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윈 산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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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의 축구감독


파일:에르윈산체스 감독.jpg

이름
에르윈 산체스
Erwin Sánchez
본명
에르윈 산체스 프레킹
Erwin Sánchez Freking
출생
1969년 10월 19일 (54세)
볼리비아 산타크루스주 산타크루스
국적
[[볼리비아|

볼리비아
display: none; display: 볼리비아"
행정구
]]

신체
174cm
직업
축구선수(공격형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선수
타우이치 아카데미 (1981~1986 / 유스)
클루브 데스트로이에스(1987~1988)
클루브 볼리바르(1988~1990)
SL 벤피카 (1990~1992)
GD 이스토릴 프라이아 (1991~1992 / 임대)
보아비스타 FC (1992~1997)
SL 벤피카 (1997~1999)
보아비스타 FC (1998~1999 / 임대)
보아비스타 FC (2000~2004)
오리엔테 페트롤레로 (2004~2005)
감독
보아비스타 FC(2003~2004 / 선수 겸 감독)
볼리비아 대표팀(2006~2009)
오리엔테 페트롤레로(2012~2013)
CSCD 블루밍 (2015)
보아비스타 FC (2015~2016)
CSCD 블루밍 (2018~2020)
오리엔테 페트롤레로 (2020~2023)
국가대표
57경기 15골 (볼리비아 / 1989~2005)

1. 개요
2. 선수 경력
2.1. 볼리비아 리그 시절
2.2. 포르투갈 리그 시절
2.3. 볼리비아 리그 복귀와 은퇴
3. 국가대표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감독 경력
6. 여담



1. 개요[편집]


볼리비아의 남자 축구 감독. 현역 시절 볼리비아 축구계가 낳은 최고 스타로 불렸고, 현재는 자국 리그에서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다.

보아비스타 FC의 레전드 중 한 명이다.


2. 선수 경력[편집]



2.1. 볼리비아 리그 시절[편집]


고향팀 클루브 데스트로이에스에서 프로로 데뷔해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두 시즌 동안 67경기 23골이라는 활약을 했다. 이후 자국 최고 명문 클루브 볼리바르에 입단해 1989시즌 13골을 넣으며 활약했고, 곧바로 유럽 클럽들의 관심을 받게 된다. 이는 볼리비아 축구계 전체의 관심사였는데, 이전까지 유럽 리그에 진출한 볼리비아 축구선수는 전무했기 때문이다.


2.2. 포르투갈 리그 시절[편집]


1990년 포르투갈의 명문팀 SL 벤피카가 그를 영입하며 유럽 리그에서 활약하는 최초의 볼리비아인 축구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첫 시즌 15경기 1골로 부진했고, 그는 다음 시즌 중소 클럽인 이스토릴 프라이아에 임대되었다. 프라이아에서 산체스는 28경기 8골로 팀의 핵심 선수급 활약을 하며 적응기를 마쳤고, 이에 벤피카는 1군팀에 어차피 자리가 없으니 그를 이적시장에 내놓는 선택을 하기로 한다.
파일:에르윈산체스 보아비스타.jpg
프라이아에서의 활약상 덕분에 그는 보아비스타 FC로 수월하게 이적할 수 있었고, 이 곳에서 에이스로 등극한다. 1992-93 시즌 14경기 무득점으로 부진했으나 1993-94 시즌부터 대폭발하며 4시즌간 25골을 집어넣으며 팀을 유럽대회 단골팀으로 성장시키는데 한 몫 한다. 리그에서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자리잡은 그를 벤피카는 다시 영입해 1997-98 시즌 주전으로 활용했고, 지난 벤피카 시절과 다르게 기회를 받은 산체스는 26경기 6골로 좋은 활약을 선보인다.

그러나 벤피카와 1년만에 다시 결별한 그는 임대 후 완전이적으로 다시 보아비스타에 영입되었다. 특히 2000-01 시즌, 33경기 8골로 커리어 하이 기록을 작성했고, 보아비스타 FC의 충격적인 리그 우승을 이끌게 된다. 이후 그는 보아비스타에서 2004년까지 활약하다가 심각한 무릎 부상으로 인해 결별했다.


2.3. 볼리비아 리그 복귀와 은퇴[편집]


오리엔테 페트롤레로 팀에 입단해 볼리비아 리그로 돌아왔다. 무릎이 정상이 아니었고 이미 30대 중반의 노장이 되었음에도 그는 볼리비아 리그에선 여전한 탑 클래스 공미였고, 2004 시즌 18경기 6골, 은퇴 시즌인 2005 시즌 20경기 4골로 활약했다. 그러나 마지막 은퇴경기에서 주심과 싸우는 바람에 18개월 출전정지를 먹고 은퇴하는 불같은 성질을 보이기도 했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파일:에르윈산체스.jpg
1985년 초대 FIFA U-17 월드컵에 볼리비아 대표로 출전한 경험이 있다. 이후 유소년 팀을 차근차근 월반해 1989년 A대표팀에 데뷔했다.

볼리비아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역예선을 뚫고 올라간 월드컵인 1994 FIFA 월드컵 미국 대회에 출전했었다. 당시 같은 조에서 맞붙게 된 대한민국에서도 그를 경계대상 1호로 지목할 만큼 독보적인 스타플레이어였고, 비록 16강은 좌절되었지만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스페인에게 추격골을 넣으며 볼리비아 역사상 첫 월드컵 본선 득점자로 이름을 남겼다.

이후에도 월드컵 멤버들과 함께 볼리비아 대표팀의 짧은 전성기를 이끌었다. 1997년 자국 버프를 받긴 했으나 코파 아메리카에서 6경기에 출전해 3골을 넣으며 조국의 준우승을 이끌었고, 이 대회 결과로 자격을 얻고 출전한 1999년 컨페드컵 대회에도 팀을 이끌고 출전했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남미 스타일의 기술력을 갖추었으면서도 중거리 슛이라는 무기가 있던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킥력이 좋기 때문에 거의 공격수 수준의 득점력을 지녔으며 이 때문에 자국에선 프랑스의 전설 미셸 플라티니에 비교되던 선수였다.


5. 감독 경력[편집]


보아비스타 FC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된 2003-04 시즌 큰 부상을 당하면서 사실상 플레잉 코치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다 하이메 산체스 당시 감독이 경질되어 선수 겸 감독을 맡으며 처음 감독직을 수행했다. 하지만 그 역시 시즌을 채우지 못하고 중도 경질되고 만다.

오리엔테 페트롤레로에서 은퇴하고 1년이 지나 곧바로 볼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에 올랐다. 초보 감독이었지만 그가 볼리비아 축구계에서 가지는 이름값으로 선수들을 지휘할 수 있을것이란 판단에 파격적으로 선임된 것이다. 그러나 초보감독에게 국가대표팀은 너무 큰 무대였고,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지역예선에서 극악의 원정 경기력을 노출해 결국 중도 해임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 그 유명한 라파스에서 아르헨티나를 6-1로 잡은 좋은 기억도 있다.

이후에는 주로 자국 리그의 감독직을 두루 맡았다. 2015-16 시즌에는 현역 시절 대활약했던 보아비스타 FC의 감독에 재선임되었으나 시즌 도중 경질되었기도 했다. 현재는 자신이 은퇴했던 오리엔테 페트롤레로 팀의 감독으로 재직중이다.


6. 여담[편집]


  • 아들 또한 볼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이름도 똑같이 에르윈 산체스, 포지션도 공격형 미드필더다. 그러나 아들 에르윈 산체스는 볼리비아 대표팀에서 에이스급 선수 까지는 아니다.
  • 2001년 포르투갈에서 권위높은 스포츠 전문지인 아 볼라 (A Bola)에서 시상하는 A Bola de Ouro를 수상했다. 2000-01 시즌 보아비스타 우승의 공로가 크게 인정된 것인데, 이 수상은 상이 제정된 이후 최초로 포르투갈, 브라질인이 아닌 국적의 선수가 수상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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