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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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uzziah.jpg
이름
우찌야공동번역, 가톨릭, 웃시야개신교
아자리야공동번역,아자르야가톨릭, 아사랴개신교
출생
기원전 801년경
예루살렘
사망
기원전 733년경
예루살렘
소속
유다 지파 소속
재위년도
기원전 767년 ~ 기원전 715년
약 52년
국적
남유다 왕국
아버지
아마지야
자녀
요담
이전 국왕
아마지야
다음 국왕
요담

1. 개요
2. 행보
2.1. 종교개혁
2.2. 각종 전쟁에서의 승리
2.3. 나병으로 인한 평생 격리, 죽음
3. 여담



1. 개요[편집]


우찌야는 십육 세에 왕위에 올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이 년간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는 예루살렘 출신으로서 이름을 여골리야[1]

라고 하였다.

역대기 하권 26:3 (공동번역성서)

유다의 제10대 왕(재위 기원전 791년 ~ 기원전 739년). '야훼는 나의 힘이다' 라는 뜻으로, 부친은 아마지야였고, 할아버지는 아달리야의 대학살로부터 살아남아 다윗 왕실을 부흥시킨 요아스였다.


2. 행보[편집]



2.1. 종교개혁[편집]


남유다 왕국에서 종교개혁을 실시한 5명의 왕 중 3번째 왕이었다.[2]
기독교적인 시점으로 볼 때, 이 무렵부터 신의 축복을 듬뿍 받아 유다 왕국은 다시금 강건해진다.[4]


2.2. 각종 전쟁에서의 승리[편집]


블레셋아랍인과도 전쟁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또 암몬인들은 유다 왕국에 양털 조공을 바쳤고, 그의 막강한 명성은 이집트 근방까지 널리 퍼지게 되었다. 요즘으로 치자면 별 볼일 없는 아웃사이더 나라가 신 강대국으로 떠올라 각종 나라들의 주목을 끌게 된 것과 같은 것이다.


2.3. 나병으로 인한 평생 격리, 죽음[편집]


하지만 웃시야는 나라가 강건해지자 곧 교만해졌다. 그래서 제사장의 권한을 폄하하고, 제 맘대로 제사드리려 한 죄로 하느님그에게 평생 죽을 때까지 나병에 걸리게 하였다. 나병은 그 당시 엄청나게 위험한 전염병으로 요즘으로 치자면 코로나바이러스-19에 걸려 사회와의 격리를 가지게 되었다는 뜻. 그렇게 웃시야는 죽어서도 유다 왕들의 무덤에 묻히지 못하고 왕궁 별관에 묘지터를 잡게 되었다.[5]


3. 여담[편집]


웃시야 왕은 1세대 문서 예언자들이 활동하던 시대에 재위했다. 아모스 그리고 호세아가 웃시야의 재위기간에 활동하던 선지자이다. 그가 죽은 이후 선지자 이사야가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우찌야 왕이 죽던 해에 나는 야훼께서 드높은 보좌에 앉아 계시는 것을 보았다. 그의 옷자락은 성소를 덮고 있었다.[6]

이사야서 6:1 (공동번역성서)


아모스를 죽인 장본인이다. 당시 아모스는 웃시야의 아버지 아마샤에게 고문 당하고 있었는데 그 후 아마샤는 아모스를 관자놀이로 죽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동명이인으로 추정되는데 이 경우 이름은 아마샤가 맞는데 남유다 왕 아마샤가 아닌 아모스가 비판한 제사장 아마샤로 여겨진다

유딧기에도 베툴리아 사람 '우찌야'라는 동명이인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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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톨릭 성경에서는 '여콜야'라고 표기한다.[2] 1: 아사 2: 여호사밧 3: 웃시야 4: 히즈키야 5: 요시야[3] 여호람(형제 학살)-아하시야(예후에게 피살)-아달리야(처형)-요아스(피살)-아마샤(피살) 이 기간까지 무려 100년 넘게 걸렸다.[4]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면 웃시야는 능력있는 명군이며 주변국들도 다 고만고만한 나라들이기에 웬만한 명군 1번 나오면 나라가 강건해지고 암군이 나오면 쇠퇴하는 그런 구조였다고 볼 수 있다. 성경이든 역사든 이스라엘이나 그 주변국이나 서로를 완전히 정복할 힘은 없었고 이정도쯤 되는 나라는 기껏해야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같은 일부에 한정된다. 그래도 웃시야 이전의 남유다가 꽤나 혼란스러웠던터라[3] 이를 극복한 웃시야의 능력은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없겠지만.[5] 오만해진 결과를 비싸게 치른 셈이며 세속적인 관점으로만 보면 동시기의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보다 훨씬 비참해진 셈이다.[6] 보통 선지자들은 환상으로 하느님을 만나면서 본격적인 선지자 활동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