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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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예루살렘3.png
1. 개요[편집]
레반트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걸쳐 있는 도시.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세 종교의 성지이다. 유대교와 기독교에서는 최고의 성지로서 대우하는 반면에,[1] 이슬람에서는 메카와 메디나에 이은 3번째 성지로 대우한다. 예로부터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및 북아메리카와 서유럽에서 매우 깊은 관심을 가진 곳들 가운데 하나였고, 오늘날에도 역사학과 고고학의 관점이나 사회학과 종교학의 관점에서 유서 깊은 도시이다.
오늘날의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로서 서예루살렘 지방(이스라엘국의 행정수도)과 팔레스타인의 기본법(Basic Law)에서 규정한 법률상의 수도로서 동예루살렘 지방(실제로는 농촌 마을들의 집합)으로 나눌 수가 있다. 서예루살렘 지방의 이스라엘 민정관청은 도심과 부도심을 포함한 예루살렘 시가지 전체를 다스리는 반면에 동예루살렘 지방의 팔레스타인 민정관청은 농촌과 달동네를 포함한 동쪽 방면의 교외만 다스리고 있다. 외국의 수도권에 굳이 비유하자면,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구도가 아니라 파리와 베르사유의 구도에 가깝다.[2]
2. 지리[편집]
물이 귀한 이스라엘 본토에서 나라의 수도로 삼을 만한 최적의 위치는 예루살렘 지역이다. 고대 시대의 지리를 고려하면, 예루살렘은 오랫동안 식수를 공급하면서 험한 산지에 의지하여 방어전을 펼칠 수가 있는 도시들 가운데 하나다. 소규모의 무력으로 요르단강 계곡을 따라가는 무역로와 지중해 바닷가를 따라가는 무역로를 통제하는[3] 매우 특별한 장점이 있다.
오늘날에는 이스라엘수자원공사(מקורות חברת מים בע"מ)가 바닷물의 담수화를 꾀하면서 골란 고원의 물을 끌어와 전국 대수로(המוביל הארצי)를 통해서 하이파와 나츠라트, 텔아비브와 예루살렘, 베르셰바와 에일라트에 어마어마한 양의 식수를 공급하고 있다.
3. 행정구역[편집]
서예루살렘 지방은 1960년대에 가나안을 제패한 이스라엘 정부가 도심과 부도심을 실효지배하는 행정수도이며, 동예루살렘 지방은 1990년대에 비유대인 지역의 통치권을 인수한 팔레스타인국이[4] 동쪽의 농촌들을 실효지배하는 법률상의 수도이다. 여기서 다루는 서예루살렘과 동예루살렘은 오늘날의 양국간(이스라엘 vs 팔레스타인) 행정구역을 가리키는 낱말이며, 유엔총회에서 거론하는 서예루살렘과 동예루살렘은 옛날의 양국간(이스라엘 vs 요르단) 휴전선이 지나가는 공간이다.
●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관구 : 이스라엘국의 행정수도이며, 예루살렘 관구의 예루살렘 시에 정부청사 단지를 차례로 완공했다.
1948년부터 1977년까지 텔아비브가 이스라엘의 임시수도였다. 6일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 정부는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도시계획에 착수하여 1968년부터 1992년까지 국회의사당과 정부종합청사와 대법원 및 공안부와 경찰청과[5] 문화복지부처들, 이스라엘방송공단과 이스라엘은행을[6] 차례로 이전했다. 1977년에 이르면 예루살렘이 명실상부한 행정수도로 탈바꿈했으니, 국무위원들의 공관들도 예루살렘 시내의 레하비아 동네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가까운 미래의 총력전에 대비하여 방위기관(국방부와 참모본부, 육해공군청과 국군사령부들), 정보기관 본부(모사드, 신 베트, 아만), 경제산업부처들, 국유기업들과 증권거래소는 여전히 텔아비브에 있다.
팔레스타인의 분리독립을 지지하는 비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이 이스라엘국의 행정수도로 탈바꿈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다스리는 팔레스타인국도 예루살렘에 천도하고 싶은데, 이에 맞서 이스라엘국의 중앙정부는 공안부 본부와 경찰청 본청을 예루살렘에 이전하고, 신 베트의 공작원들과 국방부의 육해공군 헌병대 및 공안부의 보통경찰과 교통경찰과 국경경찰을 총동원해 비유대인들의 반체제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 내무부와 예루살렘 시청에서 근무하는 유대인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메트로 예루살렘을 조영하는 도시계획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스라엘 교통부가 33년간 여의도공항처럼 운영한 예루살렘 국제공항은 확장이 불가능해 결국 폐쇄했지만, 예루살렘 관구의 도시철도 기능을 대행하고 있는 이스라엘철도공사(רכבת ישראל בע"מ)의 광역철도를 타거나 시외버스를 타고 벤 구리온 국제공항과 텔아비브에 갈 수가 있으며, 예루살렘 경전철과 시내버스가 통근과 관광에 매우 큰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이스라엘 본토의 예루살렘 시내와 전용 도로망으로 연결되어 있는 마알레 아두밈과 미쇼르 아두밈과 크파르 아두밈은 유대아 사마리아 특구에 속한 유대인 정착촌이다. 이스라엘 중앙통계국의 2022년도 이스라엘 통계초록(Statistical Abstract of Israel 2022)에 따르면, 이스라엘 본토에 속한 예루살렘 관구의 인구는 약 121만 명이다.
●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 현 : 팔레스타인국의 기본법(Basic Law)에서 규정한 법률상의 수도인데, 그냥 농촌 마을들의 집합이다.
요르단 왕국이 동예루살렘 지방에 설치한 예루살렘 현과 예루살렘 시는 1967년의 6일 전쟁 직후에 해체되었고, 곧이어 이스라엘국은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 지구 및 골란 고원과 시나이 반도를 군정 통치 지구(국방부↔헌병대↔비유대인 도시)와 민정 통치 지구(공안부↔경찰서↔유대인 정착촌)로 나누어 다스렸다. 1993년의 오슬로 협정에 따라 비유대인 지역의 통치권을 인수한 팔레스타인국은 요르단 왕국의 지방행정을 복고했지만, 동예루살렘 지방은 예루살렘 현만 복고했으며, 팔레스타인 입법평의회에 우편투표만 가능하다.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예루살렘을 아랍어로 '신성한 곳'이란 의미인 알 쿠드스(Al-Quds=القدس), 정확히는 알-쿠드스 아쉬-샤리프(Al-Quds Ash-Sharif=القدس اششاريف)라고 부른다. 여기서 아쉬-샤리프(Ash-Sharif=اششاريف)는 성전산의 명칭이기도 하다. 라마단 마지막 금요일인 ‘쿠드스의 날’에는 이슬람권의 상당수 지역에서 팔레스타인의 분리독립을 지지하는 행사와 반미 집회가 열린다.
주요 지역으로는 예루살렘 시가지의 동쪽 방향으로 교외에 위치한 아부 디스가 유명한데, 거기에 현지 주민들이 많이 진학하는 알 쿠드스 대학교의 메인 캠퍼스(Main Campus)가 있다. 더 가디언(영국의 일간지)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국가의 수도라고 승인하면서 제프리 쿠슈너(트럼프의 사위)를 통해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곳곳에 있는 이스라엘 정착촌을 인정하면서 아부 디스(Abu Dis=أبو ديس)를 팔레스타인국의 수도로 받아들이라는 협상안을 제시했다고 한다.
4. 구시가지[편집]
중세 시대에 존재한 예루살렘 읍성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옛 시가. 면적은 0.9km2이고, 6일 전쟁 이전에는 요르단령 동예루살렘에 속해 있었다. 1860년까지는 여기가 예루살렘의 전부였다. 지금의 성벽은 16세기 경 오스만 제국의 쉴레이만 1세 시대에 다시 지어졌다. 성의 출입구인 11개의 문 중 7개는 지금도 개방되어 있다. 지금의 예루살렘 읍성은 '무슬림 구역', '기독교인 구역', '유대인 구역', '아르메니아인 구역'으로 4분할되어 있다. 흔히 오해하는 것과 달리 이 구분은 전통적인 것도 아니고 각 인종을 엄격히 분리하는 것도 아니다.[11] 이 구분은 1841년 영국에서 제작한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 지역 지도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당시 각 인종의 불균일한 분포 양상을 이해하기 쉽도록 단순하게 나눈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새 정말로 4개의 구역이 실존하는 것처럼 여겨지게 되었고, 사회문화적으로 어느 정도 유의미한 구분이 되어버린 것이다.
198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되었는데, 어느 나라의 유산인지는 밝히지 않고 그저 도시명과 함께 '요르단이 제안한 유적(Site proposed by Jordan)'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예루살렘의 세계유산 지정은 요르단이 해서 이뤄졌는데 당시 미국 정부는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실효 지배하고 있으므로 요르단에게는 신청 자격이 없다며 반대했지만 통과되었다.
아울러 1982년 이래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중 한 곳이기도 하다. 너무 많은 관광객, 난개발, 도시 관리 정책 미흡 등이 지적되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기독교인 구역, 무슬림 구역, 성전산, 유대인 구역, 아르메니아인 구역이다.
6번 문인 Dung Gate는 말 그대로 "똥 문(門)"을 의미한다. 품위없게 똥이라고 할 수는 없어서 분문(糞門)이라고 돌려 번역하기도 한다.
4.1. 무슬림 구역[편집]
구시가의 북동쪽 사분면에 있는, 가장 넓고 인구가 많은 구역. 특히 예루살렘 인구의 3분의 1이 아랍인이며 아랍인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무슬림 구역이기는 하지만 기독교 관련 종교시설도 꽤 있는데, 성 안나 교회, 채찍질 교회, 시온의 자매 수녀원 등이 대표적인 기독교 관련 종교시설이다. 애초에 팔레스타인에는 5만이 넘는 아랍 기독교도가 거주한다.
4.2. 기독교인 구역[편집]
기독교 구역의 상징인 성묘교회
구시가의 북서쪽 사분면에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뒤 그 시신이 묻혔던 장소로 기독교 성지 중 하나가 된 거룩한 무덤 성당과 골고타 언덕이 이곳에 있다. 그 외에도 라틴 총대주교좌, 정교회 총대주교좌, 세례자 요한 성당 등의 명소가 있다. 종교 행사가 열리는 날에 거룩한 무덤 성당을 직접 방문하면, 그야말로 성지에서 각 기독교 종파의 분열과 갈등을 실감할 수 있다. 기 들릴이 그린 만화 "굿모닝 예루살렘"을 보면 이스라엘에서 이 건물 안에서도 각 기독교 종파들이 뒤엉켜 싸움질하는 게 나와 비꼰다.[12]
4.3. 아르메니아인 구역[편집]
구시가의 남서쪽 사분면에 있고, 면적이 가장 작다. 상당히 유서깊은 구역으로 아르메니아가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공인하고 나서 아르메니아 수도자들이 성지인 예루살렘에 정착해 형성한 디아스포라를 기원으로 한다.
아르메니아인도 기독교 신자이기는 하지만 기독교인과는 별도의 구역으로 구분되고 있다. 이것은 예루살렘 내의 구역들이 확정되던 오스만 제국 시대에 정교회 신자들(룸)과 아르메니아인을 서로 다른 밀레트로 구분했기 때문이다.[13] 또한 예루살렘에 있는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팔레스타인인들인데 반해 여기만 아르메니아인이라서 생긴 민족적인 이질감도 구역 분리에 한몫했다. 그러나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총대주교좌가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중요성 면에서는 뒤지지 않는다. 그 외에 성 야고보 대성당, 다윗 탑과 성채 등의 명소가 있다.
4.4. 유대인 구역[편집]
구시가의 남동쪽 사분면에 있다. 2004년 기준 인구는 2,348명이었다. 통곡의 벽은 유대인의 성지로, 이 벽을 향해 기도한다.
사진의 연두색 선은 6일 전쟁 직전의 국경선이고, 보라색 선은 2003년의 제네바 계획(Geneva Initiative)에서 제안된 국경선이다. 예전에 구시가 전체가 요르단령 동예루살렘 시청의 행정구역에 속했고, 주위의 다른 구역들이 비유대인들의 집중 거주 지역이기 때문에 제네바 계획에서는 구시가에서 여기만 따로 분리해서 옛날의 서예루살렘에 딸린 땅거스러미로 편입을 고려했다. 현재 유대인 구역에서 옛날의 서예루살렘으로 바로 통하는 곳은 시온문(Zion Gate)밖에 없다.
4.5. 성전산[편집]
자세한 내용은 성전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고대 시대에 존재한 예루살렘 도성의 남아 있는 유적. 이슬람의 성지인 알 아크사 모스크, 바위의 돔이 있다.
종교적인 분쟁과 폭동을 우려해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기념 우표. 발행 국가가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이다.
4.6. 모로코인 구역 (소멸)[편집]
현재는 사라진 구역. 12세기 말, 예루살렘을 십자군으로부터 탈환한 살라흐 앗 딘의 장남 알 아프달 알리의 후원으로 마련되었다. 무슬림 구역의 남쪽에, 유대인 구역과 성전산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마그레브(북서 아프리카)와 안달루스(이베리아 반도) 출신의 무슬림들이 거주하였다. 하지만 6일 전쟁 직후에 이스라엘 군부가 통곡의 벽 광장의 터를 닦기 위해서 모로코인 구역을 철거했으며, 이때 많은 이슬람 유적들이 파괴되었다. 대표적으로 아이유브 왕조 대에 지어진 셰이크 이드 사원과 무함마드가 천국 여행을 할 때에 탔던 말 부라크를 매어 두었다는 곳에 세워진 작은 사원, 맘루크 왕조 대에 지어진 파크리야 마드라사 등이 있다. 곧이어 모로코인 공동체는 예루살렘의 무슬림 구역이나 난민 캠프로 흩어졌고, 일부는 모로코 국왕 하산 2세의 초청으로 망명하기도 하였다. 지금도 그들은 없어진 구역의 무크타르(촌장)을 선출한다고 전해진다.
5. 역사[편집]
자세한 내용은 예루살렘/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국제사회의 입장[편집]
영국령 팔레스타인의 위임통치 철폐와 함께 가나안에서 유대인들이 이스라엘국을 건국하기 직전에 유엔 총회가 결의한 유엔 총회 결의안 181호에 의하면 예루살렘은 둘 중 어느 쪽의 영토도 아닌 별개의 구역으로 유엔에서 관리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1948년의 이스라엘 건국전쟁이 발발하여 무의미하게 되었으니,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예루살렘을 동서로 분할하여 다스리는 유엔 총회 결의안 194호로 대체했다. 1967년의 6일 전쟁 직후에 이스라엘국의 중앙정부가 서예루살렘시와 동예루살렘시를 동서통일하여 예루살렘 관구를 창설했으며, 1980년에 이스라엘 국회에서 예루살렘 기본법을 입법하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결의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478호에 따라 예루살렘 관구에 상주하는 대사급 외교공관들의 철수를 요구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나라들은 예루살렘이 이스라엘국의 행정수도로 탈바꿈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스라엘 주재 대사관들은 예루살렘 관구(지금의 행정수도)가 아닌 텔아비브 관구(예전의 임시수도)에 있다.
여기까지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인데... 이제부터는 개별적인 견해들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유엔, 친이스라엘 세력들, 반이스라엘 세력들이 각각 속 편한 아전인수식 해석들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MPOV 방식으로 서술하겠다.
6.1. 유엔[편집]
유엔 총회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예루살렘은 국제법상으로 유엔군이 다스리는 중립지대로서 영유권의 귀속을 유보한 공간이니, 이스라엘국의 영토도 아니고, 팔레스타인국의 영토도 아니다.
6.2. 친이스라엘 국가들의 견해[편집]
이스라엘국의 중앙정부는 역사적 명분을 강조하는 한편으로 정치현실주의 담론에 바탕한 아전인수격 해석을 내세우고 있다.
이스라엘을 열심히 옹호하는 미국도 아랍권의 엄청난 반발[14] 을 우려해 1995년 외교공관 이전을 결정해놓고 안전상의 이유로 지금까지 미뤄왔었다. 그런데 2017년 12월 6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예루살렘이 이스라엘국의 수도라고 인정하면서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의 이전을 추진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 美 이르면 다음 주 공식 인정 이에 대해서는 예루살렘 선언 문서 참조. 2018년 이스라엘 건국 70주년 맞이 겸 5월 14일에 옮겼다.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중남미 일부 소국들도 주이스라엘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겼다.
● 이스라엘 국회는 가나안의 유대인과 베두인 및 드루즈인과 체르케스인을 대표하는 유일합법정통정부를 표방하고 있다.
● 이스라엘 외무부가 역사적 명분을 바탕으로 예루살렘 통치의 정당성을 강조한 공식 입장은 탐독할 만한 가치가 있다.
㉠ 1967년의 6일 전쟁과 역사적인 예루살렘 재통일!
㉡ 1967년에 이룩한 예루살렘 재통일!
● 이스라엘 외무부는 예루살렘과 결부하여 이스라엘 건국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1917년 11월 2일의 벨푸어 선언과 1947년 11월 29일의 유엔 총회 결의안 181호가 오늘날까지 유효하다는 중요한 진실을 강조하고 있다.
㉠ 1917년의 벨푸어 선언 100주년을 기념하여 아랍인들의 반유대주의 100주년을 조명하다!
㉡ 1947년의 유엔 총회 결의안 181호를 통해서 국제사회가 이스라엘국의 건국을 지지하다!
● 그러나 예루살렘 방면에 한정하여 1947년의 결의안은 아무리 노력한들 현실성이 없으니, 그냥 포기하고 21세기의 시점에서 새로운 방안을 논의하자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1948년의 건국전쟁 이래로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예루살렘 시가지를 분할해서 휴전했으며, 그 뒤에도 양측은 오랫동안 열심히 땅을 갈아엎었고, 각각 자국민들의 재정착을 밀어붙이면서 양국의 영역으로 입국을 봉쇄했으니, 드넓은 지역의 지형이 너무 많이 변했고, 1980년대의 후반기에 요르단은 마지못해 영유권을 포기했다. 이러다 보니까 국제법상 예루살렘 시가지는 아무런 명분이 없는 채로(합법도 아니고, 불법도 아닌, 애매한 지위로서) 실효통치중인 상황이니, 예루살렘 지역의 통치에 대하여 영국 위임통치가 요르단 위임통치를 거쳐 이스라엘 위임통치로 바뀐 꼴과 다를 바가 없다. 즉 이스라엘 국토로 합병했다고 판정한들, 최종 지위가 결정되지 않은 것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동독의 수도 동베를린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차라리 오슬로 협정을 바탕으로 2000년대의 시점부터 그 전의 변화를 모두 인정하는 선에서 예루살렘의 미래에 대하여 다시 논의하는 것이 옳지 않느냐는 얘기다.
여기서 미국과 체코와 나우루 및 바누아투와 과테말라와 온두라스를 제외한 나머지 나라들은 '서예루살렘 지방만 인정'하는 식으로 예루살렘을 자국의 수도로 인정받으려는 이스라엘의 욕구도 일정부분 들어주면서, 아직 인정하지 않은 '동예루살렘 지방의 여지'를 남겨둠으로서 중동 지역의 반발도 접수하고 있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남기기 위한 형식적인 인정이다. 그러니까 친이스라엘 우방국들은 서예루살렘 지방(예루살렘 관구)=읍성(구시가지)+시내(신시가지)=이스라엘국의 행정수도라는 현실의 논리를 자연스럽게 반영하면서 아주 편리하게 서로 묵인하는 꼼수를 쓴 것이다.[15] 이스라엘 외무부는 제3세계를 포섭한 외교의 성과라고 자화자찬하지만, 과연 그럴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6.3. 반이스라엘 국가들의 견해[편집]
1980년 8월 20일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채택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제478호 결의안이 존재하고, 이에 따라 각국은 대사관을 예루살렘이 아닌 Tel Aviv, Ramat Gan, Herzliya로 대사관을 이전하였고, 2018년 트럼프 행정부가 예루살렘에 대사관을 이전하기 전까지 예루살렘에 대사관을 설치한 국가는 없었다. 현재 예루살렘에 대사관을 설치한 국가는 미국과 경제적으로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중남미 일부 소국뿐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예루살렘 선언이 나오자, 영국과 프랑스 등 14개 국가들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결정이 국제법과 유엔 안보리 제478호 결의안 위반이고, 국제법에 따라 예루살렘의 동쪽은 팔레스타인 지역이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어서 영국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웨덴 등 EU 5개국은 공동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은 유엔 안보리 제478호 결의안에 부합하지 않고, 예루살렘 선언에 반대하며,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두 국가 모두의 수도여야 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2017년 12월 18일 UN의 안전보장이사회가 유엔 안보리 제478호 결의안 위반을 이유로 트럼프 행정부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겠다는 결정을 무효화하는 결의안을 의결했는데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여 유엔 안보리 소집 자체가 무산되어버렸다. #
대신 유엔 총회는 긴급 회의를 개최하여 2017년 12월 21일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 대한 어떤 지위도, 어떤 결정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표결에 부쳤고, 찬성 128, 반대 9, 기권 35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결의안이 채택되어 통과됐다. 찬성, 반대, 기권한 국가들 목록. 미국, 이스라엘, 과테말라, 온두라스, 마셜제도, 미크로네시아, 나우루, 팔라우, 토고 9개국만이 반대표를 던졌고, 찬성표를 던진 국가에는 영국, 프랑스, 독일, 한국, 일본 등 친미 성향의 서방, 아시아 국가들 및 주요 아랍 국가들뿐만 아니라 러시아, 중국 등 반서방 국가들도 대거 참여했다. 안보리 의결과는 달리
2022년 10월 호주에서 전임 정부에서 행한 서예루살렘 지방의 이스라엘 수도 인정 조치를 전격 철회하여 "분쟁지역인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16] 호주는 이 조치를 발표하며 서예루살렘 지방의 지위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평화적 협상을 통해 풀어야 할 문제이며 호주는 이스라엘과 미래의 팔레스타인이 국제적으로 공인된 경계 안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한다"고 밝히며 정의와 항구적 '두 국가 해법'을 향한 책임 있는 진전을 추구하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다시 동참한다"고 밝혔다. ### 이에 이스라엘은 호주 대사를 초치했다.#
7. 대중문화에서[편집]
황금의 예루살렘 (ירושלים של זהב). 나오미 셰메르가 작사/작곡한 곡으로서 유대인들이 가장 즐겨부르는 국민 가요 중 하나이다. 위 영상의 가사는 원곡에서 일부가 생략된 가사다.
[ 가사 발음/해석 펼치기 · 접기 ]
영화 쉰들러 리스트 후반부에 삽입됨으로써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이 노래는 1967년에 만들어졌는데, 2주 뒤에 6일 전쟁이 발발하여 예루살렘이 요르단에서 이스라엘로 넘어온다.
이 대사는 짧은 대사지만 영화 속에서 예루살렘 시민들을 지키려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다가 결국 예루살렘을 포기하고 십자군과 가톨릭 교도들의 안전한 후퇴를 보장받는 발리앙과, 마침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승자의 자비를 베푸는 살라딘 사이에서 오고 간 명대사. 질문하는 발리앙의 대사도 "예루살렘을 차지하기 위해 이런 전쟁을 할 가치가 있어요?"라는 의미와 "당신에게 예루살렘의 가치가 뭐죠?"라는 두 가지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이에 대한 살라딘의 대답도 "아무것도 없지"였으나 얼마 뒤 "모든 것이기도 하고!"라고 덧붙여 발리앙의 두 가지 질문에 모두 답한다. 즉 종교적 명분 때문에 실리 없는 도시를 놓고 싸웠다는 감독의 입장을 압축하는 문장이다. 다만 인문지리적 가치에서 보면 그낭 오류이다. 가나안 땅의 도시들은 시리아-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연결하는 좁은 길목에 위치해 있는 요충지이기 때문이다."예루살렘이란 게 뭡니까? (What is Jerusalem worth?)"
"아무것도 아니라네. (Nothing.)"
짧게 답하고 자신의 진영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살라딘은 이내 다시 돌아선다.
"모든 것이기도 하지! (Everything!)"
어쌔신 크리드에서 등장하는 주 무대 중 하나다.
월드워Z에서는 난민들의 어그로때문에 좀비들이 장벽을 넘어와서 난장판이 된다.
Fate/Grand Order에서는 신성원탁영역 카멜롯의 무대로 나온다.
신을 죽이는 방법에서는 롱기누스가 팀원들과 함께 예수의 수의조각을 수거하기 위해 등장한다.
중세 배경의 게임 미디블2: 토탈 워에서는 십자군 선포의 주요 목표지점이며 카톨릭 국가들은 대부분 예루살렘 점령이 승리조건이다. 가끔 몽골군이 쳐들어와서 점령하기도 한다.
청동기 시대 말기 배경의 게임 토탈 워: 파라오에서는 우루살림 명칭으로 작은 마을 수준으로 나온다.
8. 사건 사고[편집]
예식장에서 대참사가 일어나는 안타까운 사건도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예루살렘 결혼식장 붕괴사고 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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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대교의 경우 예루살렘에 견줄만한 성지가 없고, 기독교의 경우 크게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로 나누어지는 세부 종파에 따라 예루살렘과 동등한 대우를 하는 성지가 있을 수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예루살렘 이상으로 대우하는 성지는 없다.[2] 현재 팔레스타인국이 다스리는 동예루살렘 지방은 명목상으로는 오스만 제국 시절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예루살렘 구시가지를 포함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이스라엘 내무부가 서예루살렘 지방의 부도심으로 편입하여 예루살렘 구시가지를 관할하고 있으니, 국가체제로서 팔레스타인국의 통치권력이 전무하며, 파타 계열 정치단체들이 거액의 자금을 투자해 예루살렘 시내의 사회문화에 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예루살렘 시내의 비유대인 공동체에 투자하는 파타 계열 정치단체들의 영향력에 대하여 최근에 출판한 책들이 있으니, 모던 지하드(로레타 나폴레오니),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토머스 프리드먼) 봉기(레티시아 비카이으), 아랍 vs 이스라엘(다테야마 료지), 팔레스타인 땅 이스라엘 정착촌(홍미정), 내 집을 차지한 이방인(라자 샤하다), 팔레스타인 현대사와 팔레스타인 비극사(일란 파페), 6일 전쟁(제러미 보엔), 6일 전쟁 50년의 점령(아론 브레그먼) 등을 참고.[3] 고대 시대의 가나안에 대하여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은 사람은 이스라엘 고고학자 요하난 아하로니의 구약성서지리학을 시군구 도서관과 대학교 도서관에 직접 찾아가 빌려 읽을 것.[4] 1978년의 캠프 데이비드 협정과 1993년의 오슬로 협정을 고려하면서 PLO의 민정관청을 개조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영사급 외교가 가능한 2010년대의 스코틀랜드와 비슷했지만, 오늘날의 팔레스타인국은 최근에 유엔총회의 옵저버로 가입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새로운 현실을 반영하는 칭호로서 공사급 외교가 가능한 1920년대의 아일랜드 자유국과 비슷하다.[5] 소방청은 중부 관구의 리숀 레치욘 시에 있고, 교도청은 중부 관구의 람라 시에 있다.[6] ㉠ 국회의사당: 6일 전쟁 이전에는 텔아비브 시내와 서예루살렘 시내의 다양한 건물을 빌려서 국회를 열었다. 1966년에 국회의사당 본관을 완공했지만,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은 서예루살렘의 열악한 도로교통망과 전기통신망 덕택에 불완전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다. 때마침 6일 전쟁은 상전벽해의 기회였으니, 요르단군의 포격으로 파손된 부분들을 수리하면서 대규모로 확장하는 개축 사업을 재빠르게 실행했으며, 텔아비브와 예루살렘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를 착공하여 최단기간에 완공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국회의 예루살렘 시대는 1968년에야 개막했다. ㉡ 중앙정부청사: 1967년까지 서예루살렘 시내의 모든 관청들은 의전 위주의 작은 건물들뿐이었다. 1968년부터 예전의 관청들을 차례로 철거하고 웅장한 관청들을 새로 지었다. ㉢ 대법원: 새로운 청사를 지을 돈이 없는 탓에 오랫동안 남의 부동산을 월세로 빌렸다.[7]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8]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9]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10]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11] 오히려 4개 교파는 각 구역에 복잡하게 섞여서 살고 있다.[12] 그래서 실제로 성묘 교회는 가톨릭과 정교회 등 기독교 종파들이 구역을 나눠서 각자 관리하고 있다.[13] 참고로 오스만 제국 시대의 도시들은 지금은 거의 그 흔적이 남아 있지 않지만 당시의 밀레트들이 거주하던 구역들을 서로 나누어놓은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장 이스탄불만 하더라도 테오도시오스 성곽 이내의 구시가지 남서쪽은 아르메니아 구역, 북서쪽은 정교회 구역, 중부와 동부는 무슬림 구역, 그리고 강 건너 갈라타는 가톨릭 신자들과 정교회 신자들이 거주했다.[14] 사이가 그렇게 나쁜 사우디와 이란조차도 인정할 수 없다며 둘이서 공동대응을 할 정도였다. 이스라엘에 한해선 시아파와 수니파의 오래된 원한관계도 잠시 봉합될 정도이다.[15] 실제로 로잔 조약에 바탕한 그리스-터키 인구 교환, 체코슬로바키아 망명정부의 대통령령에 바탕한 역적 1000만명 추방, 통일독일 연방정부가 새로운 국경선의 동쪽에 있는 오드라강 유역에 대하여 영유권을 포기한 독일관련최종해결조약, 몽골 인민공화국의 분리독립 경험담을 이스라엘 정부가 매우 특별하게 주시하고 있다.[16] 즉 서예루살렘 지방을 수도로 인정받고 싶다면 이스라엘보고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을 종식하라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