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팔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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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十八宿大陣

1. 개요
2. 구성



1. 개요[편집]


<신조협려>에 등장하는 진법. 참고로 이십팔진으로 읽어야 옳다.[1]

도화도주 황약사가 창안한 진법으로, 황약사의 특기인 오행의 이치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원래 도화도 무공의 종주인 황약사는 혼자 유람하는 것을 좋아하고 제자들은 남김없이 쫓아내서(...) 진법에 흥미를 둘 일이 없었지만, 황약사가 사조영웅전 시점에서 전진파의 천강북두진과 두 차례 대결을 벌이다가 천강북두진이 이뤄낸 독특한 합격의 묘미에 흥미를 보이고, 다른 문파와 진법으로 겨루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어 스스로 진법을 만들어낸 것이다.

오행의 변화를 이용하기 때문에 최소 5명의 인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측된다. 숫자가 훨씬 많아져 대군의 경지에 달해도 나름의 묘미를 발휘할 수 있는데, 양양성이 몽케 칸의 군대에 포위당한 작중 시점에서는 약 4만 명의 군세를 8천씩 다섯 부대로 나누어 운용하는 거대 진법으로 선보였다. 이름하여 이십팔수대진. 전진파의 북두대진이 보여준 49명의 스케일을 아득하게 뛰어넘는다(...). 크게는 각 부대가 오행 중 일각을 각각 담당하며 변화에 따라 움직이는 군진이지만, 세부적으로는 각 부대를 여러 파의 무림인들이 이끌면서 각자의 무공을 활용하는 독특한 운용을 선보였다. 예를 들어 주백통이 주장을 맡은 부대는 전진파 고수들이 앞장서면서 7인 단위로 수많은 천강북두진을 펼치는 마트료시카활약을 선보였다.

비록 세계 최강 몽골군을 정면에서 끝장낼 수는 없었지만, 불리한 상황에서 적은 숫자로 몽골군과 팽팽히 겨루며 곽양을 구출하고 몽케 칸을 끝장낼 시간을 벌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깊은 진법. 사실 양양성이 오랫동안 몽골의 진군을 저지하고 있었다지만 어디까지나 성에 기댄 수비전이라 가능했던 것이고, 성 앞 야전에서 몽골군과 당당히 겨룰 수 있었다는 점은 분명 송나라 군대에 있어 뜻깊은 수확이다. 물론 그래봐야 송나라는 망했다

2. 구성[편집]


신조협려의 마지막을 장식한 양양성 전투에서 선보인 포진. 황약사가 지휘를 하고, 오행에 따라서 다섯개의 부대로 나누어지며, 각각의 수는 8천이다.

중군 황릉오기(黃陵五炁) 속성은 토(土)
대장-곽정

남군 단릉삼기(丹陵三炁) 속성은 화(火)
대장-단지흥
지휘관:점창어은, 무삼통, 주자류, 무돈유, 무수문, 야율연, 완안평

북군-현릉칠기(玄陵七炁) 속성은 수(水)
대장-황용
지휘관:야율제, 개방 양 장로, 곽부, 그 외 개방 장로와 개방 제자.

동군-청릉구기(靑陵九炁) 속성은 목(木)
대장-황약사
지휘관:정영과 그 외 영웅대회에 참석한 호걸들.

서군-백릉?기(白陵?炁)
대장-주백통, 호위 영고
지휘관:송도안, 이지상, 왕지근, 하지성, 송덕방, 왕지탄, 기지성, 손지견, 장지소 등 전진교 3대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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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宿은 잘 숙, 별자리 수이므로 별자리를 가리키는 이 경우는 '수'로 읽는다. 천룡팔부에 등장하는 성수파의 수자도 같은 한자인데 이것도 잘못읽어 성숙파로 읽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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