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후조)
덤프버전 :
<height=33px>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1. 개요[편집]
李陽
생몰연도 불명
후조의 인물. 병주 상당군 (上黨郡) 무향현 (武鄉縣) 출신.
2. 생애[편집]
어릴 적부터 석륵과 이웃이었던 이양은 성격이 깐깐하고 완고해서 매년 연못에서 삼베옷을 빨래할 때 석륵과 만나면 서로 치고받고 싸워 승부를 냈다.
광초 4년(321년) 11월, 유주(幽州), 기주(冀州), 병주(幷州) 3주를 평정하여 하북의 대부분을 손에 넣고 조왕(趙王)에 오른 석륵은 고향인 무향의 옛 친구들을 양국(襄國)으로 불러 연회를 열었다. 석륵은 고향 친구들을 나이 순서대로 앉게 한 뒤, 즐겁게 먹고 마시며 회포를 풀다가 문득 이양이 오지 않은 것을 깨닫고, 친구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자에게 말했다.
그리고는 무향으로 사신을 파견해 이양을 데려오게 하였다. 이윽고 이양이 양국에 이르자, 석륵은 그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술을 거나하게 마시다가 갑자기 이양의 팔을 붙잡으며"이양은 장사(壯士)인데 어째서 혼자 오지 않은 것이냐? 홀로 삼베옷에 묻은 한을 숭상하며 천하의 필부로서 안녕을 추구하게 둘 수 없겠구나."
라 말하고 큰 소리로 웃었다. 이후 석륵은 즉석에서 이양을 봉거도위, 시흥(始興)태수로 삼고 말하길,"경은 비록 늙었지만 아직도 팔힘이 세구나. 나는 이 자리에 오기까지 여러 사람들과 싸웠지만 경의 주먹을 넘어서는 자를 만난 적이 없어 외로웠는데, 경 역시 그동안 흉기나 다름없는 그 주먹을 쓸 상대가 없어 외로웠겠구려."
라 하였다."무향은 내게 있어서 풍패(豐沛)나 마찬가지니라. 만세가 지난 후에 죽고 나면 마땅히 나의 혼령이 돌아갈 곳이니, 그 부역을 300년간 면하게 하라."
그 뒤로 이양과 관련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4-04-02 20:35:52에 나무위키 이양(후조)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