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구(1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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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씨명
리다 쿤쿄우(李田勳久)
자 / 호
원칙(元則) / 소촌(小村)
본관
여주 이씨[1]
출생
1869년 1월 2일
경상도 경주부 안강현 심동
(현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안계리 심동마을 439번지)[2][3]
사망
1947년 10월 5일[4] (향년 78세)
묘소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안계리 심동마을
상훈
대통령표창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2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이한구·이순구 형제는 그의 4촌 동생들이다.[5]

2. 생애[편집]


1869년 1월 2일 경상도 경주부 안강현 심동(현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안계리 심동마을 439번지)에서 아버지 이능경(李能璟, 1848 ~ 1889. 12. 18)과 어머니 인동 장씨(? ~ ?. 2. 4)[6] 사이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06년부터 1907년 사이 경상북도에서 산남의진에 참여해 경주군 지방 참모로 활동했다.

1910년 경술국치를 맞은 뒤 1915년 달성군 수성면 대명동(현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안일암에서 대한광복회가 조직되자, 우재룡(禹在龍) 등을 통해 조직의 활동 등을 지원했다.

이후 1947년 10월 5일 별세했다.

202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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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강경주파(驪江慶州派)-무첨당파(無忝堂派) 23세 구(久) 항렬.[2] 인근의 양동리·다산리와 함께 여주 이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이순구도 이 마을 출신이다.[3] 현재 출생지인 안계리 439번지는 1971년 안계저수지 축조로 수몰되어 있다.# 1914년 작성된 지적원도를 보면, 1914년 당시에도 이훈구의 출생지 안계리 439번지는 이훈구의 소유였다.[4] 여주(여강)이씨족보 권1 642쪽에는 1948년 10월 3일 별세한 것으로 등재되어 있다.[5] 이훈구의 아버지 이능경은 본래 이순구의 아버지 이능종(李能種, 1851 ~ 1890. 5. 6)의 셋째 형이었지만, 11촌 지간의 족숙(族叔) 이재효(李在斆, 1804 ~ 1835. 9. 26)에 입양되었으므로 족보상으론 이훈구는 이한구·이순구 형제에게 14촌 지간의 족형(族兄)이 된다.[6] 여헌 장현광(旅軒 張顯光)의 후손으로, 장조원(張祚遠)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