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아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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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riathus

(? ~ 기원전 140)
1. 개요
2. 생애
3. 그 외에


1. 개요[편집]


고대 루시타니아의 명장.

이베리아 반도 중서부, 즉 오늘날의 포르투갈 일대에 거주했던 루시타니아인들의 지도자였다.[1] 루시타니아 전쟁 당시에 로마 공화국에 맞서 용감히 싸운 것으로 유명하다.


2. 생애[편집]


아피아노스의 기록에 따르면, 비리아투스는 기원전 150년에 로마의 법무원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2]가 루시타니아를 침공하여 그 주민들을 학살했을 당시에 로마군에게 사로잡혔다.[3] 당시에 젊은 목동에 불과했던 비리아투스는 구사일생으로 탈출에 성공하였으며, 2년 후인 기원전 148년에는 루시타니아 전사들의 지도자가 되어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기원전 147년, 비리아투스는 그동안 결집한 세력을 모아서 로마인들에게 복수하고자 하였다. 그는 로마의 법무관이었던 카이우스 베틸리우스의 군대를 상대로 매복 공격을 감행하였다. 이 싸움에서 로마군은 4,000 명에 달하는 병력을 잃었을 뿐 아니라, 법무관 베틸리우스가 살해당하는 등의 참패를 당하였다.[4]

이 싸움을 계기로 비리아투스는 큰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루시타니아 지역의 여러 세력들이 그의 휘하에 들어가면서 그 세력도 더욱 강해졌다. 이후 로마와 루시타니아인들간의 전쟁은 더욱 격화되기 시작하였다. 비리아투스는 산악 지형을 이용한 게릴라 전술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였다. 그의 지휘 하에 루시타니아인들은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로마군들을 수차례 격퇴하며 끈질기게 저항할 수 있었다.

기원전 145년, 로마의 집정관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아이밀리아누스[5]가 군대를 거느리고 비리아투스와 싸웠다. 로마군은 비리아투스와 승패를 주고 받기는 하였으나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기원전 142년, 로마의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세르빌리아누스[6]가 루시타니아를 공격해서 비리아투스의 요새를 몇 개 빼앗는 전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비리아투스는 열세에도 불구하고 로마군을 격파하여 이를 포위하고는 평화 조약을 제안하였다. 궁지에 몰린 세르빌리아누스는 비리아투스의 요구를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기원전 140년, 로마의 집정관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는 평화 조약을 파기하고는 다시 루시타니아를 공격하였다.[7] 그러나 로마군은 이번에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결국 카이피오는 아우둑스, 디탈리쿠스, 미누루스 등을 비롯한 비리아투스의 수하들을 매수하였고, 이들은 군영에서 잠을 자던 비리아투스를 암살하였다. 그러나 카이피오는 이 세 사람을 모두 처형하고는 "로마가 배신자들에게 지불할 돈은 없다"는 말을 남겼다.

뛰어난 지도자였던 비리아투스를 잃은 루시타니아의 전사들은 로마군에게 패배하여 근거지였던 사군툼이 함락당했다. 결국 루시타니아인들은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카이피오와 평화 조약을 채결하였으며, 로마의 속주에 편입되는 운명을 맞이하였다.[8]


3. 그 외에[편집]


19세기에 활동한 스페인의 화가였던 호세 데 마드라소는 1806~1807년에 걸쳐 비리아투스의 비극적인 최후를 소재로 한 《비리아투스의 죽음(The Death of Viriathus)》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히스토리 채널의 다큐드라마인 바바리안 라이징에서는 에피소드 1에서 등장하는데, 실제 역사 처럼 게릴라전의 달인으로 묘사된다. 산발에 수염을 기른 젊은 용사로 묘사되며, 전체적으로 어둡고 비장한 분위기를 풍기는 편. 여기서는 비리아투스의 아버지가 과거 카르타고 군대에 고용되어 포에니 전쟁에 참전했다는 각색이 들어갔다.

스페인 사극 드라마 Hispania, la leyenda는 이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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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날의 포르투갈인들은 루시타니아인들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여긴다.[2] 로마 제정 시기의 잠깐동안 황제인 갈바와는 이름만 같을 뿐 훨씬 앞선 시대의 사람이며, 기원전 144년에 집정관이 되었다.[3] 갈바는 탐욕스럽고 잔인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그는 로마에 저항해오던 루시타니아인들이 궁지에 몰려서 항복 사절을 보내오자, 그들에게 비옥한 땅을 주겠다고 속였다. 그 말을 믿고 로마인들을 따라갔던 수천명의 루시타니아인들은 학살당하거나 노예로 팔려가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고, 갈바는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여 막대한 부를 쌓았다. 갈바의 잔혹한 행위 때문에 스페인 지역의 속주들은 로마인들을 불신하기 시작하였고, 갈바는 그 책임을 지기 위하여 재판에 회부되기도 하였다.[4] 루시타니아인들은 베틸리우스를 포로로 사로잡았으나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베틸리우스는 나이가 많았으며 체형도 비만에 가까웠는데, 때문에 루시타니아인들은 그를 쓸모없는 포로라 생각하여 그 자리에서 죽여버리고 말았다.[5] 제3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것으로 유명한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의 친형이다.[6] 앞서 언급한 아미밀리아누스의 이복형제이다.[7] 앞서 언급한 세르빌리아누스의 형제이다.[8] 카이피오는 루시타니아인들이 항복한 댓가로 그들을 무장해제한 후에 농사를 짓고 살 수 있을만한 곳으로 이주시켰다. 그러나 또다른 비리아투스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기에, 갈바와는 달리 루시타니아인들에게 더이상 해를 가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