가인 만주국이 멸망하였다.
  • 8월 19일
  • 8월 20일
    • 소련군이 원산에 상륙하였다.
    • 동아그룹의 모태인 충남토건사가 설립되었다.
  • 8월 24일
  • 8월 25일: 미군이 인천에 상륙한 뒤 미-소 양군의 북위 38도선 분단 점령을 방송하였다. 그리고 남북한의 비극이 되고야 만다.
  • 8월 28일: 호찌민, 베트남 공화국 임시정부 수립하였다.
  • 8월 30일: 좌익 군사단체 '조선국군준비대'가 발족되었다.
  • 8월 31일
    • 호남신문의 전신인 <전남신보>가 창간되었다.
    • 장제스마오쩌둥이 만나 회담을 갖고 전후처리와 평화적인 통일정부 수립 문제를 협의했다.


3.1.6. 9월[편집]


  • 9월 중: 종전의 해방통신이 우파 통신사인 '국제통신'으로 변모하였다.
  • 9월 1일
    • 안재홍을 중심으로 한 '조선 국민당'이 발족되었다.
    • 국문판 <부산일보>의 발행이 개시되었다.
  • 9월 2일
    • 일본 제국무조건 항복 문서에 서명 후 히로히토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비준동의를 함으로써 제2차 세계 대전이 완전히 종전되었다.
    • 더글라스 맥아더 사령관은 북위 38도 선을 경계로 미-소 양군의 한반도 분할 점령을 발표하였다.
    • 도쿄만의 미국 해군 전함 USS 미주리 함상에서 공식적인 항복조인식이 거행되었다. 전쟁에 마침표... 미국, 중화민국에서는 이 날을 VJ데이라고 부른다.
    • 베트민프랑스로부터 독립과 재통일을 선언하였다.
  • 9월 6일
    • 건준은 이날 열린 전국인민대표자회의에서 조선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했다. 북한과 헷갈리지 말자 [4]
    • 같은 날 우익정당인 한국민주당 창당 발기인 대회가 열렸다.
  • 9월 7일
    • 미군 극동사령부가 한반도 38선 이남 지역에 군정을 선포하였다. 동시에 야간통행금지도 실시되었다.
    • 고하 송진우 등을 중심으로 한 우익 인사들에 의해 '국민대회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9월 8일
    • 서울 계동에서 '재경 공산주의 열성자회의'가 개최되었다.
    • 하지 중장이 이끄는 미 24군단이 서울에 진주하였다.
    • 경성일보 출신 좌파 기자들이 모여 <조선인민보>를 창간하였다.
  • 9월 9일
    • 조선 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항복 문서에 서명함으로써 미군이 조선총독부를 인수하고 군정청을 두어 남한에서 미군정을 실시했다. 북부지역 역시 소련군이 들어와 있어서 조선인민공화국은 무력화되었다.
    • 영국군이 말레이 반도를 탈환하기 위한 지퍼 작전을 이날 실행할 예정이었으나, 일본이 이미 항복한 후여서 전투 없이 말레이 주둔 일본군의 항복을 받아내는 것으로 끝났다.
  • 9월 11일
    • 이정 박헌영을 중심으로 조선공산당이 재건되었다.
    • 초대 군정장관에 아치볼드 아놀드 소장이 취임하였다.
    • 도조 히데키 자살 미수 사건 발생.
  • 9월 12일: 초대 미군정청 검사국 경찰총장으로 김찬영이 취임하였다.
  • 9월 15일: 경북 대구에서 <민성일보>가 창간되었다.
  • 9월 16일: 고하 송진우를 중심으로 한 우익정당 한국민주당이 결성되었다.
  • 9월 19일: 김일성이 소련군과 함께 이북으로 돌아왔다.
  • 9월 20일: 부산일보가 <민주중보>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 9월 25일: 미군정은 법령 2호로 '패전국 소속 귀속재산의 동결과 이전 금지에 관한 건'을 공포하였다.
  • 9월 28일: 조선총독부 등 일본의 조선 통치 기구가 전체 소멸되었고 발생했다.


3.1.7. 10월[편집]


  • 10월 1일: 전북신보가 <전라민보>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 10월 3일
    • 박병규 등 4명이 일본 나카오카 제과 남영동 공장을 인수해 해태제과합명회사를 세웠다.
    • <대구시보>가 창간되었다.
  • 10월 5일
    • 미 군정장관 고문에 인촌 김성수를 비롯한 한국인 11명을 임명하였다.
    • 미군정은 법령 9호로 '최고 소작료 결정의 건'을 공포하였다.
    • <자유신문>이 창간되었다.
  • 10월 7일
  • 10월 8일: 경남 부산에서 <인민해방보>가 창간되었다.
  • 10월 9일: 미군정은 치안유지법 등 12개의 일제 시기 악법들을 폐기하였다.
  • 10월 10일
    • 아놀드 군정장관은 조선인민공화국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성명을 발표하였다.
    • 김일성이 이북에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을 설치했다. 이것은 분단의 시작이 되었다.
    • 동광신문의 전신인 <광주민보>가 창간되었다.
    •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당)이 공식적으로 해산되었다.
  • 10월 12일: 초대 대법원장에 김용무가 임명되었다.
  • 10월 16일: 미국에서 망명하던 이승만이 개인 자격으로 귀국하였다.
  • 10월 17일: 경성제국대학을 경성대학으로 개칭하였다.
  • 10월 19일: 해방 뒤 발행이 정지된 목포신보가 <목포일보>란 명칭으로 속간되었다.
  • 10월 20일: 존 카터 빈센트 미국 국무부 극동국장은 한반도의 신탁관리 의사를 표명하였다.
  • 10월 24일: 국제연맹의 후신인 국제연합(UN)이 창설되었다.
  • 10월 25일
    • 그리스 유엔 가입했다.
    •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우익정당 '독립촉성중앙협의회'가 발족되었다.
  • 10월 28일
    • 미 육군 제158연대 전투단과 제40보병사단이 각각 타네가시마와 고시키지마 열도에 선발대로 상륙할 예정이었다.
  • 10월 30일
    • 아놀드 군정장관은 신탁통치를 부인하였다.
    • 미군정은 법령 19호에 따라 출판 등록제를 실시하였다.
  • 10월 31일
    • 미 육해군이 항공 폭격 및 주력 전함 최소 20척을 동원한 대지상 함포 사격을 규슈 남부의 포대와 발화점에 집중하여, 상륙지역 인근 해상과 육상의 모든 장애물을 파괴할 예정이었다.


3.1.8. 11월[편집]




3.1.9. 12월[편집]


  • 12월 1일: 동아일보가 5년 만에 복간되었다.
  • 12월 6일: 미군정은 법령 33호 '조선내 소재 일본인 재산권 취득에 관한 건'을 공포하여 한국에 남은 일본인 공/사유재산을 몰수하였다.
  • 12월 8일: '전국농민조합총연맹(이하 전농)'가 결성되었다.
  • 12월 19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귀국환영 전국대회'가 개최되었다.
  • 12월 20일: 종전의 국제통신과 연합통신이 합쳐져 '합동통신'으로 출범하였다.
  • 12월 27일
  • 12월 29일: 서울에서 우당 권동진을 중심으로 한 '신탁통치 반대 국민 총동원 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12월 30일: 고하 송진우가 한현우 일당에게 피살당했다.


3.2. 가상[편집]




4. 탄생[편집]



4.1. 실제[편집]




4.1.1. 1월[편집]




4.1.2. 2월[편집]




4.1.3. 3월[편집]




4.1.4. 4월[편집]




4.1.5. 5월[편집]




4.1.6. 6월[편집]


  • 6월 17일
  • 6월 19일 - 아웅 산 수 지(~생존 중): 미얀마의 정치인, 민주화 운동가
  • 6월 20일 - 앤 머레이(~생존 중): Anne Murray, 캐나다의 컨트리 가수[9]
  • 6월 28일 - 김수영(~생존 중)
  • 6월 30일 - 강만수(~생존 중): 대한민국의 금융인


4.1.7. 7월[편집]




4.1.8. 8월[편집]




4.1.9. 9월[편집]




4.1.10. 10월[편집]



4.1.11. 11월[편집]




4.1.12. 12월[편집]




4.1.13. 일자불명[편집]




4.2. 가상[편집]





5. 사망[편집]



5.1. 실제[편집]



5.2. 가상[편집]




6. 출시 상품[편집]



7. 달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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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efore Present[2] 당시 치고는 조금 높은 편이었다.[3] 무서운 것은, 이 '인류 마지막'이라는 말 또한 현재까지는이라는 것이다.[4]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다.[5] 마피아 2의 두 번째 시대배경.[6] 마피아 2 DLC 조의 모험의 첫 스토리인 '증인'의 시대배경[7] 다만 시즌 31999년이 배경이다.[8] 스타크래프트 1에서 아르타니스사미르 듀란을 연기했다.[9] 대표곡으로 You Needed Me가 있다.[10] 조용필킬리만자로의 표범, 바람이 전하는 말, 그 겨울의 찻집김국환타타타, 우리도 접시를 깨뜨리자. 그리고 이선희의 알고 싶어요 등을 작사했다.[11] 나머지 두 명은 시모카와 오텐, 고우치 준이치.[12] 유년기에 시력을 잃었고 말년에는 말라리아로 고생했으나 병원은 시각장애인이라는 (혹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았고 그는 1945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