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통제 (r20220720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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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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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제12대 황제
선통제 | 宣統帝

만주국 초대 황제
강덕제 | 康德帝

파일:선통제 푸이.jpg
출생
1906년 2월 7일
대청 직예성 베이징
사망
1967년 10월 17일 (향년 61세)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시
능묘
청서릉(清西陵)
재위
청 황제 (선통제 재위)
1908년 12월 2일 ~ 1912년 2월 12일 (3년 72일)
복위
1917년 7월 1일 ~ 1917년 7월 12일 (11일)
만주국 집정
만주국 황제(강덕제 재위)

1932년 3월 9일 ~ 1934년 2월 28일 (1년 357일)[1]

1934년 3월 1일 ~ 1945년 8월 15일 (11년170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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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
청나라 연호
만주어: 거훙어 요소
한자: 선통(宣統)
만주국 연호
집정 시기: 대동(大同)
황제 시기: 강덕(康德)
존호
한호
거훙어 요소 한
Gehungge yoso han
/ke.xuŋ.ŋə|jo.so|χɑn/
ᡤᡝᡥᡠᠩᡤᡝ ᠶᠣᠰᠣ ᡥᠠᠨ᠌
칸호
허브투 요수 하안[1]
Kebtü Yosu Qaγan
/xəb.tu|jɔ.sʊ|xa.ɣan/
ᠬᠡᠪᠲᠦ ᠶᠣᠰᠣ ᠬᠠᠭᠠᠨ
헤우트 요스 항[2]
Khevt Yos Khaan
/xewtʰ|jɔs|xaːŋ/
Хэвт ёс хаан

만주어
아이신기오로 푸이(ᠠᡳᠰᡳᠨ ᡤᡳᠣᡵᠣ ᡦᡠ ᡳ)
중국어
아이신줴뤄 푸이(愛新覺羅溥儀)
한국식 독음
애신각라 부의

만주어
아이신기오로(ᠠᡳᠰᡳᠨ ᡤᡳᠣᡵᠣ)
중국어
아이신줴뤄(愛新覺羅)
묘호
중국어
없음
<헌종(憲宗) / 공종(恭宗)>[3]
시호
배천동운법고소통수문경부관예정목체인입효민황제
(配天同運法古紹統粹文敬孚寬睿正穆體仁立孝愍皇帝)[4]

호연(浩然)

요지(耀之)
제호
손제(遜帝) / 말제(末帝)
영문
Aisin-Gioro Puyi
신장
168cm[5]
국적
파일:청나라 국기.svg 청나라
파일:중화민국 북양정부 국기.svg 중화민국
파일:대만 국기.svg 중화민국
파일:만주국 국기.svg 만주국
파일:대만 국기.svg 중화민국
파일:중국 국기.svg 중화인민공화국


1. 개요
2. 생애
2.1. 즉위와 퇴위
2.2. 복벽과 추방
2.3. 일본의 꼭두각시
2.4. 소련의 포로
2.6. 문화대혁명과 사망
3. 개인사
4. 대중매체에서
4.1. 사극
4.2. 게임
4.3. 만화
4.4. 기타
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청나라마지막 황제, 만주국의 처음이자 마지막 황제.

불과 3살에 즉위했다가 3년 만에 퇴위했다. 망국의 황족으로서 살다가 일본 제국에 협조하여 일본 제국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황제로 옹립되었다가 종전 후 전범으로서 옥살이를 하게 된다. 조선의 이방원, 이성계와 비슷하게 정식 칭호보다 푸이라는 본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마지막 황제라 하여 말제로도 일컬어진다.

만주족이 세운 왕조인 청나라의 황제였지만, 그가 할 줄 아는 만주어는 '일어서'라는 의미의 '일리' 밖에 없었다.[3] 사실 이건 19세기 중반부터 청조가 본격적으로 기울기 시작하며 만주족 대신 한인들이 득세하고 만한병용, 만한합벽의 원칙마저 서태후가 폐지한 후엔 관료 사회에서도 만주인 대신 한어를 쓰는 한인들이 주류가 되면서 점차 심해지는 현상이었으나, 유아기에 신해혁명을 맞이한 푸이는 만주어를 조금이나마 배울 기회마저 얻지 못했고, 만주어를 배울 기회는 평생 다시 오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멸망한 국가의 마지막 황제는 다음 왕조가 묘호 등을 결정하지 않을 경우, 폐제로 인정되어 공식적으로는 황제 취급을 하지 않는다. 신해혁명으로 공화제를 기반으로 한 중화민국이 세워졌고, 당시 상황이 상황이었던 만큼 선통제의 묘호를 결정할 수가 없었다.[4]

묘호는 두 가지가 있는데, 1967년에 대만에 있던 종친들로부터 헌종(憲宗)이라는 묘호를 받았고, 2004년에는 공종(恭宗)이라는 묘호를 받았다. 시호는 배천동운법고소통수문경부관예정목체인입효민황제(配天同運法古紹統粹文敬孚寬睿正穆體仁立孝愍皇帝). 하지만 중국 공산당 정부에서는 묘호와 시호 모두 인정하지 않고 손제(遜帝)[5]라는 칭호로 부르거나 그냥 푸이라는 이름 그대로 부른다.

한호(만주식 군주 칭호)는 거훙거 요소 한.

는 아이신기오로 푸이(愛新覺羅 溥儀, 애신각라 부의). 만주어 발음으로도 푸이고 중국어 발음으로도 푸이이다.[6][7] 헨리(Henry)라는 영어 이름도 있는데, 푸이의 개인 교사였던 영국인 레지널드 존스턴(Reginald Johnston)헨리 8세의 이름에서 따서 붙여준 이름이다. 하지만 이 이름은 1920년부터 1932년까지 서양인들과 대화할 때만 잠깐 사용되었을 뿐이며, 중국에서는 잘 쓰이지도, 알려지지도 않았다. 청나라 때는 황제의 본명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무례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당연히 본명이 불릴 일이 거의 없었고, 제위를 잃고 평민이 된 후에는 그냥 푸이 선생이라고 불렸기 때문이다. 아이신기오로라는 성은 잘 쓰이지 않았다.

푸이의 이복동생 푸런(溥任, 1918년 8월 17일 ~ 2015년 4월 10일)은 이름을 한족식 이름인 진유즈(金友之, 김우지)로 바꿨다. 즉, 이름을 바꾸면서 성도 진(金) 씨로 함께 바꾼 건데, 현재도 많은 만주족들은 진씨 성을 사용한다.[8]

연호는 만주식으로 거훙거 요소, 중국식으로 선통(宣統). 만주국의 연호는 강덕(康德).

일생동안 신해혁명, 군벌들의 전쟁, 국민혁명,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만주 전략 공세 작전,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까지 중국 근현대사의 굴곡이란 굴곡은 모두 다 겪으면서 살아남고 황제만 2번을 한, 20세기 중국에서도 손꼽히게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인물이다.

2. 생애[편집]



2.1. 즉위와 퇴위[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80px-PuYi_1909.jpg
아버지 순친왕과 선통제(사진 오른쪽에 서 있는 어린이)

청나라의 11대 황제였던 광서제의 이복 동생인 순친왕(醇親王, 1883년 ~ 1951년) 아이신기오로 짜이펑(愛新覺羅 載豊)과 구왈기야 여우란(瓜爾佳 幼蘭)의 아들로 태어났다.

큰아버지 광서제가 후사를 남기지 못한 채 죽자 서태후에 의해 3살의 어린 나이에 황제에 올랐다. 아버지 순친왕이 아닌 어린 푸이가 즉위한 이유는, 당시 계승법상 황제는 하나의 항렬에 1명만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아버지 순친왕은 형인 광서제와 같은 항렬이라서 황제가 될 수 없었다. 당장 전대의 광서제부터가 본래는 동치제의 사촌동생이라서 황제가 될 수는 없었으나 광서제의 모친이 서태후의 여동생이라 혈연으로 가까웠기에 서태후가 억지로 옹립한 형태였다.[9]

하지만 정작 서태후는 광서제가 세상을 떠난 다음 날 급사했기 때문에 섭정은 아버지인 순친왕과 광서제의 황후인 효정경황후 예허나라씨(孝定景皇后 葉赫那拉氏)가 선통제가 집권하면서 융유황태후(隆裕皇太后)가 되어 공동으로 맡았다. 여담으로 어린 나이인 그가 긴 즉위식을 지루해하며 칭얼거리자 그를 품에 안고 있던 순친왕이 "울지 마십시오, 울지 마십시오, 곧 끝납니다, 곧 끝나요(別哭別哭、快完了、快完了)!"라고 달랬다고 한다. 그런데 이건 "청나라가 곧 망한다(快亡)"는 말과 발음이 비슷했는데[10], 그 말대로 그의 재위는 오래가지 못하고, 1911년신해혁명으로 1912년 2월 12일 위안스카이가 푸이의 퇴위를 재촉하며 제시한 조건에 태후인 융유황후가 서명을 하는 것으로 폐위되고 만다. 민심의 혼란을 우려한 것인지 민국과의 협정 내용대로 장훈복벽 이전까지 외국 황제의 예우를 받으며 궁전인 자금성 안에서 청나라 소조정의 황제로서 지내게 된다.

2.2. 복벽과 추방[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87px-Puyi_%281922%29.jpg
파일:attachment/Xuantong.jpg
중화민국 시절의 푸이
장훈복벽 당시[11]

이후 위안스카이는 1914년 11월 23일 복벽 정치 징치령을 통해 복벽파를 탄압하다가 1915년 12월 12일 홍헌제제를 선포함으로 자기 자신이 황제에 자리에 오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에 반발하는 호국전쟁이 일어나면서 1916년 3월 23일 제제를 취소하고 6월 6일 급사했다. 이후 남방에는 탕지야오, 루룽팅 등의 군벌들이 할거하고 북방에서는 직계와 환계가 위안스카이의 빈자리를 놓고 물어뜯고 싸우면서 푸이의 운명은 뒤흔들리기 시작한다.

1916년부터 국무총리 돤치루이와 대총통 리위안훙 사이의 부원지쟁이 격화되자 장강순열사 장쉰, 전 국무총리 쉬스창 등은 선통제를 복위시킬 것을 주장했는데 1917년 5월, 돤치루이 탄핵으로 내전이 일어나기 일보 직전인 급박한 상황이 되자 장쉰이 정치를 중재한다는 목적으로 베이징으로 상경, 국회와 약법을 해산한 다음에 장훈복벽을 단행하여 1917년 7월 1일 선통제를 복위시켰으나 국무총리 겸 토역군 총사령관 돤치루이의 반격으로 얼마되지 않아 일수로 단 12일 만인 7월 12일에 도로 퇴위했다.

1924년 9월, 2차 직봉전쟁이 일어나자 직예군벌 소속이었던 3로군 총사령관 펑위샹북경정변을 일으켜 국민군 1군 사령관에 취임, 베이징을 점령하고 핍궁사건을 일으켜 <수정청실우대조례>를 체결하고 청황제의 존호를 폐지하여 푸이와 청황실을 자금성에서 내쫓아버렸다. 이 결정으로 중국은 돤치루이, 장쭤린 류의 푸이 복위파와 폐위 찬성파가 격렬한 대립을 벌였다. 그러나 베이징의 새로운 지배자가 된 봉천군벌의 수장 장쭤린도 푸이를 자금성에 돌아오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푸이는 순왕부로 돌아가 기거하다가 1925년 2월 25일 텐진의 일본 공사관으로 처소를 옮겼다.

1928년 6월 8일, 국민당의 2차 북벌국민혁명군이 베이징을 점령했다. 이어 1928년 7월 3일부터 7월 11일까지 장쭝창의 부하 출신인 군벌 쑨뎬잉은 국민혁명군에게 투항한 직후 베이징 동쪽에 위치한 동릉을 대대적으로 도굴했다. 국민당이 역대 조상을 욕보인 이 사건으로 푸이는 격노했고 이후 일본과 손잡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후 1931년 11월까지 일본령 톈진 조계 지역에 거주하였으며 1931년 9월 만주사변이 발생한 이후 일본에서 푸이를 옹립하여 만주에 괴뢰국을 세우려는 움직임이 포착되자 장제스는 1931년 11월 2일 톈진에 거주하던 푸이에게 과거 북양정부와 청나라 황실이 맺었던 협약을 다시 이행하겠다고 제안했다. 다시 자금성에 살게 해주고 품위 유지 비용을 대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하지만 난징 국민정부에 대한 불신이 깊었던 푸이는 이를 거절하고는 11월 8일 톈진사변으로 계엄령이 선포된 틈을 타서 일본군 특무기관장 도이하라 겐지의 도움으로 11월 10일, 천진사변을 틈타 톈진을 떠나 일본에 합류했다.

베이징 시민들은 폭죽을 쏘며 푸이의 추방을 기뻐했다고 하는데, 청실 복고론자였던 레지날드 존스턴은 중국 내부에서 군주정의 인기가 드높았다는 기록을 많이 남겼다. 당시 중국 남방과 북방의 분위기도 다르고 시각도 워낙 치열하게 대립해서 상충되는 기록이 남아도 이상한 것은 아니다. 남방의 공화주의자들은 푸이를 처형해야 한다는 둥 과격한 주장을 펼쳤고, 레지널드 존스턴은 만주국 건설조차 동방의 여명 운운하며 찬양할 정도로 좀 과도하게 군주정을 지지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Puyi_and_Wanrong.jpg
톈진 망명 시절의 푸이와 완룽 부처.

2.3. 일본의 꼭두각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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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3월 타임지 표지를 장식한 푸이

만주국 선포 과정에서 장징후이 등은 짱스이만주국의 수령으로 내세워 공화국을 세우자고 주장했고 황족인 아이신기오로 시치아는 자신이 황제가 되고 싶어했다. 반면에 산동성의 쿵더청을 데려와서 황제로 옹립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결국 선통제의 덕성을 시험하기 위해 먼저 집정에 취임시키자고 결정됨에 따라 1932년 3월 1일 만주국의 집정(執政, 최고 통치자)이 되었다가 1934년부터 군주가 되었다. 물론 철저한 일본 제국꼭두각시였다.

한 예로 선통제 개인은 전통적인 청나라 황실 출신답게 티베트 불교 신자였음에도[12] 일본의 강압으로 신토가 만주국의 공식 국교가 되었다. 다른 예로 도쿄에 가서 쇼와 덴노를 만났을 때는 날씨가 맑은 것도 천황 덕분이라는 식의 찬양도 했다는 기록도 있다. 물론 의전상으로는 만주국은 일본의 가장 친한 우방으로서 의전 역시 일본 천황 다음이었다. 일부 묘사처럼 일제에게 대놓고 핍박을 당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실질적으로 푸이는 꼭두각시였고, 그 역시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실제로 푸이는 전범 재판 당시 증인으로 출석하여 이 사실을 그대로 밝힌 바 있다.

박정희가 육군대학을 졸업할때 금시계와 은사품을 하사하였다. 괴뢰국이긴 해도 처음으로 추축국 지도자와 만난 한국인일 듯 하다.

2.4. 소련의 포로[편집]


제2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들자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국에 군대를 진주시켰고, 그에 따라 만주국도 사실상 붕괴되었다. 푸이는 피난길에 오르면서 통화시 부근에서 간단한 회의를 소집해서 만주국을 해산했다.[13] 하지만 이것도 푸이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 일본과 만주국의 잔존 내각에서 장제스와 협상하기 위해서 걸리적거리는 만주국 따위는 빨리 없애 버리기 위해 시급히 결정한 일로 푸이는 붓으로 죽죽 그은 임시 조서를 읽으면서 그야말로 얼렁뚱땅 퇴위해야 했다.[14] 장징후이 등이 소련군과 협상할 수 있으리라 여겨 신경으로 갔다가 줄줄이 체포되는 동안 푸이는 일본으로 피란가라는 통보를 받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기가 좁아서 복귀인조차도 쫓겨나는 지경이었고 자기는 어떻게 해야 하냐는 복귀인에게 푸이는 기차를 타고 일본에 가라고 헛소리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비행기가 이륙하기 직전, 공항이 소련군에게 점거당하면서 1945년 8월 17일에는 소련군에게 붙잡혀서 전범 대우를 받았다.

소련군에 체포되었을 당시만 해도 푸이는 공포에 떨었지만, 소련은 한번도 다뤄본 적이 없는 타국의 군주포로[15][16]에 대해 특별 대우를 해주었다.
그가 수감된 모르카프카 수용소의 소장은 그를 위해서 작은 파티를 열어주고, 그에게 어떤 요구 사항이 있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이후의 생활도 푸이와 그의 일행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었다. 소련 측은 그들을 요양자처럼 대했다. 음식도 매일 4끼[17]를 배급했다. 음식뿐만 아니라 거처에 있어서도 푸이는 라디오가 있는 독방을 받았고, 소련 측은 그가 피아노를 칠 줄 안다는 사실을 알고 피아노도 거처에 가져다 주었다. 다른 수감자들이 노동을 할 때 그는 산책을 하거나 간수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나중엔 수용소 밖을 나가 등산을 하거나, 강가나 숲으로 산책을 했다. 오히려 이 시기 활동범위는 허수아비 황제 노릇을 할 때 보다 넓었으며, 하고 싶은 일도 자유롭게 했다. 푸이는 하루 종일 불경을 읽거나 좌선수행을 하고, 점도 치면서 놀았다. 그리고 함께 수감된 시종들에게 황제로서 문안 인사를 받았다. 이때 몸에 좋은 광천수를 대접받아 건강도 상당히 좋아졌으며, 같이 끌려온 장징후이나 시치아 등 만주국 내각 포로들은 푸이가 소련에 영향력이 있는 줄로만 알고 푸이에게 아부하면서 자신들을 중국에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스탈린에게 부탁해달라고 푸이에게 간청했다. 푸이는 자신도 포로 신세에 불과하다면서도 마지못해서 스탈린에게 편지를 썼지만 자신이 소련에 살고 싶다고 보낸 편지와 마찬가지로 묵살당했다.

이후 하바롭스크의 수용소로 보내져 공산주의 교육을 받았고, 여기서 푸이 일행은 2층 건물을 따로 받아 사용했는데 1층은 시종들이, 2층은 푸이가 머물렀다고 한다. 현재 수용소는 철거되고 휴양지로 바뀌었다. 일행도 청소와 식품 수령 등의 노동에 참가했지만, 푸이는 여기서도 일은 하지 않았다. 다만 수용소장이 정원에 농사를 짓도록 허용해 시종들이 풋고추토마토, 가지, 강낭콩 등을 심어 길렀는데 이들 채소들이 쑥쑥 자라는 게 신기했던 푸이가 직접 물을 주고 관리했다고 한다. 이후에 45특수전범수용소로 이송 되었는데, 이곳에서도 우대 조치는 계속 되었다. 이러한 소련의 호의에 대해 푸이는 몹시 의외로 여기고 고마워했다. 나중에는 중국으로 송환 되는 것을 걱정해서[18] 소련군 관계자에게 자기 소지품으로 갖고 있던 금품이나 시계 등을 뇌물로 주고 중국 송환을 막아 달라고 요청할 정도였고, 러시아어를 아는 동생 푸제를 시켜 스탈린에게 4차례나 감사와 함께 소련에 머물 수 있게 허락해 달라는 편지를 써 보냈다. 국민정부가 집권하던 시절에 스탈린은 푸이의 편지를 프라우다에 게재하는 등 그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냈으나 국공내전이 시작된 1947년부터는 푸이의 편지를 무시했으며, 1950년에 온 마지막 편지는 분명한 거절의 의사를 표명하고 푸이를 마오쩌둥이 집권한 중국으로 돌려보낸다.

2.5. 중화인민공화국의 식물원 정원사[편집]


이렇게 지내다가 1946년 8월 16일, 극동국제군사재판에 증인으로 출석, 만주국 황제 때의 일을 증언한 뒤 1950년중국으로 끌려갔다. 처음 중국에 송환되자 푸이와 그의 일행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있었다. 바로 처형당할 거라 예상했지만, 중국 공산당은 체제 선전 겸 내부 안정을 위해 반대 세력이라 해도 더 이상 정치적 기반이 남지 않은 자들과 매국노로 분류하기엔 애매한 자들에게는[19] 관용을 베풀기로 했다. 비단 선통제뿐만 아니라 거물급들인 데므치그돈로브, 장징후이와 같은 만주국과 몽강국의 거물 정치인들, 정동국, 두위밍 등 국공내전 중 포로로 잡힌 국민혁명군의 고급 장령들은 이런 반동들까지도 사회주의 일꾼으로 성공적으로 개조하는데 성공했다고 과시하기 위해 살려두어 전범수용소에 수감하고 사회주의 재교육을 실시하였다.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로 한때나마 중국 공산당 지도부 전원을 신민으로 거느렸었던 푸이는 더할 나위 없는 선전감이었던 것.

중국에서 수감되는 동안 위해는 없었지만, 소련에서 누리던 특혜는 없었고, 영화 마지막 황제에 나온 것처럼 모든 일을 시종들의 도움 없이 자신이 해야 했다. 이때 푸이는 수감자들 사이에서 생활력이 없다고 맨날 까이기도 했다.[20] 1956년, 복귀인이라 불리던 이옥금과 공식적으로 이혼하였고 푸순 전범 교도소에서 10년 동안 지내다 마오쩌둥의 특별 사면령으로 출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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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과 찍은 사진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시민이 되어 중국과학원 식물연구소 베이징 식물원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이를 두고 좀 과장해서 정원사로 일했다고 널리 알려졌다.

중국 정부의 소개로 항저우 출신 간호사인 리수셴(李淑贤)과 1962년 4월 30일 결혼했다.[21] 1964년 전국 정치협상회의 문사 자료 연구 위원회로 전출되어 자료 전문 위원을 역임하였고, 인민 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위원'이 되었다. 대한민국으로 치면 국회도서관 서기관 및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역임한 셈이니 고위급 인사로 대접받았다는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는 새로이 중국의 지배 세력이 됐고 어찌됐건 청나라를 계승하는 입장인 중국 공산당이 구 세력을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신체제의 안정성과 대범함을 과시하고, 정통성을 확보하려고 한 측면도 크다. 어쨌든 인생 후반기를 새 아내랑 함께 다정하고 평온하게 지냈으며 일족도 무사했으니, 가히 한나라 헌제후주 공제와 버금가는 편안한 말년이다.

2.6. 문화대혁명과 사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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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의 푸이. 많이 수척해진 모습이다.

하지만 푸이의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을때는 한창 문혁이 닥쳤을 때라 매우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웠다. 그가 교도소에 갇혀있을 때 그를 반동이라고 하면서 계속 핍박하던 교도소장이 나중에 풀려난 푸이 앞에서 홍위병한테 끌려가서 반동분자, 수정주의자라며 린치를 당할 정도였다.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는 비참한 꼴이 된 소장을 동정한 푸이가 홍위병들에게 착한 사람이라며 풀어주라고 말하지만 홍위병들은 듣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에서 교도소장은 푸이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새 삶을 찾기를 바라며, 푸이를 무조건적으로 몰아붙이는 다른 교원들로부터 그를 보호해주고 있다.[22]

교도소장은 작중 좋은 인물이며, 푸이가 홍위병으로부터 그를 변호하는 것은 '동정'이 아니라 '진심'으로 보인다. 일례로 푸이는 홍위병들에게 "그는 좋은 스승(He is good teacher)"이라고 항변하다가 밀쳐 넘어진다.[23] 또한 홍위병들이 교도소장을 고발하는 죄목은 제국주의자, 반동분자, 배신자인데 이는 바로 푸이가 과거 고발당한 죄목이다. 영화 속에서 언급되지는 않지만, 해당 죄목은 교도소장의 이러한 성향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추측할 수 있다.[24]

그런가 하면 어느 날 푸이의 집에 웬 여자들이 들이닥쳐서 "우리는 네놈이 만주국 허수아비 황제 시절에 궁녀였는데, 그때 너에게 강간당했다!" 하면서 보상하라고 날뛰었다고 한다. 그 중에는 홍위병 표식을 하고 있는 이도 있었는데, 그걸 본 진짜 홍위병이 오더니만 욕을 퍼부으면서 끌고가더니 그가 보는 앞에서 패 죽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가짜 홍위병도 판쳤기에 이렇게 길거리에서 대놓고 죽이는 일도 허다했다. 물론 진짜 홍위병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어차피 홍위병이라는 게 정부에서 정식 인가받은 조직도 아니고 그냥 붉은기 들고 붉은 완장 찬 무리 혹은 개인들이 스스로 칭하고 다니던 거라 진짜, 가짜 따지는 것에 의미는 없었다. 나중에 다른 여자들이 찾아와 만주국 궁녀였다며 보상을 요구하기도 했는데, 그들이 보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다른 여자들이 몰려와서 우리도 만주국 궁녀였다며 난리를 부렸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푸이는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제대로 치료도 못 받을 뻔하다가[25] 저우언라이 수상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치료시기를 놓쳤던지 혼수상태에 빠진 뒤 제대로 된 유언도 못 남기고 신장암과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때 그의 나이 61살이었다. 그나마 병상에 있었을 때는 저우언라이 수상의 배려로 치료를 받을 수 있어 나름 정중한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26]

시신은 화장되어 베이징의 인민 납골당, 베이징 팔보산 혁명공묘(北京 八宝山 革命公墓)등을 전전하다가 1995년 1월 26일 사후 28년 만에 청 왕조의 두 능구 중 허베이성 이셴(易縣)의 청서릉(清西陵)[27]으로 이장됐다.

3. 개인사[편집]


푸이는 (청나라 소조정까지 포함해서)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서 안경을 쓴 청나라 황제였다. 처음에는 황실의 웃어른들이 반대했지만 푸이의 근시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결국 받아들였다고 한다. 푸이 본인은 자금성 시절 해럴드 로이드의 영화를 매우 즐겨봤기 때문에 로이드처럼 안경을 쓰게 되자 오히려 매우 기뻐했다.

궁정 시절에는 자금성의 부패한 내무부에 대해서 개혁을 시도했을 정도로 궁정 내 부조리를 개선하려고 애썼다고 한다. 레지널드 존스턴의 자금성의 황혼에 따르면, 황실의 각종 재산과 보화에 대한 실셈을 실시하여 부패한 환관들의 횡령을 적발하려 노력했으나, 자금성에 의문의 화재가 발생하면서 이러한 노력이 유야무야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중국 근대 철학자 왕궈웨이가 남서방행주라는 직책을 맡아 소조정의 서지, 보물 등을 조사한 시점도 이 전후로 추정된다.

그러나 톈진 시절에는 씀씀이가 매우 헤프고 사치스러운 한량이었다고 한다. 하긴 청나라 황제에 올랐을 때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였고, 만주국에선 일본의 꼭두각시였기 때문에 사치 외에는 따로 할 것도 없었지만, 어쩌면 그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자유였을지도 모른다. 베트남 제국 마지막 황제 보대제와 여러 모로 비슷하다.

평생 5번 결혼하고 까지 포함해 여섯 명의 부인을 두었으나 슬하에 자식은 없었다. 황후인 효각민황후 고불로씨(孝恪愍皇后 郭布羅氏)와는 사이가 안 좋았다. 효각민황후 고불로씨는 푸이와 마찬가지로 간단하게 이름인 '완룽'으로 부른다. 풀네임은 고불로 완룽(郭布羅 婉容)이며, 영어 이름은 엘리자베스(Elizabeth)였다.

살아생전의 이미지는 순수하며 선량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론 아이를 화로에 던져 죽여벼리는 등의 악행을 저지른 적도 있다. 좋은 예가 1935년에 정실황후 완룽이 일본군 장교의 사생아를 임신한 사실[28]을 알게 된 푸이는 완룽이 아이를 출산하자마자 그 아이를 화로에 던져 죽여버렸다. 또한 완룽에게는 아이가 잘 크고 있다며 거짓말을 하고 숨기는 뻔뻔함을 보였다. 푸이가 아이를 화로에 던져 죽인 사실은 초판 자서전에는 혐오감을 준다는 이유로 기록되지 않았고[29] 푸이가 사망하고 한참 후에야 밝혀졌다. 푸이가 아이를 죽인 이유로는 질투심 뿐만 아니라 아이가 일본에 정략적으로 이용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하지만, 아이를 죽인 것 자체가 현대에는 물론 당시에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악행이다. 게다가 푸이는 완룽에게 잘해주지도 않았고 그녀의 흡연과 아편 중독을 미워하기만 했으며, 오히려 첩을 들이면서 완룽에 대해 무관심으로 대응하기만 했다. 더 심하게는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전혀 슬퍼하지도 않았고 태연하기만 했다. 마지막 아내인 리수셴을 제외한 모든 아내들과 이혼한 이유도 취미생활에만 빠져, 아내들에게 잘하지도 않고 가정을 돌보지 않은 푸이의 책임이 매우 크다. 이 사실이 밝혀져서 푸이의 평판이 제대로 깍이고 말았으며, 현대에 들어선 푸이는 평가가 매우 나쁘다. 완룽은 1946년아편에 빠져 병사할 때까지도 자신의 아이가 오빠의 주선으로, 시골의 평범한 집에서 자라고 있는 줄 알았고 매달 자신의 오빠에게 양육비를 건넸다고 한다.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는 이 이야기가 실제 사실과 다르게 각색되어 나온다. 아이는 완룽이 푸이의 운전사와 사통해 생겼고, 그 사실을 일본군도 알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영화에선 완룽이 "당신을 위해서 했어요. 아이의 아버지는 만주족이에요!"라고 하자 푸이는 일을 덮기 위해 "황후가 수태를 했소. 만주국의 후사가 생겼소."라고 둘러댔지만,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만주영화협회 이사장 아마카스 마사히코는 "네, 여기에 아이 아버지의 이름이 있습니다."라며 운전사의 이름을 보여준다. 그리고 푸이는 하얗게 질려서 완룽의 손을 뿌리치고 식당을 나가버리고, 아마카스는 "일본인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이며 온 아시아는 일본의 영토다!"라고 의기양양해한다. 그 결과로 황실의 명예를 위해 운전사는 총으로 즉결처분.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의사가 독극물이 든 주사를 놓아 죽이는 걸로 묘사된다.

완롱 황후와의 부부 관계 또한 원만하지 못했는데, 황후의 흡연과 아편 중독과 정신병 등이 원인이었다. 자식을 두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 제수가 되는 사가 히로는 푸이가 게이였기 때문이었다고 추측했는데, 1962년 재혼한 부인 리수셴(李淑賢)은 게이설을 부정하고 발기부전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참고로 푸이를 (현대) 중국 최초의 공식 이혼남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니다. 현대중국 최초로 정식 절차를 받고 이혼한 유명인은 시인 쉬즈모(徐志摩)[30]이다. 쉬즈모는 1897년에 태어나 1922년 아내 장여우이(張幼儀)와 이혼한 일로 당시 중국을 시끌벅적하게 했다. 이후로 여성 편력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중국에 서양시를 보급했으나 1931년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완룽은 거란족의 후예라는 설도 있는 몽골계의 소수 민족인 다우르(達斡爾, Daur)족 출신이다. 만주국 붕괴 이후 공산군에게 포로로 잡혔으며 공산군의 학대를 받았다. 1946년 통화 사건으로 공산군과 국부군의 전투에 휘말려 크게 부상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아편 금단현상으로 매일 고통을 호소하며 울부짖었으나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는커녕 공산군의 구경거리가 되었고[31] 설상가상으로 마차에 묶인 채로 조리돌림을 당하는 등 학대당하다가[32] 1946년 6월 20일 연길의 감옥에서 39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 사후 사가 히로와 저우언라이가 만났을 때 이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가 히로가 이 일을 따지게 되었는데, 저우언라이는 이 일에 놀라며 자신도 모르는 일이었고 당시 공산군 수뇌부에서 만주국 황족들을 보호하라고 지시하긴 했으나,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일선 장병들이 일본인들과 구분하지 못해서 그런 학대가 발생했다고 해명했다.

두 번째 부인 숙비 어르더트씨(淑妃 額爾德特氏)도 유명하다. 숙비 어르더트씨는 몽골족 출신으로 풀네임은 어르더트 원슈(額爾德特 文繡)이다. 완룽과 마찬가지로 간단하게 원슈라고 부른다. 푸이는 원슈와도 관계가 나빠서 결국 원슈가 푸이에게 이혼하겠다고 하면서 결국 이혼하고 만다.

1살 터울의 바로 아랫 동생인 아이신기오로 푸제(愛新覺羅 溥傑)는 일본 귀족 사가 히로와 결혼하여 2녀를 두었다. <유전의 왕비, 최후의 황제>에서는 사가 히로와의 결혼으로 인해 푸이와 푸제가 처음에는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나중에는 화해하고 사가 히로 또한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와 있는데, 실제로 푸이는 일본 여자와 결혼한 동생을 평생 일본 스파이로 의심하여 경계했다고 한다.

이복동생 아이신기오로 푸런(愛新覺羅 溥任)은 성을 진(金)씨로 바꾸고 이름을 '유즈(友之)' 로 바꾸었으며, 현재 아이신기오로 가문의 수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푸런의 아들 진위장(金毓嶂)은 자신의 다음 대부터는 성을 다시 아이신기오로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푸런은 만주국 황실의 전임 왕위 요구자로 2015년 4월 10일 사망하였다. 만주국 황실과는 별개로 청나라 황실 수장은 다른 인물이 맡으며 현재 청나라 황실 수장은 아이신기오로 헝전(爱新觉罗 恒镇)이다. 그는 선통제의 양자 아이신기오로 유얀(毓喦)의 장남이다. 다만 현재 왕위 요구자/아시아 항목에서는 합의에 따라 청나라와 만주국의 왕위 요구자가 삭제된 상태다. 사실 선통제의 전임자인 광서제부터가 직계가 단절되어 즉위한 방계 출신 황제였으므로, 정통성 측면에서 청나라 황실의 계보는 사실상 단절된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박정희와도 인연이 있는데, 1942년 박정희가 만주국 소재 육군 군관 학교를 졸업할 때 우등상과 함께 금으로 된 시계를 하사한 사람이 푸이였다고 한다. 다만 박정희의 선배기수들과 달리 박정희가 졸업할 때는 푸이가 졸업식장에 나오진 않아서 직접 대면하진 못하고 시계만 따로 전달받았다.

청나라 마지막 환관인 순야오팅(孙耀庭)[33]은 푸이가 매일 환관들과 하인들을 때리고 폭언을 했다고 언급한다. 다만 어려서부터 황제로 살았던 푸이가 환관들을 어떻게 봤을지와 평생 이용만 당했던 삶을 생각해보면, 그의 인간성의 문제라기보다는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라 볼 수도 있겠다.[34] 가령 푸이 뿐만 아니라 중국의 황제들은 환관들을 그리 좋게 다루지 않았다. 푸이의 성향이 특별히 나빴던게 아니라 원래부터 궁중에서 내려오는 뿌리깊은 악습이었던 것.

청 황제 중 유일하게 실록이 없는 황제이다. 청 왕조 내내 황위 찬탈이 없었던 관계로 선통제 이전 청 황제의 실록은 모두 편찬되었고 광서제의 덕종실록의 경우 청 멸망 후인 1921년에 편찬되었는데, 푸이는 덕종실록이 편찬되었을 때 살아있었고 이후에도 오랫동안 생존한 탓인지 실록의 명칭을 사용한 공식 기록물이 없다. 다만 <선통정기>가 청실록의 부록 형태로 실록의 양식을 따라서 편찬되었기 때문에 선통정기가 실질적으로 실록의 역할을 하고 있다.

여담으로, 죽기 직전에 치킨라멘을 먹고 싶어 했다고 사가 히로가 회고전에서 말하였다. 트리비아의 샘에서는 이걸 다루고, 제작진이 직접 선통제의 무덤에 가서 치킨라멘을 조리해서 바쳤다.

4. 대중매체에서[편집]



4.1. 사극[편집]


영화 <마지막 황제(L'ultimo imperatore, 1987년)>는 그의 자서전 <나의 전반생(我的前半生)>에 저술된 내용을 영화화한 것이다. 영문판 제목은 <황제에서 시민으로(From Emperor to Citizen)>. 이 자서전은 중국 공산당 밑에서 교화 생활을 하던 중에 썼던 <나의 죄악의 전반생>이라는 후덜덜한 제목의 자아비판서를 바탕으로 쓴 글이라고. 영화는 배경이 중국이고 대부분의 등장 인물이 중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배우가 중국어가 아닌 영어로 연기하는(…) 희한한 광경을 볼 수 있다. 그래도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한 9개상을 석권했고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여기서 푸이 역을 열연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은 존 론은 나중에 괴작 영화들에만 주연(...)하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다크 히어로 영화인 "섀도우"에서 칭기즈 칸의 마지막 후예인 쉬안 칸 역을, 러시아워 2에서 최종 보스로 나온다. 사실 이건 아시안 배우에게 악역, 조연만 시키는 헐리우드의 차별과 한계 탓이 컸다. <M. 버터플라이>에선 여장남자로 나와 제레미 아이언스와 연기하는 등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했지만 별 빛을 보지 못하고 이후로는 중국 쪽으로 아예 노선을 돌려 중국 사극 드라마에 주로 출연했다. 중국에서도 '마지막 황제' 이미지가 강한 탓에 주로 왕으로 나온다. 사극만 찍기 싫어서 중국에 왔는데 여기서도 사극만.. 중국의 최수종...

<마지막 황제>가 유행할 때, <말대 황제>라는 사극을 KBS가 수입을 하여서 방영을 하였는데[35], 이 중국 드라마는 전반적으로 선통제를 찌질한 양반으로 그리고 있다. 영화 마지막 황제를 본 다음에 이 드라마를 본 시청자분들은 꽤 충격을 받았는데, 어른이 된 푸이를 연기한 배우가 바로 <강희제국>에서 열연한 진도명이다. 이 드라마 후반부에 영국인으로 분장해서 한국전쟁을 참회하는 연극 장면이 거의 그대로 나왔다. 진도명은 강희제, 장제스(!?), 진시황[36], 월왕 구천, 한고제 등의 상당히 카리스마 있는 성군 연기를 주로 하는데 이 작품에서 <강산풍우정>의 천계제와 함께 찌질한 암군 역으로 활약한 작품이고 둘 다 잘 어울린다. 성군과 암군을 모두 소화할 정도로 연기력이 출중한 배우.

말대황제는 2015년 리메이크되어 국내에서도 CHING을 통해 소개되었다. 전작보다는 푸이를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수감생활 파트부터 불필요한 중국 공산당 찬양이 나온다. 마지막 부분에서 푸이는 자신의 평생을 회고하며 '나를 진정으로 받아준 건 공산당 뿐이었다'는 선전영화스러운 멘트를 날린다.

홍콩 ATV에서 청나라 전체를 소재로 제작한 드라마 만청십삼황조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인 황성쟁패(皇城爭霸, 해외판은 위성쟁패)에 마지막 황제로 등장. 여기서 아버지인 광서제가 서태후에게 독살되었다는 설정[37]이 붙어있다. 재위 기간은 3년밖에 안되지만 극중에서는 1924년 북경정변 때 자금성을 나가는 장면까지 다룬다.

한국에서는 채널A천일야사에서 청나라 황제로 즉위할 당시의 어린 선통제가 잠깐 등장했다.10분 23초부터 10분 41초까지 사실 천일야사는 최초로 선통제가 등장한 한국 사극(정확히는 재연이 나오는 교양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신해혁명에 예관 신규식, 범재 김규흥, 춘교 유동열 등 몇몇 조선인들이 가담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한국 사극에서 다뤄지지 않았으며, 만주국의 주요 민족으로 조선인(조선족의 직계 기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만주국 내 조선인들의 삶 또한 만주 웨스턴을 제외한 한국 사극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기 때문에[38], 선통제 또한 천일야사를 제외한 한국 사극에서 등장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4.2. 게임[편집]


패러독스 인터렉티브의 전략 게임 <Hearts of Iron 시리즈>에서 만주국의 국가원수로 등장한다. Hearts of Iron IV는 Waking the Tiger DLC를 출시하며 만주국에도 다양한 선택지가 생겼는데 만주국에서 독립 전쟁을 벌여 청나라로 독립하고 중화제국을 선포할 수 있는 선택지가 추가되었다.[39] 동북아시아를 죄다 갈아엎은 호4 모드인 8년 항전에서는 국가원수가 장징후이로 교체되고 푸이는 유럽의 입헌군주국들처럼 안정도를 부여하는 국가정신으로 바뀌었다.

하츠 오브 아이언 2와 4의 모드인 카이저라이히에서는 독일 제국의 도움으로 청조가 복위되어 자금성의 옥좌에 앉아있다. 그러나 청나라의 황제라는 것은 이름뿐이고 만주는 장쭤린의 통치하에 있고 서부와 남부 및 산동에선 반(半)독립 군벌이 할거하며, 청나라 조정의 실권은 독일 제국 출신의 여러 관료들과 외지인들, 그리고 우페이푸가 잡고 있다.[40] OTL의 만주국장쭤린봉천 정부가 대체하고 중국 국민당 세력은 3, 4차 직봉 전쟁 당시 철저히 패배하여 장제스마오쩌둥 역시 모두 죽으면서 우파 세력은 운남으로, 좌익 세력은 팔성 군벌 세력이나 프랑스 등으로 도망쳤다.

다른 모드인 레드 플러드에서는 영국으로 이민하여 헨리 아이신교로라는 영화제작자로 활동 중이다. 게임 도중 세 편의 영화를 만드는데, 영화가 점점 기괴해지며 평 역시 크게 갈리게 된다. 아마 영국 내 촉진주의 운동인 소용돌이 운동의 영향을 받은 듯.

Victoria에서는 게임을 종료하고 점수 화면으로 나올 때 중국은 선통제의 장훈복벽 때 찍은 사진을 그린 초상화가 나온다.

4.3. 만화[편집]


북두의 권의 저자 하라 테츠오가 쓴 창천의 권에서도 등장. 여기선 나이가 먹은 모습으로 등장했으며 시도때도 없이 암살의 공포에 반쯤 정신이 나간 찌질이로 등장한다. 상하이에서 범죄조직을 박살낸 '염왕'이라는 자를 찾아 자신의 보디가드로 삼기 위해 그 염왕이 잠시 몸을 담은 청방이란 조직에 소속됐었던 어느 노인을 독 검시관으로 삼고 이를 이용해 염왕을 찾아내려 했으나 정작 그 밀명을 받은 부하들은 염왕 목에 걸린 상금에 눈이 멀어 검시관을 죽이려 들었다가 끔살당했고 이로 인해 염왕의 진노를 사게 된다(...) 이후 자신을 두들겨 패러 찾아온 염왕에게 그깟 하찮은 독 검시관을 위해 자길 죽이려드냐고 찌질거리지만 '황제든 독 검시관이든 난 단지 의리를 위해 움직인다. 그게 친구야.'라는 염왕의 말에 자신도 그런 친구를 갖고 싶었다며 울음을 터트린다. 이후 갑자기 작화가 업그레이드 되어(...) 자신은 이제 중원의 허수아비 황제지만 자신도 남자인만큼 죽을거라면 싸우다가 죽고 싶다며 보검을 들고 덤벼들었다가 한큐에 비공을 찔려 쓰러지고 그대로 죽나 싶었지만 의외로 목숨을 건지고 이후로는 별 등장이 없다.

지팡구에서는 역사대로 만주국의 황제로 등장하는데 번역자가 푸이가 누군지 몰랐는지 일본식으로 읽어 후기라는 괴이한 이름으로 번역했다. 심약하고 나약해보이는 인상인데 암살당한다.일본어 떠듬떠듬하는 무식한 새끼들이 번역한다고 설치는 허다한 케이스 중 하나...

4.4. 기타[편집]


일본의 동인 음악가인 BITPLANE[41]의 다른 뮤지션 명의 중 하나가 선통제의 만주어 이름 한자가차를 딴 愛新覚羅溥儀(애신각라부의)였다. 딱히 연관성은 없어보인다.

5. 둘러보기[편집]


청사고(淸史稿)

[ 본기(本紀) ]
#fecd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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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cd21 {{{-2 ※ 26권 ~ 160권은 志에 해당. 161권 ~ 213권은 表에 해당. [[청사고|{{{#fff 청사고}}}]]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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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기(本紀) ]
#fecd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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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215·216·217·218·219·220·221권 「제왕전(諸王傳)」
애신각라 예돈 · 애신각라 액이곤 · 애신각라 재감 · 애신각라 탑찰편고 · 애신각라 막이합제 · 애신각라 서이합제 · 애신각라 아이합제 · 애신각라 파아랍 · 애신각라 저영 · 애신각라 대선 · 애신각라 아배 · 애신각라 탕고대 · 애신각라 망이고태 · 애신각라 탑배 · 애신각라 아파태 · 애신각라 파포태 · 애신각라 덕격류 · 애신각라 파포해 · 애신각라 아제격 · 애신각라 뇌모포 · 애신각라 다이곤 · 애신각라 다탁 · 애신각라 비양과 · 애신각라 호격 · 애신각라 엽포서 · 애신각라 석새 · 애신각라 고새 · 애신각라 상서 · 애신각라 도새 · 애신각라 박목박과이 · 애신각라 복전 · 영친왕 · 애신각라 상녕 · 애신각라 융희 · 애신각라 윤제 · 애신각라 윤잉 · 애신각라 윤지 · 애신각라 윤기 · 애신각라 윤우 · 애신각라 윤사 · 애신각라 윤당 · 애신각라 윤아 · 애신각라 윤도 · 애신각라 윤상 · 애신각라 윤제 · 애신각라 윤파 · 애신각라 윤례 · 애신각라 윤의 · 애신각라 윤희 · 애신각라 윤호 · 애신각라 윤기 · 애신각라 윤비 · 애신각라 홍주 · 애신각라 홍휘 · 애신각라 영황 · 애신각라 영련 · 애신각라 영장 · 애신각라 영기(永琪) · 애신각라 영종 · 애신각라 영선 · 애신각라 영성 · 애신각라 영기(永璂) · 애신각라 영성 · 애신각라 영린 · 애신각라 면개 · 애신각라 면흔 · 애신각라 면유 · 애신각라 혁위 · 애신각라 혁강 · 애신각라 혁계 · 애신각라 혁흔 · 애신각라 혁환 · 애신각라 혁합 · 애신각라 혁혜 · 민군왕
222권 「아합출등전(阿哈出等傳)」
아합출 ,석가노 맹가불화 이만주 완자독 맹가첩목아 범찰 동산 탈라 탈원보 불화투, · 왕고 ,왕올당,
223권 「만등전(萬等傳)」
,호이간 맹가포록 대산 오이고대, · 청길노 · 양길노 ,납림포록 금태석 포한 포양고 포이항고, 포점태 · 배음달리
224권 「장황언등전(張煌言等傳)」
225권 「액역도등전(額亦都等傳)」
장황언 ,나륜 장명진 왕익, · 정성공 ,정금 정극장 정극상 정극거, · 이정국
액역도 · 비영동 ,삭해 왜흑, · 하화례 ,다적례 화석례 도류, · 안비양고 · 호이한
83권 「제제공주전(諸帝公主傳)」
동안공주 · 장사공주 · 양양공주 · 평양소공주 · 고밀공주 · 장광공주 · 장사공주 · 방릉공주 · 구강공주 · 노릉공주 · 남창공주 · 안평공주 · 회남공주 · 진정공주 · 형양공주 · 단양공주 · 임해공주 · 관도공주 · 안정공주 · 상락공주 · 양성공주 · 여남공주 · 남평공주 · 수안공주 · 장락공주 · 예장공주 · 북경공주 · 보안공주 · 동양공주 · 임천공주 · 청하공주 · 난릉공주 · 진안공주 · 안강공주 · 신흥공주 · 성양공주 · 합포공주 · 금산공주 · 진양공주 · 상산공주 · 신성공주 · 의양공주 · 고안공주 · 태평공주 · 신도공주 · 의성공주 · 정안공주 · 장녕공주 · 영태공주 · 안락공주 · 성안공주 · 수창공주 · 안흥소회공주 · 형산공주 · 회양공주 · 대국공주 · 양국공주 · 설국공주 · 식국공주 · 금선공주 · 옥진공주 · 곽국공주 · 영흥공주 · 천장공주 · 영국공주 · 흥당공주 · 서평공주 · 낭령공주 · 광화공주 · 창락공주 · 수춘공주 · 장녕공주 · 연경공주 · 정락공주 · 낙온공주 · 영청공주 · 위국문의공주 · 안화공주 · 보강공주 · 창원공주 · 창녕공주 · 금화공주 · 인수공주 · 영수공주 · 당흥공주 · 영평공주
238권 「장혁덕등전(蔣赫德等傳)」
장혁덕 · 액색혁 · 차극 · 파합나 · 송권 · 부이점 · 여궁 · 성극공 · 김지준 · 왕영길 · 당숭아
247권 「팽이술등전(彭而述等傳)」
팽이술 · 육진분 · 요연저 · 필진희 · 방국동 · 우붕거 · 왕천감 · 조정표
250권 「이위등전(李霨等傳)」
이위 · 손정전 · 두입덕 · 풍부 · 왕희 · 오정치 · 황기 · 송덕선 · 이상아 · 아란태 · 서원문
251권 「도해등전(圖海等傳)」
252권 「감문혼등전(甘文焜等傳)」
마가도해 · 이지방
감문혼 · 범승모 · 마웅진 · 부홍열
253권 「막락등전(莫洛等傳)」
막락 · 진복 · 왕지정 · 비아달 · 이흥원 · 진계태 · 진단적 · 마비 · 엽앙류
255권 「장용등전(張勇等傳)」
장용 · 조양동 · 왕진보 · 손사극
256권 「채육영등전(蔡毓榮等傳)」
채육영 · 합점 · 항애 · 화선 · 동위국 · 동국정 · 주유덕 · 장덕지 · 윤벽 · 왕계문
257권 「조국조등전(趙國祚等傳)」
조국조 · 허정 · 주구 · 서치도 · 호세영 · 당희순 · 이린 · 조응규 · 조뢰 · 이방술 · 진세개 · 허점수
261권 「양첩등전(楊捷等傳)」
양첩 · 석조성 · 만정색 · 오영 · 감리 · 황오 · 방태 · 목혁림 · 단응거
262권 「위예개전(魏裔介等傳)」
263권 「왕홍조전(王弘祚等傳)」
위예개 · 웅사리 · 이광지
왕홍조 · 요문연 · 위상추 · 주지필 · 조신교
264권 「학유눌등전(郝維訥等傳)」
265권 「탕빈등전(湯斌等傳)」
학유눌 · 임극부 · 유홍유 · 유건 · 주배 · 장정추
탕빈 · 손지욱 · 육롱기 · 장백행
266권 「엽방애전(葉方藹等傳)」
267권 「장옥서등전(張玉書等傳)」
엽방애 · 심전 · 여두눌 · 서원공 · 허삼례 · 왕사정 · 한담 · 탕우증
장옥서 · 이천복 · 오전 · 장영 · 진정경 · 온달 · 소영조 · 숭축 · 왕서령
268권 「미사한등전(米思翰等傳)」
269권 「장옥서등전(張玉書等傳)」
미사한 · 고팔대 · 마이한 · 전육선 · 두진 · 살목하
삭액도 · 명주 ,여국주 불륜,
270권 「학욕등전(郝浴等傳)」
271권 「서건학등전(徐乾學等傳)」
272권 「탕약망등전(湯若望等傳)」
학욕 · 양소온 · 곽수
서건학 ,옹숙원, · 왕홍서 · 고사기
탕약망 · 양광선 · 남회인
106권 「두이최고곽조최양노이유이유손형전(杜二崔高郭趙崔楊盧二劉李劉孫邢傳)」
두정륜 · 최지온 · 고지주 · 곽정일 · 조홍지 · 최돈례 · 양홍례 · 노승경 · 유상도 · 이경현 · 유덕위 · 손처약 · 형문위
107권 「부여진전(傅呂陳傳)」
108권 「유배루전(劉裴婁傳)」
부혁 · 여재 · 진자앙
유인궤 · 배행검 · 누사덕
109권 「최양두종축왕전(崔楊竇宗祝王傳)」
최의현 · 양재사 · 두회정 · 종초객 · 축흠명 · 산운 · 왕여(王璵)
110권 「제이번장전(諸夷蕃將傳)」
사대내 · 풍앙 · 아사나사이 · 아사나충 · 집실사력 · 글필하력 · 흑치상지 · 이근행 · 천남생 · 이다조 · 논궁인 · 손유정 · 울지승 · 상가고 · 배분
111권 「곽이장삼왕소설정당전(郭二張三王蘇薛程唐傳)」
곽효각 · 장검 · 왕방익 · 소열 · 설인귀 · 정무정 · 왕효걸 · 당예 · 장인원 · 왕준
112권 「왕한소설왕류풍장전(王韓蘇薛王柳馮蔣傳)」
왕의방 · 한사언 · 소안항 · 설등 · 왕구례 · 유택 · 풍원상 · 장흠서
116권 「이왕위육이이두전(二王韋陸二李杜傳)」
117권 「배유위이길전(裴劉魏李吉傳)」
왕침 · 위사겸 · 육원방 · 왕급선 · 이일지 · 두경전 · 이회원
배염 · 유의지 · 위현동 · 이소덕 · 길욱
118권 「장위한송신이이배전(張韋韓宋辛二李裴傳)」
119권 「무이가백전(武李賈白傳)」
장정규 · 위주 · 한사복 · 송무광 · 신체부 · 이발 · 배린 · 이중민 · 이감
무평일 · 이예(李乂) · 가증 · 백거이
304권 「장조등전(張照等傳)」
장조 · 감여래 · 진덕화 · 왕안국 · 유오룡 · 양여곡 · 장태개 · 양석불 · 팽계풍 · 손희렴 · 몽린
305권 「전진군등전(錢陳群等傳)」
전진군 · 심덕잠 · 김덕영 · 전재 · 제소남 · 진조윤 · 동방달 · 전유성 · 추일계 · 사용 · 왕창
306권 「조사일등전(曹一士等傳)」
307권 「위위곽전(魏韋郭傳)」
조사일 · 이신수 · 호정 · 중영단 · 시조생 · 저인지
윤계선 · 유우의 · 진대수 · 장윤수 · 진굉모
308권 「나소도등전(那蘇圖等傳)」
나소도 · 왕초증 · 서사림 · 윤회일 · 왕서 · 방현 · 풍광유 · 양석불 · 반사구 · 호보전 · 왕창
123권 「이소로위조화전(李蕭盧韋趙和傳)」
124권 「요송전(姚宋傳)」
이교 · 소지충 · 노장용 · 위거원 · 조언소 · 화봉요
요숭 · 송경
318권 「아계전(阿桂傳)」
319권 「우민중등전(于敏中等傳)」
장가아계
우민중 · 뉴호록 화신 · 소릉아
322권 「두광내등전(竇光鼐等傳)」
323권 「황정계등전(黃廷桂等傳)」
두광내 · 이수방 · 범의빈 · 조석보 · 사진정 · 전풍 · 윤장도
황정계 · 악미달 · 양정장 · 장유공 · 이시요 · 오미태 · 관보
324권 「방관승등전(方觀承等傳)」
방관승 · 부찰부명안 · 주원리 · 이한 · 이세걸 · 원수동 · 정대진 · 유아 · 육요 · 관간정 · 장조규 · 호계당
325권 「이청시등전(李淸時等傳)」
326권 「개태등전(開泰等傳)」
이청시 · 요입덕 · 이굉 · 하위 · 오사작 · 살재 · 난제석 · 한횡
개태 · 아이태 · 계림 · 원푸
131권 「종실재상전(宗室宰相傳)」
132권 「유오위장류침전(劉吳韋蔣柳沈傳)」
이적지 · 이현(李峴) · 이면 · 이이간 · 이정(李程) · 이석 · 이회
유자현 · 오긍 · 위술 · 장예 · 유방 · 심기제
133권 「이곽양왕장우전(二郭兩王張牛傳)」
134권 「우문위양왕전(宇文韋楊王傳)」
곽건관 · 곽지운 · 왕군착 · 장수규 · 왕충사 · 우선객
우문융 · 위견 · 양신긍 · 왕홍
135권 「가서고봉전(哥舒高封傳)」
136권 「이광필전(李光弼傳)」
137권 「곽자의전(郭子儀傳)」
가서한 · 고선지 · 봉상청
이광필
곽자의
138권 「이이마로전(二李馬路傳)」
139권 「방장이전(房張李傳)」
140권 「최묘이배려전(崔苗李裴呂傳)」
이사업 · 마린 · 이포옥 · 노사공
방관 · 장호 · 이필
최원 · 묘진경 · 배면 · 배준경 · 여인
141권 「최등위위이한노고전(崔鄧魏衛李韓盧高傳)」
최광원 · 등경산 · 최관 · 위소유 · 위백옥 · 이징(李澄) · 한전의 · 노종사 · 고하우
142권 「이양최류위로전(李楊崔柳韋路傳)」
이린(李麟) · 양관 · 최우보 · 유혼 · 위처후 · 노수
143권 「고원이위설최대왕서치신전(高元李韋薛崔戴王徐郗辛傳)」
고적 · 원결 · 이승 · 위륜 · 설각 · 최한형 · 대숙륜 · 왕굉 · 서신 · 치사미 · 신비
144권 「내전후최엄전(來田侯崔嚴傳)」
내진 · 전신공 · 후희일 · 최녕 · 엄여
145권 「원반여양엄두전(元王黎楊嚴竇傳)」
146권 「이이전(二李傳)」
원재 · 왕진 · 여간 · 양염 · 엄정 · 두참
이서균 · 이용(李鄘)
147권 「삼왕노신풍삼이곡이로전(三王魯辛馮三李曲二盧傳)」
왕사례 · 노경 · 왕난득 · 신운경 · 풍하청 · 이봉(李芃) · 이숙명 · 곡환 · 왕건휴 · 노군 · 이원소 · 노사매
148권 「영호장강이유전왕우사전(令狐張康李劉田王牛史傳)」
영호창 · 장효충 · 강일지 · 이유(李洧) · 유옹 · 전홍정 · 왕승원 · 우원익 · 사효장
149권 「유제오반왕이전(劉第五班王李傳)」
150권 「이상조최제로전(李常趙崔齊盧傳)」
유안 · 제오기 · 반굉 · 왕소 · 이손(李巽)
이계 · 상곤 · 조경 · 최조 · 제앙 · 노매
151권 「관동원조두전(關董袁趙竇傳)」
152권 「장강무이송전(張姜武李宋傳)」
관파 · 동진 · 원자 · 조종유 · 두역직
장일 · 강공보 · 무원형 · 이강(李絳) · 송신창
153권 「단안전(段顏傳)」
154권 「이성전(李晟傳)」
155권 「마혼전(馬渾傳)」
단수실 · 안진경
이성
마수 · 혼감
156권 「양대양이이한두형전(楊戴陽二李韓杜邢傳)」
양조성 · 대휴안 · 양혜원 · 이원량 · 이관(李觀) · 한유괴 · 두희전 · 형군아
157권 「육지전(陸贄傳)」
158권 「위장엄한전(韋張嚴韓傳)」
육지
위고 · 장건봉 · 엄진 · 한홍
159권 「요독고고위단여허설이전(姚獨孤顧韋段呂許薛李傳)」
포방 · 이자량 · 소흔 · 설파 · 번택 · 왕위 · 오주 · 정권 · 육긍 · 노탄 · 유성 · 최융 · 장정보
160권 「서여맹유양반최위전(徐呂孟劉楊潘崔韋傳)」
161권 「장초이정서왕풍유전(張趙李鄭徐王馮庾傳)」
서호 · 여위 · 맹간 · 유백추 · 양풍 · 반맹양 · 최원략 · 위수
장천 · 조연 · 이서 · 정운달 · 서대 · 왕중서 · 풍항 · 유경휴
162권 「요독고고위단여허설이전(姚獨孤顧韋段呂許薛李傳)」
요남중 · 독고급 · 고소련 · 위하경 · 단평중 · 여원응 · 허맹용 · 설존성 · 이손
163권 「공목최유양마전(孟簡等傳)」
공소부 · 목녕 · 최빈 · 유공작 · 양어릉 · 마총
164권 「설해삼최노이설위호정이왕은전(歸奚三崔盧二薛衛胡丁二王殷傳)」
귀숭경 · 해척 · 최연 · 노경량 · 설빈 · 위차공 · 설융 · 호증 · 우공저 · 왕질 · 은유 · 왕언위
165권 「삼정고권최전(三鄭高權崔傳)」
166권 「가두영호전(賈杜令狐傳)」
정여경 · 정순유 · 고영 · 정인 · 권덕여 · 최군
가탐 · 두우 · 영호초
167권 「백배최위이이황보왕전(白裴崔韋二李皇甫王傳)」
백지정 · 배연령 · 최손 · 위거모 · 이제운 · 이실 · 황보박 · 왕파
168권 「위왕육유류정전(韋王陸劉柳程傳)」
169권 「두배이위전(杜裴李韋傳)」
위집의 · 왕숙문 · 육질 · 이우석 · 유종원 · 정이
두황상 · 배기 · 이번 · 위관지 · 풍숙 · 봉오
170권 「이고이주이유범이왕맹조이임장전(二高伊朱二劉范二王孟趙李任張傳)」
고숭문 · 이신(伊愼) · 주충량 · 유창예 · 범조희 · 왕악 · 맹원양 · 왕서요 · 유창 · 조창 · 이경략 · 임적간 · 장만복
171권 「이오왕양조고유석전(李烏王楊曹高劉石傳)」
이광진 · 오중윤 · 왕패 · 양원경 · 조화 · 고우 · 유면 · 석웅 · 고원유 · 봉오 · 정훈 · 경회 · 위박
172권 「우왕이두범전(于王二杜范傳)」
173권 「배도전(裵度傳)」
174권 「이이원우양전(二李元牛楊傳)」
우적 · 왕지흥 · 두겸 · 두아 · 범정전
배도
이봉길 · 원진 · 우승유 · 이종민 · 양사복
175권 「두유이장양웅백전(竇劉二張楊熊柏傳)」
176권 「한유전(韓愈傳)」
두군 · 유서초 · 장우신 · 양우경 · 장숙 · 웅망 · 백기
한유
340권 「왕걸등전(王傑等傳)」
341권 「경규등전(慶桂等傳)」
왕걸 · 동고 · 주규
경규 · 유관지 · 대구형 · 대균원 · 탁진 · 장후 · 노음부
342권 「보녕등전(保寧等傳)」
343권 「서린등전(書麟等傳)」
보녕 · 송균 · 배탄 · 박계특
서린 · 각라길경 · 각라장린 · 비순 · 장백령 · 백린
344권 「늑보등전(勒保等傳)」
345권 「서린등전(永保等傳)」
늑보 · 액륵등보 ,호시현, · 덕릉태
영보 · 혜령 · 의면 · 영선 · 복녕 · 경안 · 태승은
386권 「문경등전(文慶等傳)」
385권 「숙순등전(肅順等傳)」
386권 「계량등전(桂良等傳)」
문경 · 문상 · 보윤
숙순 · 목음 · 초우영
계량 · 서린 · 관문 · 문욱
389권 「백준등전(柏俊等傳)」
390권 「가정등전(賈楨等傳)」
391권 「왜인등전(倭仁等傳)」
백준 · 인괴 · 서상 · 전경
가정 · 주조배 · 주봉표 · 단무겸
왜인 · 이당계 · 오정동
392권 「새상아등전(賽尙阿等傳)」
393권 「이성원등전(李星沅等傳)」
394권 「서광진등전(徐廣縉等傳)」
새상아 · 눌이경액
이성원 · 주천작 · 노숭광
서광진 · 엽명침 · 황종한
395권 「상대순등전(常大淳等傳)」
상대순 ,쌍복 왕금수 왕수동, · 장문경 · 도은배 ,다산, · 길이항아 · 나준전 · 서유임 · 왕유령
396권 「오문용전(吳文鎔等傳)」
397권 「육건영등전(陸建瀛等傳)」
오문용 · 반탁 · 등이항
육건영 · 양정문 · 청린 · 숭륜 · 하계청
399권 「여현기등전(呂賢基等傳)」
여현기 · 추명학 · 대희 · 장비 · 황종 · 도정걸 · 풍배원 · 손명은 · 심병원 · 장석경
400권 「하계진등전(何桂珍等傳)」
401권 「상영등전(向榮等傳)」
하계진 · 서풍옥 · 온소원 · 김광저 · 이맹군 · 조경현
상영 · 화춘 · 장국량
402권 「오란태등전(烏蘭泰等傳)」
오란태 · 등소량 · 주천수 · 요문선 · 문서 · 팽사거 · 장옥량 · 노점오 · 유계삼 · 서쌍래 · 구등룡 · 왕국재 · 호곤원 · 대문영
403권 「승보등전(勝保等傳)」
404권 「승격림심등전(僧格林沁等傳)」
승보 · 탁명아 · 진금수 · 덕흥아
승격림심 · 서통액 · 항령 · 소극금 · 하건오 · 전순 · 사영춘 · 악선
405권 「증국번전(曾國籓傳)」
406권 「낙병장등전(駱秉章等傳)」
407권 「강충원등전(江忠源等傳)」
증국번
낙병장 · 호림익
강충원 · 나택남
408권 「이속빈등전(李續賓等傳)」
409권 「탑제포등전(塔齊布等傳)」
이속빈 · 정예의 · 증국화 · 이속의 · 왕진 · 유등홍 · 장익풍
탑제포 · 필금과 · 다융아 · 포초,송국영 누운경 담등달, · 당인겸 · 유송산
410권 「팽옥린등전(彭玉麟等傳)」
411권 「이홍장전(李鴻章傳)」
팽옥린 · 양악빈 · 왕명산 · 손창개 · 양명해 · 사준여
이홍장
412권 「좌종당전(左宗棠傳)」
413권 「증국전등전(曾國荃等傳)」
좌종당
증국전 · 심보정 · 유곤일
414권 「이신전등전(李臣典等傳)」
이신전 · 소부사 · 이원길 · 유연첩 · 팽육귤 · 장시일 · 오유수 · 주남계 · 나봉원 · 이상화 · 소경연 · 오종국
415권 「황익승등전(黃翼升等傳)」
황익승 · 정의방 · 왕길 · 오가방 · 이성모 · 이조빈 · 강복산 · 유배원
416권 「정학계등전(程學啟等傳)」
정학계 · 하안태 · 정국괴 · 유명전 · 장수산 · 주성파 · 주성전 · 반정신 · 오장경
418권 「원갑삼등전(袁甲三等傳)」
419권 「낙병장등전(左宗棠傳)」
420권 「한초등전(韓超等傳)」
원갑삼 · 모창희
유장우 · 유악소 · 잠육영
한초 · 전흥서 · 증벽광 · 석보전
421권 「심조림등전(沈兆霖等傳)」
심조림 · 조육영 · 허내보 · 조광 · 주준 · 이함 · 장상하 · 나돈연 · 정돈근 · 방종로
451권 「이조의등전(李朝儀等傳)」
이조의 · 단기 · 정수창 · 증기봉 · 저유립 · 서철산 · 계중행 · 유함방 · 진횡거 · 유지개 · 이용청 · 이금용 · 김복증 ,웅기영 사복가, · 동조용
452권 「홍여규등전(洪汝奎等傳)」
홍여규 · 양종렴 · 사박 · 사극관 · 심보정 · 주기앙 ,주기조, · 종원한 · 서경장 · 서진 · 괴광전 · 진휼성 · 반민표 · 엄작림 · 당석진 · 누춘번
457권 「장동재등전(蔣東才等傳)」
장동재 · 이남화 · 동리고 · 동전승 · 우사한 · 조덕경 · 마복진 · 정문병 · 방요 · 등안방
458권 「서연욱등전(徐延旭等傳)」
서연욱 · 당형 · 하경 · 장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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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0권 「좌보귀등전(左寶貴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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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보귀 · 원영산 · 등세창 · 유보첨 · 대종건
송경 · 여본원 · 서방도 · 마옥곤 · 의극당아 · 장순
462권 「정여창등전(丁汝昌等傳)」
463권 「당경숭등전(唐景崧等傳)」
정여창 · 위여귀 · 엽지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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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권 「이단분등전(李端棻等傳)」
이단분 · 서치정 · 진보함 · 황준헌 · 증화 · 양심수 · 양예 · 유광제 · 담사동 · 임욱 · 강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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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6권 「서용의등전(徐用儀等傳)」
서동 · 강의 · 조서교 · 고아랍계수 · 하영년 · 희탑랍유록 · 육현
서용의 · 허경징 · 원창 · 토묵특입산 · 최가연원
471권 「성선회등전(盛宣懷等傳)」
472권 「육윤상등전(陸潤庠等傳)」
성선회 · 서징
육윤상 · 세속 · 이극탄 · 양정분 · 서방 · 노내선 · 심증식
473권 「장훈등전(張勳等傳)」
474권 「오삼계등전(吳三桂等傳)」
475권 「홍수전전(洪秀全傳)」
장훈 · 강유위
오삼계 · 경정충 · 상지신 · 손연령
홍수전
476·477·478·479권 「순리전(循吏傳)」
백등명 ,탕가상 임진단 우종요, · 송필달 · 육재신 · 장목 ,장훈(張塤), · 진여함 · 목수 ,진시림, · 요문섭 ,황정린, · 낙종린 ,최종태 조진조, · 조길사 · 장근 · 강고 ,장극억 가박, · 소사요 ,위입정 고음작 근양, · 최화 · 주중횡 · 유계 · 도원순 · 요기형 · 동국롱 · 육사 · 공감 · 진덕영 · 예복전 · 장림 · 염요희 · 남정원 · 엽신 · 시초정 · 진경문 · 주인룡 · 동화 · 이위 · 사중훈 · 이대본 · 우운진 · 장견도 · 소대업 · 주극개 ,정기 강기연 언여사 주제화, · 왕휘조 ,여돈화 주휴도, · 유대신 · 오환채 · 기대규 · 소희증 · 장길안 ,이육창, · 공경한 · 개방필 · 사소등 · 이갱예 · 이병수 · 적상경 · 장돈인 · 정돈윤 · 이문경 · 유체중 ,유후, · 장기 ,석가소, · 유형 ,서동, · 요간지 · 오균 · 왕조겸 · 조근 · 계초만 · 장작남 · 운무기 · 서대영 · 우수매 · 하왈유 · 오응연 · 유병림 ,진숭지 하자령 소세본, · 이병도 ,유주 주근인 추종준 왕무훈, · 괴덕모 · 임달천 · 방대제 · 진호 · 양영서 · 임계 · 왕인복 · 주광제 · 냉정형 · 손보전 · 가소경 · 도관준 · 진문불 · 이소 · 장해 · 왕인감
480·481·482·483권 「유림전(儒林傳)」
손봉기 · 황종희 · 왕부지 · 이옹 · 심국모 · 사문존 · 고유 · 탕지기 · 육세의 · 심윤 · 응휘겸 · 주학령 · 심호정 · 백환채 · 호승락 · 조본영 · 유원록 · 안원 · 이공 · 조포 · 이내장 · 이광파 · 장형양 · 왕무굉 · 이몽기 · 호방 · 노사 · 고동고 · 맹초연 · 왕불 · 요학상 · 당감 · 오가빈 · 유희재 · 주차기 · 성유 · 소의진 · 고염무 · 장이기 · 만사대 · 호위 · 모기령 · 염약거 · 혜주역 · 진후요 · 장림 · 임계운 · 전조망 · 심융 · 강영 · 저인량 · 노문서 · 전대흔 · 왕명성 · 대진 · 단옥재 · 손지조 · 유대공 · 공광삼 · 소진함 · 왕염손 · 왕중 · 무억 · 장술조 · 척학표 · 정걸 · 손성연 · 왕빙진 · 능정감 · 계복 · 강성 · 전대소 · 허강좌 · 공음식 · 육기 · 광계
484·485·486권 「문원전(文苑傳)」
원랑 · 하덕인 · 채윤공 · 사언 · 최신명 · 유연우 · 장창령 · 최행공 · 두심언 · 왕발 · 원만경 · 이적(李適) · 위원단 · 유윤제 · 심전기 · 송지문 · 염조은 · 윤원개 · 유헌 · 이옹(李邕) · 여향 · 왕한 · 손적 · 이백 · 왕유 · 정건 · 소영사 · 소원명 · 이화 · 맹호연 · 유태진 · 소설 · 우소 · 최원한 · 우공이 · 이익 · 노륜 · 구양첨 · 이하(李賀) · 오무릉 · 이상은(李商隱) · 설봉 · 이빈(李頻) · 오융
487·488·499·490·491·492·493·494·495·496권 「충의전(忠義傳)」
하후단 · 유감 · 상달 · 경군홍 · 여자장 · 왕행민 · 나사신 · 장도원 · 이육덕 · 고예 · 안금장 · 왕동교 · 오보안 · 이징(李憕) · 노혁 · 장개연 · 최무피 · 안고경 · 가순 · 장순 · 허원 · 남제운 · 뇌만춘 · 요은 · 정천리 · 방견 · 장흥 · 채정옥 · 부령기 · 유내 · 맹화 · 장비 · 주증 · 장명진 · 석연분 · 오서 · 고목 · 가직언 · 신당 · 황갈
497·498·499권 「효의전(孝義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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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501권 「유일전(遺逸傳)」
왕적 · 손사막 · 전유암 · 맹선 · 왕우정 · 왕희이 · 이원개 · 위대경 · 무유서 · 백이충 · 오경 · 노홍 · 오균 · 반사정 · 사마승정 · 하지장 · 진계 · 장지화 · 공술예 · 육우 · 최근 · 육구몽
502·503·504·505권 「예술전(藝術傳)」
왕적 · 손사막 · 전유암 · 맹선 · 왕우정 · 왕희이 · 이원개 · 위대경 · 무유서 · 백이충 · 오경 · 노홍 · 오균 · 반사정 · 사마승정 · 하지장 · 진계 · 장지화 · 공술예 · 육우 · 최근 · 육구몽
506 · 507권 「주인전(疇人傳)」
설봉조 · 공사연 · 왕석천 · 방중통 · 매문정 · 명안도 · 유상규 · 왕문계 · 주홍 · 박계 · 허여란 · 이황 · 왕래 · 진걸 · 시왈순 · 이예 · 낙등봉 · 항명달 · 정취충 · 사가화 · 오가선 · 나사림 · 고관광 · 좌잠 · 증기홍 · 하란상 · 추백기 · 이선란 · 화형방
508·509·510·511권 「열녀전(列女傳)」
배숙영 · 왕난영 · 경상자 · 위무기 · 하후쇄금 · 왕아족 · 왕옥영 · 요아 · 두백랑 · 두중랑 · 이묘법 · 왕화자 · 사소아 · 봉순
222권 「남만전(南蠻傳)」
남조 · 임읍 · 파리국 · 반반국 · 정랍 · 수진랍국 · 타원국 · 가릉국 · 타화라국 · 타파등국 · 동사만 · 서조만 · 장가만 · 동여국 · 표국
518·519·520·521·522·523·524·525권 「번부전(藩部傳)」

526·527·528·529권 「속국전(屬國傳)」
조선 · 류구 · 월남 · 면전 · 섬라 · 남장 · 소록 · 구르카 · 호한 · 보노특 · 합살극 · 안집연 · 마이갈랑 · 나목간 · 탑십간 · 바다흐샨 · 박라이 · 아부한 · 감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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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tablebgcolor=#000> || {{{#fff '''국가'''}}} | {{{#fff '''지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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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주국 집정 재임기간[2] 만주국 황제 재위기간[3] 삼궤구고두례에서 쓰이는 구령을 듣고서 그나마 가장 쉬운 단어만 기억한 듯하다.[4] 묘호나 시호는 본래 사후에 올리는 것이기 때문에, 선통제가 살아있는 상태에서는 사시의 형태로라도 묘호나 시호를 올리는 것을 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기도 했다.[5] 참고로 이 遜이라는 한자는 겸손하다, 사양하다, 양위하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못하다, 뒤지다, 뒤떨어지다, 달아나다 등의 부정적인 의미도 같이 담고 있는 한자이기도 하다. 본래 선양한 황제로서 묘호나 시호를 받지 못한 황제를 지칭하는 말이다.[6] 표준중국어의 모태가 된 북경어는 만주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7] 봉투에 쓰는 '부의'의 한자는 '賻儀'이다. 부수 하나 차이이다.[8] 이는 만주족의 전신인 금나라(金)를 상징하므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나타내고자 함이다.[9] 정확히는 동치제의 아랫항렬에 해당하는 황족들이 혈연상으로 동치제와 9촌 이상 되는 먼 황족이라 차선책으로 동치제의 사촌형제 중에서 고르게 되었는데, 동치제의 사촌형제 중에서는 서열상으로나 나이로나 서태후의 라이벌이었던 공친왕 혁흔의자녀들이 가장 적합했으나 공친왕의 세력 강화를 용인할 수 없던 서태후가 이들을 제치고 어린 광서제를 지목하였다.[10] 전자는 '콰이완', 후자는 '콰이왕'으로 들린다. 성조도 2성으로 같다.[11] 위의 사진은 1917년 장쉰의 복벽 사건 때 찍은 사진이며, 게임 Victoria에서 게임을 종료하면 나오는 국가별 점수 및 지도자의 초상화가 나오는 화면에서 중국계 국가 지도자는 이 사진을 그린 그림이 나온다.[12] 유교를 국교로 삼은 한족 왕조들과는 달리 유목민 왕조의 특징이었다. 청 황제들은 달라이 라마판첸 라마를 스승으로 모셨다.[13] 흔히 이곳이 누르하치가 후금을 세운 곳이라는 말도 하는데, 그와는 다른 곳이다. 후금이 세워질 때 수도인 허투알라는 랴오닝 성이고 통화시는 지린 성으로 서로 다르다. 여기가 누르하치의 조상인 건주위 여진족의 땅에 속할 뿐.[14] 푸이가 마지막까지 꼭두각시였음을 말해주는 증거이다. 그래도 만주국 주요 인사들이 한간으로 엄벌에 처해질 때 정작 본인은 무사했던 것은 이런 대우를 받은 덕분이기는 했다.[15] 알려진 대로 소련은 러시아 혁명으로 황제를 비롯해 로마노프 왕조의 직계 일족들을 총살시켰기 때문이다. 반면 과거 공산권이었던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같은 여타 동구권 국가들의 경우 2차 대전 이후에 왕정을 없애고 공산정권을 성립시키는 과정에서 구 왕가 일족들에 대해 처형 대신 국외추방, 입국금지 정도에 그치는 등 러시아 혁명 직후의 소련보다는 비교적 온건한 방식으로 처분이 이루어졌다.[16] 나중에 이들은 모국에서 공산당 정권이 붕괴/해체되고 민주화된 직후에 와서야 귀국이 실현됐다.[17] 아침과자, 커피, 등을, 점심은 요리 2개와 탕 1개, 오후 3, 4시 경에는 오차로 간단한 간식을 주고, 저녁은 서양식으로 와인이나 사이다 등이 나왔다.[18] 국민당이 이기든, 공산당이 이기든 한간(중국판 친일반민족행위자)인 자신은 처단될 것이라고 생각했다.[19] 당시 중국에서 분류한 매국노(한간)란, 왕징웨이 같은 자들을 의미한다. 진짜배기 악질 매국노들은 국민당에서 알아서 다 처리해줬고 나머지는 부역자, 협조자 정도로 죄질이 상대적으로 가벼웠기 때문에 굳이 엄벌이 필요하지 않은 측면도 있었다.[20] 그도 그럴 것이, 그 동안은 평생 모든 일상 생활과 뒷바라지를 시종들이 다 해 준 덕에 맘 편하게 살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하는데 그것에 익숙하지 못하니 생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만 일부러 그렇게 대한 건 아니고 구 왕족과 만주 귀족 출신들에게 적용된 사회적응과정의 일환이었다고 한다.[21] 이때 푸이의 나이는 56세이고, 리수셴은 38세(1924년 생)로, 나이차가 18년이나 되었다. 결혼한지 5년 후 푸이가 사망하기까지 그들은 꽤 다정하고 평범한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고 한다. 리수셴은 35년 후인 1997년, 7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리수셴은 푸이가 사망한 후 병원을 퇴직해 경제적으로 어려워졌지만 저우언라이의 배려로 재정적인 도움을 받았다. 나중에 그녀는 푸이의 자서전에 대한 법적인 로열티와 푸이와 자신의 결혼생활을 담은 자서전의 인세로 경제적으로 윤택해졌다고 한다. 그녀는 푸이의 묘를 바바오산 혁명공묘에서 청서릉으로 옮기는 것을 주장해 그것을 이루기도 했다. 리수셴은 생전 청나라 황후였던 적이 없지만, 1997년 사망 이후 구 청나라 황실에 의해 효예민황후(孝睿愍皇后)라는 시호를 받았다. 효의순황후와 함께 명목상, 역대 청나라 황후 중 유이하게 한족 출신인 셈.[22] 근데 이 사람들도 그냥 광신적인 공산주의자라 그런 것은 아니고, 만주국 시절 가족들이 일본군의 손에 학살당했기 때문에 일본군의 꼭두각시 노릇을 한 푸이 앞에서 감정조절을 못했다는 뒷사정이 드러난다.[23] 그 이유는 남들이 해주는대로, 시키는대로만 하는 삶을 살아오다가 교도소장 덕에 처음으로 모든 걸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가 됐기 때문이었다. 당장 궁밖을 벗어낫을때는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사치밖에 없어 결국 다시 예전처럼 남이 해주고 시키는대로인 꼭두각시나 다름없는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 황제로 살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푸이로서는 교도소장에게 고마움을 느꼈기에 그를 변호한 것이다.[24] 실제 푸이를 교화한 조선족 김원은 이 시절 숙청되었다가 1971년부터 1989년까지 북경대 교수를 지내다 1990년에 한국으로 귀국했다. 그는 푸이에 대해 "순박한 사람이고 인간적으로 동정하지만, 그가 저지른 역사적인 죄과는 용서할 수 없다." 라고 밝혔다.[25] 고위급 인사였기 때문에 돈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신분이 문제였다. 푸이가 홍위병들이 싫어하는 청나라와 만주국의 황제였기 때문에, 홍위병들에게 공격받을까 두려워 병원들이 입원을 거부한다. 이 때문에 저우언라이는 푸이를 홍위병들의 폭력이 심하지 않은 베이징의 병원에 입원시켰다.[26] 단순히 홍위병 폭력이나 푸이의 과거 신분, 문혁으로 인한 의료체계의 붕괴 이런 걸 다 차치해서 사회주의 국가 의료인들은 자본주의와 달리 일단 엘리트란 인식 자체가 별로 없고(북한에선 대놓고 여자나 하는 일이라고 폄하하는 분위기도 있다) 딱히 자본주의 병원처럼 환자 유치를 하기 위한 서비스 정신을 보일 필요도 없기 때문에 환자 대접이 꽤 박한 걸로 유명했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 중국 여행간 사람들 수기를 보면 병원에서 얼마나 환자를 험하게 다루는지 기겁했다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중국내에서도 이에 대해 설왕설래가 많아서 그나마 서비스가 좋은 대형병원으로 몰려들어와 대형병원이 과부하 되는 것이 협소한 의료보장범위와 비교적 낮은 지방병원의 질과 더불어 문제점으로 지적될 정도.[27] 화룡황가능원(華龍皇家陵園)의 푸이묘. 별칭은 헌릉(獻陵).[28] 놀랍게도 완롱의 친오빠가 일본군에게 이권을 얻는 대가로, 여동생이자 황후인 완롱이 일본군 장교에게 강간당하는 것을 묵인했다고 한다.[29] 무엇보다 아기를 태워죽여버린 것은 최악의 범죄로 이게 알려지면 푸이는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것이 분명하기에 밝힐 수가 없었다.[30] 무협소설의 대가 김용의 사촌형으로 김용 소설에서 사촌오빠들이 찌질하게 나오는 모티브가 되었다. 실제로 쉬즈모의 필명을 바탕으로 한 변태 악역이 등장하기도 한다.[31] 이때 유일하게 완룽을 돌봤던 사람이 일본인이자 손아랫 동서인 사가 히로다.[32] 다만 이때 완룽은 정신질환이 워낙 심해서 일상생활도 못할 정도가 되었기에 공산군 병사들과 교도관들도 그녀를 학대하지 않고 무시했다.[33] 환관이 되기 위해 거세했는데 깨어나 보니 청나라가 망했다고 한다. 죽을 때까지 푸이를 보좌했다.[34]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 자신의 말을 안듣는 동생에게 자신이 황제라는 증거를 보여주기 위해 옆에 있던 환관에게 먹을 마시게 하는 것으로 단편적으로나마 푸이가 환관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보여줬고 드라마 마지막 황제에서는 분량 상 더욱더 자세하게 묘사했다. 자신을 어렸을 때부터 보좌한 환관이 개를 잡지 못하자 총으로 엉덩이를 쏘았고 그 상태에서 곤장 40대를 때리게 했으며 추가로 때릴려고 했으나 유모의 만류로 그만두고 대신 바닥에 다식을 던져 먹게 했다. 그후로도 위안스카이가 황제에 등극하자 도주하려던 그 환관을 붙잡아 때리려고 했고, 그후 그가 아무 일 없던 것 처럼 복직하자 뺨을 때렸다.[35] 마지막 황제를 의식해서 국내 방영시 <마지막 황제 부의>란 제목을 붙였다.[36] 중국 최초의 황제인 진시황과 중국 최후의 황제인 선통제를 모두 맡아봤으니 중국에서 약 2000년 동안 이어진 황제 중심 중앙 집권 체제의 알파와 오메가를 담당한 셈이다. 중국의 황제 중심 중앙 집권 체제는 진도명으로 시작해서 진도명으로 끝났다. 거기다가 이 사람역까지 맡았다는...[37] 제작 당시에는 독살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아서(밝혀진 건 2008년이며, 황성쟁패의 제작년도는 1990년) 독살설이었다.[38] 아이러니하게도 만주 웨스턴 또한 선통제를 포함한 만주국 황실 인물들이 등장하는 작품들은 단 1편도 없었다.[39] 중화제국 선포 시 선통제로 이름이 바뀌고 옷도 양복에서 중국 황제의 옷으로 바뀐다.[40] 호4버전 카라는 '양쯔 강에 흐르는 피' 패치 이전까지 중국 남부는 독일제국 산하인 동아시아 회사가 장악했으나 설정이 바뀌었다.[41] 예전에 주로 process 2.3.1이라는 명의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