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준섭(권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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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섭
申俊燮 | Shin Joonsup


파일:하계올림픽신준섭4.png

출생
1963년 6월 17일 (60세)
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 길곡리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원광대학교
종목
복싱
체급
미들급
신체
176cm, 70kg
1. 소개
2. 선수 경력
3. 수상 기록
4. 기타



1. 소개[편집]


대한민국의 前 아마추어 권투 선수이다.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우승했는데, 이는 대한민국 권투 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2. 선수 경력[편집]



2.1. 유년 시절[편집]


고등학교 때 복싱을 시작했으나 국내선발전에서도 번번히 탈락하는 평범한 선수였다. 전국체전과 아시안 게임 선발전에서 번번히 고배를 마셨으나 1983년 로마 월드컵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이후 결국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물론 미들급 신준섭은 체급이 체급인지라 동메달 정도 기대하던 선수였고 대신 라이트플라이급 김광선, 플라이급 허영모, 밴텀급 문성길, 페터급 박형옥, 라이트웰터급 김동길이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기대를 모았다.

2.2.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편집]


웰터급 이상 체급이었지만 메달권에서 벗어난 것으로 평가되어 1회전에 통과하고도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문성길, 김동길이 탈락한 이후에는 복싱의 메달 획득이 어렵다는 분위기가 나왔지만, 다크호스 신준섭, 전칠성, 안영수가 선전했다. 신준섭은 우간다, 캐나다, 나이지리아, 푸에르토리코 선수를 차례로 물리치고 결승에서 미국의 버질 힐과 만나 일대접전을 펼쳤다. 승부는 판정으로 결정되었는데, 미국이 홈인 상황에서 판정으로 간다는 것이 곧 패배로 인식된 것인지 결과발표 전 신준섭은 고개를 숙였고, 버질 힐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 밖으로 신준섭의 우승으로 끝났다. 이후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은퇴했다.


2.3. 현재[편집]


유인탁의 뒤를 이어 2019년 9월1일부터 전라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을 역임하고 있었다.

2023년 7월 25일, 전라북도체육회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윤영숙 도의원(익산3)의 외압과 갑질 및 폭언을 폭로했다. 같은 날 윤영숙 의원 역시 반박 기자회견을 열고 법적인 조치를 시사했다. #


3. 수상 기록[편집]


올림픽
금메달
1984 로스앤젤레스
75kg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86 서울
75kg

4. 기타[편집]


  • 이전부터 한국이 복싱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딸 기회는 많았지만, 아쉽게도 놓친 경우가 많았다. 1956 멜버른 올림픽에서 송순천은 결승에서 독일(단일팀)선수에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판정패하여 당시 중계아나운서가 국력의 약함을 들어 국민들의 아쉬움을 대변했고,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지용주도 결승에서 아쉽게 판정패한 바 있었다. 이런 가운데,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1980 모스크바 올림픽에 대한 미국과 서구권 불참에 보복으로 아마추어 권투 최강급인 쿠바와 동구권이 불참한 가운데 다이너마이트 김승연 회장의 전폭적 지원에 각체급에 유망주 선수들이 즐비하여 다수의 금메달을 기대하고 있었다. 신준섭의 올림픽 우승은 철도연표에 실려있는데, 당시 신준섭의 아버지가 철도청 선로원으로 근무 중이었기 때문이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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