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1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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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93년 11월 2일
황해도 신천군 남부 화남동
사망
1937년
러시아 연해주
종교
개신교
직업
독립운동가
상훈
건국후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박정훈은 1893년 11월 2일 황해도 신천군 남부 화남동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박일(朴一), 박우(朴牛), 박수산(朴秀山) , 박진우(朴鎭愚)이다. 그는 경성부 사립 오성학교(五星學校)를 졸업하였으며, 1917년 9월부터 장로교회의 전도사로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중순경 황해도 신천군 읍내리에서 기독교 신자들의 집안을 방문하면서 만세시위 참가를 권유하고 동월 하순경 읍내 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의 수사를 피해 그해 5월 중국 지린성 유하현 삼원보로 피신하여 <한족신보(韓族新報)>의 기자로 활동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1920년 1월 흥경현의 왕청문에서 서간도 지역 한인들의 반일단체인 국민회(國民會)의 결성을 주도하였으며, 동년 3월 흥경현의 중장도(中將道)에서 권재중(權在重)·전승우(田承雨)와 함께 친일파 원성호(元成五)를 처단했다.

1920년 11월 경성으로 왔다가 1921년 3월경 체포되었고, 1922년 5월 석방된 후 요녕성 영고탑에서 적기단(赤旗團) 기관지 『벼락』 간행에 참여하였으며 1927년 1월부터 노령 연해주 『선봉』 편집부에서 근무하였다. 1937년경 연해주에서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박정훈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