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바야시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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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네임
岡林 裕二
본명
岡林 裕二
생년월일
1982년 10월 31일
출신지
일본 고치현 난코쿠시
신장
175cm
체중
120kg
별명
ピッサリ[1]
ストロングBJの申し子[2]
性豪[3]
유형
파워하우스
주요 커리어
BJW 월드 스트롱 헤비웨이트 챔피언 4회
BJW 태그팀 챔피언 6회
요코하마 쇼핑 스트리트 6인 태그팀 챔피언 2회
WRESTLE-1 태그팀 챔피언 1회
KO-D 태그팀 챔피언 2회
AJPW 월드 태그팀 챔피언 3회
올 아시아 태그팀 챔피언 2회
2AW 오프웨이트 챔피언 1회
피니쉬 무브
골렘 스플래시
파워밤
오클라호마 스탬피드
아르젠틴 벡브레이커
래리어트
테마곡
Heading for Tomorrow
Angry Golem
Alien(Vorchaos)

1. 개요
2. 커리어
3. 기타
4.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일본프로레슬러.


2. 커리어[편집]


대일본 프로레슬링(BJW) 소속 레슬러.

프로레슬링과의 만남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고, 방과 후 동네 광장에서 숨바꼭질을 하다 숨어 있던 커다란 소각로 안에서 주간 프로레슬링이 나왔는데, 프로레슬링에 관심을 가진 오카바야시 유지는 현지에 민영방송이 3개밖에 없어 TV로 프로레슬링 중계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비디오로 아메리칸 프로레슬링을 보게됐다. 그러나 학교생활로 인해 잠시 프로레슬링에 대한 관심이 식어가다가 자위대학교에서 활동할 무렵에 당시 TV 사이타마에서 방송되고 있던 대일본 프로레슬링 경기을 보고, 세키모토 다이스케에게 큰 영감을 받으면서 이무렵 프로레슬링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는데, 그 배경에는 스기우라 타카시타니구치 슈헤이와 같은 자위대 출신의 프로레슬러가 있었던 것이나 체육학교 때부터 자위대 레슬링 선수에게 '프로레슬링선수가 되어라'는 말을 들은 것, 그리고 세키모토가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체격임에도 불구하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있었다.[4]

2008년 봄에 대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문하게 되고, 6월에 이노우에 카츠마사와의 경기를 통해 데뷔하지만 패한다. 데뷔 초부터 심상치 않은 괴력과 프로레슬링 센스로 단숨에 대두하며, 데뷔 직후의 신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몸매를 자랑했지만 지고다녔고, 이시카와 신야와 팀을 이뤄 이노우에 카츠마사 & 오하시 아츠시와의 경기에서 첫 승을 거둔다.

대일븐 프로레슬링에서 활동하며 때때로 다른단체에도 출연하지만 싱글에선 이기지는 못하고 다녔고, 소프티바 러브 프로 08 윈터에서 벌인 경기에서 이마이 나미다와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싱글 연패에서 탈출한다.

계속해서 대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활동하며 조금씩 신인티에서 벗어나 DDT 프로레슬링이나 ZERO1같은 곳에서도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고, 단체의 특징에 해당되는 하드코어 매치까지 가지며 성장하고 있었다. 데뷔 1년만에 선배이자 스승인 세키모토 다이스케와 같이 타케다 마사시 & 코다카 이사미를 꺾고 BJW 태그팀 챔피언에 등극하며 첫 커리어를 만든다.

오카바야시 유지는 세키모토 다이스케와도 팀으로 다니며 환상적인 태그팀 듀오를 이루며 챔피언 경력을 만들고, 조금씩 인기가 늘면서 독일의 유명단체인 wXw에도 잠시 출연하게 되면서 서양의 유명한 레슬러들과도 경기를 가지는 기회를 얻었다.

2011년에는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도 출연하게 되고, 여기서도 세키모토 다이스케와 챔피언 경력을 만든다. 프로레슬링 NOAH, 드래곤 게이트, WRESTLE-1에도 출연 기회를 얻다가 각 단체별로 대회에 출전해 우승경력까지 만들며 꾸준히 커리어를 만들며 베테랑 위치까지 서게된다.


3. 기타[편집]



  • 어릴 때부터 과도할 정도로 활발했으며, 2살때 걷기 시작할 무렵에는 10kg짜리 귤 상자를 들어 올린적이 있다.

  • 스스로 인생에서 3번정도 죽을 뻔했다하며, 첫번째는 친정집 생선가게의 일곱 바퀴에서 나온 연기로 일산화탄소에 중독됐고, 두번째는 카레라이스를 먹고 감자를 목에 메게 했다[5].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아버지가 감독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장난꾸러기 스모를 시작했고, 사촌 중 미야기노방의 스모선수도 있던 오카바야시 가문은 뿌리부터 스모를 좋아했다. 이길 수 있게 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스모가 재미있어 현 대회에서도 3위에 들 정도로 강해졌지만 상투를 묶는 것이 멋있다고 해서 각계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 중학교 때 유도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2학년 때까지만 해도 프로레슬링선수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가졌으나 행실이 나빠지면서 점차 프로레슬링에 대한 열이 식어갔다고 했고, 그때 관심있는 것은 오로지 패션이나 음악이었다고 했다. 친구들과 놀면서 공부를 전혀 하지 않는 바람에 고교 진학마저 위태로워 인근 농고에 응시해도 불합격당하고, 마지막 부탁으로 치른 사립고 시험은 거의 문제를 알 수 없었지만 최종문제 3-2[6]를 통과한 것이 주효했는지 간신히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 고등학교 때는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급을 경험했고, 그 후로 담임으로부터 '동아리를 하고 수업중에는 자지 마라.칠판에 쓴 거 다 찍어. 그러면 졸업시켜 주겠다'는 말을 듣고 공부에 어느정도 성실하게 임해 웨이트리프팅부에 들어갔다.동아리에 활동하면서 '그때의 감독이 열혈을 너무 많이 해서 모두에게 미움을 받고 있었습니다만, 저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아서요.몇 번이나 권유를 받고 있어서 들어가게 되어 기뻐해 주더라고요.두 명 있던 형이 졸업하고 자기 혼자가 돼서.선생님이랑 둘이서 여러 가지 배우면서 처음에는 마지못해 했는데 기록이 자꾸 늘어나니까 재밌어져서.졸업하기 위해서라든지 싸움에 강해지기 위해서라든지 그런 이유로 들어갔는데 고2 인터하이가 끝났을 때부터 마음을 가다듬고 정말 열심히 했네요.단지, 공부는 하지 않았습니다만' 이라고 이야기했다.

  • 고교 졸업 전 육상자위대의 권유가 와서 들어가는 과정이 복잡해진 상황에서도 체육학교에 배속되었다. 7년넘게 학교생활을 하며 자위대에서 웨이트리프팅 선수로 활동했으나 올림픽 진출에는 실패했다. 제대하고 부대로 옮기기로 결정했을 때는 아쉬움이 전혀 없었고, 해냈다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부담감에서 해방돼 하루하루가 즐거워졌다고 한다.

  • 자위대 시절 선배로는 아오키 아츠시가 있다[7]


4. 둘러보기[편집]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신인상
하마 료타
(2009)

오카바야시 유지
(2010)


스즈카와 신이치
(2011)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최우수 태그팀 상
머슬 오케스트라
(스트롱맨 & 나카니시 마나부)
(2010)

스트롱 BJ
(세키모토 다이스케 & 오카바야시 유지)
(2011)

GET WILD
(소야 마나부 & 오오모리 타카오)
(2012)
동향전류폭파(同郷電流爆破(どうきょうでんりゅうばくは)태그
(오니타 아츠시 & 나가요 치구사)
(2015)

스트롱 BJ
(세키모토 다이스케 & 오카바야시 유지)
(2016)

폭주대거인(暴走大巨人(ぼうそうだいきょじん) 콤비
(스와마 & 이시카와 슈지)
(2017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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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사리[2] 스트롱 BJ의 제자[3] 성호[4] 고치 메이토쿠 기주쿠 고교 야구부에서 프로레슬링계로 나아간다는 당시의 지역 신문의 기사를 보고 세키모토에 대해 알고 있었다.[5] 잘씹지 않고 먹는 아이였기 때문에 음식을 목구멍에 물리는 일은 5번 이상 있었다고 한다.[6] 놀이문제[7] 아오키 아츠시는 오카바야시 유지와 체육학교에서의 경기는 다르지만 안면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