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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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서울대학교 로고.svg 서울대학교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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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서울大學校
Seoul National University
파일:서울대학교 로고.svg
교훈
VERITAS LUX MEA[1]
진리는 나의 빛

상징


조형물

정문
동물
백학
교목
느티나무
교색
[ 교색 펼치기 · 접기 ]
SNU Blue (#003380)


SNU Beige (#DCDAB2)


SNU Gray (#888B88)


SNU Gold (#C0A977)


SNU Silver (#B5B5B6)

[1]

국가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분류
전문대학
지역
서울특별시 | 경기도 | 강원특별자치도 | 세종특별자치시
개교
1946년 10월 15일[2] (77주년)
국립서울대학교
총장
제28대 유홍림
[3]
법인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4][5]
대학병원
서울대학교병원
분당서울대학교병원[6]
주소
관악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 (신림동)
연건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03 (연건동)
평창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대화면 평창대로 1447 (신리)
시흥
경기도 시흥시 서울대학로 173 (배곧동)
세종
세종특별자치시 집현동 산16[7]
(2022년)[A]
(2022년)[A]
교원
82명 (2022년)[8][A]
대학기본역량진단

일반재정지원 선정대학 (2021년)

이 법은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를 설립하고 그 운영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대학의 자율성과 사회적 책무를 제고하고 교육 및 연구 역량을 향상시킴을 목적으로 한다.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ㆍ운영에 관한 법률 제1조(목적)

서울대학교(Seoul National University, SNU)는 서울특별시 관악구종로구, 경기도 시흥시,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캠퍼스를 둔 대한민국국립대학법인 종합대학이다. 1946년에 경성대학과 9개의 전문학교를 통합하여 국립종합대학으로 설립되었으며, 본부가 위치한 관악캠퍼스는 서울대학교 종합화 계획에 따라 1975년에 조성되었다.

1. 역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서울대학교/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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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
1900
1910
1920
1930
1940
1946

현재


경성치과의학교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
파일:서울대학교 로고.svg









[[파일:서울대학교 로고.svg

치과대학
치의학대학원

의학교
대한의원
총독부의원
경성의학전문학교
의과대학
의과대학

파일:경성제국대학 교표.png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간호대학
법관양성소
경성전수학교
경성법학전문학교
법과대학
법학전문대학원

파일:경성제국대학 교표.png 경성제국대학

문리과대학
인문대학
자연과학대학

사회과학대학

日 동양협회전문학교 서울분교
동양협회경성전문학교 → 경성고등상업학교('20~) → 경성경제전문학교('44~)
상과대학
경영대학

파일:경성제국대학 교표.png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 공학계열
공과대학

상공학교
농상공학교
경성공업전문학교
경성고등공업학교
→ 경성공업전문학교
경성광산전문학교

수원농림전문학교
수원고등농림학교 → 수원농림전문학교('44~)
농과대학
농업생명과학대학
수의과대학
한성사범학교
경성고등보통학교 사범과
경성사범학교
사범대학
사범대학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
경성여자사범학교

생활과학대학

경성음악학교('45~)
예술대학
음악대학

미술대학

조선약학강습소
조선약학교
경성약학전문학교 → 서울약학대학('45~'50)
약학대학

해방 후 1946년, 국립서울대학교설립에관한법령(미 군정법령 제102호)에 의하여 기존의 경성대학(경성제국대학)과 경성경제전문학교, 경성치과전문학교(사립), 경성법학전문학교, 경성의학전문학교, 경성광산전문학교, 경성사범학교, 경성공업전문학교, 경성여자사범학교, 수원농림전문학교를 폐지하고 국립서울대학교[9]로 흡수 및 통합한 것이 시초다. 이외에 사립이었던 서울약학대학을 흡수하는 등 여러 단과대학의 증설 및 통폐합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각 단과 대학들이 기존의 교사에서 각자 운영되다가 1975년에 관악캠퍼스가 설립되면서 종로구 대학로 인근 연건동의 의과대학(당시 간호학과 포함)과 수원의 농과대학을 제외한 모든 단과대학들이 관악캠퍼스로 모였다.

공과대학이 사용하던 노원구 공릉동의 드넓은 부지와 건물들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경기기계공업고등학교, 원자력병원, 한국전력공사 연수원 등으로 이전되었으며, 동숭동캠퍼스[10] 문리과대학 등의 부지는 서울사대부초, 서울사대부여중을 남기고 분할하여 한국방송통신대학교마로니에공원 등의 부지로 바뀌었으며, 상과대학이 사용하던 성북구 종암동 부지의 서울상대 본관 및 도서관, 강당 건물 등은 서울사대부중서울사대부고로 사용되었다. 2003년 농과대학(현 농업생명과학대학)이 관악캠퍼스로 이전했다.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11년에 법인화하여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라는 법인을 설립하였다. 즉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가 운영하는 교육기관이다.


2. 임원[편집]



현직 임원

총장
제28대 유홍림
이사장
제8대 권오현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서울대학교/임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946년 개교 이후 총 27명의 총장이 배출되었다. 그 총장은 주요 부처 장관급으로 대우받았는데 이는 서울대학교가 국무총리 산하의 기관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또한 총장들 중 일부는 국무총리에 임명되기 했다.

2011년 법인화 이후 이사장제가 신설되었다. 이사는 7~15명으로 구성하며 서울대학교 총장, 서울대학교 부총장 중 2명, 기획재정부 차관 중 1명, 교육부 차관 중 1명이 포함된다.


3. 상징[편집]



3.1. 정장(正章)[편집]


서울대 휘장의 역사
파일:서울대학교 로고.svg
서울대학교의 정장(正章)은 월계관에 깃털펜횃불을 교차해 놓고, 그 위에 책과 교문 심볼을 배치한 짙은 파란색의 문장(紋章)이다.

월계관은 경기의 승리나 학문 등의 업적에서 명예와 영광을 상징하며, '으뜸가는 학문적 영예의 전당으로서의 서울대학교'를 의미한다. 그리고 펜과 횃불은 지식의 탐구를 통해 겨레의 길을 밝히는데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이러한 바탕 위에 펼쳐진 책에는 라틴어 VERITAS LUX MEA가 적혀있고 이는 '진리는 나의 빛'이라는 뜻이다.

정장의 원형은 개교 후 1946년 미술대학 학장이었던 장발(張勃) 교수의 요청으로 도안과[11] 학생인 이기훈(李基勳)이 고안하여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지만 각 단과 대학별로 약간씩 다른 모양을 해서 정확한 모양과 비율 등이 통일되어 있지 않다가 1955년에 통일된 정장을 선보였다.

이후 2006년에 비율, 월계관의 모양 등이 다시 한 번 바뀌고 색깔은 청람색에 가까운 서울대 고유색이 되었다. 원래 기존 휘장을 폐기하고 새로운 휘장을 만드는 방안도 검토되었으나, 교수·학생·졸업생 등의 대대적인 반대 여론으로 인해 기존 휘장을 개선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등록된 상표이기도 하다. 서울대학교 산업협력단에서 불법 사용을 제보 받는다. 특히 의원, 치과의원에서 많이 문제된다.

  • 사용 가능한 경우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약학대학, 수의과대학 : 학부 졸업생 (재학생, 수료자 불가능)
    • 치과대학, 치의학(전문)대학원: (4년제)치의학과 졸업생 (재학생, 수료자 불가능)
  • 사용 불가능한 경우
    • 서울대 타전공 학사, 타대 석사, 치의학대학원 학술대학원(2년제), 치의학보건 과정, 치의학대학원치의과학과 불가

즉,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타대학 치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자는 사용할 수 없다.


3.2. 표어[편집]


VERITAS LUX MEA

VERITAS LUX MEA는 현 서울대학교의 표어다. 해석하면 "진리는 나의 빛"이라는 뜻이다. 교회 라틴어 발음에 따르면 '베리타스 룩스 메아', 고전 라틴어 발음으로 하면 "웨리타스 룩스 메아"로 읽는다. 다만 서울대학교 로고 상 VERITAS가 두 줄로 나뉘어 있어 무심코 가로 방향을 따라 VERILUX TAS MEA라 읽는 실수를 할 때도 있다.

기록에 따르면 초대 총장이었던 해리 엔스테드(Harry B. Anstead) 박사가 지었다고 하며 학교 휘장에 새겨져 있기도 하다. 한국에서 라틴어 표어를 사용하는 기관이 얼마 없어서 이래저래 유명하다.[12] 참고로 복거일대체역사소설 비명을 찾아서에서는 이 문구가 경성제국대학의 교훈으로도 등장하지만 사실과는 다르다.

하버드 대학교[13]예일 대학교[14]의 표어를 표절했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어 여기저기서 힐난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진실을 알고 보면, Veritas(진리)라는 단어는 학교의 교훈 등의 표어로 엄청나게 자주 쓰이는 라틴어 단어다. 미국에서만 이 단어를 쓰는 대학이 40여 개가 넘으며 유럽까지 포함하면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자주 쓰인다. 오히려 서울대의 표어는 문장 구조로만 봤을 때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표어인 Dominus illuminatio mea(주님은 나의 등불)와 가깝다. 하지만 생각보다 오해가 널리 퍼져 있는 탓에 서울대생들마저도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여기서 옥스퍼드의 표어인 Dominus illuminatio mea와 Veritas lux mea의 의미가 어떻게 다른지를 조금 생각해 보자. lux가 어떤 물체가 자체적으로 발하는 빛을 뜻한다면, illuminatio는 (내) 앞을 비추어 밝혀주는 불빛을 의미한다. 따라서 서울대의 “Veritas lux mea”가 “진리가 발하는 불빛은 나의 불빛”이라는 의미라면, 옥스퍼드의 Dominus illuminatio mea는 “주님이 내가 가는 길을 밝혀주시는 등불”이라는 의미라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15]


3.3. 조형물[편집]



파일:서울대학교 정문 조형물.jpg

서울대학교 정문
  • 정문
정문의 ''자 조형물은 서울대의 대표 조형물이다. "학교"의 초성 ㄱ, ㅅ, ㄷ에서 따왔다.[16] "진리를 찾기 위한 열쇠"를 상징한다.
1975년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하자 정문의 필요성과 디자인에 관한 논의가 제기됐고, 1977년 3가지 시안이 상정돼 학생 여론을 조사했으나 모두 긍정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다. 결국 모든 안을 폐기하고, 미대, 공대, 환경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의 전문가 교수 9명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에서 휘장에 들어있는 '샤'마크를 활용하기로 합의를 보아 1978년에 지금의 정문이 탄생되었다.# 이를 두고 학생 여론을 존중하지 않은 것에 항의하는 등 문제 제기가 이어지기도 하였고, 이 철제 구조물에 대해 “교문이 기발한 면만 강조돼 전체적으로 천박한 느낌을 풍긴다”거나 “독창적이고 참신한 맛이 나며 개방적인 이미지를 살린 것”이라는 등 당시 교수진과 학생들의 의견도 분분하게 나뉘었다. 관악의 수문장, '샤'대문 다만, 지금은 교표와 함께 가장 많이 쓰이고 애용하는 서울대의 상징이 되어버렸고[17] 샤라는 글자 자체가 서울대 내에서는 서울대를 상징하는 글자로 취급받는다.[18][19]
이 상징물 아래로는 차도가 지나갔는데 양쪽 끝은 높이가 낮아 실제 진입로는 왕복 2차로에 불과, 정문 도로는 통학 시간에 항상 만원이었다. 또 입학식이나 졸업식에는 정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도로 한복판에서 포즈를 취해야 했었다. 2022년 8월 진입로를 한쪽으로 이설하고 널찍한 광장이 조성됐는데 특히 포토존에는 지식인 의자라고 불리는 돌의자가 마련돼 명소가 되기도 했다.# 정문 안쪽에는 수경 구간이 있는데 구도를 맞춰 사진을 찍으면 정문이 수면에 반사해 그럴 듯한 풍경이 나온다.(예시)
서울대학교 정문 광장 [ 펼치기 · 접기 ]
파일:서울대학교 정문 광장.jpg

예전에는 누구나 쉽게 손잡이를 잡고 올라갈 수 있었으며, 실제로 새벽에 술먹고 이 조형물 꼭대기 위에 올라가 기타를 치며 아침이슬을 부른 사람도 있었다. 요즘엔 감시를 해서 올라가기 힘들다. 특히 2011년에 정문 법인화 반대 고공시위 이후, 철탑 측면 틈을 막아버려 올라갈 수 없게 되었다. 기사


파일:external/www.snu.ac.kr/pic17.gif

쌍학
  • 교조
교조와 관련해서는 '쌍학'이란 이름의 조형물이 문화관 앞에 있다. 그러나 두 마리의 학이 날개를 활짝 편 모습을 형상화한 일종의 미술 작품[20]이기 때문에 그리 동물로 보이지 않아모르는 이들은 그냥 지나치기 마련이다. 재학생 중에도 모르는 경우가 더러 있다. 캠퍼스 내에 상징적인 조형물이 없다는 의견에 따라 개교 52주년이 되던 1998년에 제작되었다.[21] 좌대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친필 '겨레와 함께 미래로'라는 글귀가 있다. 처음에는 금빛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녹이 슬어 지금의 푸르죽죽한 색깔을 가지게 되었다.


3.4. 찬시[편집]


찬시(讚詩)는 1971년 4월 2일, 당시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 4학년생인 학생대표 정희성(시인, 前 숭문고등학교 교사)이 관악산으로 옮긴 종합캠퍼스 기공식에 부친 축시에서 쓴 시다. 서울대학교가 자체적으로 슬로건을 내세울 의도는 없었지만 수능 관련 커뮤니티에 자주 등판되어 유명해졌다. 특히 이 시 전문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관악을 보게 하라"라는 구절은 알만큼 유명하다.

전문 [ 펼치기 · 접기 ]

여기 타오르는 빛의 성전이

그 누가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이마가 시원한 봉우리

기슭이마다 어린 예지의 서기가

오랜 주라기(朱羅紀)의 지층을 씻어내린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리듯이

관악의 이마에 흐르는 보배로운 기름이여

영원한 생명의 터전이여

겨레의 염원으로 기약한 이 날

헤어졌던 이마를 비로소 마주대고

여기 새로 땅을 열어

한 얼의 슬기를 불 밝히니

「진리는 나의 빛」

이 불이 밝히는

오 한 세대의 확고한 길을 보아라

온갖 불의와 사악(邪惡)과

어둠의 검은 손이 눈을 가릴 때에도

그 어둠의 정수리를 가르며 빛나던 예지여

역사의 갈피마다 슬기롭던

아 우리 서울대학교

뼈 있는 자의 길을 보아라

뼈 있는 자가 남기는 이념의 단단한 뼈를 보아라

저마다 가슴 깊이 사려둔 이념은

오직 살아 있는 자의 골수에 깃드니

속으로 트이는 이 길을

오 위대한 세대의 확고한 길을 보아라

만년 웅비(雄飛)의 새 터전

이 영봉(靈峰)과 저 기슭에 어린 서기(瑞氣)를

가슴에 서리담은 민족의 대학

불처럼 일어서는 세계의 대학

이 충만한 빛기둥을 보아라

온갖 어두움을 가르며

빛이 빛을 따르고

뼈가 뼈를 따르고

산이 산을 불러 일어서니

또한 타오르는 이 길을

영원한 세대의 확고한 길을 보아라

겨레의 뜻으로 기약한 이 날

누가 조국으로 가는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민족의 위대한 상속자

아 길이 빛날 서울대학교

타오르는 빛의 성전 예 있으니

누가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1. 기타[편집]


서울대학교를 일컫는 별명으로는 샤대가 있다. 일명 샤대문으로 불리는 서울대 교문 조형물이 한글 글자 '샤'처럼 보이기 때문. 서울대학교를 샤대, 디시인사이드 서울대 갤러리를 ‘샤갤’, 유저들을 '샤붕이'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기회균형선발특별전형(정원 외): 북한이탈주민, 특수교육대상자, 1~3급 장애인만 지원 가능하고, 대학수학능력시험 2개 영역 7등급 이내여야 한다.

2023 정시 개편 (2021년 고2 이후) 공지

  • 교과평가 추가
서울대학교 정시 모집은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100%로 선발하였지만, 2023학년도부터 교과평가가 추가된다.
교과평가는 고등학교 학교생활기록부의 ①교과 이수 현황, ②교과 학업성적, ③세부능력 및 특기사항만이 반영된다.
1단계에서는 수능 100%로 2배수가 합격하고, 2단계에서는 1단계 점수 80점 + 교과평가 20점으로 최종 합격자가 정해진다.
  • 지역균형전형 신설
수시 모집과 마찬가지로 정시 모집에도 지역균형전형이 신설된다.
고등학교마다 2명 이내의 학교장 추천을 받으면 지원 가능하며, 졸업자(N수생)도 추천을 받을 수 있다.
일반 전형과 달리 수능 10점 + 교과평가 90점 만으로 합격자가 정해진다.



2024 정시 개편 (2021년 고1 이후) 공지

* 수능 과학탐구 Ⅱ과목 필수 해제
기존 자연계열 정시에서의 수능 과학탐구 영역 Ⅱ과목 필수가 해제되었으며, 이를 대신하여 Ⅰ+Ⅱ는 3점 Ⅱ+Ⅱ는 5점의 가산점을 부여한다.
* 물리학 또는 화학 응시 필수 모집단위 추가
일부 모집단위의 경우 수능 과학탐구 영역 중 물리학Ⅰ, 물리학Ⅱ, 화학Ⅰ, 화학Ⅱ 중 한 과목 이상을 응시해야 한다.
[ 해당 모집단위 ]
자연과학대학 물리·천문학부 물리학전공,·천문학부 천문학전공, 화학부
공과대학 기계공학부, 전기·정보공학부, 에너지자원공학과, 항공우주공학과, 외계인통신및연구학과[1]
농업생명과학대학 식물생산과학부, 식품·동물생명공학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바이오시스템·소재학부
사범대학 물리교육과, 화학교육과, 생물교육과
의과대학



2. 출신 인물[편집]





3. 졸업자 사회 진출 현황[편집]





4. 평가[편집]


아래는 QS 세계 대학 랭킹, THE 세계 대학 랭킹, ARWU, CWTS 레이던 랭킹, CWUR 세계 대학 랭킹, U.S. 뉴스 & 월드 리포트, 네이처 인덱스 등 세계 대학 랭킹에서 평가된 서울대학교의 국제 순위이며, 각기 평가 방법론과 지표가 다소 상이함을 참고해야 한다. 각 랭킹의 특성이나 자세한 사항은 해당 문서들을 참조.

다양한 평가 및 대다수 년도에서 국내 1위를 달성하고 있다.

'''[[THE 세계 대학 랭킹
THE]]-QS 세계 대학 랭킹[1]| 연도'''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순위
11118위
9113위
6223위
5134위
5035위
4753위

5. 사건 및 사고[편집]




6. 의견 및 비판[편집]




7. 여담[편집]


  • 서울대의 전통 놀이로 팩차기가 있다.

  • 역사적으로는 '국립서울대학교 설치령’이 공포되기 전, 국어(한국어)를 배운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에[2], 경성대학 법문학부 교수회에서 입시 과목에 국어와 한문을 제외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러자 외국인 총장 앤스테드 대위가 “자국어 시험을 치르지 않고 학생을 뽑는 대학이 세상 어디에 있느냐”고 훈계한 역사가 있다.#

  • 입학하자마자 휴학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학교이다.[3] 서울대학교 이외의 대학교들은 대부분 무조건 1학년 1학기는 마쳐야 한다.

  • 서울대 3대 바보: 서울대입구역에서 서울대학교 정문까지는 걸어서 30분이다. 정문으로부터 가장 먼 건물인 윗공대까지 걸어간다면 총 1시간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정문에서 공과대학(301, 302 공학관)까지는 버스로도 10분 거리고 이는 신촌으로 치면 합정역에서 세브란스병원까지의 거리와 같다.이를 걸어가는 사람보고 바보라 일컫는다. 그리고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평균적으로 각 고등학교에서 전교 1등을 두고 피터지게 다툰 자들이 입학하는 곳이라 영재학교나 특목고 출신이 아닌 이상 서로 전교 1등 해봤다고 자랑하는 건 의미가 없다. 그리고 가장 재미없기로 소문난 서울대학교 축제에 열심히 참가하는 사람도 바보라고 보는 시선이 팽배해졌다. 그런데 강남순환로 개통으로 러시아워에 서울대입구역에서 서울대 행정관을 오가는 셔틀버스가 계절학기 중임에도 불구 40분 넘게 걸리는 상황이 되었다. 개강시 더 심해질 것은 불보듯 뻔한 일. 입구역에서 서울대까지 걸어가는 게 과연 바보짓인지 의문이 제기될 판이다. 실제로 금요일 퇴근 시간과 맞물리면 걸어가나 버스타나 비슷하게 도착한다. 날씨만 좋다면 만원버스 안에 타서 흔들리느니 걸어가는게 나을판이다.[4]

  • 전 세계 주요 대학교 중 유일하게 음악 연구 학과(인문대학 음악사학과)가 없다.

  • 수원시에 있던 농업생명과학대학이 2003년 관악캠퍼스로 이전했다. 수원캠퍼스(일부 보존부지 제외)는 2012년에 경인교육대학교 경기캠퍼스와 맞교환 형태로 교환이 되었다. 이 계약으로 과거 서울대 수원캠퍼스 부지는 도유지, 경인교육대 경기캠퍼스는 국유지로 전환되었다.

  • 2014학년도 입시부터 정시모집에서는 학생부와 논술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수능 100%로 학생을 선발하기 때문에, N수생 합격자들이 상당수다.

  • 서울대의 IP주소는 147.46.0.0/15 대역이다.[5][6] 인터넷을 하다 보면 이 주소를 의외로 여러 사이트에서 찾을 수 있으며, 디시인사이드에서 발견되는 것쯤은 이미 아무것도 아니다. 심지어 아웃사이더 갤러리에서 "화장실에서 밥먹었다"는 꾸준글의 IP가 서울대학교로 밝혀져 갤러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일도 있었다. 아무래도 25,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보니 이런저런 사람은 다 있다.

  • 서울대학교의 학내 신문은 '서울대신문'이 아니라 그냥 '대학신문'이다. 거만하다고 오해할 수 있으나 실은 6.25 전쟁 당시 부산에 설치되었던 전시연합대학의 학보로부터 전해져 내려져 온 것이기 때문이다.[7] 사실 명칭 부심은 오히려 1947년 7월 1일 문리과대학 학생회 문화부에서 창간한 학보의 제호가 '대학신문'인 것에서 찾을 수 있다.문리과대학의 대학신문 창간호(1947.7.1) 당시는 단과대 별로 따로 기관지를 발행했는데 예컨대 사범대는 '사범대학'이었다. 유독 문리과대학이 '대학신문'이라 한 것은 구제전문학교와 통합된 타 단과대학들과 달리[8] 문리과대학은 온전히 경성제대 문학부와 이학부만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일제강점기 동안 한반도 내의 유일한 대학이었던 경성제대의 적통이라는 자부심이 드러난 것이라 보아야 한다. 문리과대학의 '대학신문'은 1947년 9월 제3호까지만 발행되었다. 1948년 3월 1일에는 서울대 전체 학보인 '서울대학신문'이 창간되어 1950년 5월까지 발행되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제17호를 마지막으로 정지되었다. 그리고 현재 발행되는 '대학신문'은 1952년 2월 4일 전시연합대학 시절에 탄생한 것이 이어내려온 것이다. 전쟁으로 중단되지 않았더라면 서울대 학보의 명칭은 그대로 '서울대학신문'이 되었을 것이다.

  • 타과 학생들이 미대의 로망을 상상하고 미대 건물에 들어왔다가 매우 열악한 환경에 당황하기도 한다. 이 건물의 모 학과 과방을 들어가봤더니 1평짜리 다락방에 전기장판만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나마 새로 지어진 편인 디자인과 건물은 괜찮다.

  • 체력이 약골인 걸 전국에 인증했다.
서울대 학생들의 체력이 약골이에요. 조사를 해 보니까 서울대 학생들의 체력이 50대 아저씨 수준이라고 밝혀져서 충격을 주고 있어요. 일반인과 서울대 남학생 체지방률, 근력, 근지구력, 유연성 이게 모두 50대 아저씨들 수준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일본의 20대 청년들의 평균 체력보다 현저히 낮다는 그런 연구 결과도 있어서 충격입니다. 일본 20대하고 서울대 학생들하고, 심지어 서울대에서 운동을 주기적으로 참여한 학생들도 일본 20대 아이들보다 더 낮습니다. - 2010년 국정감사

  • 서울대 야구부는 네임밸류에 어울리는 화려한 패배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비슷한 처지의 도쿄대학 야구부와 친선경기를 종종 벌인다.

  • 백괴사전에는 국립정신병동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등재되어 있다.

  • 서버 오류 및 잘 터지기로는 정평이 나 있다. 사실 이는 서버 관리를 나태하게 해서라는 의견이 중론이다. 수강신청 사이트는 물론, eTL까지 터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래 사건들이 대표적이다.
    • 2015학년도 2학기 홀수학번 수강신청 대란. 수강신청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초인기강좌는 아니더라도 꽤 인기 있는 강좌가 수강신청하기 시작한지 20분 지나기까지 자리가 남아 있다는 건 얼마나 기적에 가까운 일인지 알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실제 수강신청 사이트 서버는 한적했고, 로그인만 하면 대기시간 하나 없이 수강신청을 전승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그 놈의 로그인만 되면. 문제는 수강신청 15분 전부터 로그인 서버가 터져 제시간에 로그인이 된 사람이 극히 드물었고 결국 수강신청 시작하고나서 3-40분이 되기까지 로그인을 못한 사람이 생기기도 했다. 그날 스누라이프는 불평, 비판글로 폭발했고, 서울대에도 항의 전화가 몇 개는 걸려왔으며, 학생회에서 움직임을 보였으며, 그 다음날 짝수학번 수강신청은 08학번 인증, 역대급 가장 쾌적한 수강신청이었다.
    • 2021년 8월 13일, '13일의 금요일 수강신청 사태'. 선착순 수강신청이 예정되어 있었던 8월 13일에는 수강신청 시작이 8시 30분으로 계획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7시50분까지 점검을 하겠다고 공지를 띄웠다가 8시 20분이 넘도록 수강신청 사이트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들이 정보화본부에 문의한 결과, 8시30분까지 로그인을 막아놓았다는 무지성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결국 수강신청 당일 수강 신청이 시작되는 시각이 다 되어서야 수강신청을 30분 연기하는 역대급 무능함을 보였다(그리고, 공지를 게재한 마이스누 포털 역시 터져 공지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제보가 속출했다.) 가히 서울대학교의 적폐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당일 오전 8시 50분 경에는 수강신청 일정에서 13일이 아예 사라지고, 선착순 수강신청 일정이 8월 17일로 변경되어 게재되었다. 학생들은 학교 측의 무능함에 치를 떨고 있다.[9] 수강신청이 기술적인 이유로 두 번 미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정보화본부는 학생들이 지적하기 전까지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서버가 터졌어도 수강신청에 성공한 학생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선착순의 원칙은 지켜졌다고 발뺌을 시전, 학생회 측에서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나서야 사과하는 추태를 보였다.




  • 관악 캠퍼스가 김포국제공항 접근 항로 아래 위치해 있어 학교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비행기가 꽤 자주 지나다닌다. 대부분은 착륙하는 비행기이지만, 날에 따라 이륙하는 비행기가 보이기도 한다. 기종도 737, 747[10], 767, 777, 787[11], A320 패밀리, A330, 각종 비즈니스 제트 등 매우 다양하다.


  • 학교 포털인 마이스누는 웹표준인 HTML5 기반으로 만들어져 브라우저와 관계없이 각종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로그인 시에 딱 하나 비표준적인 물건을 쓸 수도 있지만 선택사항일 뿐으로 굳이 쓰지 않아도 이용에 지장은 없다...라기보다는, 중요한 학사와 재정, 서무업무를 보는 교직원과 보직교수의 신분확인을 위한 목적이 강하며(공인인증서 로그인을 하지 않으면 업무승인을 할 수가 없다) 학부, 석박사과정생 및 연구생[12], 시간강사 및 연구원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 2016년 2월 15일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에서 열린 2016학년도 서울대학교 신입생 OT에 걸그룹 여자친구가 축하 공연을 선보였다.

  • 학부와 법학전문대학원을 모두 지방대를 나온 어느 변호사시험 합격자는, 작은 사회인 로스쿨의 특성상 학생들 사이에 뒷담화가 일상이기는 하지만 개중에서도 서울대 출신들의 그것은 격이 다르더라는 소감을 남겼다. 스누라이프의 예에 비추어 보면, 이 소감은 상당히 일리 있다.
[로스쿨생들 사이의] 뒷담화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그러나 이런 면에서도 샤대 학부 출신은 다른 것 같다. 그들은 공부든 뭐든 다 잘하고, 뒷담화 기술 또한 가히 예술이다. 정보 획득, 전파, 교란, 이간질, 그 사이에서 치고 빠지기 등등 그들의 실력은 순수 노력으로만 달성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박재훈, 《너의 로스쿨》, 204면

  • 1981년 1월 29일 경향신문에서, 배짱/소신지원으로 법대에 합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관악산에 노루가 뛰논다 - 관악마운틴 노루점핑

  • 6.25 전쟁 당시 서울대학교 건물이 미군의 사령부로 사용되었다. 정전협정 이후 1953년 9월 15일, 미군은 서울대학교 환수식을 통해 서울대학교 건물을 서울대학교에 반납하고 용산으로 이사갔다.#

  • 2022년 식량·에너지 위기로 인하여 학식 물가가 대폭 오르자 서울서 처음으로 밀키트와 이를 조리할 셀프조리코너를 조직하여 학생들에게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8. 제반 및 관련 기관[편집]



9. 서울대학교병원[편집]





10.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편집]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국학진흥원과 함께 대표적인 한국학 연구 및 자료수집기관이다.


11.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학교[편집]




12. 노동조합 현황[편집]



13. 관련 문서[편집]






[1] 라틴어 경구이며 보편적인 발음은 '베리타스 룩스 메아'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는 중세 교회 라틴어 방식이고 고전 라틴어 방식으로는 '웨리타스 룩스 메아'라 읽는다. 본래 문장에 들어갈 -est는 (이를 corpula, 연결사라고 부른다. 영어의 be 동사와 유사) 일반적으로 생략이 가능하므로 굳이 넣지 않는다.[2] 1946년은 '국립서울대학교설립에관한법령'에 따른 국립서울대학교의 출범 연도이나 '10월 15일'이라는 날짜를 개교기념일로 삼은 근거는 자료가 유실되어 알 수 없다. 자세한 것은 서울대학교/역사 문서의 개교기념일 문단 참고. 서울대학교를 구성하는 각 단과대학들은 서울대학교 산하의 단과대학이 되기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별개의 학교들이었고, 각 단과대학에서 자신의 전신에 해당하는 법관양성소, 한성사범학교, 의학교, 농상공학교 등의 개교일을 별도로 기념하기도 한다.

서울대학교의 개교년도와 관련하여 2010년 서울대학교 평의원회는 1946년에 서울대학교로 통합된 10개 학교들의 연원 중 가장 오래된 법관양성소와 한성사범학교의 개교년도인 1895년을 시작점으로 하여 '1895년 개학(開學), 1946년 개교(開校)'의 입장을 택하였다.
[3] 2023년 6월 26일 02시 자살했다.[4] 대부분의 국립대학은 대한민국 교육부 산하 기관이지만 서울대학교는 2011년 법인화 이후 정부와 분리되어 국립대학법인이 운영하는 형태로 전환하였다. 법인화 이후 국립대학이 아니라는 오해가 있지만 2010년 개정된 고등교육법 제3조에서 "학교"를 국가가 설립ㆍ경영하거나 국가가 국립대학 법인으로 설립하는 국립학교, 지방자치단체가 설립ㆍ경영하는 공립학교, 학교법인이 설립ㆍ경영하는 사립학교로 분류하므로, 서울대학교는 여전히 국립대학에 해당한다. 다만, 교육부와 대교협이 운영하는 대학알리미 사이트에서는 국립대법인이라는 별도의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있다.[5]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립된 특수법인으로 서울대학교병원과는 별도의 법인이다.[6] 서울특별시 보라매병원은 서울대학교병원이 운영하는 시립공공병원이다.[7] 2024년 3월 세종공동캠퍼스 개교 예정[A] A B C 대학알리미 공시 기준[8] 학부 (전임 41명, 비전임 40명), 대학원 (전임 7명, 비전임 949명)[9] 3년 뒤인 1949년에 교육법이 제정되는데 제83조에서 국립/공립/사립의 구별을 학교 명칭에 붙일 수 없게 규정함에 따라 공식명칭이 '국립서울대학교'에서 '서울대학교'로 바뀐다. 교명에 관한 이 규정은 후에 개정되어 국립대학들은 '국립' 명칭을 쓸 수 있게 됐다.[10] 사실 경성대학은 동숭동에 먼저 생긴게 아니었다. 현재 청량리역 맞은편 미주아파트단지가 경성제대 예과의 자리였는데 예과캠퍼스 본관건물은 민간병원에 불하되어 사용되다가 2015년에 안타깝게도 헐리고 말았다. 여기서 예과란 의예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교양학부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본과(학부)진입전 반드시 거쳐야하는 과정이다.[11] 당시는 예술대학에 미술부와 음악부가 있었고, 미술부에는 제1회화과(현 동양화과), 제2회화과(현 서양화과), 조각과(현 조소과), 도안과(현 디자인과/공예과)를 두었다.[12] 한국에서 서울대 이외에 라틴어 표어를 쓰는 교육기관은 광운대, 서강대, 성공회대가 있다.[13] Veritas(진리)[14] Lux et veritas(빛과 진리)[15] 서울대학교의 교훈을 지은 사람은 군종 목사였다.[16] 저 ㄱ, ㅅ, ㄷ를 합친 정문은 서울대 출신 유시민이 쓴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나의 한국현대사>에서 "ㄱ, ㅅ, ㄷ의 약자는 계집, 술, 담배"라는 농담의 소재가 되었다. 혹은 ‘계집, 술, 도박’이나 ‘권력, 술, 돈’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종종 담배 대신 ‘당구’를 넣기도 하고, 학생운동 전성기 때는 ‘공.산.당’의 이니셜이라는 농담도 있었다. 서울대의 등록금이 아주 쌌을 적에는 '가난한 사람들만 다니는 대학교'의 약자라는 말도 있었다. 초기에는 경성제국대학의 ㄱㅅㄷ(경성대)라는 비판도 있었다.[17] 서울대 관련 물품에서 교표와 함께 제일 많이 쓰인다. 물론 간지는 교표가 더 나서 조금 밀리는 감이 없지 않지만. 연세대와 고려대는 오히려 상징동물들을 더 내세우는 편이라면 서울대는 상징인 백학을 거의 쓰지 않고, 교표, 샤, SNU로 정리된다.[18] 그래서 동아리 이름이나 학교 앱 등 학교 관련된 것에 유난히 자가 많이 쓰이게 되면서(ex. 서울대 자부심을 샤부심이라고 칭하거나 서울대학교 학생 홍보대사 이름이 '샤'인(SHINE)인 것, 학식 메뉴를 알려주는 앱의 이름이 식'샤'인 것 등) 그런 부정적 여론은 없어졌다. 일종의 에펠 탑 효과라고 볼 수 있다.[19] 일본의 도쿄대학 역시 아카몬(1827년 준공)이라는 문이 도쿄대를 상징한다. 다만 서울대와 달리 정문은 아니다.[20] 미대 조소과 엄태정 명예교수가 제작했다.[21] 이 조형물을 처음 만들 때는 문화관 앞의 나무들을 베고 만든다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조형물이 들어서자 이내 학교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마치 처음부터 이 조형물이 이 자리에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