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의(대군사 사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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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의
司马懿

파일:대군사 사마의_사마의_군사연맹.jpg

중달 (仲達 / 仲达)
나이
22세 → 73세
관직
마굿간지기 → 황문시랑 → 행군사마 → 어사중승 → 시중 → 표기장군/부도독 → 대도독 → 태위 → 태부 → 승상
배우
우슈보 (吴秀波).[1][2]

1. 개요
2. 작중 행적
2.1. 군사연맹
2.2. 호소용음
2.2.2. 조예와의 대립
2.2.4. 정권을 잡다
2.2.5. 최종 국면
3. 성격
4. 명대사
5. 여담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파일:군사연맹 사마의.jpg
파일:호소용음 사마의.jpg
초년의 사마의
말년의 사마의[3]

천하를 도모하고 한 눈에 천년을 담다

谋冠天下 一眼千年

대군사 사마의 주인공.

곽가가 평하길 속을 짐작할 수 없는 인물. 곽가가 조조에게 말하길, 속을 읽을 수 없는 사마의를 시간을 두고 완전히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 조조를 위해 일하도록 하려 했으나, 자신의 수명이 다 했으므로 쓸 수 있다면 쓰되, 쓸 수 없다면 반드시 죽이라는 유언까지 남겼다. 양수가 자신과의 가장 큰 차이라며 말한 내용은 인내할 수 있는 사람. 이렇듯 외부에서는 당대 재사들에게 고평가를 받지만 집안에서는 영락없는 애가 아니라 처가. 말투도 나긋나긋하고 온화하며, 손수 음식을 만드는 등[4] 매우 가정적이다. 부인장춘화에게 발로 차이거나, 귀를 붙잡혀 질질 끌려가거나 하는 일도 부지기수지만 그런 아내를 매우 사랑하고 있다. 다만 감정을 대놓고 드러내는 일은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거의 없다. 이따금 화타에게 전수받은 오금희[5]를 수련하긴 하나, 조진을 정권 한 방에 죽인 신삼국의 사마의와는 달리 무예도 별로 대단치 못한 듯.[6]


2. 작중 행적[편집]



2.1. 군사연맹[편집]


"흐르는 물은 쉬지 않는 법이지요. 신은 여기까지 오면서 그 어떤 적도 두지 않았고, 오로지 벗과 스승만 만났을 뿐입니다."[7]


"저는 한번도 덕조 당신을 적으로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거울을 보듯이, 덕조를 보면 저를 보는 듯 했지요."


본래 출사에는 미련 없이 가족을 지키는데만 열심이었지만, 양수의 월단평에 참석하여 동생을 도와주려다 조조의 눈에 띄였고, 동승의 암살 음모 이후로 아버지인 사마방이 이에 엮이게 되자 이를 구하려다 본인의 바람과는 관계 없이 조정의 풍파에 얽히고 만다. 아버지를 위해 동분서주하다 조비의 눈에 띄게 되며, 이후 세자 자리를 둘러싼 다툼에서 자신만의 책사를 얻고자 하는 조비에게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지만 애써 무시한다. 조조가 자신을 불러 쓰려 하자 그의 의도대로 되지 않기 위해, 또한 조정의 풍파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자신의 다리를 짐이 가득 실린 짐마차의 수레바퀴로 깔아뭉게는 짓을 벌인다. 불구가 될 것을 각오하고 벌인 행동이었으나 기적적으로 회복한다.

관도대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돌아온 조조로부터 재차 출사를 요구받자, 더 이상은 피할 방법이 없는 것을 깨닫고 벼슬길에 오른다. 조조가 처음으로 내린 벼슬은 바로 마굿간지기[8]. 열심히 말을 돌보던 중, 조조로부터 떠나가는 서서와 그의 모친을 놓아주어 죽음의 위기에 처한 급포를 구해주게 된다. 이 과정에서 조비의 도움을 받게 되며, 이후로는 조비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고 그의 측근으로서 일하게 된다.[9] 다만 급포를 구하기 위한 계책을 쓰던 중 조진을 인질로 잡아버리는 바람에 그와는 앙숙이 된다.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조비의 최측근이 된 사마의를 견제하고자 양수는 책략을 쓰게 되고, 결국 사마의의 형인 사마랑은 인질 비슷한 위치가 되어 조식을 모시게 된다. 헌데 술에 취한 조식이 사마문[10] 사건을 일으키게 되고, 사마랑은 조식의 죄까지 뒤집어 쓰게 된다. 사마의는 이번엔 형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게 되고, 이 과정에서 조비를 지지하는 순욱, 최염과 힘을 합쳐 난국을 돌파한다.[11] 밀리는 듯 했던 조비와 조식의 세자 다툼에서도 조비의 우위를 가져오는 데 성공.

그리고 형주 공방전이 시작된다. 관우가 우금과 방덕의 7군을 수장시키고 번성을 포위하여 허도는 큰 위협에 빠진다. 친정에 나선 조조가 계책을 물으니, 양수는 헌제를 업으로 옮기고, 위는 낙양으로 천도하는 계략을 낸다. 조식을 후계자 자리에 가깝도록 만들려는 의도를 파악한 사마의는 조조에게 '손권과 동맹을 맺어 관우를 칠 것'을 제안한다. 암구어 계륵을 읽어낸 양수는 철군준비를 하나 고민하던 조조는 양수의 처형을 명하고, 사마의에게는 '네가 낸 계책이니 직접 실행하라'는 조조의 명을 받고 강동으로 건너가 손권을 설득한다. 동오에 도착한 사마의는 장소를 비롯한 오나라 대신들과 설전을 벌이고, 이 일로 그간 조조 진영에서만 알려져 있던 사마의의 이름이 널리 퍼지기 시작한다. 번성전투 이후로는 본격적으로 천하에 사마의의 명성이 널리 퍼졌다.

조조의 마지막 신년연회 때 조조가 창무를 추다 기력이 쇠하여 여러 번 쓰러질 뻔 하는 모습을 보이니 대신들은 모두 눈물을 감추지 못하였으나, 사마의 혼자서 조조를 똑바로 쳐다 보았다. 이때도 이미 야망이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암시하고 있었다.

조비 즉위 이후에는 지위도 어사중승[12]까지 올라 명실상부한 국가의 중신급 위상을 갖게 되었다. 조진, 조홍 등 사마의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자들도 이제 예전의 서생이 아니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말을 하며, 장춘화의 실수로 잠시 감옥에 가게 되었을 때는 그곳 관리들이 "저희가 저런 높은 분을 어찌 가둡니까?"라고 할 정도.

조비가 왕위에 오르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거쳐 죽을 뻔도 했지만 사형당하기 전에 겨우 살아난다. 이후 구품관인법을 진군과 함께 상소로 만들어 올려 위나라를 살리려고 하나 조진과 갈등을 빚게 된다. 나중에는 조홍이 사병들을 끌고 와서 사마의의 집 대문에 화살을 쏘아대는 상황까지 오는 등 조씨 외척과의 갈등이 점점 심화되었다. 그러나 상서대를 통해 수천의 유생들을 움직여 조비에게 상소를 올리도록 만들고, 이를 통해 구품관인법의 시행을 관철한다. 구품관인법을 통해 종회와 등애라는 인재를 발견, 그들을 제자로 삼아 둔전책까지 시행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자신들이 가진 땅과 전답이 사실상 국가에 귀속되는 둔전책을 조씨 외척들이 두고 볼리 없었고, 갈등은 더욱 심화된다. 이에 조진이 내놓은 대책은 건강이 좋지 않은 조비의 후계자를 외척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인물로 세우는 것. 그를 위해 견복을 모함하여 죽이도록 만들고, 조예가 후계자 자리에서 탈락하도록 계략을 꾸민다. 하지만 이를 간파한 사마의는 견복이 죽자마자 조예를 데리고 곽조에게로 가 조예가 그녀를 어머니로 섬기도록 강요한다. 이 과정에서 함부로 귀빈의 처소에 발을 들인 사마의는 감옥행. 끝내는 조비도 그를 완전히 보호해줄 수 없게 되어 삭탈관직당하고 서민으로 강등, 고향인 온현으로 돌아가며 1부의 행적은 마무리된다.[13]


2.2. 호소용음[편집]



2.2.1. VS 제갈량[편집]


조비의 임종직전 조예를 위해 임명한 4명의 보정대신[14]중 하나로 정치계로 복귀한다. 복귀하자마자 조씨 종친들의 경계 속에 정치적 자립을 원하는 조예의 견제를 당한다. 이후 동오 라인을 담당하던 조휴는 주방이 손권의 핍박에 못이겨 위로 귀순하고자 한다면서 조진과 조휴는 이 기회를 잡아야한다고 조예를 설득하고 사마의는 동오는 거짓 투항에 능하다면서 반대의사를 밝혔지만 결국 출병은 막을 수 없었고 보정대신 간 견제를 위한 조예의 방책으로 조휴의 부하로 종군하게 된다. 거기다 뒤통수가 찜찜했던 조휴는 사마의의 아들인 사마사를 행군사마로 삼아 볼모식으로 대려간다.

이에 사마의는 가규를 조휴의 부장으로 밀어넣고 가규에게 자신의 아들을 부탁한다. 석정전투에서 대패한 조휴가 자신의 명을 거부하고 협석에서 진을 치고 있던 사마의를 문책하자 조휴에게 지속적으로 충고했던 지난일을 거론하자 조휴는 분에 못이겨 토혈하고 사마의를 탄핵하는 혈서를 써 조예에게 보낸다. 조진은 조휴의 명을 무시하고 협석에서 진을 친 사마의를 벌해달라고 했지만 사마의가 석정 전투 전부터 친 약 덕분에 파직만 당하게 된다.[15] 이로 인해 보정대신 두명을 견제하고 공과 과를 나누려고 한 조예의 계획은 틀어지게 된다. 이후 제갈량의 1차 북벌이 시작된다. 제갈량은 사마의를 견제하기 위해 맹달을 미끼로 쓰고 이에 표기장군으로 승진한 사마의는 1200리를 8일만에 주파하는 초인적인 고속행군으로 맹달을 제압한다.

그리고 사마의는 제갈량의 수를 파악하지 못한 채 맹달을 제압한 상용에서 제갈량을 대비하고 있었다. 다만 불안한 듯 병사들의 군장을 준비시키고 언제든지 출발 할 수 있게 준비하고 있었다. 이후 이것이 제갈량의 페이크라는 걸 뒤늦게 안 사마의는 황명도 없이 무단으로 장안으로 달려간다.

조예는 사마의에게 가정을 공략하는 명을 내렸고 사마의는 신중론을 펼치며 마속과 왕평의 사이가 좋지 못하다는 소문을 흘리고 일단 관망하는 자세를 취했지만 이에 반발하며 자기를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옹주의 병사들의 불만을 누르기 위해서 장합에게 선봉을 맡겼다. 본인은 마속의 진형도를 기다렸다. 마속의 삽질을 확인한 사마의는 전속력으로 가정으로 달려가 장합이 차려논 밥상에 숟가락만 얹혔다.[16] 이후 조예의 명에 따라 사마의는 제갈량을 잡기 위해 제갈량의 심리를 읽어 서현으로 진격해 공성계를 펼치는 제갈량과 대결한다. 사마의는 공성계임을 간파했지만 여기서 제갈량을 죽이면 본인은 토사구팽이요, 1부부터 그렇게 지키고 싶었던 사마가문이 도마 위에 오른 생선꼴이 된다는 점 때문에 도망친다.[17] 사마의가 마음 속에서 “제갈량! 당신만 국궁진췌 사이후이 할 줄 아는 줄 아시오? 나 사마의 역시 당신을 베고 역사에 명신으로 남을 것이외다!”라고 말하자 제갈량이 “그럼 당신 아들은?”이라고 받아치는데 이 때 사마의는 머리를 싸매고 주저앉는다.

그러자 사마소가 "아버지는 성 안이 빈 것을 알고 계신 것 아닙니까? 혹시 제갈량이 제거되면 우리 집안이 망해서 그런 겁니까?"고 하자, 사마의는 손가락을 입에 가져가며 입을 다물 것을 강하게 당부한다.[18] 이후 문덕황후가 조예의 핍박에 옥에 갇히게 되자, 옹양의 병권을 내놓는 조건으로 조진을 포섭하여 문덕황후를 구해낸다. 옹양의 병권을 내려놓는 결정을 하기전 자신의 첩인 백령균과 대화를 하면서 마음을 굳히는데 백령균이 사마의가 자신을 속이는 날이 오면 천하가 사마의를 두려워 해야한다는 발언을 한다.

연이어 사마의는 제갈량에게 편지를 쓰는데, 아이들은 자라고 우리는 늙어가는데 이루어야 할 것은 많이 남아 애석하다는, 어찌 보면 별 것 아닌 내용이지만 사실상 잃어버린 병권을 되찾기 위해서 제갈량의 2차 북벌을 부추기는 내용으로 제갈량과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보여준다. 조예는 조진을 대사마 겸 대도독으로 삼는 동시에, 사마의를 부도독으로 삼아[19] 제갈량을 막기를 명령한다. 조진이 자신보다 2계급이나 높은 상황이기에 승리의 영광은 온전히 조진의 것이 되고, 패전의 책임은 사마의에게만 물을 수 있는 동시에 조진이 언제든 군법을 핑계로 자신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위치에 섰음을 인지한 사마의는 열흘 안에 장안으로 오라는 조진의 명령을 일부러 어긴다. 결국 폭우를 핑계 삼아 스무 날이 걸려 장안에 도착한 사마의는 군법에 따라 조진에게 태형 일백 대의 형벌을 받게 되나, 사마사와 손례를 비롯한 장수들의 간청으로 육십 대에서 그친다.

하지만 곤장을 맞는 것 역시 사마의의 계산이었다. 사마의 자신은 태형을 맞고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사이에 조진이 패배한다면, 사마의는 패전의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후 강유의 거짓 항복을 걱정한 손례가 사마의를 찾아갔으나 사마의는 의도적으로 이를 무시해 조진의 참패에 일조한다. 이후 사마의 천막 밖에서 자존심 때문에 들어가진 못하고 인기척을 내고 있던 조진을 무시해 그의 자존심을 한번 더 밟는다. 사마의는 바로 뒤에 찾아온 손례를 통해 조진에게 조언을 하는데[20] 제갈량의 약점은 보급이니 싸움을 피하고 버티라고 말하지만, 조진은 이를 자기를 제거하기 위한 사마의의 책략으로 여기고 이를 듣지 않고 나름대로 촉군을 유인할 계획을 세우자, 실패하고 본진이 공격받을 걸 알고는 적당한 시점에 먼저 몸을 피하고 난전 중에 탈출한 것처럼 위장한다.

이후 다시 찾아온 손례에게 어차피 군량 문제로 제갈량은 퇴각할테니 촉군이 물려가면 추격하지 말라고 조진에게 간언하라고 했지만 조진은 상처뿐인 승리아닌 승리라는 것에 분개한 상황에 더해서 사마의의 세치혀에 휘둘리기 싫다면서 분개해 기어이 추격을 나섰다가 본인이 천거한 왕쌍의 희생으로 목숨만 건지고 돌아왔으나 왕쌍의 시체와 함께온 제갈량의 조롱과 쇠뇌에 맞은 상처로 인해 토혈과 함께 혼절한다.

조진은 죽기 직전 어쩔 수 없이 사마의를 대도독에 천거하고 죽는다.[21] 그의 빈자리를 승계하여 대도독으로 승진한 사마의는 다시 북벌에 나선 제갈량과 정면으로 맞부딪치게 된다. 촉 내부의 갈등을 이용하기 위하여 백령균을 이엄에게 파견하고 전장에 나선다. 제갈량과 만나서는 정말 반가운 표정으로 말을 걸다 주변의 제안대로 병사들의 고함소리로 대화를 나눈다.[22] 제갈량이 농서 지역의 밀을 노릴 것을 알고 시간을 끌기 위해 일부러 말을 건 것. 대화의 말미에서 "그만 들어가 식사나 하시라."는 사마의에 말에 제갈량 역시 이를 눈치챈다.

제갈량과의 정면대결은 피하지만 이 가운데도 전투에 소극적인 자신에게 불만이던 곽회에게 출전을 승인하고는 그거 패배할 걸 예상하고 지원군을 따로 보내 자기 사람으로 만든다. 그리고 뒤로 이엄의 측근 구안을 통해 촉 내부를 이간질하여 제갈량에게 철수의 성지가 내려오게 한다. 하지만 사마의에게도 사흘 안에 싸우라는 조예의 성지가 내려오고 제갈량이 과연 황명을 따를지 무시할지를 기다리다가 촉군이 철수를 시작하자 군을 일으켜 부도독 장합에게 선봉을 맡긴다. 장합은 촉군의 매복에 걸려 전사하는데, 사마의가 제갈량의 계책을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자신의 편이 될 수 없는 장합을 내몰아서 황명을 지키면서 적군을 격퇴하는 공을 세우면서도 내부의 적을 제거하였음이 암시된다.

제갈량이 다시 북벌해 오장원에 주둔하자 대도독이 되어 제갈량에 맞선다. 사마의는 제갈량이 목유유마를 통해 일부러 곡식을 내어주는 것을 간파하고 제갈량의 꾀에 넘어가선 안된다는 명령을 내리지만 이미 아들 사마소를 비롯한 위군들은 촉군을 이제 물리칠수 있겠다고 지나치게 들떠버린다. 결국 제갈량에 낚여 곽회와 사마소가 명령을 어기고 호로곡으로 들어간다는 말을 듣자, 사마의는 사마사와 함께 사마소를 구하러 간다.

그러나 이미 그 곳은 낙석에 불화살비까지,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사마의는 두 아들을 끌어안고 말하길,

"우리 세 부자가 예서 죽는구나!"


이때 사마의는 본인을 떠나보내려 사륜거를 호로곡 가까이 둔 제갈량을 보고 "내 자식만은 살려주기로 하고 어찌 다 죽이려 하는가"라며 자식들을 살려줄 것을 간청한다. 그리고 자결하면 약속을 지키겠다는 말에 칼을 뽑아들고 그것을 말리려는 아들들과 실랑이를 벌이다 마대의 화살을 맞는다. 그런데...

어마어마한 소나기가 내렸다!

상황은 역전되었고 사마의는 호쾌하게 가슴에 박힌 화살을 빼낸다. 때마침 손례 등의 지원군이 사마의를 보호하려 온다. 사마가 세 부자를 둘러싼 방패무리는 상하좌우 전 방향을 꽁꽁 막고, 사마의는 가슴팍에 넣어둔 거북 선생 덕택에 목숨을 구했음을 알고 방패무리를 살짝 열어 공명을 조롱한다. 혀를 내빼고 공명을 부르짖으며 포효하는 그 모습과 일그러진 제갈량의 표정이 대조돼서 더욱 통쾌한 장면[23]. 이후 방패병들한테 보호를 받으며 기어서 호로곡을 빠져나간다.

군영으로 돌아온 사마의는 곽회와 사마소에게 죄를 묻는다. 곽회는 잘 대답해 곤장 50대를 받은 반면, "출병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 사마소에겐 참형을 내린다.[24] 장수들은 무릎을 꿇고 애원하며 사마소를 살려달라고 하나, 사마의는 요지부동이다. 더군다나 사마사와 후길이 "장춘화를 생각해서라도 살려달라"고 하지만, 후길의 말은 무시하고 사마사에겐 꾸짖기를,

"여긴 군영인데 울먹이며 어미를 찾냐?"


사마소는 무릎을 꿇린 채 참형을 기다리는데... 사마의는 후길에게, 후길은 손례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내 사마소 휘하의 장병들이 감형을 청하는 가식적인 쇼를 벌인다. 채찍 200대로 감면하나 그것도 고통스럽고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는 것이라 장수들은 다시 감형을 청하나 사마의는 "이 이상 그런 말 하면 베겠다"고 일축했다.

사마소의 채찍맞는 소리가 전군에 울려퍼지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장병들은 고개를 떨군다. 백마흔여섯에서 사마소가 기절하자, 사마사는 이미 살이 헐고 피가 흥건한 사마소의 등에 물을 끼얹어 깨운다. 당연히 극도의 고통에 몸부림치며 사마소는 깨어난다. 사마사는 울며 채찍을 직접 잡고, 드디어 형이 끝나자 사마의는 얼른 장수들을 물리친 뒤에 흐느낀다. 이후 사마소를 요양 목적으로 장안으로 보내 아버지 노릇도 톡톡히 한다.

꿋꿋이 싸움을 청하는 장수들을 물리치는 와중에 제갈량이 치마를 보내자, 사마의는 사신에게 제갈량의 군중 생활을 소상히 묻고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러더니 대뜸 분홍빛 치마를 입고 제갈량과 강을 끼고 대치한 채로 앞에서 평소 수련하던 오금희를 하며 출사표를 낭독하는 걸로 응수하는데[25],

"그것이 선제에 보답하고 폐하께 충성하는 길입니다."[26]


이 부분만 일부러 세 번 반복한다. 이 말과 꽁꽁 숨어버린 사마의의 상황을 놓고보면 "제갈량 당신은 유비의 은혜에 보답할 수 없고 유선에게 충성할 수 없다."는 뜻의 조롱이 나오기에 제갈량은 쓰러졌다.[27] 여튼 조예는 계속 독촉을 하고, 사마의는 쓸데없이 표문을 올려 일부러 시간을 낭비한다.

그러던 중, 촉군의 "중원을 수복하자"는 함성이 갑자기 들려와 위군 병사들이 깜짝 놀란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조예의 답신이 도착한다. 조예는 의외로 굳건히 수비만 하라고 한다. 사마의가 티나게 신나하는 그 순간, 촉군이 후퇴한다는 첩보가 들어온다. 결국 사마사를 시켜서 정찰 1차로 한 뒤에 직접 촉군을 쫒으러 가는데...제갈량 흉내를 낸 촉군에 위군이 동요해 전투불능 가까이 처하자 후퇴한다. 퇴각한 뒤에 자신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공명이 정말로 죽은 게 맞구나."라고 말한 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았구만!"라며 가볍게 웃은 뒤 촉의 주둔지로 향한다.

촉한의 군영을 살펴보면서 사마의는 공명의 청렴함과 인품에 존경의 의미를 담아 선생이라 부르고 낭고지상의 눈이 되어 장춘화를 바라보며 공명을 이겼다고 선언한다. 장춘화와 어른의 시간을 보내려 했으나 승전연을 하자고 들어온 아들들에게 저지당하면서 고함을 질렀다. 제갈량의 "중원을 수복하자"에 맞서 "승리를 축하하자"를 복창하는 것은 덤. 이후 조예의 사자로 온 벽사의 떠보기에 사마의는 "신은 이제 늙었으니 군복을 벗고 장안으로 낙향하려고 했으나 벽사는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면서 사마의를 압박한다. 사마의는 어쩔 수 없이 장춘화와 사마사를 낙양의 볼모로 보내는 것에 합의한다, 이후 장춘화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서 이제 공명이 죽었으니 조예가 곽조를 죽이려 들것이니 곽조를 잘 지켜야한다고 당부한다.


2.2.2. 조예와의 대립[편집]


한편 벽사의 보고를 들은 조예는 사마의의 진심을 알아봐야겠다면서 곽조를 제거할 생각을 굳힌다. 사마의는 사마소의 야심을 알아채고, 사마소에게 "강에 대고 일평생 위의 신하로 살아가겠다 맹세해라."를 권하는 걸 빼면 소소하게 제자들 만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경성에 있는 사마부를 군대가 에위싼다. 아울러 곽조가 위험해졌다는 얘기까지 들리자, 사마륜은 작은 체구를 이용해 개구멍을 빠져나가 사마의가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소식을 들은 사마의는 흉년이 든 경성을 위해 비축해 두었던 곡식을 챙기는 한편, 관복을 다시 입고 조예를 알현하기 위해 경성에 도착한다. 경성 앞에서는 마중나온 종회는 조예의 본심은 보정대신을 치워버리고 권력을 장악하려는 속셈이니 곽조를 포기하라는 건의를 하지만 사마의는 자신의 가족인 곽조를 포기 할 수 없었다. 사마의는 관복으로 환복한 후 조예에게 "군자는 과력난신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는 말을 하며 논리적인 설득을 하자 조예는 논리로는 사마의를 이길 수 없으니 감정적인 친어머니 견복 이야기로 화제를 돌린다. 그러자 사마의 역시 과거 조예를 부탁하기 위해 사마가를 찾아온 견복과 맺은 피의 맹세[28]를 언급하고, 폭우가 내리고 우레가 치던 날[29]의 기억을 읊는다.

사마의가 아니었다면 모를 조예의 몸부림, 살기위해 곽조를 어머니라 부르는 조예의 절박함 등, 그날의 일을 세세하게 들은 조예는 오열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시간 맞춰 보내놓고 사마의를 대화로 못 가게 잡아둔 다음 뉘우친 척 후회하기를 시전한 조예의 뻔뻔한 연기였을 뿐.[30][31]

사마의의 피를 토하는 간언에 감동받은 척 이미 자기가 죽인 곽조를 구하라고 뻔한 거짓말로 되돌려주는 조예의 연기력 쇼였을 뿐이다. 오매탕[32]이 온 걸 뻔히 보고서도 "짐이 틀렸다고? 잘못했다고?"라는 연기를 하는 조예가 돋보이는 장면.

사마의는 계단을 내려가던 도중, 진군과 만나 곽조가 이미 죽었음을 듣는다.[33] 사마의와 진군은 나란히 탈진하고, 조예는 오매탕을 먹으며 누가 봐도 뻔한 거짓 슬픔을 드러낸다. 소자가 잘못했느니 어쩌니...진군은 결국 세상을 뜨고, 평생의 친우이자 동반자였던 진군의 묘 앞에서 사마의는 자신과 가문을 지키기 위해 급포에게 부탁하여 사병을 양성하기 시작한다.

공손연이 오나라에 붙어 연왕을 차지했다는 말을 들은 조예는 사마의에게 공손연 토벌을 명한다. 조예는 사마의가 전사하길 바랬을 것이고, 이 명을 들은 백령균조차 가지 말라고 하나 사마의는 단호히 거절한다.[34][35] 몇 달 후, 한가하게 놀고 있던 조예는 승전보와 함께 사마의가 자신의 허락 없이 공손연과 그 식솔, 하인 등등 1만명을 죽였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걸 듣고 조예는 대추가 담긴 그릇을 던져버리며 "대단한 충신 명신이야!"라고 경악함과 동시에 울부짖고, 이후 갑자기 쓰러지면서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중태에 빠지게 된다.

조정은 조예의 쇠약을 틈타 개판이 됐지만, 사마의는 본인의 고향인 온현을 들러 추억을 되짚는다. 팔이 없어진 옛 친구를 보며 씁쓸해하면서도, 그 친구의 손녀를 살갑게 대한다. 사마의는 성 밖에 막사를 쳐 온현이 대군이 들어와 혼란해지는 걸 막는다. 훈훈한 장면이지만, 어딘가 사마의의 얼굴빛은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은 모양새다. 낭고지상 관련한 조조와의 일화를 그 친구와 재현하며 재밌게 노는 도중, 낙양으로 홀로 오라는 말을 듣는다. 사마의의 두 아들들은 자구책으로 공손연을 토벌한 대군을 낙양으로 이끌고 가자고 했지만 사마의는 그 행동의 위험성을 이야기하면서 혼자 낙양으로 들어간다.

관복 안 입어도 되니 얼른 오라는 조예, 사마의는 냉큼 달려가서 조예 바로 밑에까지 오나 조상은 사마의를 죽이기 위해 군사를 숨겨놓고 있었다. 사마의는 조예의 목소리를 제대로 못알아먹는 듯한 행동을 취하고 암살 기도는 발각되었다.[36] 암살 기도 미수 사이에 조예는 사마의의 충심을 믿는다면서 조방을 태자로 임명하며 조방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고 조상을 대장군, 사마의를 태위에 봉해 태자를 보필하라 명한다. 세 번 연속 실수하진 않겠다고 벽사가 신호를 주니 조상이 대놓고 군사를 부르나, 사마의는 포효로 이들을 기죽인다.[37]

조예는 병사들을 물리고 숨이 넘어가는 표정으로 사마의를 신임한다면서 사마의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어린 날 업어주며(背) 지킨 것처럼 조방을 지켜달라 당부하자 사마의는 背라고 대답한다.[38] 조예는 "어머니가 보고 싶으니 어머니의 처소로 날 업어 데려가라"고 하며[39] 사마의는 "신이 폐하를 업어서 견 태후가 계신 곳으로 데려다 드리겠습니다"고 답한다.[40] 몇 발자국 못 가 조예는 사마의의 등 위에서 그대의 등이 듬직하다는 유언을 남기며 숨을 거둔다. 그걸 본 신하들은 통곡하고, 사마의는 매의 눈을 한 채로 편전 밖으로 죽은 조예를 업은 채 나아간다.

조예의 유언대로 보정대신이 되어 대장군 조상과 함께 태위가 된 사마의. 첫 조회 때, 조방은 사마의의 손짓에 행동하고 조상은 그것이 못마땅해하지만 별 수가 없었다. 조상은 일단 사마의에게 굽히는 행동을 하지만 대놓고 죽이려던 견원지간이니 웃곤 있어도 어색함이 마구 나온다.


2.2.3. 조상, 그리고 고평릉 사변[편집]


태후와 천자를 만나러 가는 길에 출궁 위기에 처한 여인들과 맞닥뜨리게 되는데 조상은 그 중 겸가라는 여인에게 반한 상태라서 문제때 정한 출궁 조치를 무효화시키며 권력을 남용한다. 사마의는 그걸 파악하곤 슬며시 웃으며 조상을 인정많은 사람이라고 추어올리면서 달랜다.

황제와 태후를 대면하는 자리에서 조상이 궁궐의 한는 자리에서 조상은 예법을 몰라서 실수하고 사마의를 따라한다. 태후는 고명대신인 두명의 예를 생략해도 된다고 하지만 처세의 달인인 사마의는 그럴 수 없다고 튕기지만 조상은 넙쭉 받아먹었다가 그런 사마의의 태도에 당황하면서 예를 갖춘다. 태후는 사마의에게 두 아들에게 궁궐임무를 맡기길 원하지만 사마의는 한번 사양하고 태후가 거듭 당부하자 수락해 사마사에겐 궁궐 경호를, 사마소는 낙양 둔전 정비를 맡기는데, 사마의는 불평하는 사마소를 다그치며 둔전의 중요성과 자신의 잔혹함만 배운 사마소의 심신을 수행을 명한다. 사마소가 자신이 가진 강점의 알맹이가 아니라 껍대기만 배웠다며 아내인 장춘화와도 언쟁을 한다.

이후 황태후는 조예가 총애했던 벽사 문제를 조상과 사마의에게 일임하는데 사마의는 조예가 죽자마자 측근을 처내는건 부적절하다며 조상에게 말했지만 조상은 그 말을 무시하곤 벽사가 뇌물을 받아먹었다고 죄상을 말하자 오히려 벽사는 두분이 준 뇌물도 있다며 자신의 전철을 밟지말자고 하자 조상은 이래도 부적절하냐면서 사마의에게 면박을 주려했지만 사마의는 웃으며 자신은 많이 안줬다면서 너스레를 떤다. 이후 조상은 벽사를 치욕스럽게 감금한다.[41] 사마의는 감금당한 벽사를 찾아간다. 벽사에게 옷을 주며 벽사와 지난날의 회포를 푸며 벽사는 사마의에게 위의 신하로 천하일통을 하라면서 자신을 사람으로 대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긴다.

조상은 조씨가문이 가졌던 병권을 되찾아오겠다면서 사마의를 실권이 거의 없는 명예직인 태부에 임명해 병권을 빼앗아갈 계략을 꾸민다 이에 사마의는 사마의답게 정면돌파로 승부한다. 황제 앞 축하연에서 조상에게 "날 죽이면 손례와 사마사 등이 미쳐 날뛸 터인데 네가 버틸 수 있겠냐?" 정도 뉘앙스의 말을 하고, 조방에게 공명과의 전투에서 얻은 선물(=커다란 연)을 선물로 주겠다고 하여 꾀어낸다.[42] 조방을 능수능란하게 가지고 노는 사마의의 솜씨가 일품이다. "대장군이 비단을 빼앗으려 한다"는 말을 들은 조방은 조상에게 "떨어지라" 하더니, 하 부마가 군사를 이끌고 쫒아오자 달리는 와중에 "대장군께서 금수만도 못 하십니다, 비단을 빼앗겠다고 군사를 부리시는 군요!"라 한다. 그걸 들은 조방은 "이 이상 쫒아오면 베겠다."고 한다. 조상은 잔뜩 쫄은 추격병들에게 "안 쫒으면 네놈 살가죽을 벗기겠다!"고 으름장을 놓아 쫒게 한다.

성문 바로 앞에서 포위된 사마의, 손에 있는 조방만이 유일한 희망인데, 마침 문을 지키던 하후현이 여동생 하후휘의 부탁을 받고 조상, 하안이 이끌던 군사들과 대치하고, 사마부가 장제를 비롯한 대소신료들을 데리고 당도해, "역사에 역적으로 기록될 것이 두렵지 않으냐"면서 조상을 압박한다. 이에 사마의는 조상에게 우리가 싸우지만 않으면 천하가 조용할텐데, 이쯤하고 그만하자는 식으로 마무리를 지으며 성 밖으로 빠져나오는데 성공한다.

목숨을 건진 그 날 밤, 낙양성 외곽에서 사병들을 훈련시키는 급포를 찾아가, 사병의 수를 3천으로 늘려서 훈련시키라 당부하고, 본인은 당분간 황제 조방의 학문 선생으로 소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제자인 종회가 찾아와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무기력하게 살 것이냐고 일침하자, 사마의는 종회에게 자네만 보면 내 옛 친구 양수가 떠오른다면서 경외할 줄 아는 법을 배우라 충고한다.[43]

오나라의 주연이 이끄는 군대가 번성을 포위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조상은 이번 기회에 사마의를 완전히 없애버리려고, 번성 지원군의 총지휘관으로 사마의를 천거한다. 다른 신하들은 걱정했으나, 사마의 스스로 자처하며 폭염속 행군을 맡는다.

근데, 사마소가 조상 밑으로 참전했다는 소식이 도착했다. 사마의는 정말 오래간만에 격노하며, "어리석은 것!"이라는 말까지 한다. 모든 것이 무너질 위기인지라, 사마의는 말에서 쓰러질 정도로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사마의는 서둘러 낙양으로 돌아와 조상에게 정면돌파를 시도하며 사태를 일단락시키고, 사마사에겐 "사병들을 나눠 때를 기다리라"는 밀명을 내린다. 사마소에겐 하 부마와의 관계를 물은 뒤 사실상 집에 가두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거든 어머니나 모셔라"는 최후통첩을 날린다.[44]

기어이 사마소와 사마륜이 하후휘를 죽이고, 사마의는 막무가내로 덤벼드는 사마사를 조상에게 내줌과 동시에 장춘화의 각혈을 보게된다. 맏며느리가 살해당한 걸 알고, 용의자가 맏아들인 걸 들은 순간조차 그는 평정심을 유지했으나...장춘화의 병세가 심각하다는 것을 듣자 털썩 주저앉는다.

이후 장춘화의 증세가 차도가 없자 마지막을 직감한 사마의는 조상을 찾아가 곽회와 손례를 불러들이고 대촉 방어선 총사령관으로 하후현을 추천하며 병권을 완전히 내주는 대신 큰아들 사마사가 어머니의 임종을 지킬 수 있게 선처해달라 부탁하지만, 조상은 그것만으로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조진의 갑옷 앞에서 머리를 세번 조아리라고 사마의에게 큰 모욕을 준다. 이마에서 피가 날 정도로 머리를 조아려 겨우 사마사를 데리고 집으로 달려온 사마의였지만, 이미 장춘화는 숨을 거둔 상태였고 사마의는 신혼 시절을 떠올리며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장춘화를 끌어안고 서글픈 표정을 짓는다.[45]

장춘화의 빈소를 지키는 사마의는 조문을 온 조방의 조롱에 대답하지 못하고 털썩 쓰러진다.[46][47] 병세는 나날이 악화돼, 조상이 대놓고 역적질을 하는 와중에도 손례조차 알아보지 못한다. 형주를 병주로 알아듣고, 약을 칠칠맞게 흘리는 등, 중풍 환자 그 모습 그 자체다.

하지만 이는 꾀병이었다. 이 때의 연출이 압권인데 잠자다가 옆에 사마의가 없어서 찾으러 나온 백부인은 칼을 들고 붉은 전포를 입은 사마의를 보고 놀라 촛불을 떨어뜨린다. 배경에는 마치 공포영화에나 나올법한 음악이 깔려서 더 무섭다. 그 모습을 본 백령균에게 조상을 죽일 것임을 넌지시 알리자, 백령균은 실패를 걱정한다. 그러나 사마의는 낭고지상의 눈을 뜬 채, 칼을 뽑으며 야망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백령균 : "나리, 이제 괜찮으세요?''

사마의 : "...아주 멀쩡하오."



파일: 고평릉사마의.jpg

"난 평생토록 남의 칼 노릇만 했소. 이번만큼은 내가 직접 칼자루를 쥐고 휘두를 거요."


이후 병사들을 소집하고 칼을 높게 들며 외치길,

"거사를 시작하라!"


본인이 직접 가장 위험한 무기고 점령을 시도하며, 중간에 하안의 방해가 있으려 했으나 사마의는 눈빛 하나로 궁수들을 제압한다.

사마의: "자네로군. 비키게. 들어가겠네."

문지기 장수[48]

: "태부, 여긴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그러자 사마의는 눈 하나 깜짝 않고 칼을 들어 장수의 배를 찌른다. 튀긴 피가 옷에 묻을 텐데, 그것마저 아무 느낌 없다는 듯 눈만 치켜뜬다.[49]

예전에 황궁 경비를 맡아 경비병과 친한 사마사에겐 황궁 문을 맡겨 능히 접수해내고, 유능하지만 잔인한 사마소에겐 태후 설득을 맡겼는데 사마소는 태후를 반 협박해 승인을 받아냈다. 조상은 패닉 그 자체.

조상은 본인이 사마의를 이길 수 있는지에 대한 자신도 없었을뿐더러,[50] 하안과 처자식의 편지에 혹해 결국 돌아온다.

사마의는 조상을 살려주고 병권만 뺏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려 한다. 다만, 이것이 사마의의 본심인지, 혹은 사마소와 종회의 의도를 간파하고, 의도적으로 차도살인을 하려는 건지는 불분명했다. 쿠데타 주체가 직접적으로 숙청을 감행하면 여론이 나빠질 수 있기에[51] 나름의 법적 절차를 거치려고 종회를 법률을 다루는 중서시랑에 내정하며 조상 사건을 일임했고, 종회는 스승에게 어찌해야 할지 잘 안다고 답했다.

종회와 사마소의 경우, 극 중 내내 사마의에게 조상 일파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간언 했기에, 사마의는 진작부터 종회와 사마소의 야심을 이미 알고 있었으리라는 분석.

결국 낙양의 문무백관을 다 소집한 뒤, 관복은커녕 빗질도 대충 한 채로 황제 앞에서 가마를 타고 나타난다. 조상을 죽이지 말아 달라는 태위 장제의 의견도 대충 흘려듣고, 조방 역시 "조상을 살려달라."라고 간청했으나 "조상의 삼족과 역적의 일당을 주살하는 대신 그 이상은 죽이지 않겠습니다."며 논의를 매듭지었다.[52]

아이들은 처형 행렬을 따라가며 노래를 부르는데, 사마의가 옛날에 술 취한 채로 조조 앞에서 대충 흥얼거렸던 말이다. 원조는 십상시를 까는 노래다.

"제후는 제후답지 않으며, 왕은 왕답지 못하네. 거마 행렬이 북망산천으로 가는구나"[53]


삼족에 조상의 세살배기 아들 조린도 들어간다는 소식에 사마부가 경악해하며 아이만큼 살려줄 것을 청한다. 이건 백령균도 마찬가지. 조린이 불쌍해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살려준다고 약속해놓고 그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이 엎어버리면 후세 사람들이 과연 사마의를 어떻게 평가하겠느냐'가 요지였던 셈. 그러나 사마의는 사마부와 백령균의 눈도 쳐다보지 않고 죽그릇만 대충 휘젓더니 소름끼치는 말을 연방 내뱉는다.

"일은 이미 끝났거늘, 욕 먹기를 겁내느냐? 난세에 태어난 사람, 그 누구가 무고하겠는가. 너도 이리 와서 밥이나 먹거라."


사마부는 들은 척도 않고 뛰쳐나간다.


2.2.4. 정권을 잡다[편집]


조상을 처단한 후 황제 조방은 사마의에게 폐지된 승상으로 임명하는 한편, 그 옛날 조조가 받았던 구석에 준하는 권한을 내리지만, 사마의는 자신은 칠순이 넘은 노쇠한 몸이라 승상의 자리를 맡을 수 없다고 말한다. 황제께서 조회때 절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지만 이제 조회에도 몇 차례 못나올것같다고 말하고 자신도 주공을 위해 몸바치고 싶지만 신료들을 이끌 힘이 없다며 이를 거절한다.[54] 조방에게 성지를 돌려주고 그걸 보며 눈물을 흘리는 조방의 눈물을 닦아주고 황제의 계단으로 내려가려다 신하의 계단으로 내려간다.

이후 왕릉이 회남에서 초왕 조표를 옹립해 모반을 일으켰단 소식을 듣자, 사마의는 "태위로 승진시키고 가절월의 권한까지 줬건만 감히 모반을 꾀해?"라며 노구를 이끌고 직접 원정에 나서려 한다. 당연히 아들들은 자기들이 가겠다며 만류하나, "내가 늙었다고 원정을 못 갈 줄 아나본데, 내가 친히 갈 것이다."며 역정을 낸다. 백령균은 조금 다르게 반대하는데, "꼭 싸울 필요 없이, 왕릉을 잘 구슬려서 피를 보지 않고 항복시키는 것이 어떤가?" 정도로 사마의를 진정시키려 하나, 사마의는 되려 거세게 성을 내며...

"오늘 구슬려 놨는데 내일 들고 일어나고, 올해 봐줬는데 내년에 모반하면? 대체 언제까지 봐줘야 한단 말이냐?"[55]


라며 일절 논의를 틀어막는다.

사마의는 원정을 가는 수레 안에서 어떤 노래를 흥얼거리는데, 가사는 다음과 같다.

十五從軍征, 八十始得歸

열다섯에 종군하여 여든에야 돌아와 보니

道逢鄕里人, 家中有阿誰

길에서 만난 이웃이 묻네, 집에 누가 남았느냐고.

遙看是君家, 松柏冢纍纍

내 집이 있던 곳은, 송백나무 무덤만 남았다하네.

兔從狗竇入, 雉從樑上飛

토끼가 동굴을 드나들고, 닭이 들보 위를 나는구나.

中庭生旅穀, 井上生旅葵

마당에는 조가 자라고, 우물엔 아욱이 무성하네.

舂穀持作飯, 採葵持作羹

곡식을 찧어 밥을 하고, 아욱을 따 국을 끓인다.

羹飯一時熟, 不知貽阿誰

밥과 국이 다 되었거늘, 누구와 먹을지 모르겠네.

出門東向看 淚落沾我衣

문을 나서 동쪽을 바라보니, 눈물이 내 옷을 적시누나.[56]

[57]


이런 남편이 걱정된 백령균도 남편을 따라 원정길에 동행하고, 처음엔 왕릉을 쳐죽일 것처럼 분노하던 사마의도 백령균의 충고를 듣고 왕릉에게 항복을 권하는 서신을 쓰면서 한동안 냉랭했던 백령균과도 좋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결국 사마의와 싸우기도 전에 겁을 먹은 왕릉은 항복을 결심하고 스스로를 포박한채 사마의가 있는 배로 온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사마의는 그런 왕릉을 극진히 대접한다. 내내 존칭을 쓰고, 하선할 때에도 "정문으로 나가시라" 혹은 "갑판이 젖었으니 조심하라" 등. 깍듯이 모신다. 사마의는 "폐하께 다시 처분을 청하겠습니다", "좋은 소식을 기다리십시오"라면서 안심시켜 돌려보낸 뒤, 의미심장한 말을 하며[58] 웃음을 짓는데...

아니나 다를까 또 페이크였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왕릉이 자신의 관에 못질할 못 2개만 달라고 하자, 못을 주라고 하면서 왕릉의 삼족을 멸하라는 명을 내리고, 연거푸 말리는 백령균은 조조까지 예시로 들어가며 사마의를 설득하려 한다. 그러나 사마의는 조조와 조씨 가문에 견제받았던 지난날의 울분을 토해내듯

"조조? 그가 어떤 자이던가? 자신이 천하를 저버릴지언정 천하가 자신을 저버리지 않겠다고 한 자다. 그 자의 손에 얼마나 많은 피가 묻었겠느냐?"


그러고는 "조정의 도를 잘 아는 네가 어찌 오늘은 이토록 어리석은 말만 하냐?"라며 백령균을 꾸짖는다. 백령균은 당연히 더욱 반발하며 "당신은 지금 공포에 젖어 살인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추악한 사마의 당신을 나는 경멸한다."라 말하고, 사마의는 그때서야 벌떡 일어나 고래고래 소리친다.

"너 따위가 나를 거들떠봐? 이 나라의 군정이 내 손안에 있어. 내가 뭘 하던 하지 않던, 그건 네년 따위의 눈에 들기 위함이 아니란 말이다!"[59]


다만 이렇게 말해놓고도 백령균이 돌아가는 길에 자객들에게 살해됐다는 소식을 듣자 쓰러졌다.

사마의가 원정에서 돌아온 뒤, 동생 사마부가 찾아와 월단평부터 시작해 둘만의 추억을 새삼스레 나누자, 사마의는 사마부가 할 말이 있음을 직감한다. 사마의는 결국 동생과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고, 그렇게 아버지, 큰형, 큰며느리, 부인, 첩까지 떠나보낸 사마의는 또 한 명의 가족을 잃는다.[60]

후길의 청으로 후길과 소원을 맺어주려 하나, 소원이 사마소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사마의는 사마소를 죽여버리겠다며 준비를 한다. 당일 밤, 사마의와 사마소는 서로 마주치나 부자라기 보다는 군신, 원수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서로 낭고지상을 주고받으며 살벌하게 노려보고, 한 마디도 나누지 않은 채 각자의 길을 간다.

날이 밝자 사마소를 불러 죽을 먹다가 기침으로 신호를 보내 모든 출구를 봉쇄하고, 낙양의 피바다, 하후현, 하후휘, 소원을 죽인 일까지 하나하나 추궁한다. 그러나 사마소는 꿋꿋하게 "모든 건 사마가를 위해서 였습니다"라며 발뺌한다. 격노한 사마의는 그릇을 깨 두번째 신호를 보내고, 당초 들어오기로 한 병사 무리 대신 사마사가 장검을 들고 온다. 그러나, 사마사는 사마소의 처절한 연기와 거짓말에 혹해 사마소를 죽이지 못한다. 2층에서 모든 걸 보고있던 후길은 소원의 원수를 갚지 못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먹고 사마의의 방을 나선다.

사마의는 고평릉 때의 붉은 전포를 입고 황제를 만나러 간다. 황제를 알현한 사마의는 자신이 죽거든 문황제 조비가 묻힌 수양산에 봉분없는 간소한 무덤에 매장해달라는 유언 비슷한 말을 남긴다. 조방은 앞에서는 극진히 대하지만, 사마의가 퇴청하자 "저 자가 죽는 게 확실하더냐?"라 묻는 등 끝까지 사마의를 경계했다.


2.2.5. 최종 국면[편집]


집에 돌아와 식사를 하려는데, 후길은 평소 먹던 죽과 반찬 대신 웬 탕을 내놓는다. 바로 사마의가 아끼던 심원의마 거북이를 넣은 탕. 사마의는 격노했다. 탕을 대충 열었다 닫고는 괴성을 지른다.

"이 거북이는 나와 춘화가 키웠고, 내 가족이자 은인이다."


뒤이어 후길이 "키운 건 저죠. 평생 나리를 모셨거늘 거북이 하나 잡았다고 이러십니까?"라 항변하지만 들은 척도 않고 칼을 빼다 후길을 베어버리려 한다. 후길은 그걸 보고 충격을 받아 "요동에서는 1만을 죽이고 조상 일파 7천을 죽이고 왕릉의 일족 3천을 죽이고 백부인과 소원까지 죽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나리가 뭘 들고 있는지 보세요!"라며 그간 사마의의 악행을 열거하자 사마의는 칼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목 졸라 죽이려 한다. 그러나 드잡이질 중 거북이가 기어나와 후길의 페이크인 게 드러나자 "나를 속였구만!"이라며 서로 낄낄댄다.

후길의 소원대로 소원[61]과 결혼식을 치르는데, 혼례는 사마의가 맡았다. 사마의는 장춘화[62]와 함께 참석했는데, 후길은 사마의한테는 까칠하게 대하나 장춘화한테는 깍듯이 대한다. 웃기지만 알고보면 눈물샘을 자극하는 혼례가 끝나고, 사마의와 후길은 서로 정중히 인사를 나누며 묵은 정을 푼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심원의마 거북이를 방생하러 가자고 한다. 이에 후길은 아침에 못 일어날 거라며 못간다고 답하지만...

다음 날 아침, 죽음을 직감한 듯 수의처럼 흰 옷을 걸친 사마의는 후길이 모는 마차에 몸을 실은 채 낙수 강가로 심원의마 거북이를 방생하러 간다. 이때 후길이 모는 마차의 속도가 너무 느리자 사마의는 이에 불평한다. 그때 후길은 모든 것을 체념한 눈빛으로 덤덤하게 말한다.

"뭘 서두르십니까. 빨리 가나 늦게 가나 어차피 놓아줄 건데요."


어떻게 보면 사마의의 생애를 보여준 드라마 전체의 주제를 관통하는 대사. 그렇게 후길은 마차를 몰던 중 숨을 거둔다. 사마의는 그걸 보고 후길이 쥐고있던 말고삐를 대신 잡고, 후길의 손을 덮어준다.

사마의는 제갈량의 공성계에서 받았던 '의의동망(依依東望)'의 질문을

"바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라 답했다.[63] 그러고는 귀하게 여겼던 심원의마 거북이를 방생한다. 그리고, 마지막 오금희의 수련을 시작하며 본인의 삶을 돌이킨다.[64][65] 오금희가 끝나자, 사마의는 그대로 주저앉아 숨을 거두고 병사들을 이끌고 뒤따라왔던 사마사와 사마소가 아버지를 부르며 주검을 향해 달려온다. 내레이션으로 사마의의 향년, 삼국통일의 여부 등이 고해지며 대군사 사마의는 끝났다.




그리고 젊은 시절의 사마의는 홀로 황궁으로 가는 길을 걸어가다[66] 순수하던 그때의 눈으로 뒤를 돌아봤고, 그것이 대군사 사마의의 마지막 장면이다.


3. 성격[편집]


성격을 좀 더 서술하자면 꽤 복잡하고 다층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작품 초반을 보았을 때 일단 악인은 확실히 아니며, 다른 사대부들 혹은 귀족들처럼 사치를 부린다거나 여색을 밝히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천하를 경륜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겉보기엔 당대 기준으로는 물론 지금의 관점에서도 욕망이 거세된 사람처럼 보인다. 작중 조조나 곽가 등이 '속을 알 수 없다'고 평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극초반 양수와의 언쟁부터 시작하여 내내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면서도 바라는 것이나 지향점이 보이지 않는다. 이는 한나라 황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끝까지 황실 부흥을 꿈꾸었던 충의지사들을 높이 여기지만 정작 자신은 한나라를 보존하는 것에 아무런 미련이 없다. 칭제를 해야 하겠냐고 묻는 조조에게, 대답 대신 황제에게만 하는 절을 하며 완곡히 찬동하는 모습을 보인다.[67]

사마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단지 가족과 가문의 안전이다. 이를 위해서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라도 무릎을 꿇는 것이 가능한 인물. 명색이 주인공임에도 작중 시청자가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사마의의 모습은 이마를 땅바닥에 붙이고 납작 주저앉아 절하는 모습이다. 감정과 속내를 숨기는 데도 뛰어나서, 앞서 언급했던 곽가는 물론이고 조조, 심지어 아내 장춘화까지 "20년 동안 같이 산 나도 당신 속을 모르겠다!"고까지 말한다. 이 면모는 작중 몇 차례 있는 조조와의 대화에서 특히 인상적으로 비치는데, 폐부를 콕콕 찔러대는 조조의 말에 '절하는 스킬'과 더불어 교묘한 언변으로 이리저리 말을 돌리고 빠져나오는 모습은 경탄스러울 지경이다. 오죽하면 그 조조가 감탄하며 "자넨 어찌 그리 말을 잘하나?" "순욱이 너만큼만 처세를 알았어도 아직 살아 있었을 텐데."라고 이야기할 정도. 거기다 바로 이때 사마의는 엎드려 절한 상태이긴 했지만, 조조의 눈이 안 보이는 곳에서는 손가락과 그릇으로 장난을 치고 있었다. 바로 그 조조를 면전에서 코앞에 두고 말이다.

1부 군사연맹에서 사마의의 속내가 비친 적이 단 한 번 있다. 사마의가 처음 임관할 때, 조조가 사마의의 그 유명한 낭고지상을 언급하며 사마의를 가만히 관찰한다. 넙죽 업드려만 있던 사마의에게 가보라 하여 나가는 순간, 조조가 마침 쥐고 있던 바둑돌[68]을 던진다. 바둑돌이 바닥을 뒹구는 소리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린 사마의의 모습은, 방금전까지 긴장하여 넙죽 엎드려 있던 초년생 관리의 모습이 아니라 말 그대로 낭고지상, 날카로운 눈빛의 야심가였다. 이를 흥미롭게 지켜보던 조조가 "과연!"이라고 소리치며[69]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자 얼른 정신이 되돌아온 사마의는 다시 절하기 스킬을 시전. 직후 사마의는 자신이 정말 낭고지상인가 하여 길가에서 거울을 사고, 몇 번이나 자신의 얼굴을 보며 고민한다. 집에 돌아간 이후 하인 후길이 "도련님이 다급할 때 쳐다보는 눈빛이 무섭긴 하죠."라고 말한 것을 듣고 사마의가 자신을 쳐다보자 다시 "바로 그 눈빛이요."라고 말하는 신으로 깔끔한 마무리. 낭고지상의 경우 자세히보면 정말로 목만 돌아가는게 아니라 어깨의 옆면이 거의 노출되면서 사실상 몸이 돌아가 뒤를 보는 수준에서 그친다. 그래도 워낙 연출이 멋지고 눈빛이 살아있어서 반응이 좋은 편. 그리고 "뒤돌지 않고 뒤를 보는" 즉 눈에 관련된 내용이기 때문에 눈빛에 대한 언급을 추가적으로 하면서 매의 눈빛에 대해 낭고지상과 관련된 시청자들의 생각을 연관시키고 집중시킨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드라마의 내적 완성도를 높여주기까지 하는데, 낭고상 즉 주로 사마의의 반역에 대한 복선으로 사용되는 이 소재를 눈빛에 집중시켜 놓고, 1부에서는 이런 눈빛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 반면 작중 최후반부, 고평릉 사변 즈음의 사마의는 항상 이런 표정을 짓게 되는 인물로 변화한다. 적어도 본작 초반의 사마의는 아직 스스로도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야심 혹은 야망이 무엇인지 발견하지 못한 상태의, 정확히 말해 '무엇인지'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의 서생이었던 반면, 작품 말기에 가서는 그 야망에 일상이 집어삼켜진 존재임을 보여주는 소재라고 생각할 수 있다.[70]

드라마가 진행되면서도 내내 가문과 자신의 생존이 최고의 가치이긴 하나, 조금씩 정치의 중심부로 다가가면서 자신의 소신을 드러낸다. 더 이상 천하에 혼란이 일어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만큼은 확고하다. 위나라를 분열시킬 내전의 위험이 있던 조창의 폭주 때는 탈출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목숨을 걸고 자리를 지켰다. 또한 외척들이 주도하던 위나라의 인재기용제도를 일신할 구품관인법[71]의 경우, 이 법을 제안하면 황제의 외척 세력인 조씨 가문 사람들의 표적이 될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상소를 올리며 법의 시행을 주장했다.[72][73]

정리하자면, 세자 자리를 두고 경쟁하던 시절부터 조비에게 이야기했던 중도(中道)를 지키는 것에 집중하는 인물. 대의만 생각하며 현실감각을 잊지도, 현실에 매몰되어 대의를 잃지도 않는다. 특정 상황에 처했을 때 내는 계책이 늘 그렇듯, 큰 그림을 먼저 읽고 세부적인 사항으로 들어가 당시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일을 해낸다. 항상 그림을 크게 보아서인지 누군가에 대한 증오나 원한을 불태우는 일도 거의 없다.[74] 오히려 곤경에 처하게 되면 그건 그것대로 경험으로 삼고, 나중을 위한 발판이라고 여긴다.

이렇게보면 굉장히 진지한 캐릭터같지만 의외로 개그 캐릭터의 소양도 충만하다. 조조에게 속을 들키고 난 뒤 조조 흉내를 내며 그때 상황을 설명한다거나[75], 백령균과 함께 있던 것을 장춘화가 알고난 뒤 장춘화 앞에서 무릎꿇고 변명(?)한다거나.

특히나 백령균 관련 에피소드에선 공처가 개그가 늘어나는데, 황제가 하사한 여인이니 백령균을 되돌려보내지도 못하고[76], 장춘화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사람도 아닌지라 사마의는 크게 고생한다. 오죽하면 백령균을 받아들여 장춘화와 싸우느니 유비와 손권이랑 싸우겠다고 할 정도. 조비도, 장춘화도 설득시키지 못하자, 사마의는 백령균 앞에서 장춘화를 도발해 부부싸움을 함으로써[77] 백령균 스스로 질려서 나가게 하려고 한다.[78] 이후 백령균이 정식으로 사마씨 집안의 사람이 된 이후에도 장춘화의 눈치를 보며 백령균의 처소에 드나드는 등 공처가 기질은 장춘화가 죽기 전까지 계속 된다.

젏었을 적 사마의는 실력이 출중하고 일족을 아끼고 순수한 젋은 인재였다. 그러나 서서히 성품이 냉혹해져갔고 급기야 권력을 잡다보니 친했던 사람들을 냉혹하게 대하고 반대하는 세력을 무자비하게 제거하는 타락한 권력자가 되어갔다. 평을 보기엔 사마의의 악행은 비난받아야 마땅하지만 순수했던 뛰어난 인재가 저렇게 냉혹하고 타락한 권력자가 됐는지 한편으로 안타깝다는 평이있다.


4. 명대사[편집]


하늘 아래 제왕의 땅 아닌 곳 없고 땅 위에 제왕의 신하 아닌 자 없으니

학자로서 나의 가장 큰 포부는 훌륭한 군왕을 만나 그를 섬기고 보필하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그와 함께 이 난세를 끝낼 수 있겠지.


일전에 신성(新城)에 뛰어들어 당신맹달에게 쓴 편지를 보았소. 거기서 한 구절을 보았지. 의의동망(依依東望).[79]

공명, 내게 알려다오. 사람의 일생, 의의동망이란 무엇이냐!

바라는 것은 일생의 포부요!

바라는 것은 일생의 영광이요!

바라는 것은 일생의 큰 성취로다!


중달. 바라는 것은 성취가 아니니라. 바라는 것은 평생이다. 바라는 것은 시간이다.

-

제갈량이 말년의 사마의로 바뀌며 말년의 사마의가 중년의 사마의에게 가르침을 준다. 이 때 중년의 사마의도 초년의 사마의로 바뀐다.


제갈량, 이 천하에 국궁진췌 사이후이할 수 있는 사람이 당신뿐인 줄 아시오? 이 사마의 역시 충의지사로서 죽을 수 있소! 혹 당금 폐하께서 나를 팽하신다고 해도, 서성에 들어가 당신을 죽인다면 나 사마의는 만세에 그 이름이 남을 것이오!


천하에 다시 없을 기재다...(중략)... 국궁진췌, 사이후이. 이게 바로 그 자의 집념이다.


마음이 맑아야 밝은 뜻을 세울 수 있고, 마음이 고요해야 포부를 이룰 수 있다. 이 물이 투명하고 깨끗하여 맑고 고요하니 마치 그대의 삶과도 같구려.[80]

난 그대와 6년을 싸웠지만 그대를 지음으로 여겼소. 공명. 내 존경을 담아 부르리다. 선생(先生)!


조예: 그대가 짐을 업은 것(背)처럼, 우리 위나라의 미래도 업어주시오.

사마의: 신이... 엎겠나이다.(背)[81]


내 평생을 의 칼로 살았다. 이제는 내가 칼자루를 쥘 것이다.


백령균 "나리, 사마가는 이제 모든 걸 다 가졌잖아요. 나리의 이름이 분명 역사에 남을 텐데 덕망과 명성을 쌓으셔야죠."

사마의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은 서생들의 포부요. 난 군사를 일으킨 그 날부터 죽어서도 살아서도 헛된 명성 따위는 신경 안 쓰기로 했소."


은 이미 끝났거늘, 욕먹기를 겁내느냐? 난세에 태어난 사람, 그 누구가 무고하겠는가. 도 이리 와서 밥이나 먹거라.


백령균 "당신이 이러면 무제와 다를게 뭡니까?"

사마의 "조조? 그가 어떤 자이던가! 자기가 천하를 버릴지언정 천하가 자기를 버리게 하지 않겠다던 그 자가 사람을 얼마나 죽였는지 아느냐! 그 자의 손에 묻힌 피가 얼마인지는 아느냐고! 나도 늙고 병든 몸이거늘 그놈들 칼은 내내 내 목을 겨누고 있었어! 조당의 도를 잘만 아는 네가 이번엔 어찌 이리도 계집 같은 소리를 한단 말이더냐?"

백령균 "당신은 지금 두려움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는 거예요. 이런 사마의는 거들떠 보지도 않을거라고요!"

사마의 "네 년 따위가 나를 거들떠본다고? 이 나라의 군정이 내 손에 들어있어. 내가 뭘 하던, 하지 않던 그건 네년 따위의 눈에 들기 위함이 아니란 말이다!

-

사마의가 왕릉의 삼족을 멸하자 백령균이 사마의를 비난하며.


의의동망이란 사람의 마음이구나.[82]



5. 여담[편집]


  • 일본의 대배우 타무라 마사카즈와 많이 닮았다.
  • 시즌2의 사마의의 모습은 한국의 배우 박영규가 연기한 이인임(정도전)과도 비슷한데, 정치9단에 외세와의 전쟁을 무기로 자신의 권세를 유지하고, 믿었던 주군에 대한 토사구팽의 배신감으로 어린 왕을 꼭두각시 삼아 정권을 좌지우지한다. 그리고 왕(황제)를 움직일때 태후(왕대비)쪽을 자주 이용해 먹고, 인상을 쓰는 연기를 할때 배우 얼굴에 난 특유의 사마귀가 부각되는 편.[83]
  • 작중 내내 한쪽 눈썹, 특히 사마의 기준에서의 왼쪽 눈썹을 자주 든다. 오슈보의 다른 작품에서도 가끔 보이는 시그니처 무브. 더 락[84]
  • 한결같이 정리된 머리 모양이 그의 인내심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장춘화의 각혈을 계기로 점점 헝클어지더니 본격적인 흑화 이후에는 한 번도 머리를 정리하지 않는다.
  • 드라마가 흥하면서 나무위키 내 사마의와 관련된 문서 곳곳에 사마의가 조위 정권에 평생 견제받았다는 식의 서술이 늘었는데, 조조 시절에는 심증만 있을 뿐 기록에 대해서도 신빙성이 의심받거나 과장되었다고 여겨지는 편이며, 조비 시절에는 믿음직한 오랜 오른팔로 조조-순욱의 관계와 같았고 조예 시절에는 유선-제갈량의 관계마냥 조예는 그를 아버지처럼 따르고 흠모하였다. 사마의가 조위 정권에게 확실하게 견제받은 것은 조방 시절 조상 세력이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사마의가 평생 견제 받았다는 것은 드라마 내의 설정일 뿐 조비 조예는 사마의를 전적으로 신뢰하였으며 때문에 조예, 조방에 대한 탁고대신으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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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드라마 조씨고아에서 주연인 정영역을 맡은 배우. 2016년 내한해 백상예술대상에 시상자로 참석한 배우다. 링크[2] 본작에서는 제작자도 겸하고 있다.[3] 참고로 이 장면은 사마소가 소원을 후길과의 혼례 전에 죽여버리자 사마의가 사마소를 죽이기로 마음먹고 죽이기 하루 전날 사마소와 낭고지상으로 대면한 장면이다.[4] 어려서 난리통에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아욱으로 요리를 했었다는 언급도 있다.[5] 화타가 곰, 호랑이, 사슴, 원숭이, 새 등 다섯 동물의 몸 동작을 보고 고안해 낸 건강체조. 현재까지도 중국에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6] 청년 때는 하지도 않던 칼질을 다 늙어서 고평릉 사변 때 보여준다.[7] 사마의의 이 말을 들은 조조는 지난날 자신에게 일생 최대의 패배를 선사해 자신의 대에 천하통일의 꿈을 못 이루게 했던 적벽대전의 원수 오나라와 손을 잡고, 형주 공방전에서 승리를 거둔다.[8] 이 때 조조가 마굿간지기로 보낸 것을 성대모사까지 하며 열연하다가 들키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 때 조조는 조충에게 똑똑한 자가 똑똑한 자를 다루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하는데 원래는 사마의를 조비가 아니라 조충에게 붙여주려고 했던 듯하다. 마굿간지기로 박아두면 사마의가 절박해질 것이고 조충이 좀 더 자랐을 때 절박해진 사마의를 붙여주면 그의 능력을 통해 조충도 후계자 다툼에 뛰어들 수 있다는 계산이었던 듯하다. 물론 조충이 어린 나이에 죽으면서 그럴 일은 없었지만.[9] 때문에 연의에서는 조비를 돕기 위해 가후가 냈던 계책들 일부가 사마의의 계책으로 묘사되기도 한다.[10] 황제나 제후만이 드나들 수 있는 길. 조식은 술에 취한 채 마차를 몰고 여길 신나게 내달려버린다.[11] 이 계략이 참으로 절묘한데, 조조에게 빈 찬합을 받은 순욱은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었다."면서 자결한다. 순욱이 남긴 자료는 조조에 의해 신료들이 조사하게 된다. 조사 중 다른 이도 아닌 양수가 조비의 필적과 이름으로 쓰인, 조조를 헐뜯는 내용의 서신을 발견한다. 조비는 감옥에 갇히게 되지만, 편지를 쓴 진범을 찾아내보니 당대의 인격자로 알려진 최염이 범인. 순욱은 일부러 자신의 자료가 조사되도록 자결했고, 최염은 일부러 그런 서신을 쓴 것이다. "양수와 정의의 협박을 받아 썼다."는 진술과 함께. 결국 조식이 조비를 헐뜯은 그림이 되어버렸다. 무려 두 사람의 목숨이 필요한 계책이었으나 효과는 확실했다. 사마의는 이 과정에서 조사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사건 담당자를 정의에서 종요로 바꾸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12] 삼공을 보좌하는 감찰직으로 현대의 대검찰청 차관급에 해당한다.[13] 문소황후가 죽은것이 221년이므로 역사적 팩트로만 보면 221년이나, 최후의 승자편에서 조진이 3년만에 사마의를 다시 보았다고 언급하는 것을 보아서 종료 시점은 223년이다.[14] 진군, 조진, 조휴[15] 이 석정 전투의 건 이후로 사마의는 독립적인 병권에 욕심을 가지기 시작한다.[16] 자신이 퍼트린 소문 때문에 왕평과 마속을 이간질해 마속이 실책을 저지르게 됐다는 논리.[17] 조예는 권신의 힘이 너무 강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진-사마의를 저울질하고 있었는데, 사마의가 제갈량을 죽이는 공을 세우면 사마의의 힘이 너무 막강해지기 때문에 조예는 조진 쪽으로 완전히 돌아서면서 사마의의 입지는 매우 위험해진다.[18] 이때 사마의의 표정을 보면 누가 들었을까봐 잔뜩 겁을 집어먹은 표정이다. 이 때까지 한 번도 보여준 적 없었던, 눈에 빛이 하나도 없는 죽은 눈과 비슷한 연출까지 있다.[19] 진군의 건의였지만 사실상 백령균이 말한 시대의 흐름 그 자체다.[20] 본인이 빠저나갈 구명을 내기 위한 전략 중 하나였다.[21] 그는 죽기전 조예에게 자신이 주지 않았으면 사마의가 빼앗았을 거라고 말하며 그의 병권 욕심을 알아본다.[22] 이때 간만에 개그가 터진다. 백우선을 든 제갈량의 모습을 보며 "나도 부채를 달라."는 사마의의 말을 병사들이 그대로 전해버리고, 제갈량은 "부채는 이거 하나뿐이다."라고 답한다. 답답한 사마의는 후길을 부르는데, 후길의 이름이 '조급하다'는 중국어와 발음이 유사하여 병사들은 "조급해하지 말라!"고 제갈량에게 전한다. 여기에 또 제갈량은 진지하게 "북벌을 완성하려면 시간이 부족하거늘, 역시 날 아는 자 사마중달이로구나."라며 감탄한다. 이후 후길이 갖다준 부채를 부치면서 사마의는 제갈량에게 "승상이 위나라로 오신다면 승상의 대업은 10년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오"라 도발하고, 이에 제갈량은 "한나라 재건을 위해 나와 손을 잡는다면 이 부채는 얼마든지 주겠다"고 맞받아친다.[23] 예고편을 본 사람들에겐 미묘한 장면이다. 뒤에 나올 후길의 꾸짖음을 배경소리으로 하여 마치 사마의가 몸에 묻은 피를 씻으려는 듯 아둥바둥 하는 장면이 연상되기 때문이다.[24] 사마의는 "명령도 어기고 대패까지 한 주제에 후회하지 않아? 네가 단단히 미쳤구나"라고 말하며, 참형을 상징하는 패를 내던진다.[25] 전령병은 사전에 죽간 등을 준비해서 읽었지만, 사마의는 다 외운 채로 읊었다. 제갈량의 '의의동망'을 임종 직전에서도 언급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사마의는 제갈량을 단순히 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본인의 우상, 넘지 못할 벽 정도로 여겼다.[26] '그것'은 좁게보면 사마의 본인 및 위군의 목을 치는 것, 넓게보면 당연히 북벌이다.[27] 하지만 마지막에는 극긴한 태도로 인사하는데, 제갈량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적에 대한 조롱과 존경하는 인물에 대한 마지막 인사를 동시에 한 것이다.[28] 입술을 피에 바르고 그 피를 닦아내는 건데, 견복은 사약을 마시고 죽어가는 중에도 사마의를 만나자 이 행동을 반복한다.[29] 작중 견복이 죽임을 당하던 날을 비유하는 표현이다.[30] 조비가 견복을 죽일 때 조예더러 이거 내보내라며 손가락으로 이마를 꾹꾹 찌를 때 감싸주고 살려준 게 곽조란걸 생각하면 적반하장의 수준도 넘어섰다.[31] 조예는 곽조에 대한 원한도 원한이지만 본래 사마가문에서 조비에게 진상한 여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더욱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보정대신+제갈량 북벌을 막은 공신+황태후의 실질적 외척+사대부의 우두머리'라는 타이틀은 본 작중 자신만의 조정 즉 권력을 독점하고자 하는 조예 입장에선 부담스럽다. 당장에 황태후의 성지를 받아내 보정대신의 이름+사대부의 집단행동으로 본인을 압박한다면 상당히 껄끄러운 상황. 실제로 곽조를 한번 제거하려고 했지만 조진과 손잡아서 막아낸걸 속에 담고 있었다. 거기다 남아있는 종친들로는 사마의를 견제할 수 없다.[32] 매실과 얼음으로 만든 중국식 디저트. 환관 벽사가 곽조를 죽이고 나면 오매탕을 보낼테니 이를 기다리라고 했었다.[33] 이 때를 기점으로 사마의의 눈은 낭고지상 때의 눈이 됐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1부부터 지금까지 내내 권력자들에게 충성과 비위를 맞춰왔지만 돌아오는건 극심한 견제와 의심이였고 그런 견제와 의심속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차도살인을 비롯해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려했지만 결국 가족인 곽조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사마의의 흑화가 시작된다.[34] 이 때 백령균은 "나리께서 칼에 묻은 피를 닦아내시고 그 칼은 농기구로 바꾸시면 좋을텐데..."라고 말한다. 사마의의 흑화를 어느 정도 경계하는 부분.[35] 사실 묘사된 것으로만 보면 조예의 지나친 견제가 사마의의 야심을 깨운 것으로 보인다. 조비 집권기만 해도 조비는 틱틱대면서도 사마의의 말을 거의 다 들어줬지만 조예는 겉으로는 우대하는 척 하면서 빈번히 견제했기 때문에 사마의가 제 뜻을 펼 수 없었다. 이 상황이 사마의가 흑화하는 시점과 맞물린다. 이 때 사마의는 조예가 공손연의 칼로 사마의를 제거하려 한다는 백령균의 걱정에 누구의 칼이 더 날카로운지로 결정될 것이라며 낭고지상을 띄운다. 더불어 자신이 칼이었으나 통제권까지 쥐었던 제갈량이 부러웠다는 언급도 한다.[36] 두 번 연속 실수해서 그 군사만 무안해하고 이후 사마의는 매의 눈 상태로 상황을 이어간다.[37] 이 드라마 원래 제목이 호소용음, 그러니까 호랑이가 소리친다는 말이 앞에 있다. 사마의가 호랑이에 비유됐는데, 이때 이 포효의 연출은 호랑이 울음소리다.[38] 등에 매다와 배신하다 두가지 의미를 지닌다.[39] 이 행동은 사마의를 지켜주는 행동으로 볼 수 있다. 천자를 업었는데 누가 사마의를 찌를 수 있겠는가?[40] 해석하기에 따라 죽여버리겠다는 뜻도 되고, 편히 가시라는 뜻도 된다. 다만 조예와의 앞선 대화를 살펴보면 편히 가시라는 뜻이 강하다.[41] 반 누드 차림으로 감금 당했다. 찌라시지만, 벽사가 남색을 밝힌다는 게 사실이라면 벽사에게는 더더욱 수치스러운 일이다. 당시에 꽁꽁 싸맸던 옷차림은 사마의가 봐도 감이 오니...[42] 구체적으로 하자면, 사마의는 조상에게 맞서기 싫어 "모든 걸 내려놓겠다."고 했다. 다만 조상은 그와중에도 죽이려 들 게 뻔해서 궁 밖으로 나가기 위해 조상보다 강한 명령권을 가진 사람이 필요했다. 당연히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조상에게 일인이야 황제인 조방이고...[43] 1부에서 종회의 첫 등장 때, 그는 양수가 겸손할 줄 몰라서 화를 당할 것이라고 아버지 종요에게 얘기한 적이 있다.[44] 이 때, 사마소의 낭고지상을 보게된다.[45] 작중 처음으로 어떤일이 일어나든 강한 정신력으로 버티던 사마의의 정신이 붕괴된 모습을 보여준다[46] 정말 죽이고 싶을 정도로 조방이 얄밉다. '세 마리의 말이 하나의 구유에 주둥이를 박았다'는, 이 말이 사마의를 가리키는 게 아니냐며 묻는다. 조문을 갈 때 조방의 옆에서 "신하 조문가는 황제도 있나"며 지껄이던 생모가 꼬드긴 게 확실하다. 게다가 그 말을 하며 사마의의 수염을 개 주둥이를 어루어만지듯 만진다.[47] 이때도 조상이 오는걸 확인하고 쓰려진다.[48] 참고로 해당 장수는 조예의 임종 직전, 사마의를 죽이려 했던 바로 그 장수이자, 사마의가 조상의 위협을 피해 천자인 조방과 함께 도망갈 때 이를 쫒아가던 장수였다.[49] 나중에 조상의 집을 습격한 병사들은 흰 옷을 입고 있던 지라 옷 주변에 혈흔이 있었다. 그러나 사마의는 핏빛 옷을 입고 있었던 탓에 사람을 죽였지만 티가 나지 않았다. 거병 전에 흰 옷의 사병들에게 "너희와 나는 진작에 하나였다."라고 말한 점을 고려하면 마치 사마의가 피에 온몸이 물든 듯한 연출이다.[50] 사마의는 왕년에 조위 최대의 숙적인 제갈량을 물리치고 공손연을 뿌리 뽑았다. 늙었지만 지략 하나는 여전하기에 조상이 겁에 질릴 만도 하다.[51] 사마의는 시종일관 "병력보다 인심이 먼저다."라고 말했다.[52] 이때 조방이 사마의를 직접 부르며 조상을 살려달라 청하나 사마의는 아무런 대꾸 없이 등을 돌린 채 가만히 있는 것이 압권으로 신하가 황제에게 대하는 자세가 아니다. 이에 조방이 일어나 사마의에게 가서 조상을 죽이고 제위를 찬탈할 생각이라면 넘겨주겠다는 폭탄발언을 하자 사마의가 엎드려 군주와 신하의 역할을 언급하며 그런 의도는 없음을 피력한다. 그리고 절충안으로 조상의 막료나 하급관료를 용서하면 어떻겠느냐 제안한다.[53] 굵은 글씨가 사마의가 불렀던 부분.[54] 하후현이 반대할 때도 사마의는 자고 있었다. 황제고 뭐고. 계단을 내려가는 장면에서도 사마의의 센스가 엿보이는데, 황제의 계단을 걸으려다 중간에 신하의 계단으로 선회해 내려간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느낌.[55] 사마의의 불신과 초조함이 드러난 장면이다. 고평릉 사변 이후 사마의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아는지, 초조한 모습을 연신 보여줬었다.[56] 전쟁의 황량함을 한탄하는 당대의 민요다. 조조는 죽기 직전, 마지막 마차에서 이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그 설명은 동행했던 사마의가 했다.[57] 당나라의 두보도 영향을 받았고, 현대 중국에서조차 굉장히 유명한 시다. 간체자 가사는 다음과 같다. 十五从军征,八十始得归。道逢乡里人:家中有阿谁?遥看是君家,松柏冢累累。兔从狗窦入,雉从梁上飞。中庭生旅谷,井上生旅葵。舂谷持作饭,采葵持作羹。羹饭一时熟,不知贻阿谁!出门东向看,泪落沾我衣。[58] "전란을 피하며 백성을 도탄해서 구했구나."[59] 인자해서 사마가 감시가 목적이던 백령균을 감화시켰던 사마의가 저런 폭언을 한 건 대군사 사마의 들어 처음 있었던 일이다. 정말 사마의가 변했음을 알 수 있다.[60] 이 부분은 군사연맹에서 조조와 순욱의 결별 장면이 떠오른다.[61] '애처 소원의 위패'라 적힌 위패로 대신했다.[62] 대위 태부 부인 장씨의 위패'라 적힌 위패로 대신했다.[63] "평생의 포부와 역사의 영광"이라 답했던 젊은 날과 대비되는 장면이다. 위나라의 절대권력을 틀어쥐었으나 그는 후길마저 죽음으로서 외롭게 남았고, 결국 죽는 그 순간에 그는 사람의 마음을 원했다.[64] 배경음악과의 매치가 흥미롭다. 첫 음악은 위에 적힌 '십오종군정(열다섯에 종군하여)'라는 전통 노래인데, 이 음악은 조조가 생전 들었던 마지막 노래다. 노래의 뜻은 '열 다섯에 종군했던 병사가 팔십세가 되어야 고향으로 돌아오니 폐허가 된 고향 집엔 아무도 없었다. 홀로 그 집에서 밥을 먹으며 무상함과 외로움에 눈물이 흘렀다'는 이야기인데, 젊은 시절 출사하고 다 늙어서야 모든것을 내려놓은 사마의의 인생을 표현함은 물론, 황건적의 난부터 시작되어 군웅할거, 삼국시대에 이르는 한 평생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아우르는 노래기도 하다.[65] 두번째 음악은 제갈량의 공성계 때 그 음악인데, 이 음악 부분에서는 갑옷을 입고 전장을 종횡무진했던 대도독 사마의의 모습이 나왔다. 호랑이 포효를 지나 조조, 조비와의 기억을 하는 부분에서는 조조의 마지막 창무 때의 음악이 연주된다. 낭고지상을 마지막 장면으로 해, 사마의가 조조를 매섭게 노려보는 걸로 회상은 끝이 난다.[66] 사실 이 장면은 조조와 대면하고 조조가 사마의에게서 낭고지상을 확인한 후 집으로 돌아가면서 낭고지상이 아닌 평소의 순수하던 얼굴로 의문을 가지고 뒤돌아 본 장면이다.[67] 조비가 위왕의 자리에 오른 후 사마의의 태도를 보면 바로 칭제를 하라는 것은 아니고, 장기적으로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본 듯하다.[68] 작중 바둑돌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천하가 바둑판이라면, 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저 거대한 바둑판에서 판을 좌우하는 바둑돌로서 취급된다는 것. 판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면 얼마든지 '버리는 패'로 활용된다. 사마의 역시 자신이 내내 바둑돌의 위치에 있음을 잊지 않으나, 최후에 그는 판을 뒤집는 자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비유다.[69] "과연 낭고의 상이 맞구나!"라는 뜻인지 "과연 곽가의 말이 옳았구나!"라는 뜻인지는 불명. 둘 다일 수도 있다.[70] 조조와의 첫 만남에서 조조가 웃은 이유는 사마의가 깨닫지 못한 낭고지상을 조조가 먼저 꿰뚫어 봤고, 아직 사마의가 미숙하다고 판단하여 자기가 능히 부릴 수 있어서란 해석도 있다.[71] 다만 실제 역사상의 구품관인법은 이후 다른 누구도 아닌 사마 가문에 의해 악용되어, 사마 일족만의 세력이 위나라 조정을 가득 채우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진군이 이 법을 만들어 제안할 때의 의도는 좋았지만...사실 이 작품에서도 그런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백령균이 정확하게 지적한다.[72] 상소를 보고 동생 사마부가 '대왕과 싸울 생각이냐'고 걱정하자 사마의 본인은 "대왕과 싸우는 게 아니라, 대왕을 대신해서 싸우는 거다"라고 답했다. 조비에 대한 믿음을 볼 수 있는 장면.[73] 단순히 조비에 대한 믿음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둘이 이미 이심전심의 관계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조비는 정작 왕위에 앉고 보니 병권이 친척들 손에 있어 기를 못 펴고 친척들 비위나 맞추는 상황이었다. 이후에도 친척들이 없는 자리에서는 친척들의 지나친 탐욕에 분노하는 등 친척들을 경계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 사마의는 그런 조비의 심중을 정확히 읽은 것이다.[74] 다만 한글 방영판 기준으로 작 중에서 딱 한 번 남을 욕한적이 있는데, 바로 조진. 13화에서 최염이 조비에게 충고한 일을 가족에게 말하며 "다만 중랑장(조비)은 아직 혈기왕성하고, 옆에는 조진 같은 놈이 있으니"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을까 하고 걱정한다.[75] 그런데 이 모습을 하필 조조가 봐버렸다.[76] 더불어 조비가 백령균을 보낸 건 사마의를 감시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그래서 돌려보내면 오히려 더 위험하다. 조비는 아예 이런 식으로 나가면 사마의와 장춘화를 이혼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77] 사마의가 일부러 들으라는듯이 '백령균처럼 좀 조신하게 굴 수 없냐'고 하자, 이에 빡친 장춘화가 칼을 빼들고 사마의를 쫓아간다.[78] 장춘화가 자신을 따라잡자 칼을 빼든 건 잘 한 일이라면서 며칠만 더 이런 모습을 보면 제 발로 나갈 거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더 소리 지르고 쫓아오라고 덧붙힌다. 이 말을 들은 장춘화는 어이가 없어 하면서도 또 계속 쫒아간다.[79] 아쉽게 동쪽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제갈량이 당시 동쪽을 잃었던 상황이었다.[80] 실제 제갈량의 말과 한진춘추에 있는 제갈량에 대한 평가를 인용한 대사다.[81] 背는 등 배자로, 동사로 쓸 경우 등에 업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배반하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이걸 이용한 말장난.[82] 마지막 장면에서 나온다. 삶의 끝자락에서 마치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수십년 전 제갈량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한다. 풀이하면, "평생동안 바라는 것은 결국 사람의 마음이구나"라는 뜻.[83] 작중 정면샷을 찍을 때 유수보는 미간에, 박영규는 코 옆에 난 사마귀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부각된다.[84] 다만 더 락은 오른쪽 눈썹이고 우슈보는 왼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