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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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오세학(吳世鶴)
본관
해주 오씨[1]
생몰
1899년 11월 13일 ~ ?
출생지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덕치리[2]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오세학은 1899년 11월 13일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덕치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1일 밤 안성군 원곡면·양성면 일대에서 동리사람들과 함께 산 위로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치고, 9시 30분경 양성경찰주재소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후 1천여 명의 시위대가 몰려오자 이들과 합세하여 선두에 서서 투석하고 사무실로 들어가 집기와 서류를 쌓아놓고 짚에다 불을 붙여 방화하였다. 이어서 양성 우편소로 가서 집기와 서류를 쌓아놓고 불태워버렸다.

이 일로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21년 2월 24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건조물 소훼·소요 혐의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오세학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27세 세(世) 항렬.[2] 해주 오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오세경·오복영·오용근·오윤선·오정근·오창문·오창선·오홍근이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