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번 리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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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경[편집]


잉글랜드 요크셔 북부의 고도 리폰(Ripon)에서 이름을 딴 이 함상뇌격기의 기원은 192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항공성은 해군항공대에서 쓰이고 있던 단좌 함재기인 블랙번 다트(Blackburn Dart)의 뒤를 이어 뇌격기정찰기로 모두 이용할 수 있는 함재기에 관한 요구사양서 21/23을 발표했다. 견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영국 해군은 장거리 정찰 임무를 수행하려면 조종사와 항법사 겸 기총사수로 구성된 2명의 승무원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거기에 추가된 요구사항은 비행갑판이나 육상기지에서 이착륙하기 위한 고정식 랜딩기어와 플로트를 서로 교체 가능해야만 한다는 것이었고, 이 조건이 충족된다면 21/23 뇌격기는 육상과 해상에서 폭넓은 운용이 가능해질 것이다.

블랙번 사는 1925년부터 설계주임 겸 기술이사인 프랭크 범퍼스(Frank Arnold Bumpus : 1886~1980)의 지시에 따라 해군이 요청한 사양에 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전에 설계된 해안초계용 수상기인 블랙번 벨로스(Blackburn Velos)의 설계를 많이 활용했는데, 네이피어 라이온 엔진을 중심으로 사각형 윙박스에 하반각을 준 날개를 빼면 대체로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후방석의 회전 마운트에 장착된 루이스 기관총 한 자루가 방어 무장으로 채택되었다. 공격용 무장은 주익 아래 파일런에 6발의 230파운드 폭탄이나 3발의 520파운드 폭탄, 또는 1발의 18인치 항공어뢰로 구성되었다.

리폰 뇌격기는 한 쌍의 시제기가 제작되었다. 1926년 4월 17일, 원형 1호기는 테스트 파일럿 조지 벌먼(Paul Ward Spencer Bulman : 1896~1963)이 조종간을 잡고 육상기 사양의 착륙장치를 단 상태로 처녀비행을 했다. 같은 해 8월 26일, 플로트 2개를 달고 수상기 사양으로 완성된 두 번째 시제기는 시험비행사 레니(J. D. Rennie) 소령에 의해 수면 위에서 첫 비행을 했다. 같은 해 12월부터 펠릭스토우(Felixstowe)의 해양 항공기 실험소(Marine Aircraft Experimental Establishment)의 관할로 공식적인 기종 평가를 시작했다. 경쟁 기체인 핸들리 페이지 해로우(Handley Page Harrow)애브로 버팔로(Avro Buffalo)를 상대로 한 초기 시험을 지켜 본 해군항공대 심사관들은 어느 후보도 만족하지 못하고 실망감을 표해,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기일전한 범퍼스 기사는 리폰의 프로토타입에 달린 라이온 V 엔진을 들어내고 출력이 570마력으로 보강된 라이온 X 엔진을 올리고 방향타를 확장하고 주익 앞전에 약간의 후퇴각을 주도록 개량했다. 이렇게 고친 원형기는 다시 평가된 비교 테스트에서 승자로 선언되었고, 블랙번 사는 왕립해군과 리폰에 대한 생산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2. 생산[편집]


양산 기체는 1927년 말에 첫 비행을 했다. 리폰 II라고 불린 이 사양은 새로 형태를 다듬어낸 카울링과 엔진 냉각을 위한 접이식 라디에이터가 달려 기수가 더 길어지면서 프로토타입과 인상이 확 달라졌다. 착륙장치도 하부 중앙 지주를 프론트 스파에 연결하고 신축식 올레오 스트럿을 가져 완충 효과를 높이도록 거의 완전히 뜯어고쳐졌다. 그 외의 동체나 주익 같은 주구조물은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그 시절 확립된 블랙번 관행에 맞춰 후방석의 기관총 마운트를 더 자세를 낮추도록 재설계되었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잠글 수 있도록 뒤쪽 데크의 슬롯도 수정되었다.

1928년 5월 15일, 생산 1호기가 언론에 공개되었고, 험버(Humber) 상공에서 어뢰를 투하시키는 연습을 포함한 비행 시범과 함께 모여든 기자단 앞에서 곡예 비행까지 선보였다. 1928년부터 1929년까지 블랙번은 20대의 리폰 II 계약을 따냈다. 1930년 초에는 개선된 리폰 IIA를 40대 더 주문했는데 이 개량형은 주익에 두랄루민을 더 많이 사용하고 구조 강도를 높이도록 수정해서 전체 중량이 약간 더 무거워졌다. 이 무렵 생산률은 주당 2대꼴이었는데, 이는 경쟁 업체인 볼턴 폴(Boulton Paul Aircraft) 사에 부품 일부를 하청을 주면서 더 빨라졌다.

1931년1932년 사이에 31대의 리폰 IIC가 완성되었고, 이 형식이 나오면서 기체 구조에 남아있던 나무는 모두 제거되었다. 초기 생산형 대부분은 1930년대 초엽에 리폰 IIC 사양으로 재조립되었다. 리폰의 최종 생산형은 국내용보다는 수출형 리폰이었다. 이때 개량된 리폰은 더 효과적으로 진보된 블랙번 배핀(Blackburn Baffin)의 기초 역할을 했다. 1934년 1월부터 배핀은 해군항공대의 기체들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많은 리폰들이 블랙번 공장으로 되돌려져 배핀으로 재조립되었다.

영국 외에도, 블랙번은 잠재적인 해외 고객들에게 리폰을 홍보하기 위해 꽤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 판매 촉진은 BMW와 히스파노-수이자 엔진으로 교체하는 연구도 포함했는데, 이는 당시 네이피어 라이온 엔진의 후기 모델들이 여전히 해외수출 금지 품목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페인 해군은 네이피어 라이온 엔진을 국산화하기 위해 리폰을 구입했음을 공공연히 인정한 목표였다. 1928년 8월, 핀란드는 T.5D로 명명된 수출형에 브리스톨 주피터 공랭 엔진과 교체 가능한 착륙장치를 갖춰 1929년 9월 29일에 핀란드 공군에 인도되었다. 핀란드가 구입한 리폰은 본국 사양보다 더 성능이 좋아서 고객을 만족시겨줬기 때문에, 블랙번 사로부터 리폰의 생산 면허를 구입했다.





3. 운용[편집]


이 뇌격기는 1929년부터 해군항공대에서 운용을 시작했고, 6대는 같은 해 1월부터 항모 퓨리어스(HMS Furious)의 제462항공대원들의 손에 의해 작전 태세에 들어간다. 1931년이 밝아오자 5대의 리폰 뇌격기가 아르헨티나로 보내져 그해 3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대영제국 항공박람회의 시범 항공기로 공개되었다. 많은 리폰 뇌격기가 근접 편대를 짜고 남미인들의 머리 위로 날아다녔다.

해군항공대에서는 일반적으로 플로트를 단 수상기 형식보다는 항공모함에서 함재기로 운용되었다. 리폰은 1933년까지 뇌격기로 비행을 계속했고, 이후 제810, 811, 812 등 3개 비행대대로 재편성되었다. 1935년 1월, 제811해군항공대가 성능이 개선된 배핀을 장비하면서 마지막 리폰이 퇴역했으나, 해외에서는 여전히 주력기로 쓰였다.

핀란드 공군도 리폰을 운용했는데, 블랙번이 생산한 기체를 1대 보내고 핀란드의 국영 항공창에서 25대를 추가로 생산했다. 해외 수출형은 엔진이 본국 사양과 달라 530마력의 브리스톨 주피터 VII(Bristol Jupiter VII)이나 480마력의 놈-론 주피터 VI(Gnome Rhone Jupiter VI)이나 암스트롱 시들리 팬서(Armstrong Siddeley Panther) 엔진, 최종적으로 810마력을 발휘하는 브리스톨 페가서스(Bristol Pegasus) 엔진이 있다.

핀란드의 리폰 부대는 투르킨사아리(Turkinsaari), 소르타발라(Sortavala), 산타하미나(Santahamina) 섬에 주둔했고, 겨울 전쟁계속 전쟁에서 소련군에 대항하는 전투 임무에 나가 침략자들과 싸웠다. 1939년 말 소련 전투기에게 1대의 리폰이 격추된 이후, 리폰 뇌격기는 야간 임무만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정기적인 정찰 비행, 대잠수함 초계, 사상자 대피, 전단 살포, 보급물자 투하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다. 1944년 12월 15일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리폰이 이륙했는데, 핀란드군은 부품 생산량이 충분하지 않아 서로 잡아먹어가며 험하게 굴려지면서 가동기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오늘날 RI-140 마킹이 그려진 리폰이 딱 1대 보관되어 있으며, 이 기체는 최근에 수리와 복원을 거쳐 재조립되어 페예른 타바스티아 항공박물관(Päijät-Hämeen ilmailumuseo)에 전시되었다. 그것이 유일하게 남아있는 리폰 뇌격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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