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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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劉二祖
(? ~ 1215년 2월)

홍오군의 수령으로, 산동(山東) 태안(泰安) 사람이다. 양안아의 뒤를 이어서 홍오군을 결집하였고, 홍오군의 수령들 중 두번째로 금나라에 반기를 들었지만 3년 뒤에 토벌당한다.


2. 생애[편집]


1211년, 홍오군의 수령 양안아가 금나라에 반기를 들고 거병하자 유이조 또한 이에 호응하여 1212년에 자신의 고향인 태안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기몽산(沂蒙山)[1]을 거점으로 삼고 그 일대에서 활동하였으며, 치주(淄州), 기주(沂州)를 공격하여 그 세력을 떨쳤다.

1215년, 양안아가 패망하자 금나라 정부에서는 유이조에게 투항을 권유했으나 유이조는 이를 거절하고 끝까지 반란군을 이끌면서 금군을 공격하였다. 이에 금나라에서는 1월 5일에 산동안무사(山東安撫使) 복산안정(僕散安貞) 등에게 유이조를 토벌하도록 명령한다.
2월 18일, 복산안정이 군대를 보내 공격해오자 유이조가 이에 맞섰으나 크게 패배하여 5천여 명을 잃었고, 거몽고(巨蒙堌) 등의 제방 네 곳과 마이산(馬耳山)[2]을 빼앗겼다. 금군이 이긴 기세를 타고 태안을 공격해와서 북쪽 성문을 함락시키고 수상 요새(水寨)까지 파괴하자 유이조가 홍오군 5천을 이끌고 반격하였으나 이번에도 크게 패배하였다. 유이조는 이 싸움에서 창에 찔려 붙잡혔으며, 금군의 군문(軍門)으로 끌려가서 참수되었다.

1214년 말에 양안아가 죽을 때, 그 잔당이던 장여집(張汝楫)과 이사온(李思溫) 등은 유이조에게 의탁하여 부하가 되었지만 유이조가 죽자 이들 또한 금군의 공격을 받고 토벌당하였다.

유이조가 죽은 뒤 그의 부하이던 학정(郝定)과 팽의빈(彭義斌) 등이 남은 군대를 이끌고 계속해서 금나라에 저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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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둥성(山東省) 중남부에 위치해있는 산이다.[2] 산둥성 주청시(諸城市)에 위치해있는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