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스 버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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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 버크스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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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llisBurks.jpg

엘리스 버크스
Ellis Burks

본명
엘리스 레나 버크스
Ellis Rena Burks
출생
1964년 9월 11일 (59세)
미시시피 주 빅스버그(Vicksburg)
국적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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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학력
에버먼 고등학교 – 레인저 칼리지
신체
188cm / 79kg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3년 1월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번, BOS)
소속팀
보스턴 레드삭스 (1987~1992)
시카고 화이트삭스 (1993)
콜로라도 로키스 (1994~1998)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1998~2000)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2001~2003)
보스턴 레드삭스 (2004)
기록
30-30 클럽 (1996)
가족
아들 크리스토퍼 벅스[1], 사촌 루스벨트 브라운[2][3]

1. 개요
2. 선수 경력
3. 은퇴
3.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에 활약했던 호타준족의 외야수이다.


2. 선수 경력[편집]


1983년 1월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에 지명되었다.[4] 1987년 4월 30일 메이저 데뷔 이후, 133경기에서 .272 20홈런 27도루로 잠재력을 마음껏 뽐내었다. 특히 20-20을 기록한 레드삭스 역대 3번째 선수이기도 하였다. 1990년 시즌에는 152경기에서 .296 21홈런 89타점으로 커리어 첫 올스타 선발, 골드글러브 및 실버슬러거 수상에 AL MVP 투표에서는 13위에 올랐다. 또한 이 시즌 한 이닝 2개 홈런을 친 적이 있는데, 보스턴 타자 중에서는 1928년 빌 리건(Bill Regan) 이후 처음 나온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잦은 부상은 그의 커리어의 치명적인 결점이었다. 선수 경력을 통틀어서 150경기 이상에 출장했던 적이 단 2번에 불과할 정도였다. 결국 1991년 130경기, 1992년 66경기 출전으로 부진했고, FA 자격을 취득하여 화이트삭스로 이적했다. 이적 첫해 146경기에 출전하여 오랜만에 부상없는 시즌을 보냈고 .275 17홈런 74타점으로 나름 준수한 활약 후 콜로라도와 5년 계약을 맺고 다시 이적하였다.

1994년에는 부상으로 42경기 출장에 그쳤지만 겨우 165타석에서 .322 13홈런으로 짧고 굵은 활약을 보였다. 1995년 역시 부상으로 103경기에 출장했고 성적도 .266 14홈런 49타점으로 전년도에 비해 크게 부진했다. 하지만 대망의 1996년 커리어 최다인 156경기에 출장하더니 로키스 역사상 두 번째로 30-30을 기록했고(최초는 단테 비솃), 득점(142), 장타율(.639), 루타수(392)는 NL 1위, 타율(.344)[5], 안타(211), 2루타(45)는 리그 2위, 홈런(40)과 타점(128)은 리그 5위였으며, MVP 3위에 오랜만에 실버슬러거와 올스타까지 선발되는 등 커리어하이이자 실로 호타준족으로서의 완벽한 시즌을 만들었다. 이후 다시는 30-30은커녕 20-20도 달성하지 못하지만, 나름 준수한 활약을 보였고 계약 마지막 시즌인 1998년, 트래이드 마감일인 7월 31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트래이드되었다.

여전히 잔부상에 시달렸지만 꾸준히 2할 후반대 타율에 20~30개 홈런을 기록하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였고 2001년 시즌 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3년간 1,950만달러로 FA계약을 맺었. 하지만 계속된 무릎 부상으로 지명타자로 출장하는 빈도가 점점 늘어갔다. 2002년 클리블랜드 소속으로 .301 31홈런 92타점으로 1996년 이후 오랜만에 규정타석 3할을, 1999년 이후 처음으로 30홈런을 기록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이며 첫 에드가 마르티네즈 상을 수상하였다.[6]

하지만 이는 버크스의 마지막 불꽃이었고 2003년 55경기 출장에 그치며 시즌 후 방출되었다. 이후 친정팀 보스턴으로 이적하게 되었으나 4월 말 무릎 수술을 받으며 무려 5개월 가까이를 결장했다. 결국 11경기에만 출장했고 포스트시즌 명단에서도 제외되며 월드시리즈 우승은 그라운드 밖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10월 2일 볼티모어와의 더블헤더 1차전에 5번 DH로 선발 출장하여 통산 2000번째 경기 출장과 커리어 마지막 안타 및 득점을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


3. 은퇴[편집]


2004년 시즌 종료 후인 11월 2일 방출되었고 바로 은퇴하였다. 이듬 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단장 특별 보좌역을 맡기도 했다.

통산기록 18시즌 2000경기 .291/.363/.510 2107안타 352홈런 181도루(84도루자) 1206타점 1253득점 bWAR49.8

1996년 30-30시즌의 임팩트가 강렬했지만,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기에는 누적 기록이 부족한 편이었다. 2010년부터 명예의 전당 입성 후보로 자격을 얻었으나, 미국야구기자협회(BBWAA) 투표에서 단 2표(득표율 0.4%)에 그치며 바로 광탈했다.[7]

2012년 보스턴 레드삭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8]


3.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편집]



블랙잉크
그레이잉크
HOF 모니터
HOF 스탠다드
엘리스 버크스
6
45
52
42
HOF 입성자 평균
27
144
100
50

  • JAWS - Center Field (34th)

career WAR
7yr-peak WAR
JAWS
엘리스 버크스
49.8
32.0
40.9
중견수 HOF 입성자 평균
71.6
44.7
58.1


4. 관련 문서[편집]



[1] 1994년 생 우투좌타 외야수이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산하 마이너에서 두 시즌을 뛰었고, 2018년 이후 기록이 없다.[2] 1975년 생 우투좌타 외야수이다. 메이저 통산 228경기 0.251 111안타 11홈런 69타점 기록.[3] 2003년과 2004년에는 NPB 오릭스 블루웨이브에서 뛰기도 했다.[4] 1986년을 마지막으로 폐지된 신인 드래프트이다. 학사제도는 주별로 통일되어 있지 않아, 3학기제, 4학기제 등 다양했다. 따라서 6월에 있는 정규 신인 드래프트에 참석을 못할 수 있는 커뮤니티 칼리지, JUCO 선수를 대상으로 실시되었다.[5] 당시 타격왕은 토니 그윈에게 돌아갔는데, 그윈은 규정타석에 4개가 모자랐지만 모두 아웃으로 처리해도 .3486이 되어 일명 토니그윈 룰에 따라 타격왕이 되었다.[6] 1973년 제정된 시즌 최고의 지명타자에게 수여되는 상, 2004년 은퇴한 에드가 마르티네즈를 기리고자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7] 여담으로 이 해 투표에서는 안드레 도슨만이 9수 끝에 77.9%의 득표율로 헌액되었다.[8] 참고로 커트 실링도 같은 해 헌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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