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조선, 혁명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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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작중 행적
3. 기타


1. 개요[편집]


조선, 혁명의 시대/등장인물이자 원래 역사의 대통령, 독재자인 한국의 이승만. 조지 워싱턴이나 링컨을 꿈꾸지만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한제국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대신 한국의 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을 노린다.


2. 작중 행적[편집]


헬퍼드 매킨더의 이론을 영국에서 지지하며 영국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사고 방식을 바꾸도록 외교 활동을 하는 인물로 첫 등장.

미국에 유학을 가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따고 외교관으로 활동하다가, 이선의 권유로 다시 프린스턴 대학교로 돌아가서 우드로 윌슨의 제자로 정치학 박사 학위[1]를 취득하고 다시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황태자 이진의 정치학 스승을 하기도 했다. 원 역사대로 철저한 친영, 친미파이며 외교관으로서도 유능해서 한영일 동맹의 성사에 기여했고, 권력욕도 강해서 개화당의 줄을 잡고 외무대신, 총리대신까지도 노리고 있다. 이선도 그의 능력을 인정하고 장기적으로 영미권과 관계를 밀접하게 하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중용하지만, 개화파의 독재를 끝낼 생각도 갖고 있어서 출세길은 순탄치 않을 예정... 인 줄 알았으나, 개화당의 사무총장으로 보통선거제 도입 후 첫 총선이 끝난 후 신민당의 사무총장 안창호와 연정을 협상하고, 40대의 나이에 외무대신으로 입각한다.

강력한 반공 사상을 갖고 있어서[2] 이후 극동 공화국 분리공작을 위해 소비에트와 협상을 할 때, 부대표로 협상장에 나온 박진순[3]의 무례를 핑계삼아서 협상을 깨서 결국 이후 협상에서 배제당했다. 최초의 보통 선거로 구성된 내각임에도 이선의 말에 꼼짝 못 하는 상태를 옳지 않다고 보고, 입헌군주제로 이행한다면 군주도 내각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총리직에 열망을 불태우고 있으며, 개화 후 처음으로 야당인 신민당이 내무부를 맡아서 개혁을 추진하면서 관료들의 반발에 부딪히는 것에 대해서도 관료들은 선출된 권력에 복종해야 한다며 야당을 지지하는 등 입헌군주제와 민주 정치에 대한 신념이 확고하다. 그러나 한때 제자였던 이진이 진심으로 입헌군주제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존경하는 부친이 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앞날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걔다가 그가 주장하는 것은 원칙상으로는 틀린 말이 하나도 없지만 실제 인물이 평가가 워낙 엇갈리는지라 독자들에게 욕을 먹고 있다.

이선 본인도 이승만의 능력은 뛰어나지만 편벽한 인품과 권력욕이 너무 강해서 총리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정치적 라이벌을 용납하지 않는 성격 때문에 당장 갈등을 겪는 인물이 군부의 이동휘, 같은 당이자 의형제였던 박용만, 신민당이자 내무대신 안창호, 외교관이자 동기인 김규식, 여운형과는 애초에 사상적 대척점에 있는 등 사실상 거의 모든 신진 정치세력과 척을 진 상황.[4]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정치력이 뛰어난 인물답게 박용만을 따르는 우익은 친일파로, 좌익은 용공분자로 몰아세우면서 각 정당의 보수파를 자신의 밑으로 결집시키려고 노력한다. 관동대지진 문제를 유능하게 해결하지만 이재각의 외교 스캔들에 이재각을 헛소리 했다면서 깔보면서도 반공과 개화당의 선거 승리를 위해 강경조치를 취해서 반영 감정을 일으키고 이선은 대영관계를 박살내버린 이승만에게 크게 분노하여 직접 만나 경고를 받는다. 굴욕감을 느끼지만 황제라서 반박은 하지 못하고 분을 삭힌다.

황제가 자신처럼 권력욕 때문에 1인자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박영효처럼 숙청하려는 줄 알고 독선적으로 나가다가 개화당을 40년 만에 처음으로 야당으로 만들고 만다. 김옥균미친 개에는 몽둥이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청나라 고등판무관으로 보낼 것을 요청한다. 본인 역시 개화당 내의 비판과 황제가 개화당을 내친 것은 황제의 뜻에 반하였기 때문이라는 교훈을 얻고 자신이 이선의 의도에 따라 충실한 신하가 되어 황제가 생각한 것 그 이상의 좋은 성과를 낸다면 다시 권력에 도달할 수 있다는 뜻을 품고 만주로 향한다. 만주에 도착해서는 생각보다 고등판무관이라는 직책이 권력이 크고 자율성이 보장되는 만주 총독이나 다름 없는 조직이라는 것에 만족하면서 열심히 일하고 운게른을 숙청할 계획을 선통제에게 알려준다.

그 계획이란 것은 몽골인의 존경을 받는 복드 칸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이 암살했다는 거짓말을 퍼트리는 것으로 총리인 전봉준김규식은 반대하지만 다나카 상주문을 만든 적 있는 이선은 흡족해하고 이승만 본인 역시 황제의 총애를 받으면 총리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확신한다.


3. 기타[편집]


원 역사에서는 조선 왕조에 비판적이었지만 이선이 유능한 덕인지 그다지 왕조에 비판적이지는 않다.[5] 오히려 이선의 선구안이나 미래예측, 차분함에 놀라서 황제를 진심으로 따르는 경우가 많다.[6]

원래 역사처럼 일본 패는 실력이 끝내줘서 개화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 관동 대학살의 한국인 희생자가 대략 40명이라는 사실을 듣자마자 바로 4배로 부풀려 160명으로 만들고 일본 정부를 미친 듯이 압박한다. 결국 일본 정부는 한국 황제가 준 구호금 40만엔 정도의 거금을 그대로 한국인 희생자 위로금으로 토해내고 만다.

원래 역사에서는 조선 황족 흉내를 위해 프린스 리라고 부를 것을 요청했지만 여기서는 황족을 사칭할 수 없어서 자신을 닥터 리라고 부르게 한다. 이게 유명한지 정적들은 이승만이 만주에 가게 되자 만주 리라고 조롱한다. 만주리는 중국의 만저리우시를 말한다.

이선과 자주 대립하지만 이선의 정치적-외교적 지향점은 이승만과 일치하는 것이 많다. 무리한 팽창을 경계하고 미국과 친하게 지낸다. 민주주의를 확립하고 한국이 반공의 보루로서 영미권에 어필하게 만든다. 목적을 위해 부정한 수단은 어느 정도 용인된다 등등. 차이라면 이선은 자신과 주장이 달라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공산주의에 유연하게 대처한다는 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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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게 자부심이라서 항상 다른 외교관들에게 박사(닥터)라고 불러줄 것을 요구하여 다들 박사(닥터)라고 부른다.[2] 이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하나는 김규식에 대한 라이벌 의식, 또 다른 이유는 확실한 반공으로 대한제국의 힘을 보여줘야 세계를 지배하는 영미권에게 한국의 가치있는 동맹임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3] 이 부분에서 그 유명한 심영물이승만(야인시대) 패러디가 나온다.[4]박헌영 같은 좌익급진파가 슬슬 올라오고 박용만이 대한제국 최초의 파시스트가 되면서 독자들로부터 다시 보니 선녀였다는 평가가 생겼다.[5] 이선이 친미파이자 영미패권을 지지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이승만보다 훨씬 진보적이니 이승만 입장에서는 대소련 유화책 말고는 황제에게 정책적으로는 불만 가질 이유가 별로 없다. 단지 황제가 모든 것을 다 할거면 민주주의는 왜 하는 데에 대한 반발이다.[6] 다만 어디까지나 황제가 유능해서 따르는 것이지, 다른 황족들은 무능하다고 생각되면 가차없이 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