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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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94년 10월 16일
경상남도 합천군 대양면 무곡리
사망
1961년 6월 11일
경상남도 합천군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심맹권은 1894년 10월 16일 경상남도 합천군 대양면 무곡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9일 합천읍 장날에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했던 심재기(沈載祺) 외 16명이 일본 경찰에 체포된 사실에 분개하여 3월 20일 대양면민(大陽面民)들과 함께 재의거하기로 결의하였다.

3월 20일 대양면 마정부락에 많은 시위군중이 모이자, 그는 이 자리에서 결사대를 조직할 것을 건의하여 김영기(金永琪)·손득룡·이용선(李龍善)·추용만(秋鏞滿)·이상우(李相宇)·배상룡(裵祥龍) 등 12명과 결사대를 조직하고, 그들의 선두에 서서 읍내 광장으로 시위행진하였다. 읍내 광장에는 각 면에서 모인 5백여명의 시위군중과 합류하여 읍내를 시위행진하고, 오후 7시경, 경찰서로 가서 그곳을 포위하고, 심재기등의 석방을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경찰서장과 일본 경찰이 나와 해산을 종용하였다. 그러나 그는 심재기 등의 석방을 요구하고, 경찰서장은 먼저 해산하면 석방하겠다고 맞섰다. 이에 격분한 그는 결사대원과 함께 서내로 돌진하였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무차별 사격으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많은 시위군중이 체포되었다.

결국 그도 이때에 체포되었으며, 이해 6월 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합천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61년 6월 1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심맹권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