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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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멤버
3. 활동
4. 음반 목록
4.1. 1집
4.1.1. 가사
4.2. 2집
5. 활동 중단 이후


1. 개요[편집]


1990년대 후반에 활동했던 4인조 댄스그룹으로 지금은 트로트 가수로 더 유명한 장민호가 속했다. 팀명인 유비스는 "You Will Be with Us"의 약칭이며 U-BeS로도 쓰인다.
파일:유비스.jpg
왼쪽부터 이충인, 김준우, 김무경, 아랫줄에 앉은 이는 장호근[1]

이들의 포즈는 당시에 유행했던 전사 컨셉에 맞게 지은 포즈와 표정이다.

2. 멤버[편집]


데뷔 당시 대학생 2명과 고등학생 2명으로 구성됐다.

장호근(장민호의 본명): 1977년생, 중부대학교 연극영화과, 인천대건고등학교 졸업
김무경: 1978년생, 가야대학교 중국어과, 인천대건고등학교 졸업
이충인: 1979년생, 용문종합고등학교 3학년, 우송정보대학 방송음악학과
김준우: 1980년생, 위례상업고등학교 2학년


3. 활동[편집]


1997년 7월 15일[2] 정규 1집을 발매하며 타이틀곡인 '별의 전설'로 데뷔했다.[3]

하지만 이 당시에는 운이 [4] 좋게도 H.O.T.,[5] 젝스키스 등 1군 아이돌들은 물론 임창정지누션 같은 쟁쟁한 가수들도 나왔던 그야말로 춘추전국 시대였던지라 제대로 묻혀버렸다. 사실 데뷔 시기도 안 좋았지만 컨셉을 제대로 못 보여준 것도 컸던 게 후에 데뷔한 NRG가 "미소년 컨셉+아크로바틱", 태사자는 "댄디한 정장을 갖춘 남자다움"을, 우노는 3인조 미소년+발라드 그룹[6]을 무기로 삼아 대중들에게 자신들의 인지도를 크게 각인시킨 반면 유비스는 딱히 눈에 띄는 컨셉도 없었고, 노래도 나쁘지는 않지만 확 들어오는 노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같은 해인 1997년 후반에 '야누스 시대'라는 후속곡으로 활동했지만 역시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활동을 중단한다.[7] 판매량은 4만 장 조금 넘게 팔렸다.

그래도 엄청 망한 정도는 아니었던지 팬들도 나름 있었고 대중들에게 칼군무와 백다운으로 인상을 크게 남기고,[8] 당시의 추억에 젖은 사람들이 노래방에서 지금도 부르기도 하는 일명 몰래 듣는 명곡으로 남았다.
이후 1998년 정규 2집 앨범 '특급작전'(주영훈 작곡)으로 돌아왔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1집과 그리 다르지 않았으며 결국 2집을 끝으로 팀은 해체되었다. 2집도 3~4만 장 가량 판매되었다. 더 활동하거나 H.O.T.나 젝스키스처럼 컨셉이 확보했다면 충분히 태사자나 NRG 정도의 인기는 있지 않았을까 싶다. 데뷔가 1997년 3월에 데뷔했고 별의전설에서 선보인 백다운을 젝스키스보다 먼저 선보였다면 충분히 뜰 수 있을 만큼 실력을 가진 그룹이다.



4. 음반 목록[편집]



4.1. 1집 <U-Bes>[편집]


U-Bes



별의 전설






4.1.1. 가사[편집]


별의 전설
(rap) 태초의 햇살을 뒤로한 채 죽음보다 더한 고요가
신음처럼 들려오는 저 어둠의 숨소리처럼 세상을 덮었다
맑은 물이 샘솟던 따스한 그날로 돌아갈 순 없나
우리의 꿈도 저물어 저물어 가야만 하는가
세상이란 이름이 내겐 너무 힘들어
스쳐갈 만큼 짧았던 꿈이라 생각했지만
다시 만날 수 없고 다시 볼 수도 없는
어느새 잊혀진 기억으로만 남게 됐으니
니가 원한다면 다시 찾을 수 있겠지
저무는 저 태양이 다시 떠오를 때에 (떠오를때에~)
서로의 아픔을 살아가야만 한다면
죽음보다 힘 ~가 된다는 걸 알았어
그대로 영원히 슴속에 묻어야 한다면~~
우리 다시~ 만날 ~
(rap) 오늘의 헤어짐은 잠시일 뿐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어
이 다음 세상에선 서로에게 사랑으로 태어났길 기도해
우리들의 사랑이 저하늘에 닿아 먼훗날에 만나
영원한 사랑을 이룰 수 있는 그날을 위해서
그토록 오랜 시간 너를 찾아 헤맸지
수많은 세상을 지나 너와의 약속을 위해
하지만 난 이곳에 너를 기다리다가
지쳐서 다른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난거야
니가 원한다면 다시 찾을 수 있겠지
저무는 저 태양이 다시 떠오를 때에 (떠오를 때에~)
서로의 아픔을 살아가야만 한다면
죽음보다 힘 ~가 된다는 걸 알았어
그대로 영원히 슴속에 묻어야 한다면~~
우리 다시~ 만날 ~

2옥타브 솔♯(G♯4) 구간은 초록색.
2옥타브 라(A4) 구간은 금색.
2옥타브 라(A♯4) 구간은 보라색.
2옥타브 시(B4) 구간은 풀색.
3옥타브 도♯(C♯5) 구간은 빨간색.

가성 부분은 볼드체 미표시.


4.2. 2집 <You Will Be With Us>[편집]


You Will Be With Us



특급작전






5. 활동 중단 이후[편집]


장민호의 활발한 활동과 함께 그의 유비스 시절이 다시 조명되면서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 나와줬으면 하는 팀들 중 하나로 꼽히지만, 유비스의 곡들이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곡이 아닐 뿐더러 그나마 대표곡은 데뷔곡 1곡이라 출연은 쉽지 않을 듯 하다.관련기사

다만, 저 기사에 있었던 그룹 중 A.R.T슈가맨 3에서 슈가맨으로 출연했고 슈가맨 2의 4화처럼 장민호의 과거를 소환하는 식으로 출연한다면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다.[9]

장호근(장민호)은 트로트 가수로 유명세를 얻었고, 김무경은 외제차 딜러로 활동 중이며, 이충인은 2009년부터 2016년 까지 연극배우 서제광의 친동생인 대니원 대니(서제욱)과 함께 대니원(유명 그룹 아님) 멤버로 활동한 이후 양평군에서 라테라스펜션을 경영하고 있다.[10] 김준우는 현재 근황이 알려진 게 없다.

안타깝게도 유비스의 노래들은 스트리밍사이트에서 음원재생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이유는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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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민호의 본명이다.[2] 현재 음원서비스가 중단되어 있고 이 앨범의 발매일자가 정확히 적힌곳이 없어 한국음원저작권협회에서 U-Bes의 1집 음원을 검색한 결과다. 1997.07.15에 공표 된것으로 나온다.[3] 데뷔 전 이충인의 동생인 이충준이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그를 추억하는 내용의 가사이나 데뷔를 준비하던 중 유비스의 멤버 1명이 죽은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팬들이 많다.[4] 장민호 본인이 이 부분 수정해달라고 요청했다(...)[5] 유비스가 데뷔한 지 1개월 후, 2집으로 바로 컴백했다(..)[6] 참고로 1997년 10월 25일 MBC 인기가요 베스트50 오프닝 현장에 온게임넷(현 OGN) 켠김에왕까지 허강조류(허준, 강성민, 조현민, 류경진) 강성민의 데뷔그룹인 우노(강성민, 김형철, 장신민)와 함께 등장한 적이 있다.[7] 지금이야 웃으면서 지나간 과거로 말하지만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 출연 당시 장민호는 소속사 대표에게 많이 맞기도 하고 정강이까지 차이는 등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어렵게 털어 놓았으며 뽕숭아학당에서 토니 안을 만났을 때 '늘 정상 위에 있던 H.O.T.를 보며 언제쯤이면 올라갈까'라고 당시 속내를 말하기도 했다.[8] 유튜브에 '별의 전설' 무대 영상들이 올라와 있는데, 댓글들을 보면 학생들이 학교 장기자랑에서 이 곡으로 춤을 추거나, 춤추면서 다치거나, 노래에 도전했다가 의외로 고음에 고전했다는 내용을 볼 수 있다.[9] 시즌 2 4화는 인기 가수들의 과거에 속했던 그룹을 소환하는 방식인데, 이 때 왁스(도그), 이브()가 슈가맨에 출연했다. 다만 도그나 걸 모두 매니아층이 탄탄한 그룹이었기에 상황이 조금 다른 부분은 있다.[10] 그의 페이스북. https://ko-kr.facebook.com/people/%EC%9D%B4%EC%B6%A9%EC%9D%B8/100001532891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