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식(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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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신형식(申亨植)
본관고령 신씨[1]
생몰1895년 2월 26일[2] ~ 1931년 2월 25일[3]
출생지충청도 청주목 산내이상면 호정리
(현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호정리)[4]
사망지충청북도 청주군
매장지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2. 생애[편집]


신형식은 1895년 2월 26일 충청도 청주목 산내이상면 호정리(현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호정리)에서 아버지 신열우(申說雨)의 2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20년 음력 8월 신흥구·이종만(李鍾萬) 등과 함께 상해임시정부에 대한 지원활동을 펴기로 결의하고 유영창(柳永昌)·한병호(韓秉浩) 등을 동지로 포섭하여 비밀결사 평양결사단(平壤決死團) 청주지부(淸州支部)를 조직하였다. 이후 이들은 모의권총을 소지하고 충북 일대를 중심으로 군자금 모집활동을 펴던 중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는 이일로 인하여 1921년 4월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청주에서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리다 1931년 2월 2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신형식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5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영성군파 25세 식(植) 항렬.[2] 고령 신씨 대동보에는 2월 16일생으로 기재되어 있다.[3] 고령 신씨 대동보에는 1월 8일에 별세했다고 기재되어 있다.[4] 인근의 관정리·귀래리·추정리와 함께 고령 신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신흥구가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