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장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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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작중 행적
2.1. 별에 미쳐있던 노비 시절
2.2. 명나라에가서 새로운 문물과 만나다
2.3. 박연과의 만남과 화려한 귀환
2.4. 자격루의 발명
2.5. 구식례를 성공시키다
2.6. 조선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


1. 개요[편집]


KBS 대하드라마 장영실(드라마)의 주인공. 배우 송일국이 연기한다. 아역은 정윤석[1]

2. 작중 행적[편집]



2.1. 별에 미쳐있던 노비 시절[편집]


어린 시절을 다룬 1, 2화에서는 손재주와 관찰력이 좋은 별을 좋아하는 아이로 나왔다. 2화 후반부에서 혼상을 만들면 명나라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3화에서 실제로 만들지만 보름 내에 스스로 움직이는 혼상을 만들어오라는 주문을 받는다. 마침 돌아온 아버지 장성휘와 함께 스스로 움직이는 혼상 개발에 몰두하지만 장영실이 자리를 비운 사이 연구실에 들이닥친 관리들이 연구실을 통째로 불태워버리는 바람에 명나라에는 가지 못하게 될 듯 했으나....나뭇잎에 떨어지는 물방울을 보고 깨달음을 얻어 아버지와 함께 움직이는 혼상을 만들어냈다(!).그리고 자신을 감시하던 관리를 덫을 이용해 따돌리고 명나라행 배를 탔지만 관리가 항구까지 쫓아와 혼상은 바다에 버려지고 본인은 한양으로 이송,가기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서 오열하는 것으로 4화 끝. 5화에서는 이천에 의해 한양으로 이송되는데 츤츤대면서도 한양에 졸졸 따라온다(...) 천상열차 분야지도에서 건성이 입성이라 적힌 것을 보고 의아해하면서 서운관의 최복에게 그 이유를 묻고 피휘라는 것을 알게 된다. 6화에서 옹주와 재회하면서 궁에 초대를 받게 되는데 태종이 쓴 현판을 보고 자신이 가진 시집을 쓴 우보의 정체가 태종이었고 그가 일찍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약간의 의문을 가진 채로 친구가 마련한 배를 타고 명나라로 도망가려 하지만 역모죄로 감옥에 갇히고 만다. 7화에서 장성휘를 생각해 만나러 온 태종에게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교수형 집행 날짜는 잡혔고 망연자실한다. 그 와중에도 사실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는 것 같은데 이것을 확인할 수가 없어서 답답해하다가 마침 면회를 온 장희재에게 자신의 수첩을 주면서 이후의 관찰을 부탁한다. 출신이 출신인지라 매 화마다 엄청나게 구른다. 동래현에 있을 시절부터 폭언, 폭력은 예사였고 한양에 와서도 납치를 당할 뻔 하거나 세자의 화살을 대신 맞아주거나 심지어 역모죄로 죽을 위기에까지 처하니...
이후 그가 유성우가 내리는 시각을 알아낼 수 있을 만큼 뛰어나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방원에게 인정받고 면천되어 본격적으로 조선의 격물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2.2. 명나라에가서 새로운 문물과 만나다[편집]


명나라 사신단에 합류해서 들어가게 되지만, 정작 천문 관측용 간의라는 도구는 존재하지 않았고, 황제 역시 이를 숨기기 위해 누구도 출입시키지 않았던 것. 장희제의 배신과 김학주의 등장으로 위기에 처하고 결국 명나라 군사에게 잡히지만, 주태강의 딸 주부령이 손을 써서 장영실을 빼낸다. 물론, 조건이 있었으니, 송나라 때 만들어진 천문기구이자 수력시계인 수운의상대를 복원해달라는 주태강의 부탁이었다. 아버지인 장성휘로부터 자주 들어온 수운의상대를 직접 보게 되고, 그것을 수리할 기회가 자신에게 주어졌다는 것에 대한 기쁨과 더불어 백성을 위하는 주태강의 마음을 알게 되면서 적극적으로 복원작업에 임하게 된다. 그 과정 중에 회회국 혼천의를 건 윤봉의 제안으로 주태강을 암살하기 위해 온 장희제를 만나게 되고, 그를 두들겨 팼다.[2] 결국 장희제와 주태강 부녀의 도움을 받아서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수운의상대 복원에 성공한다. 이후 그의 실력을 눈여겨 본 주태강의 명나라에 남아달라는 제의는 거절하지만, 그로부터 혼천의를 만든 천문학자 곽수경의 관측기록 일부를 받게된다.[3]



2.3. 박연과의 만남과 화려한 귀환[편집]


몇 년이 지난 세종 9년, 남양에서 몸을 숨긴 채 명나라에서 장희제한테 준 휴대용 목제 관측기구를 계속 만들고, 편경을 만드는 모습[4]으로 재등장한다.

자신이 조선과 세종의 위협을 줄 것이란 장희제의 경고에 어릴 적 이름인 은복을 쓴 채로 남양에서 머물며, 주변 마을들을 떠돌면서 해시계를 만들어주고, 아이들에게 노래를 통하여 천문을 가르쳐주는 한편 틈틈이 편경을 만들고 있었다. 15화에서 밝혀진 바로는 이전에 세종이 역법을 만들고 나면 음계의 표준을 만들 것이라 말했던 것을 떠올리고 만든 것이라 한다. 그러던 중에 제대로 된 편경을 다시금 만들기 위해 직접 경석을 채굴하러 남양에 왔다가 뛰어난 장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박연과 만나게 되고, 영실의 실력을 알게 된 그로부터 자문을 받아서 완벽한 편경을 완성하게 된다. 이후 박연과 함께 편경을 한양으로 보내기 위해 수레에 싣던 도중, 자신이 만들어서 배포한 휴대용 관측기구로 추적해온 이천과 석구.[5]를 다시금 만나게 된다.

이후 이천과의 대화에서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천문관측소 방화 사건 당시 김학주 일당에 의해 죽어간 박효원, 임명덕에 대한 복수를 하고 싶어, 자신이 직접 나서거나 이천이나 세종을 찾아가려 하였으나, 장희제의 경고 때문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리지도 못하며 여기저기를 방황하였다고 한다. 그러다 감나무 밑에서 누워있던 도중 떨어진 감을 맞고, 하늘을 쳐다보게 되는데, 그제서야 다시금 별을 보게 되었고, 죽은 이들도 그렇지만 이천이나 세종 등 아직 살아있는 다른 이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다시 마음을 다잡고 남양에 정착하여 일에 집중하여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고. 그리고 이제는 남을 미워할 시간 없이 일에 집중하고 싶다는 말을 하는 등, 조금 주인과 닮은 해탈한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이천, 석구만이 아니라 주태강 부녀와도 재회하게 되는데, 특히 주태강에게는 해시계 등 격물을 통하여 상업 등이 활성화되어 활기찬 형태가 된 남양의 모습, 즉 명나라 유학 시절 주태강으로부터 들었던 그의 꿈이 실현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를 기쁘게 하였고, 그로부터 한층 더 성장하였다는 평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다시 한양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되고, 편경을 만든 공으로써 조정에 다시금 복귀하게 되며, 세종과 소현옹주와도 재회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후 수일 간 이어진 폭우와 기존에 있던 물시계의 고장으로 시간을 알 수 없게 되면서 민심이 혼란스러워지자, 그로 인해 이루어진 대책회의에서 장희제가 명나라에서 본 수운의상대를 참고하여 만든 해동금루를 궁에 설치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려고 할 즈음, 수운의상대 형식의 물시계인 해동금루는 조선의 시계로는 맞지 않으며 새로운 방식의 시계가 필요하는 말을 하며 반대의 뜻을 내비친다.


2.4. 자격루의 발명[편집]


다음 화에서 회의 중에 그리고 이후의 이순지 등과의 대화를 들어보면, 더 정확히 그에 대한 이유가 나오는데, 톱니같은 부품이 목재로 만들어져서 자주 닳기에 갈아주어야 하는데, 그 와중에 시간을 맞추기 어려울 수 있고, 제일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혼천의를 물시계와 같이 작동시키는 것이 자신이나 장희제나 불가능할 뿐더러 무엇보다도 물을 조절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해결책이 있냐는 세종의 질문에는 제대로 답하지 못하여 대신들로부터 질책을 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희제를 찾아가서 다시금 혼천의에 대한 의문을 물으며, 안 된다고 하는 이유에 대해 차분히 설명하려고 하자 자신을 질투한다고 여긴 장희제는 강한 분노를 표출하며 그를 쫓아낸다.

그리고 그가 보여준 것은 이천이나 새로운 물시계를 만들 것이라고 추측하던 장희제 등의 부탁을 받고 자신을 뒤쫓던 김학주의 존재를 모르고, 자신의 집이나 비밀 공방에서 소현옹주가 미리 갖다 놓은 솜옷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은 덤 쇠구슬을 땅에 떨어뜨리는 것이나 책상에 작은 구멍을 여러 개 낸 뒤, 쇠구슬을 굴려 그 구멍에 들어가게 하는 것을 반복하는 모습이었으니........

그러나........이천이 자신을 격려해주고자 초대한 화포 실험장에서 자신의 안전을 걱정하는 이천에게 그 동안 엄청 굴렀던 탓인지 이젠 자신도 뒤에 눈이 달려서 미행을 당하는지 정도는 눈치챌 수 있다는 애기를 하면서 이미 김학주가 자신을 쫓는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공방 중 하나이긴 했지만 엉뚱한 곳으로 유인하여 그를 농락했다는 것으로 밝혀졌고, 나중에 자신을 허술하게 미행하던 이순지를 불러서, 그가 자신이 뭔가를 준비하고 있어 장희제의 해동금루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한 것이 아니냐는 말을 듣게 되자, 무척이나 흔쾌히 자신의 공방을 보여주겠다며 제안하고, 그것을 받아들여 자신을 따라온 이순지에게 보여준 것은 바로........

실제로는 장영실 소품팀이 자신을 갈아서 만든, 그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만들어진 ㅠㅠ 완성 직전의 자격루였다!!

이후 그의 설명에 따르면, 자격루를 만들게 된 계기는 방랑하던 시절에 감나무 밑에 누워 잠들었다가 자신의 얼굴에 떨어진 감뉴턴??을 계속 기억하고 있었다만유인력??가, 그 때 이후 깨달은 낙하과정에서 생기는 힘의 원리를 이용하여 만든 것이라고 말한다. 그로 인해 장희제가 평한 것처럼 이전에 봤던 수운의상대와는 전혀 다른 형태와 방식의 시계를 탄생시킨 것이다. 세종이나 이천에게까지 숨겼으면서 이순지를 이곳으로 초대한 이유는 산학의 천재인 그로부터 자격루의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한 수학적 자문을 받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장희제와 친분을 쌓고 그의 해동금루 제작에 동참했던 이순지가 자신이 장희제에게 밝히면 어쩌겠냐는 말을 하자, 오히려 자신도 장희제가 찾아와주기를 바란다며, 그도 이것을 보면 굉장히 기뻐할 것이라고 확신하며 말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자격루를 보기 위해 공방에 왔다가 핏자국을 발견하고 쫓던 중, 자신이 칼로 찌른 김학주를 업고 가려던 장희제를 만나게 된다. 이후 죽어가는 사람 놔두고...... 장희제와의 논쟁이 시작되는데, 자신을 원망하는 힘으로 자격루를 만들었냐는, 자신을 조롱하기 위해 찾아오게 했냐는 그의 질문에, 원망을 버리고 극복하는 힘으로 만들었으며, 자신도 세종보다 왜 그에게 먼저 보여준 건지 처음에는 이해를 못했지만,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었던 어머니나 석구보다 자신의 길을 더 잘 이해하고 궁금해했던, 또다른 이해자인 장희제를 좌절 속에서 꺼내고, 그만이 가진 뛰어난 능력으로 자신과 같은 길을 갈 수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말하게 된다. 그렇게 설전을 하던 도중에 부상을 입은 김학주가 의식을 되찾음으로써 살릴 수 있음을 알게 되자 장희제와 함께 그를 업고 의원으로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 드디어 자격루를 세종과 대신들 앞에 선보이는데, 궁궐의 시계로 결정난 사실에 오히려 난색을 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중의 세종과의 대화에 따르면 자격루를 궁궐의 시계가 아닌 공중시계로 설치되기를 원했던 것. 그렇기에 세종에게 보여주는 것을 주저했던 것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세종도 그의 그런 뜻에는 공감하지만, 아직 시간은 왕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존재하는 만큼, 그것을 나중으로 미룰 것을 권하고, 장영실의 그런 뜻을 안전을 위해 밝히지 말 것을 청한다.


2.5. 구식례를 성공시키다[편집]


그 뒤에는 일성정시의를 만들고, 정인지, 이순지 등으로 구성된 새로운 천문연구팀과의 새로운 천문연구를 진행하지만, 조선의 격물진흥이 걸린 구식례를 하게 되자, 이전의 화재사건으로 자료가 부족하여 현재의 관측결과에 불안함을 느끼던 중, 자신과의 대화 이후 사직하고 은거하는 장희제가 자료를 태우지 않고 가지고 있었음을 최복을 통해 알게 되고, 장희제를 찾아가 그와 자료를 함께 가지고 오게 된다. 그러던 중 조광의 수하인 변대치의 습격을 받게 되었으나, 이천의 도움으로 살게 되는데, 그런데 이 때, 이천과의 대화 도중 이천과 동시에 그 동안 골치를 앓고 있던 자격루의 문제점을 개선할 방법을 깨닫게 되고, 이천, 장희제 등과 공방에서 그것을 응용한 장치를 만들기에 이른다. 역시 과학덕후들......

그러나 장희제로부터 받은 자료가 변조된 것을 이순지를 통해 알게 되고는 충격을 받지만, 세종의 도움으로 연장된 시간 동안 석구와 함께 이순지, 정인지를 준비해놓은 대전상궁의 방으로 안내, 그들이 일식 시간을 계산하는 것을 돕는다. 이후 일식 시간이 밝혀지자, 그들이 구식례 장까지 갈 수 있도록 이천이 오기 전까지 석구가 만들어 준 목제 갑옷을 입고, 자신들을 죽이려는 조광의 첩자들을 막아냄으로써 구식례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장희제가 자신이 갈 길을 깨닫게 됨으로써 그와 함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자 기뻐하지만, 장희제가 거짓된 자료로 조광을 속여 구식례를 성공적으로 이루게 한 사실을 안 보수파 사대부들이 그를 죽이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게 된다.

그 후에 사실상 장희제의 유언서를 받고, 물시계를 만드기 위해 정말 온 힘을 쏟고, 마침내 완성하지만.... 최만리 등 견물 연구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대부들과 자신의 근처 동료들이 면천되는 것을 본 다른 천민들이 불만 토로[6]와 새로 즉위한 정통제를 치켜새우려는 명나라 사대부들의 압박이 더해져서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워한다.


2.6. 조선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편집]


그러던 도중에. 장영실이 손보기로 했던 안여(가마)에 그의 막내 제자 최율[7][8]이 결국 바퀴를 망가뜨렸고, 이를 타고 요양을 가던 세종이 다치는 사고가 일어남으로서, 결국 투옥되고 만다. 세종은 장영실을 끝까지 신뢰하였지만, 사대부들은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장영실을 죽이라고 청한다. 결국 그는 거짓 자백을 하게 되고 흠경각에서 세종과 마지막으로 만나면서 23화 종료.

24화에서 자신이 물을 담는 그릇이라 생각했지만 면천을 요구하는 천민들을 보면서 자기는 그릇이 아닌 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며 세종에게는 그릇이 되어달라고 말한다. 세종은 오랜 고민 끝에 장영실에 장형 80대를 내리고 열심히 곤장을 얻어맞는 중에도 자동시계의 동력에 대해 떠올린다. [9]그러나 살아남기는 했지만 장형의 여파로 정신을 잃고 겨우 깨어난 후에도 여전히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꿈을 꾸는 것과 같은 상태로 지내다가 세조 2년이 되어서야 깨어나게 된다. 그리고 1화의 시작부분에 나왔던 일식을 관측하는 장면으로 되돌아가면서 끝난다.
이후 드라마 장영실을 마무리하는 내레이션이 나오고 장영실이 쓰러져 죽음을 맞이하면서 드라마는 막을 내리게 된다.

"대한민국 번영의 초석이 된 과학기술 발전은 갑자기 이루어 진것이 아니다. 세계의 과학기술 역사를 다룬 과학사,기술사 사전에 의하면 15세기의 전세계가 이룬 과학적 업적은 80가지 인데, 이중 조선이 이룬 업적은 34가지이고,중국은 5가지 일본이 5가지 이 세 나라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나라를 합한 업적이 36가지이다. 15세기 세계최고의 과학기술국가는 조선이었다. 장영실과 이름없는 수많은 조선의 격물가들에게 역사 과학드라마 '장영실'을 바친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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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몽에서 송일국(주몽)의 아들인 유리 역의 아역을 맡았다.[2] 장희제는 대꾸를 전혀 하지 않았다. 자신도 잘못한 것은 알고 있었는 듯.[3] 역사 다큐에서 장영실에 대해서 나왔을 때 이 자료가 명나라 입장에서 모두 극비라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 장영실은 어떻게 자료를 얻었는지 의문으로 남는다.[4] 세종실록은 아니지만 중종실록을 보면 박연과 장영실이 함께 악기를 만들었다고 적혀있는데 그것을 활용한 모습이 아닌가 싶다. [5] 다만 석구와 같은 경우에는 봇짐장수로 활동하고 있는 자신의 제자인 오필교를 통하여 계속 소식을 확인하고 있었었던 듯 하다.[6] 천민들은 언제는 장영실이 온 백성이 하늘과 같다라고 이야기하더니 이제 올라가니까 우리의 신세를 모른 척 한다라고 하면서 영실의 동료들(면천이 된 동료들)과 석구에게 주먹질을 해댔다. 도중에 장영실도 한 대 얻어맞는다.[7] 최율만 유일하게 면천이 되지 않았었다. 천민들이 장영실에게 불만을 토로하고 구타를 할 때 보고만 있던 것이 그의 배신에 대한 복선.[8] 그 후 결국 조광의 편으로 들어감으로서, 그의 배신이 확정.[9] 여기서부터는 가상이다. 실제로 오해말것.[10] 물론 정설은 아니다. 근거로 언급되는 과학사기술사사전은 당시에도 취급이 제임스 플린에 의해 완벽하게 반박된 리처드 린의 아이큐 조사와 비슷한 평가를 받았다. 공정하고 객관적이지 않으며 주관성이 너무 강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