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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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생겨나는 원인
4. 폐해
5. 사례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방송교수(, Telefessor)란, 현대 사회에 새로 등장한 신조어로 학술활동이나 연구, 강의 등은 소홀하면서 언론 출연과 방송 활동에만 열중하여 인지도와 저명성을 높이려는 일부 교수들을 말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자신의 저서에서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이 시초이다. 정치교수는 정치계를 기웃거리는 교수라면, 방송교수는 방송계를 기웃거리는 교수라고 할 수 있다.

단, 연구 성과가 언론에 소개되는 경우, 연구 주제가 사실상 사회운동에 가까운 경우[1]는 제외하는 경우가 많다. 학문의 대중화를 위하여 노력하거나[2] 해당 학계에 대한 관심과 모금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방송교수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대신 쇼오락 부문이나 예능 프로그램 등 자신의 전공 전문성과는 거리가 먼 대중적인 목적의 방송에 출연하는 경우는 십중팔구 이 범위에 포함된다. 방송교수는 기본적으로 멸칭에 가깝기 때문이다.


2. 상세[편집]


학술 공동체에게 이런 교수들의 존재는 절대 반갑지 않은 일인데, 교수들은 논문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다른 교수들 사이에 활발히 언급되게 하여 명성을 얻는 편이지, 그런 식으로 대중들에게 직접적으로 얼굴도장을 찍는 건 교수가 할 일이 아니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3] 게다가 특정 대학에 소속된 교수는 기본적으로 외부의 시선과 달리 연구만 하는 게 아니다. 당장 강의도 맡아야 하고 지도교수 제도가 있는 경우 학생 관리도 해야 할 뿐더러, 무엇보다 대학 교수회나 소속 학회, 연구재단, 국책기관, 대학본부, 또는 단과대학 행정실 등과 연루된 엄청나게 많은 사무업무가 있다. 이 업무를 해당 학과에 소속된 교수들이 서로 분담해서 처리하는데, 한 교수가 방송 출연하겠다며 학교 업무는 안 보고 계속 방송국이나 기웃거린다면 주변 동료의 시선이 절대로 곱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방송교수가 학과당 소속교수가 많은 이공계 계열인 경우가 많은 것은 해당 방송교수가 방송일로 업무에서 빠지면 이를 대체할 인력이 그나마 있기 때문이라는 환경도 기인한다. 문과대학의 경우 교수의 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문과교수가 상술하였듯 자기 전공이나 학문을 홍보하기 위해 출연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방송교수로 활보하는 일은 꽤 드물다.

일반인들은 해당 분야에 학술적 가치를 얼마나 쌓았는지로 연구자를 평가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학계에 출판되는 논문이나 저술 등이 가져오는 실질적 효과를 파악하기엔 현대 학문들은 내용이 복잡하고 너무나 방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방송교수는 그것과 별개로 TV프로그램이라는 파급력이 큰 매체에 등장하여 인지도를 쌓고 대중에 많이 노출되어 친숙함을 쌓는다.

결국 학계에 아무런 공헌도 하지 못한 사람이 토크쇼나 언론에 몇 번 접촉했다고, 교양서 몇 권 썼다고 전문가 타이틀을 얻는 일이 생긴다.[4] 물론 기본적으로 '교수'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기에 일반인 뿐 아니라 어지간한 학사, 석사 수준의 분야 전공자와 비교하면 훨씬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그 학계를 대표할만한 권위자일 확률은 낮은 편이다. 상식적으로 TV방송 출연과 언론 노출에 신경을 써야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하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학업을 많이 성취할지는 불보듯 뻔하다.

좀 극단적으로 논하자면 허명(虛名)만 쩌는 학자가 자신의 허명을 이용해서 언론에서 활약하는 것을 의미한다.

의학 버전으로는 '쇼닥터'가 있는데, 후술하듯이 사람의 생명에 관련된 의학분야란 점에서 방송교수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부류들이다. 상세 내용에 대해서는 해당 문서를 참조할것.


3. 생겨나는 원인[편집]


  • 꾸준한 수요
방송교수가 생겨나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 방송매체는 단순히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유흥에서 벗어나 여러 정보를 제공하는 종합정보채널의 성향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컨텐츠들은 그 특성상 학술적 정보를 담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러한 부분은 전문가의 참여 없이는 방송의 질도, 보는 시청자들의 만족감도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만약 방송교수의 참여가 없다면 비전문가인 방송인들이 전문성이 요구되는 내용을 다뤄야 하는, 방송교수보다 더 문제가 악화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일부는 실제 학술지를 인용하거나 강연 자료를 덧붙이는 정도로 해결 가능하겠지만 이게 방송의 메인이 될 수는 없다. 결론을 내리자면 TV가 다루는 범위가 넓어진 이상 '전문가'의 참여는 필수불가결하다는 것.

  • 금전적 요인
이는 교수(의사)와 방송국 모두에게 해당되는 사항이다. 전자는 TV에 나옴으로써 출연료는 물론 강단과 학계를 통해 얻어야 정상인 명성을 대신 대중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특히 의사의 경우, 쇼닥터 문서에도 언급했지만 그 중에서도 자신의 독자적인 약이나 요법을 가진 의사의 경우라면 돈을 들이지 않고 오히려 돈을 받으면서(출연료) 자신의 비법을 홍보할 절호의 기회가 된다. 의학 프로그램 외에도,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생겨난 인문학 관련 강연 프로도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5]

  • 자정노력 부족
학계 스스로의 자정능력도 부족한 상태다. 의학 분야 외의 경우에도 제대로 활동하는 교수들은 이들을 감시할 시간도 없고(연구활동으로 바쁘니까) '학문의 대중화'라는 대의를 내세운다면 명백히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닌 이상 딱히 뭐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에 오늘도 방송교수의 세는 드높다. 게다가 이를 감시하고 반박할 의지가 있는 학자들이 존재한다고 해서 이들을 쉽게 막아낼 지도 미지수이다. 방송교수는 자신의 주장을 포장해서 대중들을 현혹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 방송교수는 일종의 반지성주의를 이용해서 마치 자신이 '고루하고 보수적인 학계에게 박해를 받는 참신하고 깨어있는 지식인'인 것처럼 포장하기도 한다. 또한 정말 제대로 된 학자들이 학문의 대중화에 대해 '조금도' 공헌하려고 하지 않는 것 역시 비판을 벗어날 수 없다. 이렇게 지식을 독점하려는 상황 속에서 얼치기들이 대중들 앞에 나서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가이면서 학문의 대중화에 힘쓴 학자들도 많다는 점에서 분발이 필요하다.

  • 열악한 사회적 감시망
사회적 감시망도 열악하다. 아무리 방송교수의 대부분이 말이 그 실력을 뛰어넘는다 하더라도 그들도 일단은 '전문가'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대중은 무비판적으로 그들의 주장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 대중의 무지와 맹신
좆문가나 방송교수가 판을 칠 수 있게 만드는 궁극적인 원인. 아무리 그럴싸한 헛소리를 방송에서 내보낸다고 해도 이를 받아들이는 대중이 별 반응이 없으면 방송교수가 판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마련이 안 된다.[6] 그렇지만 대중은 그 특성상 전문지식이나 전문지식과 관련된 복잡한 용어들에 대해 상대적으로 무지한 편이 많고, 자기들도 알아먹기 편하도록 간단하고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사람을 더 신뢰하기 때문. 그러다보니 대중 입장에선 알기 힘들고 모호한 설명을 하는 전문가들보단, 엉터리 설명을 해도 확 와닿게 설명해주는 방송교수나 좆문가들 쪽에 관심과 신뢰가 쏠리기 쉬운 것이다. 애초에 이런 판의 장사도 그런 대중의 무지와 맹신 경향성을 이용해먹기에 계속 성사가 되는 것.
다만 대중들을 변호하자면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정규 교육과정에서 정식으로 학위를 받고 교수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믿을 수밖에 없다. 학력이나 경력을 위조했다면 모를까, 실제로 대학교에서 교수직을 하고 있다면 비전문가 입장에서는 방송교수의 말에 신뢰가 가는 것이 당연하다. 일반인들이 할 수 있는 건 본인 전공과 무관한 분야에 대해 떠들어대는 걸 잡아내는 정도가 고작이다. 현대 사회는 본인이 종사하는 일의 변화를 따라가기에도 버거울 정도로 변화가 빠르고, 여가시간에 폴리페서들의 주장을 필터링 할 수 있을 만큼 공부하는 것도 쉽지 않다.[7] 우리 모두는 우리의 업무 분야 이외에는 문외한이라는 것을 생각하자. 대법원장도 자동차가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 모르고, 의사도 최신 마케팅 이론이 뭔지 모른다. 결국은 학계에서 나서서 사이비들을 걸러내야 하는 것이지, 대중 탓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심각한 부분이다. 과도한 엘리트주의, 학벌주의, 전문가주의 분위기 속에서 전문가 자격을 가지고 있는 학자들이 나오면 무조건 맹신하게 되어버린다. 또한 과학과 과학자를 신비화하고 숭상하는 분위기 역시 진정 과학적인 비판의식을 무너뜨린다. 또한 한국적 환경에서 반지성주의 혹은 반지식인은 모순적이게도 곧 지성만능주의와 일맥상통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지적해야 할 부분이다. 보통 선택적으로 자신의 마음에 드는 지식인의 의견은 맹목적으로 추종하면서 자신의 이념과 배치되는 지식인의 의견은 무조건 배척하는 경우가 많으며, 지성을 인간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맹신하면서[8] 정작 반지성적인 태도에 빠져드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많은 전문가들은 전문가를 과도하게 불신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지적하지만, 반대로 전문가를 무분별하게 추종하는 부분은 인지하지 못하거나 일부러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자율적인 사고능력과 비판적 수용력을 길러주는 교육과 사회적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

4. 폐해[편집]


  • 검증되지 않은 학설(요법/시술)의 전파: 푸드 패디즘이 대표적. 위 '엄마 시청금지 프로'의 경우 '요리에 이상한 거 넣는다'는 일종의 불만이지만 실제로는 음식 수준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건강에 관한 것이기에 문제가 더 크다.

  • 간접광고: 보통 자신의 저서를 홍보하기 위해 나오기도 한다. 특정 가설을 광고하기 위한 것도 많다. 특히 쇼닥터들의 사례가 눈에 띄는데, 의학 프로그램들의 경우 상당히 높은 확률로 비슷한 시간대의 홈쇼핑 채널에서 해당 식품을 판매할 정도이다. 상세는 쇼닥터 문서를 참조할것.


5. 사례[편집]


음향 전문가로서 여러 차례 방송에 출연한 배명진 교수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방송교수 사례다. 잦은 방송 출연으로 대중에 이름을 알렸지만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주장을 하거나 소리로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등 연구자로서 자질이 의심되는 행보를 보여줬다.

흔히 언급되는 인물로 송유근 논문 표절 사건에 연루된 박석재 교수(전 한국천문연구원장)가 있다. 이 사람은 2000년대 이후로는 전공인 천문학 분야에선 연구성과는 전혀 없고, 엉뚱하게 환빠 서적만 줄기차게 내면서 송유근의 지도교수로 언플만 주구장창 하다가 결국 논문표절 사건로 도마에 올랐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의 경우 신문에서의 지나치게 잦은 등장으로 인해 방송교수로 불리운다. 대표적인 사례가 뉴스데스크 게임 폭력성 실험 사건에서 갑작스러운 전원 차단에 분노한 PC방 이용자들의 반응을 게임 중독의 결과로 진단한 것. 이외에도 신문에 나와 2019년 일본 상품 불매운동*, MBTI*, 미미쿠키 재포장 판매 사건*, 스시녀*, 일진물*, 세대 갈등*, 4딸라* 등에 대한 의견을 밝힌 바가 있으며, EBS 다큐프라임JTBC 잡스에도 출연했다. 서울대학교 내에서는 통칭 곽서심교라고 부른다. 최근에는 인지도가 많이 떨어져 기억하는 사람이 적다.

정재승의 경우 과거에는 ‘과학 콘서트’,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등의 저술 활동으로 과학 대중화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았으나, 2010년대부터 방송 출연이 잦아지더니 연구보다 방송 활동에 더 힘을 쓰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듣고 있다.

사실 이보다 더 교묘하고 악질적인건 자신의 전공과 관계 없는데서 자신만의 뇌피셜을 가지고 장난치는 경우다. 대표적으로 본인 전공 분야는 전혀 무관한 독립운동, 근현대사지만 역사학자란 타이틀만 가지고 고대사, 조선사에 대해서 대중의 자극적인 입맛만 맞는 소리를 하는 이덕일이 있다. 또한 해외에선 제대로 된 1차 사료 연구 기반 학문적 성과는 10년째 잠잠무소식이지만 정치적인 의도까지 은근슬쩍 끼워 놓은 대중서적과 강연 위주로 이름만 높은 니얼 퍼거슨 같은 미묘하게 자기 분야와 맞는 듯 아닌 듯한 방면에서 곡학아세 하고 다니는 경우들이다.[9]

예능감이 탁월한 방송교수들에게 아예 제대로 놀아보라고 판을 벌려준 것이 대표적으로 TVN의 알쓸신잡 시리즈다. 이 시리즈에 출연했던 일반인들의 눈에 익은 교수들은 십중팔구 방송교수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패널들의 논란 항목이나 각 패널들이 재직하는 대학 에브리타임에 교수평을 보면 대부분 비판적이다.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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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당 학문분야에서 정립된 연구성과를 기반으로 해서 뉴스나 다큐멘터리 또는 르포르타주에 출연하여 현실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는 경우. 주로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사회복지학, 언론정보학 등에서 이런 경우가 많다.[2] 예를 들어 교통방송 라디오에서 과학 코너 패널로 참가해 나로호의 발사 원리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한다든지, 아니면 진품명품의 감정위원으로 참석해 유물의 정보를 전달하는 경우. 단 후술하듯이 대중화를 위해 '오락성'을 부각하게 되는 경우도 많아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접목된 방송에서의 출연은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3] 이러한 기조는 이전에도 있었으나 황우석 사태를 기점으로 팽배해졌다.[4] 교수들이 해마다 테뉴어나 임용을 위해 치르는 연구평가에서 교양서나 학술서를 포함한 서적 출판은 논문 발표보다 인정되는 점수가 매우 박하다.[5] 특히 인문계 교수들은 연봉이 낮은 편이다. 전체 교수 평균 연봉을 믿으면 안 된다. 이것은 이공계랑 의대 교수들이 끌어올려주는 것이고, 인문계 교수들은 전체 평균 연봉의 80% 이하를 받는다. 이 때문에 돈이 모자라서 어떻게든 책이니 방송이니 기웃거리는 비율도 높은 편.[6] 시청률도 없고, 반응도 없다는건 결국 방송에 이들을 내보내봤자 돈이 안 된다는 의미와 직결된다.[7] 텔레페서라고 해도 엄연히 박사학위자이다. 일반인이 박사학위자의 주장을 어떻게 필터링하겠는가?[8] 한국 사회는 유독 논쟁을 할 때 'ㅇㅇㅇ는 지능의 문제' 같은 표현이 즐겨 사용된다. 이러한 관념은 입시위주교육과 사회 분위기 속에서 주입된 것이다.[9] 특히 사학계의 경우에는 다른 일반대학원 전공학과와 달리 1-2년 정도 과정을 더 이수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역사적 사실을 연구해야 하니 워낙 참조할 사료나 논문이 방대하고, 필요하면 발굴이나 해외협조까지 진행해야 하는 등 연구의 난도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학연구자들은 각자 맡은 분야에 대해서만큼은 자부심이나 식견이 대단하고, 그렇기 때문에 타 연구자의 연구를 존중하고 최대한 개입하지 않는 보수적인 원칙을 신조로 삼고 있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