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성황후(고려 거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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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황후
元成皇后


캐릭터
지위
고려 부인(후궁)[1] (19회~ )
시호
원성왕후
가족
현종 (배우자)
김은부 (아버지), 김은부의 부인 (어머니)
원혜황후 (첫째 여동생)
원평황후 (둘째 여동생)
남동생 2명
등장 회차
5회, 9회, 14회 ~
배우
하승리

1. 개요
2. 작중 행적
2.1. 5회
2.2. 9회
2.3. 14회
2.4. 15회
2.5. 16회
2.6. 17회
2.7. 18회
2.8. 19회
2.9. 20회
2.10. 21회
2.11. 22회
2.12. 23회
2.13. 24회
2.14. 25회
2.15. 26회
2.16. 27회
2.17. 28회
2.18. 29회
2.19. 30회
2.20. 31회
2.21. 32회(최종회)
3. 묘사
4. 인간 관계
5. 어록
6. 여담



1. 개요[편집]




[ 공식 홈페이지 인물 소개 ]

공주절도사 김은부의 첫째 딸이며, 명랑하고 정의로운 성품을 지녔다. 현종의 몽진 길에서 현종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는다.




KBS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의 등장인물.


2. 작중 행적[편집]



2.1. 5회[편집]


공주절도사 김은부의 딸로 처음 등장하며 이 시점에서는 황후도 아니고 사서에 이름도 전해지고 있지 않기에 '김씨'라고 성(姓)만 표기하였다.[2] 전방으로 떠나는 징집병들을 아버지 김은부와 함께 바라보면서 전쟁의 승패와 병사들의 안위를 걱정한다. 그 와중에 새 황제를 제1차 여요전쟁 때 직접 서경까지 나섰던 성종과 비교하며 거리낌 없이 애송이 취급하기도 한다.


2.2. 9회[편집]


군역을 빠진 호족의 아들을 발견하고 아버지를 상대로 왜 뺐냐고 힐난하는데, 아버지는 개경 이남 지역은 사실상 호족 세상이라 자식을 빼주는 대가로 간신히 1,500명을 보낼 수 있었다고 항변한다. 그런데 아버지가 패전에 책임을 자신이 부족해서 군사를 보내지 못한 것 같아서 괴로워하자 손을 잡아주며 위로한다.

이 때 아버지 김은부가 현실과 이상이 다르지만, 현실을 택한 것이 옳았는지 아니면 강압이라도 해서 충주처럼 올려보내야 했는지 고뇌하며 손을 떠는 모습을 보는데, 이 모습이 마치 현실주의보다 이상주의를 선택하려 하는 현종과 많이 닮았다.


2.3. 14회[편집]


동생들 앞에서 활쏘기 연습을 하는데 활 솜씨가 수준급이다. 동생들이 활 솜씨를 칭찬하며 "미워하는 사내라도 있냐"는 농담에 "거란군이 내려온다는 소문도 못 들었냐. 그 놈들에게 그냥 당하느니 한 놈이라도 죽이고 가려고 준비하는 것"이라고 핀잔을 주며 동생들에게 단도라도 지니고 다니라고 엄하게 말한다. 거란군이 내려오면 아버지가 피신 시켜주지 않겠냐는 동생들의 말에, "아버지는 병사들이 다 도망가도 혼자서라도 관아를 지키실 분"이라고 대꾸한다.[3] 이후 호장들의 반발로 동원령이 흐지부지되자 낙담한 아버지를 보고 호장들을 향해 분노를 터뜨린다.[4]


2.4. 15회[편집]


석양을 바라보면서 한숨짓는 아버지를 여동생들과 함께 걱정스럽게 바라보다가 공주까지 몽진을 온 현종을 가족들가 함께 환대한다. 그런 현종을 바라보고 나서 어머니에게 공주까지 몽진 온 황제의 침소에 들여보내 달라는 말을 한다. 본래는 출세를 위해 권력자에게 딸을 바치는 행위를 혐오했지만, 고려를 바꾸고 싶지만 힘이 없음을 한탄한 아버지의 모습에 그 힘을 만들고자 생각을 바꾼 것이고, 고지식한 김은부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 현종에게 옷을 지어 올리겠다면서 늦은 밤에 침소로 찾아온다.

그리고, 현종에게 옷을 지어 올리겠다고 아뢰며 치수를 잰 후, 현종은 옷을 지어올린다는 말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서 "다 되었소. 이만 나가도 되오." 라고 전하였지만, 그것이 곧 시침(侍寢)을[5]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김은부가 딸을 이용해 출세를 목적으로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을 알게 되어 배신감에 분노한 현종이 화를 내자[6] 아버지의 뜻이 아닌 스스로 자청해서 온 것이라 아뢰면서 "정말이옵니다. 저 혼자서 벌인 일이옵니다. 제 아비는 아무 죄가 없사옵니다. 딸을 팔아 폐하의 환심을 산다는 것은... 생각해내지도 못하는 사람이옵니다. 그 고지식함이 답답하여 제가 스스로 나선 것이옵니다." 라고 해명하고, 아버지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면서 무례를 범한 것에 대해 무릎까지 꿇고 눈물로 읍소하며 사죄하였다.[7]

현종이 떠난 이후,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 김은부가 화를 내면서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한 게야! 똑똑했던 아이가 왜 그리 어리석어진 것이야? 아비의 앞길은 이 아비가 열 것이다. 네 눈에는 이 아비가 그리 못나 보이더냐? 이제 어찌할 것이야? 네가 침소에 들어가는 모습을 노비들이 보고 군사들이 보았다. 이제 너는 폐하의 여인이 되었단 말이다!" 라고 꾸중을 들었지만, 강단있는 태도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벌인 일이니 제가 감당하겠습니다. (현종에게) 옷을 마저 짓겠습니다. 약속한 일이니 해 드리고 싶습니다." 라고 대답하며 당당하게 임했다.


2.5. 16회[편집]


아버지 김은부로부터 현종이 자신이 지어 올린 어의를 받았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고, 이에 김은부는 "넌 현종에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녀는 "(현종은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를 받아 준 것이다." 라고 대답한다. 그녀의 복잡한 심정이 담겨있는 대답이다.


2.6. 17회[편집]


아버지 김은부와 함께 공주에서 개경으로 상경한다. 내용 정황상, 현종이 김은부에게 개경으로 상경할 것을 부탁받은 듯 하며, 다른 가족들은 공주에 짐을 싸고 있다고 밝혔다. 이 때, 지척에 있는 현종을 상당히 의식하는 듯 보이며, 복잡한 심경을 내비친다.

이후 아버지가 주도하는 지방 개혁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듯 잠시 공주로 내려갔는데, 그 곳에서 공주 호장의 여노비로부터 최 호장을 제외한 공주의 모든 호장들이 충주로 향했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한편, 이 과정에서 막내동생(훗날의 원평황후)이 "개경이 완전히 다 불탔다던데 우리가 살 집이 남아있긴 한걸까?" 라고 철없이 물어보니까 "지금 아버지는 개혁을 추진한다고 온 호족들에게 표적이 되었는데 너는 집이니 뭐니 그딴 것밖에 관심가질 게 없냐?" 라고 미친 듯이 갈구기도 했다(...).

법당에서 전사자들을 위한 집회를 마치고 궁으로 돌아오는 현종과 조우한다. 자신은 가족과 올라오던 중 혼자 뒤떨어졌다고 말했고, 호족을 대대적으로 제압하려 하는 현종의 고민을 듣고 "옳은지 옳지 않은 지는 끝을 봐야 알 수 있다며 끝까지 나아가라." 라고 조언을 했다.


2.7. 18회[편집]


충주에서 호장들이 모임을 가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주의 저자거리에서 탐문을 계속하다, 현종의 암살을 노리는 박진 일행을 만나면서 위기에 빠졌다. 다행히 무사히 빠져나와 개경으로 돌아왔지만, 황제가 보낸 시위대의 호위를 받으며 황제의 처소에 들어가는 모습이 목격되는 등, 자신과 아버지에 대해 원정왕후를 비롯한 조정 신하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2.8. 19회[편집]


현종이 낙마했다는 소식을 아버지에게서 듣자 그릇을 깨뜨릴 정도로 놀랐고, 이후 아버지가 잡혀가자 집에 찾아온 황보유의와 최충, 김종현과 조자기를 통해 대책을 강구하려고 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탄핵이 시작되고 심문을 받는 아버지에게서 불리한 진술이 나오자 어머니에 이어서 자신이 불려나와 원정황후에 의해 심문을 받는데, 아버지가 강압적으로 몰아넣는 황후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딸이라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생각과 다른 허위자백을 하게 되자 놀라면서 결국 아버지를 붙잡고 죄책감에 흐느끼다가 부상에서 회복되어 다시 정전으로 돌아온 현종에게 극적으로 목숨을 구했고 아버지를 부축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 김은부 일가를 구하기 위한 계책이 쓰여있는 강감찬의 서한을 받은 현종의 부탁으로 후궁[8]이 되어 정복을 입고 입궁한다.[9] 원정황후는 김은부의 큰 딸 김씨가 입궁하는 모습을 달려와 바라보고 분노하면서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본인은 입궁할 때부터 얼떨떨했는지 입궁하는 내내 다소 긴장한 표정이었고, 수창궁 앞에 나온 현종에게 "진심이십니까?"라며 물은뒤 진심이라는 현종의 말을 듣고 다소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2.9. 20회[편집]


현종에 의하여 정식적으로 후비에 임명되었으나, 용손이 아닌 본인이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고 거부하여 기존에 현종이 제안한 황비에 책봉받기를 거부한다.[10] 원정황후를 알현한 자리에서 "자신이 지방 호족 출신임을 잊지 않고 있다."면서 경어까지 사용하며 시종일관 겸손한 자세를 유지한다. 원정왕후의 명으로 황실의 의복을 담당하는 일을 도맡지만, 아직 공식적으로는 아무런 작위가 없었기에 그저 '부인'으로 불리게 되었고, 이로 인해 궁녀들에게 비웃음을 당하는 처지에 놓인다.[11]

한편, 다른 장수들에게 멸시당하며 현종의 눈 밖에 나면서 조급해진 탁사정이 최후의 발악으로 원정황후와 손을 잡고 원성황후를 폐위해야 한다는 소를 올리면서 그녀를 공격하지만, 다른 신료들도 탁사정의 소에 호응하지 않고, 도리어 현종이 탁사정을 '강조의 일파'로 몰아 유배를 보내도록 지시하며 일단 고비를 넘긴다.


2.10. 21회[편집]


현종이 강씨 문중으로 행차했다는 것을 듣고 아버지인 김은부에게 "왜 말리지 않았냐"면서 다그친다. 그러나 현종이 무사히 강감찬을 데리고 왔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하는데 걱정되면 한번 찾아가 보라는 제안에는 거절을 한다.

한밤 중에 거란의 사신으로 아버지 김은부가 자청해서 가게 되었다는 것을 현종을 통해서 듣게 되고 얼마 뒤 사신으로 가기로 한 날 김은부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인사를 나눈다.


2.11. 22회[편집]


원정황후와 같이 길을 걸으며 그녀에게서 "형부시랑은 황제의 장인이고 거란은 비록 야만스러운 본성을 지녔다고 하나 겉으로 문명대국임을 자처하고 있으니 함부로 죽이지 못할 것이며 무사히 돌아올 것이다."라고 위로를 받는다. 이후 현종을 만나고 원정황후가 먼저 자리를 뜨려고 하자 "원정황후의 위로만으로 충분하다."면서 자리를 피한다.

그리고 눈 내리는 작은 법당에서 아버지가 무사히 돌아오길 한없이 기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현종이 흥화진을 요구하는 거란 사신에게 절대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사실상 협상 결렬 및 전쟁 국면으로 치달았고[12] 이는 곧 거란에 사신으로 간 아버지 김은부의 목숨이 위험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소식을 현종으로부터 듣게 되고는 아버지가 살아서 돌아오기 힘들 것이라는 직감을 하며 좌절하고 눈물을 보인다.


2.12. 23회[편집]


현종의 위로에 애써 눈물을 참으면서 아버지도 충분히 이해 할 것이고, 자기도 이해한다면서 법당의 불상을 보며 다시 기도를 하지만, 이내 오열하면서 현종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이후 아버지가 붙잡히기 전 화살로 날린 서찰과 흥화진으로 간 강감찬이 보낸 소식을 통해서 현종으로부터 무사하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서 안도하고 꼭 구하겠다는 다짐도 받는다.


2.13. 24회[편집]


현종과 강감찬을 비롯한 여러 대신들의 노력에 의해 아버지인 형부시랑 김은부가 무사함을 알고 고마운 마음에 따르는 궁녀[13]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직접 다과를 만들고 밤늦게까지 거란의 재침에 대비한 회의를 하는 현종과 대신들 앞에 찾아가 다과상을 대접하고, 그 궁녀가 현종과 대신들에게 "김씨 부인이 직접 만들었다."고 이야기하자 부끄러워한다. 나오는 길에 궁녀에게 괜한 말 했다고 다그치자 오히려 궁녀에게 성격이 목석 같다고 연애와 관련한 조언을 듣게 된다.

이후 원화황후가 자신의 옷의 마감이 미흡한 것을 발견하고, 황실의 의복 담당으로써 질책을 받고 직접 다시 지어올려라는 명을 받고는 침방에서 직접 바느질을 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현종은 자신에게 꽃을 선물해준 고마움에 찾아가다가 현 상황을 보게 되었다. 원화황후에게 이야기해서 잘 마무리 하겠다는 것을 자신의 잘못이고 책임질 일이라며 이 곳은 황제가 출입할 곳이 아니니 신경 쓰지 말아달라고 했으나 오히려 현종은 잘 시간이 멀었다면서 오히려 침방에서 상주문을 가지고 와 보는 모습을 보여 난처하게 되었다. 이후 선물한 꽃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현종에게 자신의 경험상 꽃내음이 좋아서 잠이 잘 오기에 그 꽃을 선물했다고 말하지만, 현종으로부터 그 꽃은 높은 산에서만 자라기에 꽃내음이 특별한게 아니라 꽃을 따려고 산을 타고 내려와 고단해서 그런 것이라는 대답을 듣자 기분이 나빠져서 토라지고 현종이 사과함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있는다. 이에 현종이 화났냐고 묻자 깨우쳐줘서 감사하다고 하지만, 현종이 웃으면서 화난게 맞다 하며 다시 사과하자 결국 웃음을 터뜨리면서 그와 같이 웃는다. 이를 통해 현종과 더 가까워지고[14] 거란에서 아버지를 풀어주면서 고려로 돌아오자 수창궁에서 극적으로 다시 상봉하게 되었다.

이후 김훈, 최질의 난이 일어나는 1014년으로 흘러 제2차 여요전쟁 때 불탄 정궁(만월대)가 다시 재건되었을 때 현종과 원정황후, 원화황후, 여러 신료들과 함께 정전을 향해 걷는 모습을 보인다.


2.14. 25회[편집]



2.15. 26회[편집]



2.16. 27회[편집]



2.17. 28회[편집]



2.18. 29회[편집]



2.19. 30회[편집]



2.20. 31회[편집]



2.21. 32회(최종회)[편집]




3. 묘사[편집]


원작 소설에서는 제2차 여요전쟁 당시 20대라서 현종보다 연상이며 근심하는 현종을 보고 차를 마시면서 천천히 밥을 먹으라고 말하는데, 이후 셋째 동생이 '세 자매가 모두 왕후가 될 운명'이라는 점쟁이의 말을 언급하자 얼굴이 빨개지며, 현종을 어려워하다가 금세 잘 대화하게 되었다고 언급된다.

비중이 적었던 원작에 비해 드라마에서는 초반부부터 등장하여 아버지인 김은부와 함께 중앙 집권 체제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던 11세기 초 고려의 상황을 상세히 조명하는 역할을 하며, 한국사에서도 비교적 여인들에게 개방적이었던 고려 사회의 풍토 역시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한편 지나치게 왕실 중심적인 관점에서 황제의 권위만을 높이려는 원정황후와 대비를 이루어[15] 현종의 앞길에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본작에서 은근히 언급되는 고려 성종에 대해서는 존경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16회까지는 그녀가 어떻게 현종의 새로운 동반자가 되는지도 지켜봐야 할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17회부터 작가가 역사적 기록을 무시하고 왜곡을 하면서 억지, 무리한 전개 과정에 휩쓸려 '원성왕후'라는 캐릭터가 흔들리고 있다.

17~18회에서 남모르게 공주와 충주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행동을 하는데 안 그래도 아버지인 김은부가 계획한 '호족 척결'을 중심으로 한 고려의 지방 개혁으로 인해 중앙 조정과 지방 할 것 없이 반발이 나왔고, 가상의 인물이긴 하지만 충주 호장인 박진은 더 나아가 일종의 '쿠데타'를 준비하고 있으며, 압록강 너머로 물러간 거란도 다시 침공을 준비하는 상황에서 아녀자가 호위도 없이 저렇게 정보를 수집하러 가는 것 자체가 무리수라는 지적이 많다.[16]

궁으로 들어가는 과정 또한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원정황후의 캐릭터를 붕괴시키며 들어가버린 모습으로 비춰져 아버지인 김은부와 더불어 악역이 아님에도 의도치 않게 비호감 캐릭터로 보여지게 된다.[17] 초반부에 능동적인 면모를 보인 것에 비해 갑자기 궁에 들어오고 다소 수동적으로 변한 모습만 보여서 이상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21회부터 극이 안정을 되찾으며 흔들리던 캐릭터도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 원정황후와의 갈등도 표면적으로는 일단락되었으며[18] 앞으로 역사적 사실들을 바탕으로 연출을 이어 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불안 요소도 있는데, 14회에 나왔던 활 쏘는 모습에서 이것이 훗날 제3차 여요전쟁 중 금교역에서 벌어지는 전투 전개과정 중에 갑옷을 입고 등장해 활을 사용하는 등의 개입이 있는게 아닌가하는 추측이 많다.[19]


4. 인간 관계[편집]


  • 현종

  • 김은부

  • 원정황후와 원화황후

  • 여동생들(후에 원혜황후와 원평황후)


5. 어록[편집]


저 사람들,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것이옵니까? 거란 놈들, 물리칠 수 있는 것이옵니까? 황제 폐하께선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분이시라던데...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현종에게 머뭇거리면서 조심스러운 태도로)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옵니까? (그게 무슨 말이오?) 폐하. 어떤 여인이 (왕에게 입을 어의를) 옷을 지어 바치겠다는 것은, 그 여인의 몸과 마음도 바치겠다는 뜻이옵니다. (뭐요?) 예로부터 집안의 귀한 손님이 찾아오면, 집주인의 그의 딸을 내어준다 하였사옵니다. 일개 빈객도 그리 맞이하는 것이 관례이거늘 황제 폐하를 맞이한 절도사가 어찌 그 예를 다하지 않겠사옵니까? 부디... 신하의 정성을 생각하시어 저를 받아주시옵소서.

(현종이 화를 내자 앞에서 무릎을 꿇고) 폐하. 용서해주시옵소서. 제가 생각이 짧았사옵니다. (어서!) 폐하. 제 아비는 아무것도 모르옵니다. 다 제가 자청하여 벌인 일이옵니다. (듣기 싫소! 어디서 거짓을 고하는 거요!) 정말이옵니다. 저 혼자서 벌인 일이옵니다. 제 아비는 아무 죄가 없사옵니다. 딸을 팔아 폐하의 환심을 산다는 것은... 생각해내지도 못하는 사람이옵니다. 그 고지식함이 답답하여 제가 스스로 나선 것이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정말이옵니다. 믿어주시옵소서. 제 목을 베시더라도... 제 아비만은 벌하지 말아 주시옵소서. 제 아비는 그저... 이 고려만을 생각하는 못난 충신이옵니다.



6. 여담[편집]


  • 성종의 소생인 왕후들을 연기한 이시아, 윤채경과 달리 담당 배우인 하승리는 아이돌 출신이 아니다.

  • 드라마의 초반 등장인물 소개란에서는 '원성'이라는 이름으로 소개가 되었으나 드라마에서 이렇게 나오지는 않는다. 엄연히 원성황후의 '원성'은 해당 인물이 세상을 떠난 뒤에 붙여진 시호였고, 사서에서도 이름이 전하지 않기 때문에 제작진이 급히 '김씨'라고 성(姓)만 표기하는 것으로 수정하였다.[20]

  • 담당 배우가 전작에서 양궁선수 역할을 맡았던 것에 대한 오마주인지 14회에서 활을 잘 쏘는 모습도 보여준다. 하지만 이에 대해 오히려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시청자들도 많은데, 그간 사극에서 여성이 갑옷을 입고, 투구도 쓰지 않은 채 활을 쏘며 전투에 참전하는 장면이 고증 오류로 많은 비판을 받은 바 있는데[21], 원성황후가 활을 사용하는 묘사 때문에 해당 장면이 등장할까봐 우려하는 것이다.

  • 실제 역사에서 원성황후는 현종보다 3년 먼저 세상을 떠났고[22], 후에 현종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들이 각각 덕종(9대)과 정종(10대)으로 즉위하면서 태후로 추존되었다. 그러나 덕종은 슬하에 자식이 없었고 정종은 젊은 나이로 승하했을 때 아들들의 나이가 너무 어렸기에 문종에게 보위를 넘겨주었다. 한편, 뒤를 이어 즉위한 문종(11대)는 동생 원혜황후가 낳은 아들이자 원성황후 자신에게는 조카이면서 사위가 된다.

[1] '연경원주'가 되어야 하나 해당 직위를 받은 것은 1016년의 일이다. 처음 입궁할 때였던 19회와 20회는 다른 사건들의 전개 상황으로 보아 1011년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아직 아무런 작위를 받지 못한 상태이다. 21회에서 작위가 '김씨 부인'으로 나왔으며, 황후로 책봉된 것은 전쟁이 다 끝난 1022년이다.[2] 원성왕후가 현종의 왕비로 책봉된 시기는 제3차 여요전쟁으로부터 3년 뒤인 1022년이다.[3] 전 회차에 보여준 성격이 어디 안 가는 데 황제의 몽진을 '걸음아 나 살려라'라고 표현 한다.[4] 이미 개경이 함락되고 황제가 몽진하는 상황에서 동원령은 고려를 지키는 마지막 방법이다. 그런데도 비협조적이라는 것은 외적에 나라를 넘겨주겠다는 말이나 다름 없다. 하지만 따르는 군사도 없고 인맥도 없는 김은부의 일갈은 공허했고 모욕만 당했다.[5] 여인이 임금을 모시고 잠자리에 든다는 뜻이다.[6] 이 때 현종이 분노한 이유가 바로 직전에 원성황후의 어머니의 입을 통해 나온 원성황후의 평소 생각인 '권력자에게 딸을 팔아 출세하는 것' 을 극도로 혐오한다는 것과 동일하다. 안 그래도, 호족들의 횡포로 인해 억울하게 딸을 빼앗긴 백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릴 정도로 분노하고 있었는데,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공주 절도사 김은부가 부패한 호족들처럼 똑같이 딸을 바치면서 출세하려는 행동을 하고 있으니 배신감으로 인해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7] 현종과의 대화에서 그녀가 "폐하. 어떤 여인이 (왕이 입는 어의를) 옷을 지어 바치겠다는 것은 몸과 마음도 바치겠다는 뜻이옵니다." 라고 말한 것을 고려하면, "(내가 현종에게) 옷을 마저 짓겠습니다. 약속한 일이니 해드리고 싶습니다."는 이미 본인의 마음이 현종에게 향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녀가 현종에게 만드는 어의(왕의 옷)는 왕을 향한 충성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며, "당신은 나의 왕이 될 사람이다." 처럼 자신의 지아비가 되어달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현종이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이게 되면, 왕비의 신분으로 입어야 할 새로운 옷을 직접 하사해줄 것이다. 이처럼 왕이 여인에게 새로운 옷을 하사해주게 되면 그동안 입고 있던 옷을 침소에서 벗은 뒤에 하사받은 옷으로 갈아입게 되는 과정으로 '왕의 승은을 입는다.'의 중의적인 의미도 숨어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을 하자면, 이현운이 고려를 떠나 거란의 관복을 입는다는 것은 고려를 배신했다는 강력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왕이 신하들에게 관직을 하사하면, 신하들은 충성스런 왕의 관료가 되어 제복을 입고 일을 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드라마에서 의복은 '신분을 나타내는 복선' 으로 쓰이는 것이다.[8] 실제 현종의 아내가 된 것은 제2차 여요전쟁 와중인 1011년이며, 1013년에 '현경원주'가 되었다.[9] 15회의 각주에서 설명한대로, 김은부의 큰 딸 김씨가 현종에게 어의를 바친 답례로 황후의 정복을 하사해주면서 황제의 승은을 입게 된다는 의미가 된다. 이처럼 의복은 '신분을 상징하는 복선'이 담겨있다. 이는 현종이 몽진을 갔을 때 곤경에 처한 상황에서 김은부 일가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고, 현종이 김은부 일가에게 은혜를 갚는다는 이야기를 설명한 듯 하다.[10] 본래 역사대로라면 1013년에 '연경원주'에 책봉되었고, 1018년 원정왕후가 사망한 뒤에는 '연경궁주'가 되었으며, '자신이 낳은 첫 아들이 태자에 책봉된 1022년에 왕후에 책봉된다. 하지만 원정황후의 어머니인 성종의 제2비인 문화왕후 또한 지방 호족의 딸이라서 '용손'이 아니다. 이에 해당되는 부분은 해당 회차의 역사 탐구 문서 참조.[11] 다만, 이 부분은 너무 지나치게 각색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있다. 조정 대신들도 함부로 무시하지 못하는 황제의 부인을 감히 궁녀 따위가 몰래 비웃으면서 무시했다가 입소문으로 퍼져서 황제의 귀에 들어가게 되면 당장에 붙잡혀서 대역죄인으로 모가지가 썰리고 효수되어 저잣거리에 걸리던 일은 매우 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12] 물론, 당시 내부의 반란을 맞딱뜨린 거란으로서는 고려를 바로 침공할 여력이 없었다.[13] 해당 궁녀는 김씨 부인이 궁으로 들어올 때부터 그녀를 보좌했다.[14] 다만, 지난 회차와 더불어 이 모습을 원정황후가 보거나 듣게 되면서 아직까지 대립이 남아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15] 물론 원정황후도 이후 불리해진 전황을 보고 몽진에 동행하면서 백성들의 현실과 현종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16] 평가 항목에도 나오지만,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원작자도 작가를 맹비난하기 시작했다.[17] 작가가 무려 4회 동안 빌드업하면서 원정황후와의 대립을 후반부 주요 스토리 중 하나로 이끌려고 하다가 오히려 시청자들의 공감도 못 얻고 실패로 끝나버린다. 애초에 기록도 없는 부인들 간의 갈등보다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훨씬 공감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18] 물론 23회와 24회에 꺼져가던 불씨가 조금씩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19] 사실 금교역 전투 자체가 기병 100기로 300명을 상대해 승리한 소규모 전투인데다 지휘관이 누군지 알려지지 않았으니 창작이 들어갈 수는 있다. 그러나 2군 6위의 정예 장수들이 개경을 지키고 있는데다 현종 바로 옆을 지키는 작중 최고의 인간흉기 호위대장까지 있는 상황에, 맡길 장수가 없어 황제의 아내가 활 들고 거란군 치러 간다는 개연성에 핍진성까지 밥 말아먹은 전개를 넣었다간 귀주 대첩이란 본작의 최대 클라이맥스를 앞두고 악재를 하나 더하는 꼴일 뿐이다.[20] 실제로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도 똑같이 인경왕후인현왕후를 본명마냥 '인경', '인현'이라고 불렀다가 시청자들에게 큰 비판을 받았다.[21] 당장 비슷한 시기를 다룬 전작이 이러한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22] 참고로 동생 원혜왕후는 그보다 앞선 1022년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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