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투르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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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샤쿠니 5대 샤
Սանատրուկ | 사나투르케스
제호
한국어
사나투르케스
아르메니아어
Սանատրուկ
라틴어
Sanatruces
존호

생몰 년도
미상 ~ 110년
재위 기간
88년 ~ 110년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아르메니아 아르샤쿠니 왕조의 5대 .


2. 생애[편집]


88년 사망한 티리다테스 1세의 뒤를 이어 아르메니아 왕위에 올랐지만, 그와 티리다테스 1세와의 관계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서기 5세기에 활동한 기독교 계열 역사가 모세스 호레나치(Movses Khorenatsi)에 따르면, 그는 메소포타미아 상부 지역의 오스로에네 왕국의 군주 아브가르 6세의 조카였으며, 91년 삼촌이 죽으면서 자신에게 물려준 덕분에 오스로에네의 왕을 겸임했다고 한다. 그리스-로마 역사가들에 따르면, 그는 시리아의 일부 지역도 통제했다고 한다.

그는 파르티아, 로마 제국과 우호관계를 맺고 토목 공사에 힘을 기울였다. 아라차니 강과 메무라트 강이 합류하는 지점의 서쪽 연안에 므추르크(Mtsurk)를 건설하여 아르메니아의 무역과 공예 발전에 기여했다. 7세기 아르메니아의 주교이자 역사가 세베오스(Sebeos)가 기술한 내용에 따르면, 시리아인 학자 마르 아바스 카티나가 이 도시에 살면서 "아르메니아의 역사"를 저술했다고 한다. 또한 세베오스는 므추르크에 사나투르케스 왕의 궁전 폐허에서 왕궁의 문 앞의 돌에 새겨진 그리스 비문을 기재하기도 했는데, 여기에는 아르메니아와 파르티아 군주에 대한 연대기 정보가 포함되어 있었다. 아르메니아 역사학자 하코프 하마자피 마난디안(1873~1952)은 이를 근거로 사나투르케스가 수도를 므추르크로 옮겼다고 주장했다.

모세스 호레나치에 따르면, 그는 본래 예수 그리스도의 숭배자였던 아브가르 6세의 뜻을 따라 기독교인을 박해하지 않기로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고 유다 타대오를 죽였고, 아브가르 6세의 남성 자손 역시 처단했다고 한다. 하지만 가톨릭 전승에는 유다 타대오가 레반트와 메소포타미아 등지에서 설교하고 뒤이어 페르시아에서 설교하다가 창에 맞아 순교했다고 전해지기 때문에, 아르메니아에서 전해지는 전승이 사실인지는 불명확하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는 이를 기정사실로 여기고 유다 타대오를 수호 성인으로 추앙하고 있다.

110년 사망하여 아르탁사타에 안장되었다고 전해지며, 사후 파코로스 2세의 아들 악시다레스가 아르메니아 왕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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