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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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관진.png[1]
성명
정관진(丁寬鎭)
이명
이정일(李正一), 허준(許俊)
생몰
1902년 ~ 1931년 10월 19일
출생지
경성부 숭인동
(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
사망지
경성부 숭인동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정관진은 1902년생이며 경성부 숭인동 출신이다. 그는 경성노동청년회와 서울청년회 소속 조직원으로 활동했으며, 1925년 10월 고려공산청년동맹 소속원이 되었다. 1927년 서울 숭인동에서 고학당에 입학한 그는 조선학생혁명당(朝鮮學生革命黨)을 조직하였다. 이 단체는 일본제국주의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목적으로 조직된 비밀결사였다. 정관진은 조직부를 담당하여 학생운동 및 사회주의 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다 1928년 12월 제3차 조선공산당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된 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곧 석방되었다.

1929년 3월, 정관진은 동지들과 모임을 갖고 조선학생혁명당을 조선학생전위동맹(朝鮮學生前衛同盟)으로 변경하고 조직을 확대하기 위한 활동을 벌였다. 이후 1929년 11월 초순, 허정숙(許貞淑)·이운혁(李雲赫)·송도호(宋道浩) 등과 회합하여 조선공산당 및 고려공산청년회 재건설준비위원회를 조직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9년 12월에 이운혁·송도호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자 허정숙과 함께 조직의 확장에 노력하여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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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2월 8일 종로경찰서 형사과에서 촬영된 사진.

그러나 1930년 폐결핵으로 인해 서울 세브란스병원에 입원, 치료하던 중 경찰에 체포되었고, 1931년 5월 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았다. 1931년 6월 25일 고등법원에서 상고 기각된 후 폐병으로 말미암아 집행정지로 풀려났으나 10월 19일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정관진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1928년 12월 5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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