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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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안해용(安海容)
본관
순흥 안씨
생몰
1873년 12월 22일 ~ 1953년 6월 24일
출생지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가암리[1]
사망지
대구광역시
위패
국립서울현충원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안해용은 1873년 12월 22일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가암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3년 만주 통화현 강산두도구로 망명했고, 1917년 유하현 제2구 다화쇠로 이주했다. 1920년 음력 12월, 그는 광복군사령부 참리부장 조병준을 만나 사령부에 입대했으며, 뒤이어 경상남북도 특파원으로 임명받고 국내로 진입해 장정 모집에 노력했다. 1921년 음력 7월, 그는 이덕생(李德生)·이수건(李壽健) 등 2명을 만주로 보냈으며, 안동읍내 기독교교회당에서 장로 김모(金某)를 설득해 독립군 모집을 추진했다. 또한 1922년 음력 10월 6일에는 상주읍에 있는 교회당에서 목사 김동필(金東弼)에게 독립군 모집권유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1922년 12월 4일 경찰에 체포된 그는 압송 도중 성주읍내 및 왜관도선장 등지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후 1923년 1월 2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 후 대구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3년 6월 2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안해용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8년에 그를 기리는 위패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세웠다.


[1] 순흥 안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안중달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