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 본파이어 붕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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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애기 본 파이어 붕괴.jpg

1. 개요
2. 애기 본파이어
3. 사고 당시
4. 사고 이후



1. 개요[편집]


1999 Aggie Bonfire collapse

1999년 11월 18일 텍사스주의 텍사스 A&M 대학교에서 애기 본파이어 행사를 하던 도중 일어난 붕괴사고.


2. 애기 본파이어[편집]


파일:external/mediad.publicbroadcasting.net/353202732_0ddefdf146_b.jpg
애기 본파이어는 매년 11월 26일 열리는 미식축구 경기 전 2일 동안 열리는 축제 때 하는 행사 중 하나로, 거대한 통나무 여러개를 세워 만든 대형 모닥불 앞에서 전교생이 승리의 열의를 다지는 행사였다. 1907년 11월 18일, 텍사스 A&M 대학교 풋볼 팀의 승리를 기념하면서 쓰레기더미를 태우려고 모닥불을 피웠던 것에서 시작됐는데, 처음엔 단순히 쓰레기더미를 태우는 행사에서 점차 나아가 나무를 쌓아 태우는 행사가 되었고, 나중에는 아예 나무를 건물 높이만큼 쌓은 뒤 태우는 대형 행사로 자리잡았다. 1912년엔 기숙사를 짓는데 쓸 목재들이 본 파이어에 사용되는 실수가 있었고, 1935년엔 학생들이 인근 농장의 건물 하나를 통째로 분해해 본파이어로 써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러한 일이 이어지자 이 행사를 학교측에서 직접 관리하기로 했다. 당시 텍사스 A&M 대학교 간행물에 대문자로 기록될 만큼 텍사스 A&M 대학교의 자랑거리이자 볼 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태울 나무를 구하기 위해 수많은 나무들이 벌목되어야 했고, 학생들이 나무를 세우는 공사에 동원되는 점 때문에 논란이 종종 불거지기도 했다.
1994년엔 본파이어가 스스로 무게를 못 이기고 한쪽으로 기울기 까지했다. 그럼에도 1998년 까진 사망자가 2명 밖에 없었다. 그 마저도 무너지는 사고로 사망한게 아니었고, 나무를 옮기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례였다.

단순히 쌓기만 하면 멋도 없는데다 무너질 가능성이 있기에, 대학교 내 건축학 교수가 나무 쌓는 방식을 연구한 뒤 설계도까지 만들어가며 짓는 방식을 고안해냈다. 우선 메인 기둥 역할을 할 통나무를 꽂아두고, 통나무 주변에 구멍들을 원 형태로 파놓는다. 그리고 그 기둥들에 통나무를 꽂아두고, 통나무들 사이에 다시 통나무를 세워 울타리 형태로 만든다. 울타리 형태가 다 완성되면 다시 그 울타리 형태 안에 통나무들을 세워 넣어 꽉꽉 채워넣는다. 다 채워 넣으면 통나무들을 와이어로 한번 묶으면서 안쪽으로 기울여, 잘린 원뿔모양으로 쌓는다. 그 위에 다른 통나무를 쌓을 때도 비슷한 방식으로 한다. 아까 쌓은 통나무 위에 다른 통나무가 쉽게 올라가도록, 통나무에 홈을 파서 아까 쌓은 통나무 위에 꽂거나, 통나무들 틈 사이로 다른 통나무를 끼워넣는 식으로 쌓는다. 이걸 몇번 반복해서 건물 높이 만큼 쌓으면 완성이었다.


3. 사고 당시[편집]


당시에도 이 행사를 위해 8,000개에 달하는 17.3m 길이의 통나무가 동원됐다. 다만 이번엔 디자인을 좀 더 바꿨다. 원래는 앞서 말했듯이 잘려나간 원뿔 모양으로 쌓았지만, 이번엔 통나무 기울기를 좀 더 줄여, 쉽게 비유하자면 케이크를 쌓듯이, 원기둥에 더 가까운 모양으로 만들기로 했다. 10월 3일부터 통나무를 세우기 시작했고, 세우는데 수십명에 달하는 대학생이 동원됐다. 10월 30일에는 모닥불 가운데 세울 두 개의 큰 기둥이 도착했고, 다음 달 6일, 3m의 구덩이를 판 뒤 16.74m길이의 기둥 두개를 꽂아서 세웠다. 모닥불 높이는 점점 높아져 학생들 만으론 감당하기가 힘들 정도가 됐고, 크레인까지 동원해야 했다. 사고 직전에 통나무 는 건물 5~6층 정도의 높이까지 올라갔다.

그러던 11월 18일, 대학생들이 밤새가며 통나무를 세우고 있을 때 였다. 크레인으로 통나무를 들어올리던 도중 오전 2시 42분 경, 통나무들이 갑자기 무너졌다. 바뀐 디자인은 통나무를 높이 쌓기엔 힘든 디자인이었다. 거기다 통나무들 사이에 끼워넣은 통나무가 점차 내려가면서 다른 통나무를 밀어버리자 와이어가 버티지 못하고 터지는 바람에 통나무들이 버티지 못했다. 수십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깔렸고, 신고를 받고 911이 달려왔다. 경찰과 주 구조대원, 텍사스 A&M 대학교의 의대생들까지 동원된 구조작업은 24시간 동안 계속됐다.

사고로 12명이 사망했고, 27명이 중상을 입었다. 11명은 현장에서, 1명은 구조 후 치료를 받다 다음 날 사망했다. 부상자 중 한명은 사고로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사고 후 대학교에선 16,000명이 모여 추모식을 열었다. 그리고 며칠 뒤 40,000먕이 모여 촛불과 함께, 희생자 12명을 기리는 대포를 12번 발사하는 추모식을 치렀다. 사고는 텍사스 A&M 대학교의 흑역사로 남았다.


4. 사고 이후[편집]


곳곳에서 애기 본 파이어 행사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다. 비판을 못이기고 애기 본 파이어 행사는 이후 한동안 중단됐다. 그러다 2002년부터 'Student Bonfire' 라는 이름으로 부활해 계속해서 열리고 있다.

한때 애기 본 파이어 행사가 열렸던 곳에는 현재 추모공원이 세워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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