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탑리 금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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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의성 탑리 금동관.jpg

1. 개요
2. 내용
3. 외부 링크


1. 개요[편집]


경상북도 의성군 탑리리 고분Ⅰ 돌무지덧널무덤에서 발견된 5세기 경 신라의 금동관.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에 원본이, 의성조문국박물관에 복제본이 소장되어 있다.


2. 내용[편집]


파일:의성 탑리 금동관2.jpg

1960년 국립중앙박물관경상북도 의성군의 탑리리 고분에서 발견한 신라의 금동관으로, 유물의 제작 연대는 5세기 초(서기 400년대 초)로 추정되고 있다.

경북 의성군에는 금성면 학미리, 탑리리, 대리리 일원에 200여기의 고분군이 있다. 이 무덤들은 5세기 초~6세기 후반까지 만들어 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진한의 12개 소국 중 하나로 서기 185년 신라에 의해 합병된 조문국(召文國)의 후예들이 세운 고분군으로 파악하고 있다. 총 29만 6,825㎡에 걸쳐 분산되어 있는 이 고분들은 현재 사적 제55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금동관은 5세기 경 의성군 탑리리 일대에 조성된 고분에서 발견한 것으로, 185년 조문국의 멸망 이후 원활한 지방통치를 위하여 옛 조문국 왕족들에게 여전히 이곳의 통치권리를 인정한다는 뜻으로 신라 경주 중앙정부에서 하사한 금동관으로 여겨지고 있다.

파일:신라 금관의 변천과정.png

띠 모양의 테두리 위에 가장자리를 가늘게 자른 후 이를 꼬아 깃털 모양으로 만든 세움 장식 세 개를 부착한 것으로 이러한 형태의 관을 ‘조우형(鳥羽形)’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인 신라 금관 또는 금동관이 띠 모양의 테두리 위에 나뭇가지를 간략하게 도안화한 ‘출(出)’자 모양의 장식을 겹쳐 올린 장식을 세 개 세우고, 뒤쪽에는 사슴뿔 장식을 세운 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를 보이고 있다.

파일:의성 탑리 금동관3.jpg

이와 비슷한 ‘조우형’ 금동관의 모습은 경주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은제관에도 있으며, 고구려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3종의 금동관 중 집안 출토 금동관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또한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 있는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에 그려진 사람에게서도 이러한 양식이 발견되고 있어서 중앙아시아 쪽에서 한반도로 유입된 양식임을 확인할 수 있다.

1960년 국립중앙박물관이 탑리리 고분을 발굴했을 때 이 금동관을 비롯한 많은 황금유물과 신라토기, 철제무기 등의 유물이 나왔다. 또한 이 유물이 만들어질 당시 이 곳에 다수의 금광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는데, 일제강점기 때 지질조사에서 의성을 중심으로 안동, 예천, 상주 등지에서 많은 고대 금광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이를 통해 이 지역이 5세기 경 찬란한 신라 황금문화의 원류 중 하나로, 과거 이 곳을 정복했던 신라 김씨세력에게 풍족한 경제적 기반을 제공한 지역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한 고구려를 비롯한 중앙아시아 지역 양식이 금동관에 녹아들어 있어 당시 이 지역에 다양한 국제 문화가 유입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3.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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