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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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生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2. 미디어 믹스


1. 개요[편집]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228년에 조진마속 등을 격파하고 제갈량이 이번에는 기산에서 고생했으니 다음에는 분명히 진창으로 올 것이라 여기면서 왕생은 조진의 지시로 학소와 함께 진창을 수비해 다스렸다. 12월에 제갈량이 진창을 공격했지만 대비했으므로 촉군은 진창성을 함락하지 못해서 이기지 못하므로 물러갔다.


2. 미디어 믹스[편집]


소설 삼국지 마행처우역거에서 촉과 위의 싸음으로 동관에서 하후상비관에게 크게 격파당해 군사 10만을 잃고 남전현에서 관구검이 전사하는 등 위군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는데, 병에 시달리고 있던 조진은 이 결과를 보고받아 각혈하는 등 몸 상태가 더욱 안 좋았고 왕생은 다급한 얼굴로 들어와 조진을 부르면서 관구검의 시신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려준다.

전쟁은 전쟁이고 예의는 예의라고 시체를 보낸 것이라면서 비관이 편지를 전한다면서 왕생은 조진에게 건네주는데, 편지의 내용은 이 쯤에서 만족함을 알고 물러나는 것이 어떠냐는 내용이었다. 이는 장안에 머무는 것은 죽는 것으로 위나라를 오래 보존시키고 싶으면 이만 물러나라는 뜻으로 그 편지를 본 조진은 자신의 시대가 끝났음을 느끼고 업으로 사신을 보내 의향을 물어보기 위해 그 동안의 전투를 중지하도록 지시한다.

소설 삼국지 서영전에서는 서영의 부하로 유비공손찬의 일족을 다 죽이고 그 부하들도 다 죽이려고 한 것을 공손찬의 부하였던 군명이 와서 호소해서 그 말을 믿지 않다가 사실임을 알게 되며, 병주자사 문빙과 함께 하북에서 각종 공작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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