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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愛加耶
1837~1902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아리카나는 사이고 다카모리가 아마미 군도 오시마 유배 당시의 아내로 삼았던 인물이다. 이름을 읽는 방식에 관해서는 아야나, 아이카나, 아이가나, 아리카나 등 여러 설이 있으나 장남 사이고 키쿠지로의 호적이나 사이고 다카모리의 편지 등에서 아리카나라 적혀있어 가장 유력한 이름은 아리카나이다.

2. 생애[편집]


류큐 왕국의 왕가 쇼 가문을 시조로 하는 카사리 가문으로부터 이어받은, 아마미 오시마 제일의 명가인 타바타 가문 일족으로, 이후 사쓰마번에게 류라는 성씨를 받은 명문가 출신이다. 아명은 오토마가네(於戸間金).

유배를 당한 사이고 다카모리와 1859년 결혼해 다카모리에게 愛라는 글자를 받아 아리카나라는 이름을 받는다.[1] 이후 1861년 장남 사이고 기쿠지로를 낳아 류 가문의 근거지였던 지금의 타츠고초 일대에서 거주한다.

1862년 사쓰마번이 다카모리를 소환하여 이별하게 되지만, 사쓰마번의 국부 시마즈 히사미츠[2]의 분노를 사 이번에는 도쿠노시마로 유배된다. 이때 그 사이에 낳은 장녀 기쿠소와 장남 기쿠지로를 데리고 다카모리를 만나지만, 다카모리가 오키노에라부지마(沖永良部島)라는 더욱 먼 섬으로 유배되며 이별하게 된다. 이후 사이고 다카모리가 유배에서 1864년 사면되어 사쓰마번으로 복귀할때 만나게 된다.

이후 키쿠지로는 1869년 사쓰마로 떠나게 되고, 장녀 키쿠소도 사쓰마 번사 출신 오야마 세노스케와 약혼하게 된다. 메이지유신으로 번들의 법이 철폐되어 아리카나도 사쓰마번 이름이 바뀐 가고시마현에 방문할 수 있게 되지만, 불발되었다. 안타깝게도 아리카나는 다시 사이고 다카모리를 만나지 못하고 세이난 전쟁에서 사이고 다카모리는 할복자결하고 장남 키쿠지로도 중상을 입었으며, 세노스케는 투옥된다. 이후 부상당한 키쿠지로는 한동안 아리카나와 지내다 다시 공직에 복귀했으며, 키쿠소는 세노스케와 혼인해 살다가 가정불화로 별거해 오빠 키쿠지로와 살게 된다. 이후 아리카나는 1902년 폭우가 오는 날 농사일을 하다가 쓰러져 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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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나(加耶)는 아마미오시마의 결혼한 여성에게 붙는 이름이라고 한다.[2] 당시 번주의 아버지로, 비슷한 시기 조선흥선대원군처럼 자신이 실권을 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