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철(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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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씨명
마츠무라 토테츠(松村東喆)
마츠무라 시게이치(松村茂一)
본관
서림 이씨[1]
출생
1901년 3월 13일[2]
충청남도 홍산군 대야면 신동리
(現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조현리 식송마을 95번지)
사망
1964년 5월 12일 (향년 63세)
묘소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조현리 식송마을
상훈
대통령표창 추서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2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이호철은 그의 4촌 동생이다.

2. 생애[편집]


1901년 3월 13일 충청남도 홍산군 대야면 신동리(現 부여군 홍산면 조현리 식송마을 95번지)에서 아버지 이병희(李炳凞, 1868. 10. 10 ~ 1928. 2. 10)와 어머니 한산 이씨(? ~ ?. 7. 3)[3] 사이에서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1년 10월 충청남도 부여군·서천군·논산군·홍성군 등을 중심으로 조직된 공산주의연구협의회(共産主義硏究協議會)[4]에 가입해 이호철(李戶喆)·이중철(李中喆)·유기섭(柳基燮)·노명우(盧命愚)·노명우(盧明愚)··강병국(姜秉國)·강성모(姜聖模)·강일구(姜日求)·조병철(曺秉哲)·조병순(曺秉順)·강도형(姜道馨)·강주구(姜柱求)·장창선(張昌善)·오기영(吳祺泳)·최재봉(崔在鳳)·전영철(田泳喆)·김임술(金壬戌)·허원룡(許元龍)·유인철(柳寅喆)·강병환(姜秉煥) 등과 함께 부여군 홍산면을 비롯한 부여군 각지의 마을에 공산주의연구협의회의 지부를 조직한 뒤 농민들을 위한 야학노동조합을 개설하고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계몽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각 마을의 야학을 연합해 수시로 연합 토론회 및 운동회를 개최해 공산주의를 선전하는 노래를 부르게 하는 등 계급의식을 고취했다.

그러나 1933년 8월에서 9월 초 사이에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1933년 12월 1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 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 기소유예불기소처분받고 곧 출옥했다.

출옥 후에는 은거하다가 1964년 5월 12일 별세했다.

202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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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사공파(進士公派) 24세 철(喆) 항렬.[2] 서천(서림)이씨대동세보 하권 301쪽에는 1903년 5월 20일생으로 등재돼 있다.[3] 이승신(李承信)의 딸이다.[4] 부여공산주의자협의회(扶餘共産主義者協議會), 금강공산협의회(錦江共産協議會), 충남공산당협의회(忠南共産黨協議會),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朝鮮共産主義者協議會), 금강문인회(錦江文人會)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