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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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롬비아의 도시에 대한 내용은 아르메니아(콜롬비아) 문서
참고하십시오.1. 개요[편집]
아르메니아는 남캅카스에 위치한 내륙국이다. 수도는 예레반이다. 지리적으로는 서아시아에 속하지만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는 유럽에 가깝고 각종 국제기구에서 유럽 소속 회원국으로 활동중이기 때문에 동유럽으로 보기도 한다. 대한민국 외교부에서는 아르메니아를 유럽으로 분류하여 아르메니아와의 관계는 유럽 부서(유럽국)에서 맡고 있다.[3] 옛 소련 구성국 간의 모임인 독립국가연합 회원국이며 2014년 10월 9일 유라시아 연합에 가입했다.
2. 상징[편집]
2.1. 국호[편집]
아르메니아어로 자국을 지칭하는 토착지명은 하야스탄(Հայաստան / Hayastan)이다. 이는 고대 아르메니아어로 '아르메니아인'을 뜻하던 '하이(Հայ / Hay)'와 '땅'을 의미하는 '-아스탄(աստան / astan)'[4] 이 붙어 하야스탄이 된 것이다. 여기서 '하이'의 어원은 확실하지 않다. 아르메니아 신화상의 민족 시조인 하이크 나하페트(Հայկ Նահապետ)의 이름 '하이크(Հայկ)'에서 따온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히타이트인의 땅'을 가리키던 우라르투어 '하아테(a-a-te)' 또는 아르메니아의 기원이 되는 히타이트계 국가였던 '하야샤(ayaša)'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하야스탄 외에도 '하이크(Հայք / Haykʿ)'라는 표현이 사용되기도 하며 이는 고대 아르메니아를 가리킬 때 주로 쓰인다.
다만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고전 그리스어 또는 라틴어 '아르메니아(ρμενία / Armenia)'에서 유래한 외래지명이 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고대 페르시아어로 아르메니아를 가리키던 '아르미나(Armina)'가 어원이다. 아카드, 바빌로니아 등 페르시아 이전의 고대 문명에서도 '아르미나'와 비슷한 이름들이 발견되는데, 이는 아마도 하이크의 후손 중 한 명인 아람(Արամ / Aram)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현대 페르시아어로는 '아르마네스탄(ارمنستان / armanestân)'이라 하는데 인접한 튀르키예어와 쿠르드어로는 '에르메니스탄(Ermenistan)', 아제르바이잔어로는 '에르매니스탄(Ermənistan)'이라 한다.
인접한 언어권과 차이를 보이지만 '아르메니아'를 가리키는 표현으로는 아바르어[5] '차무크(ЦӀамухъ / Camuq)', 오세트어 '소미흐(Сомих / Somix)', 조지아어 '솜헤티( / somxeti)'가 있다.
2.2. 국기[편집]
자세한 내용은 아르메니아/국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3. 국장[편집]
자세한 내용은 아르메니아/국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4. 국가[편집]
자세한 내용은 우리의 조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언어[편집]
자세한 내용은 아르메니아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공용어는 아르메니아어이다. 아르메니아어는 러시아, 튀르키예, 미국, 캐나다, 이란,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등 해외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쓰는 경우도 많다. 러시아 지배의 영향으로 이곳은 러시아어가 널리 사용되며[6] 소수의 쿠르드어 사용자도 있다. 프랑코포니에 가입된 국가이기도 한데 이는 프랑스 영향력 및 지지를 이끌기 위해서 그런 것일 뿐.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한국도 프랑코포니 참관국 가입하려고 신청할 정도이다.
4. 지리[편집]
아르메니아는 국토의 86%가 산악 지대로 이루어진 국가다. 캅카스 산맥에 있어서 산들이 많고 고원으로 이루어져 있어 '캅카스의 알프스'로도 불린다.[7] 국토 평균 해발고도가 1,792m로 스위스나 에티오피아보다도 한참 높고, 아프가니스탄(1,884m)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아르메니아 최고봉은 서부에 있는 아라가츠산(Mount Aragats)의 4,090m 지점이다.
산악 국가인 관계로 국토 대부분에서 냉대기후, 특히 냉대 습윤 기후(주로 Dfb, 고도가 높은 지역은 Dfc, 동부와 북부 지역에서 아주 드물게 Dfa)가 나타난다. 고도가 낮은 서부와 동부 지역에는 넓은 스텝이 펼쳐져 있어 각각 인접한 튀르키예나 이란 지역과 비슷한 풍경을 보인다. 수도 예레반은 서부 스텝 지대가 시작되는 고도 1,000m 정도 되는 곳에 있고, 추운 스텝 기후(BSk)를 띤다.[8]
바로 옆 나라 조지아와 얼핏 보면 비슷한 기후대에 속하는데, 조지아도 대부분 냉대 습윤 기후(Dfb, Dfc) 지역이라는 것은 아르메니아와 동일하다. 그러나 조지아는 흑해 연안 서부 지역과 동부 지역 일부에서 온난 습윤 기후(Cfa), 서안 해양성 기후(Cfb)가 넓게 나타나고, 스텝 기후 지역은 동부 일부에 국한된다. 조지아의 서부 저지대인 콜키스 저지대(Colchis Lowland), 대표적으로 바투미 등은 아르메니아의 저지대가 대부분 건조하고 황량한 것과 대조적으로 초목이 무성하고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이다.
1990년대부터 튀르키예가 동부지역의 물 부족 현상을 풀고자 짓는 거대한 댐[9] 문제로 튀르키예와 또다른 갈등이 있다. 이 댐이 완공되면 과거 아르메니아 왕국 시절 수도이던 아니를 비롯한 무수한 아르메니아의 유적들이 물에 잠기게 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두고 생존의 터전을 빼앗겨 반발하는 쿠르드족도 뜻이 통하여 양측이 이 문제에서 손을 잡을지도 모른다. 2009년 10월 10일, 튀르키예와 아르메니아가 일단은 국교 정상화 문서에 조인하였다. 뒤이어 악다마르 성당을 튀르키예 측이 재건하고 2010년, 95년 만에 예배 허용, 2013년부터는 매해 예배 및 아르메니아 청소년들에 대한 세례식을 허용하면서 튀르키예와는 조금은 사이가 나아진 편이다. 물론 튀르키예는 이를 허용하면서 아제르바이잔의 반발과 자국 극우파들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5. 역사[편집]
자세한 내용은 아르메니아/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정치[편집]
독립 이후 정치적으로 혼란했다. 1999년 10월 27일 오후에는 AK-47 소총으로 무장한 괴한 5명이 아르메니아 국회의사당을 습격해 카렌 데미르찬(Կարեն Դեմիրճյան, 1932년생) 국회의장, 바즈겐 사르키샨(1959년생) 총리, 유리 바흐샨(Յուրի Բախշյան, 1947년생) 부의장, 루벤 미로얀(Ռուբեն Միրոյան, 1939년생) 부의장, 레오나르드 페트로샨(Լեոնարդ Պետրոսյան, 1953년생) 국방긴급비상부 장관, 아르메나크 아르메나캰(Արմենակ Արմենակյան, 1955년생) 국회의원, 헨리크 아브라하먄(Հենրիկ Աբրահամյան, 1939년생) 국회의원, 미카옐 코타냔(Միքայել Քոթանյան, 1927년생) 국회의원과 같은 정치인을 8명이나 사살하는 사건(부상자는 30명이 넘는다.)이 벌어졌는데, 범인들 모두 잡혀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 대낮에 수도 예레반 국회의사당에 범인들은 총기를 가득 들고 들이닥쳤음에도 경비는 대체 뭐했냐고 온갖 음모론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이들은 정치에 불만을 가져 벌인 짓이라고 지금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레본 테르페트로샨 전임 대통령은 당시 로베르트 코차랸이 배후조종을 했다며 주장하는 등, 온갖 음모론과 주장이 나왔다. 결국, 최종 수사 결과 정치 불만으로 벌인 범죄라고 결론이 났지만, 지금도 아르메니아에선 대낮에 국회의사당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이게 말이 되냐며 온갖 말이 많다.
이후, 세르지 사르키샨이 독재를 시도했지만 2018년 국민의 반발로 정권교체되어 니콜 파시냔이 총리에 취임했다. 세습독재 중인 옆나라 아제르바이잔에 비하면 정치는 민주적인 편이다.
그러나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패배로 니콜 파시냔은 정치적 위기를 맞았었다. 허나 갈등 끝에 치러진 2021년 6월 조기총선의 결과 극적으로 니콜 파시냔의 시민계약 정당이 다시 승리함으로서 아르메니아 국민들은 비록 패전했지만 니콜 파시냔을 다시 한번 총리로 신임하기로 결정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지난 전쟁 책임소재를 두고 여당과 야당의 갈등이 심각하고 국회에서 의원들끼리 난투극도 벌어지는 등 내부진통은 여전하다. 기사. 거기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쳐들어가면서 고전하자, 아르차흐 주둔 평화유지군을 대거 빼내어 전선으로 보내는 통에 이 틈을 노린 아제르바이잔이 2022년 3월말에 대대적으로 아르차흐 침공을 개시하여 파루크 마을이 함락당하고 있음에도 국제적 관심도는 우크라이나에게 가려져 있는 상황이다.
7. 경제[편집]
자세한 내용은 아르메니아/경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캅카스 3국 중에서는 모든 면에서 자원이 열악한 나라가 바로 아르메니아지만 그래도 최근에는 경제 개발에 힘쓰고 있다. 아르메니아를 강타한 아르메니아 대지진 당시 안 그래도 부족했던 공업은 모두 큰 타격을 입었었고, 자원도 부족하지만 수려한 자연환경과 서늘한 기후를 이용해 피서지 홍보와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이웃나라 아제르바이잔이 석유 생산 덕분에 '불의 나라'로 불리는 것과 대비되어 '돌의 나라(Քարաստան, Karastan)'로 칭해지고 있으며, 실제로 석재가 풍부해 많은 석조 성당들이 있다. 하지만, 이 나라를 들어오려면 러시아나 조지아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남오세티야 전쟁 당시에도 타격을 많이 받았다. 게다가 아제르바이잔과의 분쟁으로 외국인 관광객들도 여행을 기피하는 나라가 되어버려서 아르메니아로서도 아제르바이잔과의 대립은 경제적으로도 타격을 주는 문제이기도 하다.[10] 거기에 2020년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19 여파까지 불어닥쳐 아르메니아 주요 산업인 관광업계가 상당한 타격을 입어 많은 실직자를 냈기에 이번 전쟁 패배 이후 경제적으로 타격이 큰[11] 아르메니아에게 골치 아픈 문제를 안겨주고 있다. 2022년에도 아르메니아는 이 문제로 골치를 겪었다.
이 열악한 경제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르메니아와 원수지간인 튀르키예와 아제르바이잔이 일부러 아르메니아를 비껴가는 철도선인 BTK(아제르바이잔 바쿠, 조지아 트빌리시, 튀르키예 카르스 앞글자) 철도선을 부설하면서 아르메니아는 고립된다. 아르메니아의 저지 노력[12] 이 튀르키예의 극심한 반발과,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박살난 자국 경제 사정을 개선하고자 했었던 조지아의 반발로 무산되면서 아르메니아는 BTC 파이프 자원 라인에 이어 철도 수송 같은 교통에서도 왕따이다.
조지아는 철도선(약 9,600만 달러 전망)과 자원 파이프라인 통과비(약 1억 달러 전망)로만 매해 2억 달러가 넘는 돈을 계속 얻을 전망이다. 러시아와 전쟁으로 개박살나면서 미국이 3억 달러 남짓한 군사지원을 해준다고 말로만 하곤 안 지키던 걸 생각하면 이 돈은 조지아에겐 엄청난 수익이다. 조지아로선 아르메니아가 튀르키예, 아제르바이잔과 원수 사이라 이득으로 돌아오는 셈이다(내셔널 지오그래픽 2010년 8월호 참조). 아직은 미정이지만 카자흐스탄 이웃인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같이 석유와 가스자원이 넘치는 나라들까지 이 나부코 파이프 라인과 연결되면 튀르키예의 입지는 더 단단해지고, 아르메니아는 여전히 손가락만 빨아야 한다. 일부 아르메니아 극우들이 테러라도 가하여 이걸 막아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까지 했을 만큼 아르메니아에선 반발이 엄청나다. 아르메니아가 철도선을 유치했더라면 튀르키예에게 영향력도 과시했을 테고 자국에게 엄청난 경제적, 외교적 이득을 가져왔던 것을 놓치니 화가 날 법하다.
하지만 조지아/경제 문서를 참고하면 알겠지만 조지아의 무역 수출입 관련 1, 2, 3위가 바로 러시아, 튀르키예, 아제르바이잔이다. 조지아로서는 러시아와 전쟁 및 영토 문제로 이가 갈리지만 튀르키예와 아제르바이잔에게는 그런 앙금이 없을 뿐더러 경제적으로도, 나아가 미래의 국가적 이득을 위해서라도 두 나라와는 원수질 일이 없게 해야 하는 현실이기에 아르메니아와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냥 적당하게 잘 지내는 이웃나라로 지낼 수밖에 없다. 조지아에겐 아르메니아와의 무역 수출입이 중요하지만 이 세 나라 무역수출량을 더하면 조지아 전체 무역량 절반에 가깝다. 아르메니아도 조지아의 이런 현실을 알기에 뭐라 할 수 없다.
게다가, 아르메니아는 항구가 없는 내륙국이란 약점을 떨치기 위하여 은근히 슬쩍 조지아의 항구를 삼키려고 하던 짓이 드러났고, 친러시아 정책을 추구하던 아르메니아는 아르차흐 공화국 문제로 남오셰티야를 독립국으로 인정해버렸다. 이로 인해 당시 조지아에선 외교적으로도 반아르메니아 감정이 크게 일어나서 아아전쟁 당시 중립이라고 하곤 아제르바이잔을 편들어버렸다. 결국 조지아와의 사이는 더더욱 얼어붙었지만 조지아라도 없으면 피해가 더 큰 게 아르메니아라서 더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반대로 아제르바이잔, 튀르키예와 조지아가 더 한층 사이가 좋아졌다.[13]
다만 아제르바이잔과 다르게 본토는 거의 침공당하지 않은 점과 해외에 쌓아둔 자금이 많은 아르메니아의 1인당 gdp는 캅카스 중 유일하게 9,000달러를 넘는다. 그래서 HDI 같은 수치들은 주변국 중 최상위를 보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8. 사회[편집]
8.1. 종교[편집]
원래 아르메니아인들은 그들만의 고유한 신앙인 아르메니아 신화를 믿었다. 그러다가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와 접촉하면서 그들의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를 받아들였다가, 서기 4세기인 301년에 아르샤쿠니 왕조의 트르다트 3세(Տրդատ Գ)가 조명자 성 그리고르(Սուրբ Գրիգոր Լուսավորիչ, / Surb Grigor Lusavoričʿ)로부터 세례성사를 받으면서 기독교가 국교화되었다.
현재 아르메니아에서 가장 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종교는 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사도전승을 지닌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이다. 1세기에 바르톨로메오와 타대오 두 사도가 아르메니아에 처음으로 그리스도교를 전파했다. 그리고 301년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선언한 세계 최초의 나라가 되었다. 313년에서야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정한 것은 392년이니, 91년이나 빨랐다. 이렇다 보니 아르메니아 국민 90%는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신자들이다. 이밖에도 많지 않지만 가톨릭(주로 아르메니아 가톨릭), 정교회[14] , 야지디교, 이슬람[15] 도 소수 있다.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영향력 때문에 아르메니아의 크리스마스는 1월 6일이며, 12월 25일은 그냥 평일이다.
앞서 말한 대로 세계 최초 기독교 나라임을 자부하는 아르메니아이지만, 가톨릭 교회에게도 동방 정교회에게도 이단시받으면서 이슬람은 물론, 다른 기독교 종파들에게 오랫동안 시달려왔다. 그래서인지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국교화 요구까지 있었다. 급기야, 지난 2006년에는 자국 종교인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를 제1종교로, 그리고 이슬람을 제2종교로 인정하며 나머지 기독교 종파와 다른 종교들을 금지한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큰 반발을 부른 외국 선교사들의 아르메니아 입국 및 선교 활동 탓이 컸다. 그러나 지금도 타 소수종파의 아르메니아 선교는 이뤄지고 있으며, 정부의 법령도 해석이 애매한 편이고[16] 타종파 선교가 팍팍할지언정 일단 공식 헌법상으로 종교의 자유는 보장하고 있다.
그밖에 튀르키예와 아제르바이잔을 빼면 아랍권 이슬람 국가들도 튀르키예에게 지배를 겪어, 지금도 이를 가는 역사가 있기 때문에 조금은 사이가 좋은 편이다. 다만 나고르노 카라바흐 전쟁 당시에는 미국이 옹호하기도 했고, 기독교 국가 아르메니아가 이슬람 국가인 아제르바이잔에서 학살을 저질렀다는 점 때문에 아르메니아를 비난하는 의견들도 종종 나오기도 했다.
그렇긴 해도 튀르키예보단 낫다는 시각도 있기 때문에 아르메니아 학살 당시 같이 오스만 제국군에게 최대 10여 만이 학살당한 시리아와 시리아와 똑같이 오스만 제국의 피지배를 경험했던 이라크, 요르단, 쿠웨이트 등 다른 아랍 국가들도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문제에서 아르메니아의 편을 들며 튀르키예에 항의할 정도다. 이런 사정으로 이슬람에 대한 종교적 탄압은 없다. 다만, 아르메니아에서 이슬람의 비중은 낮다.[17]
9. 민족[편집]
자세한 내용은 아르메니아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아르메니아의 인구는 300만 명일 뿐이지만 정작 미국[18] 과 프랑스, 이란, 튀르키예[19] , 아제르바이잔(아르차흐 공화국)과 러시아[20] 을 포함해 해외 70개국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인은 600만 명이 넘어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해외 거주 인구가 본국 인구를 훨씬 초과한 나라다.[21] 이들이 보내는 달러 송금과 홍보가 아르메니아의 경제를 유지하고 국가를 알리는 데 그럭저럭 도움을 준다. 앙리 베르뇌유(Henri Verneuil)의 '나의 어머니(원제: Mayrig)'와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원제: 588 rue paradis)'이라는 영화를 보면 이들의 삶을 조금 이해할 수 있다. 어두운 부분으로는 외국에서 범죄에 빠져든 사람들이 많은데 특히 레드 마피아 가운데 유명한 아르메니아 마피아들이 많다.
이웃나라인 튀르키예와 이란에서도 여전히 아르메니아인들이 많이 살아간다. 튀르키예같은 경우는 5~7만, 이란 거주 아르메니아인은 10만~50만 정도. 부정확한 숫자인 것은 두 나라 모두 소수민족 문제에 민감한데다 자세한 조사를 안한다. 물론 대다수의 아르메니아인들은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피해 세계 각지로 흩어졌는데 그 결과 해외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아르메니아 내부의 아르메니아인들보다 많을 지경. 그리고 근면한 국민성 덕에 성공한 경우가 많아, 캘리포니아 같은 경우 "아르메니아인은 곧 부유층"의 공식이 성립할 정도이다. 이렇게 성공한 동포들이 송금한 돈으로 국가도 운영하고, 동포들이 각국의 의회에 로비해서 아르메니아 학살도 알리는 등 이스라엘 닮은 꼴이라 할 만하다. 또한 아르메니아 독립 이후 역대 대통령들 역시 아르메니아 본토 태생이 아니다. 초대 대통령 레본 테르페트로샨은 시리아의 알레포에서 태어난 아르메니아계로 한 살 때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이주했고, 제2대 대통령 로베르트 코차랸과 제3대 대통령 세르지 사르키샨은 아르차흐 공화국 스테파나케르트 출신이다.
타라 덩컨 시리즈를 집필한 소피 오두인 마미코니안이 아르메니아계 프랑스인이다.[22] 그 외에도 프랑수아 미테랑 정권기에 총리직을 역임한 에두아르 발라뒤르(Édouard Balladur), 유명 샹송가수인 샤를 아즈나부르(Charles Aznavour), 실비 바르탕(Sylvie Vartan)도 아르메니아계이다.
캐나다에서 활동하는 거장 영화감독 아톰 에고이안(Atom Egoyan)도 아르메니아계 혈통이다.(정확히는 아르메니아-이집트인) 감독 자신도 이 혈통에 대해 상당히 의식하고 있어 1993년 아르메니아를 방문한 경험을 담은 <캘린더>나[23] 2001년 아르메니아 역사를 다룬 (위의 산 이름에서 따온) <아라라트>와 그후에도 <예레반>도 찍었다.[24] 영국 배우 앤디 서키스(Andy Serkis)도 이 나라 혈통이다. 러시아의 외교부 장관인 세르게이 라브로프도 아르메니아계 러시아인 혈통이며 우크라이나의 전 총리 율리야 티모셴코도 부계가 아르메니아 혈통이다.
아르메니아인의 성씨는 끝에 '얀(-յան; 영어로는 -yan)'이라는 접사가 주로 붙는다. 예를 들자면 마미코냔(Մամիկոնյան), 에고얀(Էգոյան),[25] 하차트랸(Խաչատրյան)같은 식이다. 'ев'나 'ов' 돌림의 성을 쓰는 러시아어권 혹은 ‘-son’으로 끝나는 영어권 성씨(Jackson, Thompson, Johnson 등이 있다.)과 비슷한 식이다. 이 성씨를 지녔다면 아르메니아인 혹은 아르메니아계 혈통이 섞인 사람이라고 보면 좋다. 이 외에도 '죽음의 의사'로 잘 알려진 미국의 의사인 잭 키보키언(Jack Kevorkian)이나 미국의 메탈 밴드인 시스템 오브 어 다운 등이 있다.[26] 그리고 미국 최고의 어그로꾼 카다시안 가족도 아르메니아계. 아버지 로버트 카다시안도 유명했다.[27] 미국 거고지언 갤러리의 설립자이자 미술상인 래리 거고지언(Larry Gagosian)의 경우도 아르메니아계 미국인이며 거고지언은 아르메니아어 성씨인 구가시안(Ghoughasian)을 바꾼 성씨이다.[28]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 여파로 쿠르드족의 독립 요구에 굉장히 민감해 한다. 당장 독립 실현 가능성은 없지만 이 여파로 쿠르드족의 결집 강화도 우려한다. 쿠르드족의 독립은 지역에 새로운 예측 불가능의 변수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에 열거한 튀르키예의 동부 거대 댐공사 계획으로 쿠르드족과 힘을 모아야 하는 또다른 현실이 있다. 거기에 시리아 북부에서는 IS 등에 대항해 쿠르드족과 아르메니아인이 연합 전선을 형성하기까지 하고 있다. 일단 원론적으로 1차대전 이후 튀르키예 공화국에게 억압 받았다는 역사를 공유하므로 PKK, 인민 민주당, 이라크령 자치지구 같은 쿠르드족 독립 단체들과는 친하게 지내는 편이다. 쿠르드족 독립 단체들은 대학살 인정과 학살 당시 쿠르드족의 참여에 대한 사과 같은 과거사 문제는 문제시하지 않고 넘어갔다. 쿠르드족들도 이 학살 당시 무수히 학살되면서 피해자이자 가해자였지만 쿠르드족 항목에 나오듯이 여러 곳으로 분열되어 벌어진 상황이다. 이들이 오스만 제국 편들어 학살한 것도 있으나 이들도 그러지 않았더라면 학살당했다는 의견도 있고 또한 이들에게 사죄배상을 하라고 해도 나라도 없는 이들에게 이런 요구를 듣어줄 수도 없다. 결정적으로 그렇게 해봐야 튀르키예에 이를 가는 반튀르키예 쿠르드 세력을 적으로 만들어버릴 셈이니 차라리 아군으로 만드는게 낫다. 문제는 쿠르드인들도 아라라트산을 성지로 받아들이기에 이들이 독립국가를 세운다면 아르메니아로서도 좋을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10. 군사[편집]
자세한 내용은 아르메니아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아르메니아군은 1988년 2월 당시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 당시 아제르바이잔군에 대항해 아르메니아 민병대가 결집된 것으로 시작해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지 몇 달 뒤인 1992년 1월 28일에 정식으로 창설했다. 현재 아르메니아는 내륙국의 특성상 해군은 없지만 육군과 공군은 존재하며 5만의 현역 군인과[29] 21만의 예비역들을 보유하고 있다. 아르메니아는 징병제 국가로, 아르메니아 남성들은 2년간 군 복무를 한다. 2020년 기준으로 연 국방비 지출은 6억 3400만 달러로 GDP의 5.5%를 차지한다.
2004년 12월 28일에 그리스 평화유지군 일환으로 코소보에 3개 분대가량의 병력을 보냈으며, 2009년 7월에는 아프가니스탄전 마지막 해 끝바지에 병력들을 보내기도 했다.
주위의 강대국(러시아, 튀르키예, 이란 등)이 있어서 21세기 들어서도 여전히 안보위협이 꽤나 큰 나라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의 주범인 오스만 제국의 계승 국가 튀르키예와 역사적으로 사이가 매우 안 좋다. 그러나 튀르키예와 갈등은 과거사라고 할 정도[30] 이며 오히려 이웃나라인 아제르바이잔과의 갈등이 현재진행형이다.
이 때문에 아르메니아는 국가예산 중 국방비의 비중이 매우 높은데, 2018년에 책정된 국방비만 6억 달러인데 이는 아르메니아 GDP 대비 4.8%이며[31] , 2019년의 국방비 증가율은 무려 25%, 2020년에도 14%의 매우 높은 수준으로 증액 예정이다. 이 때문에 국내외에서도 말이 많이 나오는 상황이다.[32] 이는 가상적군 1순위인 아제르바이잔군을 따라잡기 위한 무리수로 보이지만, 아제르바이잔은 인구와 영토에서 아르메니아보다 압도적이기 때문에 소국인 아르메니아로서는 따라가기 힘든 실정이다.
2014년에는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국경 중 나고르노카라바흐 국경에서 아제르바이잔군과의 무력 충돌로 인해 아르메니아군 6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2016년 4월에도 2016년 나고르노카라바흐 충돌이 일어나 아제르바이잔이 아르차흐를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기습받은 아르메니아군은 일부 후퇴하였고, 아르메니아군은 88명이 사망하고 1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피해를 입었다. 물론 아제르바이잔군 또한 95명이 사망하였다.[33] 이후 4일 만에 양국 간의 합의로 정전이 이루어졌다. 늘 벌어지는 국경 분쟁 충돌을 넘어, 22년 만에 경상남도 크기만 한 땅의 영유권을 놓고 전면전을 치른 것이다. 그나마 과거에는 아르메니아가 질적으로 우위였으나, 아제르바이잔군이 오일머니와 튀르키예, 이스라엘 등의 도움을 받아 이스라엘제 무기로 전력을 강화하기 시작하면서 아르메니아의 새로운 위협으로 다가왔다.[34] 게다가 아르메니아로선 난감해하는 게 이스라엘 관계를 중요시하는 미국이 과거와 달리 아르메니아보다 아제르바이잔을 편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다보니 아르메니아로선 더더욱 친러시아적 외교 및 군사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말이 동맹이지 러시아가 아르메니아에게 자기가 주인인 마냥 횡포를 부린다. 러시아 탈영병이 아르메니아 여성에게 강간을 저질렀는데 처벌도 없고 그냥 본국으로 갔다. 게다가 러시아도 무조건 아르메니아 편을 드는 건 아니다.
2020년 7월 12일에 국경지역에서 아르메니아 군인들과 아제르바이잔 군인들이 교전을 벌였다. # 12일에 시작된 교전은 계속되었다.관련 기사. 양국에 동원령과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아르메니아가 구소련제 9K33 오사로 아제르바이잔의 공격헬기 2대를 격추시키고 아제르바이잔의 T-72 3대를 격파했다.# 그러자 아제르바이잔이 튀르키예제 바이락타르 TB2 무인기로 아르메니아의 9K33 오사를 격파했다.#
그러나 2020년에 아제르바이잔과의 전쟁에서 아르메니아군은 필사적으로 싸웠으나 결국엔 패전하면서 많은 병사들을 잃었고 군장비들도 많이 파괴되었다. 재건하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러시아에게 군장비 지원을 애원해야 할 판국임에도 친서구 정책으로 러시아와 갈등을 빚고 있다. 게다가 러시아군이 5년간 주둔하며 5년간은 어느 정도 안전이 보장되나 이후 러시아군이 철군하면 아제르바이잔에게 아르차흐를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서구나 미국에서 돕고자 해도 러시아가 절대 놔둘 리 없다는 점, 러시아를 무시한다고 해도 군장비를 아르차흐나 아르메니아 쪽에 들여올 수도 없는 지리적 요건 등 그야말로 개판 5분 전이다. 그렇다고 친러정책이 희망이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이 러시아도 이번 전쟁에서 아르메니아를 도와주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아르메니아 민주정부의 친서방 정책에 반발해 도와주지 않은 것이다. 러시아는 자기 앞마당인 캅카스에서 유럽과 미국의 영향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꼬웠기 때문에 튀르키예의 개입과 아제르바이잔의 승리를 적극적으로 막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전쟁으로 엄청나게 장비를 잃어서 재건이 시급한 아르메니아에게 러시아는 장비 지원도 소극적이다. 전쟁으로 죽은 이들 및 아르차흐에서 살던 이들이 난민처럼 아르메니아로 10만이 넘게 와도 이들에 대한 생활 보조금도 벅찬 와중에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상황까지 처한 아르메니아는 새로운 무기를 사올 형편도 못되기에 러시아는 무기 판매를 통한 이득을 얻을수가 없다보니 아르메니아에게 장비 지원을 해주지 않는것이다. 그렇다고, 서부와 미군 장비가 지원되어 올 수도 없다. 2021년 내내 아제르바이잔이 온갖 포까지 쏘며 국경에서 도발하여 더 많은 피해를 입은 아르메니아는 올 수도 없는 미국이나 서구 지원은 포기하고 다시 러시아에게 붙어야 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음에도 서구와 미국 지지 역시 만만치 않아 정치적으로 혼란이라 여전히 러시아는 방치하고 있다.
게다가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러시아가 경제재제를 맞았음에도, 아르메니아는 제재에 대하여 찬성하지 못했다. 되려, 튀르키예랑 아제르바이잔이 제재에 대하여 입다물고 찬성한 거랑 대조적. 엎친데 덮친데격으로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이 상상도 못한 졸전을 보여주면서 다급해진 러시아가 아르차흐 주둔 평화유지군까지 대거 철군시켜 우크라이나로 보내면서 아르차흐 곳곳이 비어버렸다. 이 틈을 노려 2022년 3월말에 아제르바이잔은 아르차흐 곳곳에 대대적인 공습과 침공을 가하여 파루크 마을을 함락했으며 곳곳에서 많은 사망자가 벌어졌거늘, 국제적으로 우크라이나에 가려져 묻혀졌다. 점령된 파루크 마을은 통신과 모든 게 끊겨 4월 10일까지도 아르메니아는 피해 여부조차 제대로 모를 판국이다. 아르메이나는 유엔 안보리에 하소연했으나, 우크라이나에 가려져 유엔에서도 묻혀지고 말았다. 그리스나 일부 유럽 나라가 아제르바이잔을 비난한 정도일뿐.
결국 2023년 아르차흐 분쟁에서 참패하면서 아르차흐 공화국을 완전히 아제르바이잔 측에 넘기고 만다. 당연히 예레반에서 반발시위가 엄청나지만, 아르메니아로선 방법이 없다. 29년전에 수만여명 사망자를 양측이 내며 벌인 전쟁에서 얻은 땅을 모조리 잃은 셈이다. 이로 인하여 아르메니아군의 열악함이 크게 드러났다.
10.1. 전쟁[편집]
자세한 내용은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11년 6월 24일, 아제르바이잔과의 분쟁 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의 평화적 해결 원칙이 러시아와 프랑스의 중재에도 합의에 실패, 전쟁 위험이 한층 고조되었다.
2004년 2월 19일에 헝가리 부다페스트 군사학교에서 언어 연수[35] 를 같이 받던 아르메니아군 육군 중위 구르겐 마르가랸(Գուրգեն Մարգարյան, 1978–2004)을 아제르바이잔군 육군 대위 라밀 새패로프(Ramil Səfərov, 1977–)가 도끼로 살해한[36] 사건이 벌어졌는데. 새패로프 대위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가 헝가리 당국이 아제르바이잔 정부로부터 처벌한다는 약속을 받았다면서 2012년 8월 31일 수형자 이송 협약에 따라 아제르바이잔으로 이송했고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새패로프 대위가 도착하자마자 즉시 석방시키고 소령으로 진급까지 시켜버리는 막장짓을 했다. 거기에 2년 뒤에는 중령으로 추가 진급했다.
아르메니아 시위대가 들고 있는 저 사진에서 당연히 왼쪽이 가해자 새패로프. 오른쪽은 피해자 마르가랸. 사후 소령으로 2계급 추서되고 전사자로 기려져 국장으로 장례를 베풀었으며 고인과 유족은 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2013년에는 예레반에 마르가랸 추모관까지 세워졌다. 분노한 아르메니아의 세르지 사르키샨 대통령은 즉각 헝가리와의 외교 관계를 단절했으며,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양국 사이에 또 전운이 감돌게 되었다. 이번 건은 하도 병크라 아제르바이잔과 헝가리를 편들어주는 나라는 없다고 봐도 좋을 듯. 하지만 아르메니아가 약소국이며 겨우 1명이 죽은 사건이라 그런지 국제적으로 별다른 관심이 없다. 헝가리는 아르메니아가 국교단절을 해도 관심이 없는데다, 아제르바이잔은 헝가리 편을 들며 여전히 배째라 하고 있고 튀르키예나 주변 나라들은 모른척하거나 별 반응이 없다. 미국은 일단 비난은 했다. 백악관안전보장회의 대변인 토미 비에터(Tommy Vietor)는 오바마 대통령은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이 라밀 새패로프가 본국으로 귀환하자마자 그를 사면해 준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했다며, 새패로프에 대한 사면 결정은 역내 긴장 완화와 화해를 증진시키기 위한 현재의 노력에 반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미국 측의 실망을 아제르바이잔 측에 전달하였다고 언급하였다. 또한 토미 비에터는 “미국 측은 헝가리 정부가 새패로프를 아제르바이잔으로 송환한 조치에 대한 해명을 요청한 상태” 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산하 민스크그룹의 공동 대표인 러시아와 프랑스는 이 사안을 두고 비난하지 않았으며 곧 미국에서도 유로마이단이나 다에쉬 같은 문제로 묻혀져버렸다. 물론 유엔사무총장인 반기문도 이걸 비난하고 나토에서도 비난 성명을 냈지만 당시 국제 정세에서 더 큰 일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여기서도 더 길게 언급되지 못했다.
2013년 9월, 피해자 구르겐 마르가랸의 아버지 아르투시 마르가랸(Արտուշ Մարգարյան)이 아들을 죽인 범인이 저렇게 잘만 살아있고 영웅화되었다는 것에 항의하여 칼로 배를 찔러 자살을 시도하다가 응급치료를 받아 목숨은 구했다. 그리고 2017년에는 새패로프는 대령으로 진급했다. 한편,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2020년 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했다.
2020년에 아제르바이잔과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놓고 1992년 이후 다시 전쟁을 했는데 전황이 매우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결국 26년전과 달리 외교적으로 더 압도적인 아제르바이잔에게 10월 들어서 연전연패를 거듭하여 아르차흐 전역 42%를 빼앗겼다. 아르차흐의 제2도시인 슈샤까지 겨우 하룻밤 만에 점령당한 아르메니아는 11월 10일 러시아의 중재를 통한 평화협정을 가장한 항복 선언을 해버려 1970, 80년대 당시 구 소련 공화국 시절의 영토 면적으로 되돌아가버리고 말았다.
아르메니아의 니콜 파시냔 총리가 미국에게 아르차흐에 평화유지군을 파병해 아르차흐 공화국 사람들을 지켜달라는 요청을 했는데, 미국도 무턱대고 수용하기는 곤란하다. 만일 미국 정부가 이를 허락할 시 옛날 2000년대 테러와의 전쟁 당시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 키르키스스탄 같은 중앙아시아의 구소련권 나라들처럼 러시아 군대와 서방권 군대가 같이 주둔하는 기묘한 형태를 가지게 된다. 물론 러시아가 허락하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라 미국은 응하지 않았고, 되려 러시아군이 아르메니아 지역에 주둔하면서 평화유지군으로 남게 되었다. 항복선언과 같이 아르차흐 영토의 80%를 아제르바이잔에게 넘긴 터라 파시냔 총리는 패군지장에 역적으로 비난을 받았다.[37] 여하튼 아르차흐에 차후 5년동안 주둔하기로 한 러시아군이 철군한 다음이 문제인데, 이 부분은 2022년 4월에 아제르바이잔의 제안으로 아르메니아도 동의한 5개조 합의안 제2조에 근거한 "상대방 영토에 대한 영유권주장 철회"에 의해 아르메니아가 아르차흐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철회함으로써 해결되었다. 다만 나고르노카라바흐를 근거로 하는 아르메니아 야당연합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그들이 9월 12일에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기습공격을 저지름으로써 양국은 또다시 충돌하게 되었다.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내주더라도 평화를 유지하고자 한 니콜 파시냔 총리만 낙동강 오리알이 된 신세이다.
그러다가 2022년 9월 12일 밤부터 13일 오전 사이에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접경지역에서 대규모 무력충돌이 발생했다. 이 충돌은 양측 모두 수백명의 사상자를 남기고 15일에 휴전이 성립되었다.
이후에도 국경지대에서 계속된 무력충돌이 있었고 결국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는 2023년 5월 나고르노카라바흐를 포함한 아제르바이잔의 영토 보전을 인정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사실상 아르차흐를 포기하고 기존 아르메니아 영토만을 지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11. 행정 구역[편집]
1. 로리 주 (주도: 바나조르)
2. 시라크 주 (주도: 규므리)
3. 아라가초튼 주
4. 아르마비르 주 (주도: 아르마비르. 주요 도시로 종교도시인 에치미아진이 있다.)
5. 코타이크 주
6. 예레반 특별시(수도)
7. 아라라트 주
8. 바요츠조르 주
9. 슈니크 주 (주도: 카판)
10. 게가르쿠니크 주
11. 타부시 주
12. 외교[편집]
자세한 내용은 아르메니아/외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3. 관광[편집]
14. 스포츠[편집]
축구가 가장 인기가 많지만, 유럽축구에서 늘 하위권. 그러나 2010년대 들어서 종종 강호들을 상대로 1승을 거두는 저력을 보이고 있다. 참고로 인터 밀란의 미드필더 헨리크 미키타리안이 아르메니아 출신 최고의 축구 스타이다. 자세한 건 아르메니아 축구 국가대표팀 참고할 것.
하지만 아직 자국 리그인 아르메니아 프리미어 리그 실력은 여전히 부진한데, 2013년 5월자 유럽리그 랭킹에선 아르메니아 리그는 50위라는 굴욕적인 수치를 기록한 바 있다. 그 아래가 안도라, 페로 제도, 산마리노같은 유럽 최약체 나라의 리그들이니 말 다했다.[38] 이후 2017년에는 44위, 2021년에 43위로 오르긴 했지만, 라이벌 아제르바이잔 프리미어 리그는 25~26위까지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거기에 2020년에는 아르메니아 2부 리그에서 승부조작이 걸렸다. 연루되어 처발받은 팀만 해도 5개 팀이나 될 정도로 대대적인 승부조작이라고 한다.
올림픽에선 이웃 아제르바이잔과 함께 레슬링, 유도, 역도에서 꾸준한 성적을 낸다. 아제르바이잔이 레슬링 또는 배구 쪽이라면, 이쪽은 유도가 조금 더 강한 느낌. 하지만 나머지 종목 모두가 약체인 점은 아제르바이잔과 똑같다.
피겨 스케이팅을 잘하는 편이다. 2023년에는 2023 JGP 아르메니아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야구도 일부 치르긴 했지만, 처참한 인기로 인하여 아르메니아 야구 국가대표팀이 2011년, 아예 해산해버렸다. 유럽 야구 연맹 소속으로 사라진 나라가 아닌한 유일한 유럽 국가로, 야구 국대팀을 해산했던 경우였다가 2022년에 아이슬란드가 야구 국대팀을 해산해버려 유이한 나라가 되었다.
WWE 챔피언 세스 롤린스는 시카고 트리뷴과의 인터뷰에서 친아버지가 아르메니아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어릴 때 멕시코계인 양아버지의 성을 따라 로페즈로 성을 바꾸었다. 세스 롤린스의 실제 이름은 콜비 로페즈이다.
종합격투기 관련 선수 중에도 게가드 무사시, 다니엘 사라피안, 아르만 사르키안, 카로 파리시안, 매니 감부리안 같은 선수들이 있다. 그리고 유명한 테니스 스타인 앤드리 애거시의 부친도 아르메니아계 이란인이다.
체스의 숨은 강국이다. 1960년대의 체스 세계 챔피언이었던 티그란 페트로시안이 소련 시절 아르메니아 지역 출신이었는데, 현재는 아르메니아의 국민 영웅으로 추양받고 있다. 지금도 티그란 L. 페트로시안, 최근 미국으로 귀화한 레본 아로니안 등 세계 최정상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르메니아 출신 기사들이 많다. 가리 카스파로프는 소련 시절 아제르바이잔에서 태어났으나, 어머니가 아르메니아 사람이었다.
15. 문화[편집]
지리는 서아시아 북부지만 동유럽과도 지리적으로 꽤 가까운 만큼 유럽 문화의 영향도 있으며,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를 국교로 공인하면서 종교적인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기독교 문화가 아르메니아에서 나타나기 전에는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외에도 지배국이었던 오스만 제국의 영향도 어느 정도 있었고 근현대에는 러시아와 소련의 영향도 크게 받았다. 또한 소련의 정책으로 강제이주된 일부 중앙아시아 일대 이주민들이 정착하기도 하면서 이들과도 같이 공존하면서 영향을 받았다. 그 외 주변 캅카스 제족들과도 여러 왕래 및 교류를 했었다. 특히 러시아 로스토프주와 아제르바이잔 북중부에 주로 거주하는 우디인(러시아어: Удины, 아제르바이잔어: Udilər)은 아르메니아 본토와 꽤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오늘날까지 사도 교회 신앙을 유지하고 있다.
크리스마스가 보통 12월 25일이거나 1월 7일인 것과 달리 아르메니아에서는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영향으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1월 6일을 크리스마스로 지낸다.
15.1. 음식[편집]
서아시아와 유럽의 지리, 문화적 교차점에 있는 아르메니아는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이 존재하는데, 이란의 대표적인 빵 라바시(لواش)는 아르메니아의 라바시(Լավաշ, Lavash)가 기원이라고 한다. 2014년 라바시를 아르메니아의 문화유산으로 지정하자, 아제르바이잔과 이란 측에서 반발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동유럽과 카프카스에서 많이 먹는 돌마(Dolma, 아르메니아어로 Տոլմա), 튀르키예에서 많이 먹는 쾨프테(Köfte, 아르메니아어로 Քուֆթա), 난(Naan)과 흡사한 마트나카시(Մատնաքաշ, Matnakash) 모두 아르메니아에서 소비되는 대표적인 요리이다.
의외로 레바논 요리랑 겹치는 메뉴가 많다. 근세 아르메니아인들 대다수가 오스만 제국에 거주했던 걸 생각하면 그리고 레바논 요리가 어떤 요리인지 생각해보면 이해 가능하다. 실제로 해외에 아르메니아 식당을 가보면 파는 메뉴가 레바논 식당하고 많이 겹친다. 그 외 아제르바이잔과 조지아 사이에 있는 만큼 조지아와 아제르바이잔과도 비슷한 의식주 문화들이 보인다. 조지아, 아제르바이잔만큼은 아니지만 여기도 이들 못지 않게 와인이 발달되었다.
이 나라에서 생산하는 브랜디가 소련 시절에 꽤 인기있는 상품이었다. 지금도 세계 25개국에 수출하고, 국빈 방문 때 꼭 들르는 곳 하나에 브랜디 제조장일 정도라고. 보리스 옐친 前 러시아 대통령과 레흐 바웬사 前 폴란드 대통령도 방문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이오시프 스탈린이 윈스턴 처칠에게 아르메니아 브랜디를 1년 동안 음미하라며 300병을 보냈다고 한다. 더구나 아르메니아가 이란과의 관계 개선을 위하여 비밀리에 브랜디를 선물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술을 엄히 금하는 이란 고위 성직자들이 이런 선물에 환장한다는 이야기는 이란에서도 유명하다! 참고로 아르메니아 브랜디는 우리나라에서도 동대문 인근에서 구입할 수 있다. 출처
16. 기타[편집]
미녀들의 수다에는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슈샨 하콥얀(Շուշան Հակոբյան, Shushan Hakobyan)이라는 아르메니아인 여성이 출연했다.
콜롬비아에는 아르메니아(Armenia)라는 이름의 도시가 있다. 콜롬비아 킨디오주에 위치한 곳으로 인구는 2022년 기준 약 31만2천여 명이며 콜롬비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3개 도시(보고타, 메데인, 칼리) 사이에 있다. 원래는 도시가 설립됐던 1889년에 비야올긴(Villa Holguín)이라는 명칭이 제안되었으나 거부되고 아르메니아라는 명칭이 채택된 것이다. 이에 대해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가운데 1894년부터 1897년까지 아르메니아 서부에서 일어난 하미디안 학살을 추모하는 뜻에서 아르메니아라는 명칭으로 바꾸었다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으나 정확히 확인되는 사실은 아니다.
2001년에 출시되고 2014년에 단종된 Windows XP가 아직도 널리 쓰인다고 하는데, 실제로 아르메니아는 2024년 6월 기준으로 XP의 시장 점유율이 무려 82.63%나 된다. 참고로 Windows 10의 시장 점유율은 XP의 1/6.6 수준인 12.54%, Windows 11은 4.26%다. Windows 7의 점유율도 0.44%, Windows 8은 0.07%, Windows 8.1은 0.05%밖에 되지 않는다. 이걸 다 합산하면 99.9%이며 0.1%의 사용자는 어떤 운영체제를 사용 중인지 나와있지는 않다.#2
[1] Hayastani Hanrapetut'yun [hɑjɑstɑˈni hɑnɾɑpɛtutʰˈjun\][2] Mek Azg, Mek Mshakuyt[코로나19]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경보[3] 출처[4] 스탄 문서에서도 알 수 있듯 페르시아어에서 온 접미사이다. 아르메니아도 이란의 접경국이고 한때는 페르시아계 제국들의 지배를 받았기에 아르메니아어에서도 이 접미사를 받아들여 '아르메니아인의 땅'이라는 뜻의 하야스탄이 국호가 된 것이다.[5] 러시아 연방 북캅카스 연방관구 다게스탄 공화국에서 사용된다.[6] 모어 기준 2009년 0.8%, 제 2언어까지 합하면 2011년 기준 52%[7] 때때로 남캅카스 지역을 서아시아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의 중앙아시아로 보는 경우가 드물게 존재한다.[8] 단 여름엔 매우 덥다. 한국 여름 기온은 우습게 넘기지만 습도는 매우 낮은 편. 참고로 서울도 냉대기후 도시지만 여름에 매우 덥다.[9] 참고로, 튀르키예는 이미 1998년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 댐을 건설하면서 이라크와 시리아를 상대로 '물 자원의 무기화'를 선언한 전력이 있는 나라다.[10] 헌데 정작 아르메니아의 이웃나라인 조지아는 1991년 소련 해체 과정에서 독립 이후 인접국이자 구 소련의 종주국이었던 러시아와 한바탕 전쟁도 하고 전쟁 종전 후에도 이웃 강대국인 러시아와 남오세티야, 압하스 등 자국내 미승인국들간의 분쟁, 대립을 겪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르메니아와 달리 해외 관광객들이 여행을 많이 와서 나름 인기 많은 관광대국이 되었다. 물론 남오세티야 전쟁 문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남오세티야 전쟁에서 러시아는 조지아를 아주 멸망시키려던 게 아니었다. 한마디로 까불지 말라는 경고 의미가 더 컸다. 물론 러시아도 이 전쟁을 하면서 조지아의 사카슈빌리 정권을 몰아내고 친러 정권을 조지아에 수립할 수도 있었지만 미국의 개입과 프랑스의 평화협상 중재로 실패하면서 남오세티야와 압하스에 대한 외교적 영향권만 차지하는데 그쳤다. 이후 러시아는 조지아를 무력으로 뭉개거나 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조지아는 아제르바이잔의 석유 파이프라인이 오고가는 만큼, 러시아가 조지아를 멸망 직전으로 몰아붙이면 엄청난 피해를 입을 튀르키예와 아제르바이잔의 반발이 생길 수 있어 러시아로서도 외교적으로 손해를 입어야 하기 때문에 별다른 무력도 없고 이웃 나라들인 튀르키예, 아제르바이잔과 경제적 충돌도 없기 때문에 국경에서 허구헌날 아제르바이잔과 치고박고 싸우는 아르메니아와는 사정이 크게 다르다. 다만, 조지아도 아제르바이잔과 양국 국경지대에 위치한 다비드 가레자 수도원을 두고 영토 갈등이 존재하지만, 이조차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관계와 달리 국경에서 총질을 벌여 서로 사상자를 낸 적은 없으며 이 문제만을 제외하면 양국 관계는 나쁘지 않다.[11] 인구가 15만 정도 되는 아르차흐 공화국에서 10만에 가까운 피난민들이 아르메니아로 와서 살고자 하는데 이들이 살 집에서부터 생활지원비 등도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이미 전쟁 사상자 보상이나 전쟁으로 살던 집을 잃은 피해자들이 머물 집까지 모두 준비한 아제르바이잔과 달리 아르메니아는 아직도 이런 지원들에 대한 준비조차 못하고 있다.[12] 세계은행을 통한 자금 라인을 일시적으로 막아냈으나 오래가지 않아 튀르키예가 이스라엘의 제재 조치로 보복하겠다는 반발에 움찔한 유대인들이 자금을 정상화하면서 실패.[13] 하지만 조지아 또한 아르메니아와 비슷하게 종교를 매우 집착하는 성향이 있어 이슬람 국가를 좋아하는 조지아인은 드물다[14] 아르메니아의 정교회 신자들은 대체로 러시아계 및 조지아계 주민들이 많지만 고려인도 있다.[15] 아르메니아의 무슬림들 중 오스만 제국 시절 아르메니아를 지배하던 튀르키예인이나 이슬람교로 개종한 아르메니아인, 쿠르드족 그리고 러시아 제국이나 소련 치하에서 이주해온 볼가 타타르인은 주로 수니파를 믿으며 이란인은 주로 시아파를 믿는다.[16] 대표적으로 타종교로의 '지나치고 반복적인' 개종 시도를 하면 처벌받는다고 법률을 제정했는데, 이 '지나치고 반복적인'의 범주가 어디까지인지 해석조차 정확히 내리지 않았다.[17] 2011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812명에 불과하다. 쿠르드인이 최대 소수민족이긴 한데, 4만이 채 안 되며, 대부분 야지디교도들이다. 참조[18] 별의별 인종이 사는 인종의 용광로 미국에도 제법 많은 아르메니아계 미국인이 있고, 미국 정계에 제법 영향력이 크다. 다만 비즈니스 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최악의 비즈니스 상대로 아르메니아인을 꼽는다. 특히 사기치는 데엔 그야말로 도사라고 한다. 이런 인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GTA 5의 스토리 초반부에 등장하는 프랭클린과 라마의 상사인 시몬 예타리안이다.[19]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오스만 제국시절부터 살고있던 아르메니아인들이 대략 자체 통계로 5만 정도 살고 있다. 아르메니아 학교도 있고 병원도 있고, 아르메니아어 신문까지 나올 정도.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갈등은 현재 진행중이지만 현재 튀르키예인과 아르메니아인은 딱히 갈등할게 없기 때문에 사이가 나쁘지 않은 편이다. 튀르키예에서 아르메니아인하면 근면하고, 손재주가 많은 민족이라고들 생각하는데, 특히 금은세공업에 능해서 오래전부터 아르메니아인들이 이 일을 하고 있었다. 무슬림 남성은 금을 착용하는 것도 그렇고 취급하는 것도 금기시하기 때문에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아르메니아 장인들이 금세공일을 했다.[20] 이쪽도 미국처럼 아르메니아계를 상당히 머리 좋고 사기 잘 치는 소수민족으로 알아준다.[21] 라이벌인 아제르바이잔도 해외 거주 인구가 본국 인구보다 많은데, 대부분이 이웃 나라 이란에 많이 산다.[22] 아르메니아 공주라는 카더라가 있지만 스스로 자칭하는 것일 뿐이다.[23] 작중 고백에 따르면 정말 어렸을때는 영어도 서투르지만 아르메니아어도 못하는 상당히 모호한 정체성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부인인 아시니 칸지안과 사귀게 되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24] 아라라트산은 구약성경에서 '아라랏산'으로 이름으로 언급되며 아르메니아-조지아-아제르바이잔-튀르키예 일대에서는 노아가 방주를 정박한 곳이자, 대홍수 이후 인류가 나타난 성소라 취급받는다. 그러나 현재 산 자체는 튀르키예 영토에 속해 있으며, 튀르키예는 아르메니아가 이 산에 다가오는 걸 강력하게 막고 있다. 거기다 이 산은 쿠르드인들의 성지이기도 해서 아르메니아와 쿠르드인들이 이 산을 둘러싸고 갈등도 많았다. 참고로 오래가지 못했지만, 1927년 쿠르드인들이 이 주변에 아라라트 공화국을 잠깐 세우기도 했다. 현재도 이 산을 가려면 꽤나 힘들다. 가는 길이 험하고 주변에서 숙박시설을 찾을 수도 없으며, 거주하는 쿠르드인들은 이방인들을 거부한다.[25] 단 예시로 언급된 아톰 에고이안의 가문은 서부 아르메니아 출신이라 예고얀(Եղոյեան / Yeghoyan)이라고 표기한다.[26] 다론 말라키안(Daron Malakian·Տարոն Մալաքյան)을 비롯한 시스템 오브 어 다운의 멤버 전원이 아르메니아계로 다른 멤버들의 이름은 탄키안(Tankian·Թանկյան), 오다지안(Odadjian·Օդաջյան), 돌마얀(Dolmayan·Դոլմայան)이다.[27] O. J. 심슨 사건의 변호를 맡은 걸로 유명한 아르메니아계 미국인 3세. 카다시안이 성을 안 바꾸는 이유는 로버트 카다시안이 더 유명해서라는 루머도 있을 정도였다.[28] 관련 자료.[29] 육군이 4만 5천명, 공군이 7천명이다.[30] 적어도 튀르키예와 외교적, 역사적 문제로 으르렁거리지만 국경에서 무력충돌은 2000년대 와서 없다.(아르메니아 독립 이후 90년대 와서도 갈등이 있었으나 무력 충돌이 없었다.) 반대로 아제르바이잔은 국경에서 얼마전까지 총격전 벌이고 전투를 벌이는 상황이다.[31] GDP 대비 비율은 2018년 SIPRI(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 자료 기준[32] 쉽게 비교하자면, 선군정치를 울부짖는 북한이 11.5%, 아르메니아만큼 사방이 적인 이스라엘도 4.3%밖에 안 된다. 참고로 2017년도 한국군 예산은 약 40조 원(대략 350억 달러), GDP의 2.3%로 이렇게 보면 별로 많지 않아 보이지만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한국과 비교하면 영토, 물적, 인적자원 모두 빈약한 아르메니아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33] 이 가운데 브콘탁테에 아르메니아군을 참살하는 동영상까지 올라왔다고 한다.[34] 아제르바이잔에는 유사시 이란을 공격하기 위한 이스라엘군 무인기가 배치되어 있으며, 몇대는 아제르바이잔 공군이 구입했다.[35]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토에서 후원해 헝가리에서 다국적 여러 나라 장교들을 받아 3개월 군사학, 언어 연수 등을 하고 있었다.[36] 그것도 잠을 자고 있는 걸 도끼로 수십번 난도질해 끔살했다. 좀 더 자세한 건 아제르바이잔 항목을 참고할 것.[37] 다만 그의 지지자들은 반박하고 있는데, 이는 파시냔 총리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시위까지 벌어졌다.[38] 역사적 라이벌인 이웃 아제르바이잔 리그는 당시 37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