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영(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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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구(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오재영
2. 온성군 출신 독립운동가, 오재영



1. 동구(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오재영[편집]


성명
오재영(吳哉泳)
생몰
1897년 5월 24일 ~ 1948년 8월 30일
출생지
경상남도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
사망지
경상남도 부산광역시
매장지
대구광역시 망우공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오재영은 1897년 5월 24일 경상남도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0년 9월 의열단 단원인 박재혁이 상하이에서 장기(長崎)를 거쳐 부산에 입항하여 자신의 집에서 하루를 묵었을 때 박재혁이 가지고 온 폭탄 한개를 맡아두었다. 이후 박재혁이 9월 14일 거사를 결행했을 때 폭탄을 내줘 그가 부산경찰서장에게 중상을 입히는 데 도움을 줬다.

이 일로 체포된 오재영은 1921년 8월 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부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8년 8월 3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오재영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대구 망우공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그의 유해를 안장했다.




2. 온성군 출신 독립운동가, 오재영[편집]


파일:오재영.jpg
성명
오재영(吳在英)

원서(元瑞)
생몰
1860년 ~ ?
출생지
함경북도 온성군 영와면 독구억리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포장

오재영은 1860년생이며 함경북도 온성군 영와면 독구억리 출신이다. 그는 일찍이 중국 지린성 혼춘현 경산향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민족학교를 설립하고 교원으로 활동했다. 이로 인해 일본 관헌에 ‘배일선인(排日鮮人)’으로 지목되어 감시를 받았다. 1916년 중국 훈춘현 헤이딩즈에서 순치동제회(脣齒同濟會) 회원으로 활동했다. 1920년 10월 간도 참변 당시에는 헤이딩즈에서 민족학교를 경영하다 일본군에 체포되어 몇달간 고초를 겪었다. 1922년 훈춘현에서 대한신민단(大韓新民團) 훈춘지단 통신부장(通信部長)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해 갔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오재영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