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 산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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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오소 산사태.jpg

1. 개요
2. 사고 당시
3. 사고 이후



1. 개요[편집]


Oso Landslide

2014년 3월 22일 미국 워싱턴 주 오소에서 일어난 대규모 산사태.


2. 사고 당시[편집]


오소는 워싱턴 주에 위치한 2.6km² 크기의 작은 산골 마을로, 2010면 인구조사 디준 단 180명 만 살고 있었던 굉장히 소규모 마을이었다. 마을 인근엔 스틸라구아미시 강(Stillaguamish River)이 흘렀고, 마을 뒷편엔 스틸헤드 헤이븐 마을이 있었다. 원래 이름은 알렌(Allen)이었으나, 근처 마을 이름 알린(Allyn)과 헷갈린다는 이유로 바꾸었다.

당시 7주 가까이 내린 강우량 18cm의 폭우로 인해 오소 뒷쪽에 있던 산의 지하수층이 포화상태가 되면서 지반이 약해졌다. 자갈과 흙, 물로 뒤섞인 지반은 자기 무게를 견디지 못해 무너져 산사태가 일어나 마을을 그대로 덮쳤다. 가옥 48채가 그대로 흙더미 속에 파묻혔다. 당시 쏟아진 흙과 바윗더미의 양은 무려 최대 535.1m³에 달했다. 세계 최대 규모 공장인 보잉 에버렛 공장의 절반을 채우는 양이다. 한 곳은 10m 넘는 흙더미에 파묻히기까지 했다.

사고 소식은 처음엔 최소 3명 사망, 18명 실종이라 보도됐으나, 이내 176명 실종으로 바뀌었다. 실종자 중엔 인근 지역에서 온 건설 노동자와, 마을 인근을 지나던 운전자도 있었다. 마을 인구 수를 생각하면 사실상 마을 인구 전원이 실종됐다. 산사태로 인해 스틸라구아미시 강이 막혀서 물이 넘쳐 흘렀고, 인근 워싱턴 주 530번 도로는 흙더미로 막혀 못 쓰게 됐다. 구조대원들이 급히 출동했고, 자원봉사자를 포함한 600여명이 중장비까지 동원해 구조를 진행했으나 지반이 많이 불안정해 어려움을 겪었다. 인근을 지나던 청년 코디 웨슨은 직접 들어가 아기를 구조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고 작업은 구조작업에서 시신 수습으로 바뀌었다. 시신 수습은 4월이 되어서야 끝났다.

이 사고로 숨진 사망자는 43명에 달했다. 오소 인구의 4분의 1에 가까운 인원이 사망했다.


3. 사고 이후[편집]


사고가 일어난 후, 마을에 쏟아진 흙더미를 치우는데 2년이나 흘렀다.

희생자와 유가족을 대리한 변호사는 당시 워싱턴 주 정부가 사고 원인을 호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기를 쳤다 주장했다. 정부 당국이 300만 달러에 달하는 예산을 써서 산사태 전문가 팀을 구성했으나, 팀원끼리 주고 받은 이메일 중 정부에 줄리한 견해만 조직적으로 파괴해 진상을 계속 숨겼다며 킹 카운티 법원에 재정신청서를 내며 지적했다.

유가족과 희생자 및 주민들은 주 정부와 스오호미시 카운티 정부등을 상대로 피해보상 소송을 제기했다. 또한 인근 목재 회사 그랜디 레이크 포레스트 어소시에이트(Grandy Lake Forest Associate)에도 소송을 걸었다. 오소 주민들은 워싱턴 주에서 5천만 달러, 목재회사로 부터 1천만 달러를 받고 합의했다.

사고 현장은 추모공원으로 꾸며지고 있다. 희생자를 기리는 43그루의 나무가 심어지고, 사고 전 마을의 번지 수를 표시하는 우체통 조형물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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