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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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뜻에 대한 내용은 서울(동음이의어) 문서 참고하십시오.1. 개요[편집]
서울특별시는 대한민국의 수도[10] 이자 최대도시이다. 또한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 중 하나이다.[11]동행·매력 특별시 서울
지방자치법의 특별법[12] 으로 법률상 대한민국 제1의 도시로 규정되어 있다. 현재 대한민국 유일 특별시이며, 수장인 서울특별시장은 대한민국의 광역자치단체장 중 유일하게 장관급 대우를 받으며 국무회의 참여권 및 발언권이 있다.[13][14] 서울은 대한민국의 제 2도시인 부산보다도 인구가 약 3배 더 많은 명실상부한 한반도의 종주도시이다.
역사적으로도 백제, 조선, 대한제국의 고도이자 현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중요성이 높다. 기원전 18년 백제가 현 송파·강동 지역에 도읍을 정한 후 492년간 한성백제 시대가 이어졌다. 이후 475년 고구려가 한성을 함락하였는데, 북쪽에 기반을 둔 국가인 고구려는 기존 백제의 한성에서 북쪽으로 한강을 건너 현 광진·성동·구리 일대를 거점으로 삼아 고구려의 북한산군 남평양으로 지정했고, 이후 서울은 강북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이후 553년 신라가 이 지역을 차지하여 신라의 한산주 한양군이 되었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약 250년간[15] 개경 이남의 남경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510년 동안[16] 조선 및 대한제국의 수도 한성부였고, 이어 70여년간[17]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로서 지위를 차지하는 도시로 한국사에서 도합 1070여년간 수도로서 기능을 하였고 부수도 기간까지 합치면 13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의 고도이다.[18]
2. 상징[편집]
3. 외국어 표기[편집]
서울은 한국의 다른 도시에 비해 오래 전부터 서양에 잘 알려진 도시였기에, 서양에서는 각 언어권마다 자체적으로 표기를 만들어 쓰는 경우가 많다. 서울의 프랑스어/영어 표기는 각각 Séoul/Seoul인데, 영어 표기 역시 프랑스어 표기에서 diacritics만 뺀 것이다. Séoul은 세(Sé)울(oul)로 분석되는데 불어 음운체계에서 한국어 발음과 가장 가깝게 철자를 고른 것이다.[21] 이 Seoul이라는 표기는 로마자 표기가 중구난방인 한국어 고유명사 표기 중에서는 상당히 일관성 있게 유지되고 있는 편으로, 한국인이 영어 등의 라틴 문자 사용 언어로 글을 쓸 때 한국의 다른 지명은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나 해당 언어권에서 원래 쓰는 철자를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경주를 Kyung-joo라고 쓴다거나), 서울은 그렇게 하는 경우를(굳이 예를 들자면 Suh Wool이라거나) 거의 찾기 힘들다.
예전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 의하면 서울은 Sŏul이 되는 고로 영어권의 한국 지도에 Seoul(Sŏul)로 병기되어 있는 사례도 있다. (또는 기호를 생략한 Soul
스페인어에서는 Seúl로, 포르투갈어에서는 Seul로 표기하며 독일어는 영어와 마찬가지로 불어 철자를 그대로 따르되, 부호는 뗀 Seoul로 쓴다. 네덜란드어로는 ㅜ 발음을 oe로 적기 때문에 Seoel이라고 표기한다, 발음은 세울 내지는 쎄울로 발음한다. 네덜란드어의 u는 프랑스어처럼 /y/ 발음.
헝가리어로는 Szöul이라고 표기하고 '쐬울'이라고 읽는다. 헝가리어에서 s는 영어의 sh와 같은 발음이고 ㅅ 발음은 sz로 표기한다. 이는 서울의 옛 독일어 이름인 Söul에서 유래된 것. 독일어는 초기에 한국어의 ㅓ를 ö로 옮겼던 적이 있다.
로마자의 모음에 해당하는 문자들 중 직접적으로 'ㅓ'소리를 담고 있는 문자가 없기 때문에, 비영어권의 경우 Se-(o)ul로 음절을 나누어 대부분 '쎄울'이라고 발음하는 편이지만 영어권의 경우 비슷한 철자의 단어인 'Soul'과 비슷하게 '써을'이라고 발음한다. 실제로 영어권 외국인들도 Soul이라는 단어를 연상하는지 "북한은 Seoul(소울)이 없어서 실패한 거다"라는 아재개그를 종종 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본어에서는 일제강점기 시절 京城(けいじょう, 경성)라고 부르다가 1948년 서울특별시로 지정되면서부터 '서울'의 음을 딴 ソウル로 표기를 바꿨다. 재밌게도 Seoul의 영어식 발음에서 Soul of Asia를 이끌어냈듯 일본어에서 영혼을 뜻하는 Soul도 서울과 똑같은 ソウル를 쓰기 때문에 서로 중복된다.
중국어에서는 서울이 한국어 고유어인 탓에 서울이 공식 이름이 된 해방 이후에도 漢城/汉城(Hànchéng, 한청)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서울대학교로 보내는 우편물이 한성대학교로 잘못 가거나 또는 그 반대가 생기고 한성(漢城)의 중국식 발음인 한청과 서울의 발음상의 괴리로 혼선이 많이 생기면서 곤란해하자, 2005년 1월 19일 발음이 서울과 유사하며 으뜸되는 곳(수도)이라는 뜻을 지닌 首尔(首爾, 수이, Shǒu’ěr, 서우얼) 이라는 한자로 당시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특별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의 공식 중국어 표기를 발표했다. 처음에 중화권이 보인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협의도 없이 首尔로 바꿨다고 불만이 있었던 듯 하지만, 신화통신 등 각종 중국어 매체들이 首尔 표기를 채택하면서 현재는 널리 쓰이고 있다.
러시아어로는 '세울'이라는 발음에서 Сеул이라는 표기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실제 발음은 е가 연모음인 점과 강세의 영향으로 '씨울'에 가깝다. 한국어를 키릴 문자로 옮기는 대표적인 체계인 콘체비체 체계에 따르면 Соуль로 적는 것이 맞으나 이미 굳어진 표기라서 그런지 러시아를 포함한 키릴 문자 사용 언어에서는 대부분 Сеул을 쓰고 있다.[22]
아랍어로는 'سيول'또는 'سول' 이며 발음은 앞에서부터 '씨울', '쑤울' 정도이다. 표준 아랍어에서는 모음이 'a', 'i', 'u'밖에 없으므로 모음에 해당하는 부분이 많이 바뀐다.
알바니아어로는 '서울'을 'Sëul'로 표기한다.[23]
서울을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라 로마자로 표기할 때 굳이 행정단위를 명시해야 한다면 ‘-si’를 붙인다. ‘-teukbyeolsi’라고 쓰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한 듯.
4. 역사[편집]

4.1. 지명의 어원[편집]
'서울'은 본래 한국어의 순우리말로서 '한 나라의 수도(首都)', 곧 '국도(國都)'를 가리키는 일반명사이다. 따라서 고유명사로서의 쓰임과 별개로 '미국의 서울은 워싱턴 D.C.이다', '영국의 서울은 런던이다', '조선의 서울은 한양이다'로도 쓸 수 있는 것이다.[24] 다만 1946년 지명이 '경성부'에서 '서울시', 다시 '서울특별자유시'로 바뀐지도 벌써 반세기가 넘었고 고유명사 '서울(특별시)'의 용례가 대두되어 일반명사인 '서울'은 일상 회화에서는 점차 쇠퇴하고 있다. 일상적으로 '서울'이라고 하면 지명인 '서울특별시'를 가리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고유명사가 된 일반명사의 사례이다.
남한의 시군구 이상 행정구역 중에서 유일한 순우리말 지명이기도 하다.[25]
'서울'이라는 어휘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학설이 있다.
- 국어학계에서는 대개 서울이 신라의 수도였던 '서라벌(徐羅伐)'에서 변형되었다고 본다.
- 서라벌(徐羅伐)은 역시 고대 한국어의 순우리말을 음역한 것이다. 당시에도 한자어 서라벌(徐羅伐)을 지금과 같이 서라벌로 읽었을지 아니면 다르게 읽었을지는 명백하지 않지만, 현대의 발음과 큰 차이는 없었을 것이라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참고로 신라 시대에는 서라벌을 서벌(徐伐)로 표기한 기록도 제법 있다.[26] 신라 시대의 서라벌, 서벌이 오랜 세월을 거쳐 조선시대에는 셔ᄫᅳᆯ → 셔울 → 서울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용비어천가》에서는 한자 京에 대응되는 고유어를 '셔ᄫᅳᆯ'로 기록하고 있으며[27] , 《삼국유사》에서도 신라 국호 제정 기사에서 "지금 경(京)자의 뜻을 우리말로 서벌(徐伐)이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서라벌'의 정확한 어원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학계에서는 서라벌이 '금성(金城)'이라고도 불렸다는 점에 착안하여 해당 명칭이 '쇠(金)'+'벌(野)'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28]
- 고려의 전신인 태봉의 수도였던 철원의 고유어 지명 '쇠벌'[29] 이 서울이 되었다는 설, 백제의 마지막 수도인 사비성의 이명이 '소부리(所夫里)'[30] 인데 이것이 '소벌'의 음차일 가능성이 있으며[31] , 이것이 변하여 서울이 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만일 '소부리'가 서울의 실제 어원이었다면, 한반도에서 최초로 서울 지역을 수도로 삼았던 백제의 명칭이 돌고 돌아 다시 서울로 돌아가게 된 셈이 된다.
- 고구려의 지명에서도 현대 한국어 '서울'에 대응되는 어휘가 발견된다고 한다. 옛 예맥계 국가인 맥국(貊國) 등이 존재했던 강원도 북부 및 함경도 일대에서 창고를 수을(首乙)이라고 했는데, 이 단어를 한문으로 '서울 경(京)' 또는 '곳집 경(𢈴)'으로 번역했음을 《삼국사기》 〈지리지〉를 통해 알 수 있다.[32] 또한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조에서는 고구려인들이 고상식 창고를 '부경(桴京)'이라 불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당시 '창고'와 '수도'를 뜻하는 고구려 어휘가 동일했으며, '술'~'수리'의 발음을 지녔을 것으로 보고 있다.[33] 다만 이 가설의 경우 상술한 '서라벌' 및 '소부리'와 달리 '서울' 의 '서'에 대응되는 부분만 확인되고 '울(←ᄫᅳᆯ)' 에 대응되는 어휘가 기록되지 않아 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 이외에도 고구려의 '졸본', 발해의 '솔빈', 고려의 수도 개성의 옛 이름인 '송악'의 이명 '송도(솔벌)' 역시 어원의 후보로 제기되고 있다. 서라벌에서 '라'의 탈락이 제대로 설명되었지 않다고 보는 경우 본 가설을 비롯해 위에서 설명한 여러 이설들 중 하나를 유력하게 여기는 경우가 있다. 다만 앞서 서술했듯 '서벌(徐伐)'이라는 표기 또한 신라 당대에서부터 나타나므로 '라'의 탈락은 이미 신라 대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는 설이 지배적이다.
결국에 어떤 수도를 지칭하는 고유/일반명사가 일반명사 '서울'이 되었고, 다시 '서울특별시'를 지정하면서 고유명사가 되었다는 점은 같다.[34]
- 원로배우 오현경씨가 들은 얘기로는 정도전이 태조 이성계를 모시고 북악산에 올라갔을 때, 당시가 3월이라 주변 산에 모두 눈이 쌓여 있었는데 그 안에 있는 땅이 마치 눈의 울타리 안에 있는것 같다고 해서 '설울'이라고 했다가 서울이 되었다고 한다. 오현경 씨는 서울 출신으로, 적어도 당시까지 그런 전설이 전해져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 #[35]
앞서 소개한 《삼국유사》와 《용비어천가》의 기록 외에도, 수많은 15~16세기 한글 문헌에서는 '셔울'을 마치 수도를 뜻하는 일반명사처럼 사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서울이 등장할 리가 없는 불경 언해본 《월인석보(1459)》와 두보의 시집 언해본 《두시언해(1481)》에서도 셔울이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 나타나고 있다. 이를 통해 이미 훨씬 옛날부터 서울을 '한 나라의 수도가 되는 곳'이라는 뜻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서울을 지금처럼 음차하여 '徐蔚(서울)', '徐兀(서올)'이라고 표기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에 작성된 '해좌전도'의 경우 '경(京)'이란 낱말로 서울을 지칭했는데, 한국어에서 '상경' 등의 어휘가 아니라 단일 한자로 된 '지명'이 존재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점에서 이를 서울이라고 훈독하였다고 보기도 한다.
4.2. 지명 변천사[편집]
고대부터 한반도의 중심에 자리하고 한강을 낀 데다 드넓고 비옥한 평야 지대가 펼쳐져 있어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도시였다. 삼국시대에는 원래 백제의 수도였으나 치열한 국경 전쟁을 거쳐 고구려, 이후 신라의 땅이 되었다. 세 국가 모두 서울 지역을 가졌을 때 전성기를 맞았을 정도. 고려 시대에는 태조 왕건 가문의 연고지인 개성을 수도로 삼았지만 이후 남경(서울) 천도가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는데 추진 시기와 맞물려 국운이 기울면서 유야무야되었다. 고려에 이어 조선이 개국한 후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서울은 다시 한반도 국가의 수도가 되었고, 조선 왕조는 물론 대한제국까지 500년 동안 한양을 수도로 삼았다.
일제 때 잠시 경성부(京城)로 개칭되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국에 망명정부를 꾸렸지만, 명목상 수도는 서울로 두었다. 1946년에 경성부라는 명칭은 공식적으로 '서울'로 개칭되고 1948년 정부수립 이후에 그대로 수도가 되었다. 북한도 1948년 최초의 헌법을 제정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부(首府)는 서울시이다”라고 규정하였으며, 1972년 헌법을 개정해 수도를 평양으로 바꿀 때까지 명목상의 수도를 서울이라 하였다.
다만 “조선 시대에는 서울을 한양 또는 한성이라고만 불렀고, 일제강점기에는 경성부라 부르다가 해방 후 서울로 불렀다”는 견해는 타당하지 않다. 한성부 또는 경성부라는 명칭은 공부상의 공식 지역 명칭이었을 뿐,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는 그저 수도이기 때문에 일반명사로서 서울이라 불렸다는 증거는 상당히 많으며, 서울이 일반명사에서 점차 고유명사가 되기 시작한 역사는 생각보다 꽤나 길다. 예를 들어 17세기에 나온 하멜 표류기에도 서울은 Sior로 표기되어 있다. 이미 조선시대에 한양이라는 공식 명칭보다 서울이라고 불리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를 다룬 사극의 등장인물들은 서울을 한양이나 경성부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차라리 서울이라고 부르는 것이 고증에 맞는 자연스러운 설정일 수 있다.
근세 이후 '서울'이라는 지명을 사용한 역사에 대하여는 역사 문서로.
참고로 이름을 바꾸고자 한 시도도 있었다. 외솔 최현배는 1955년 “서울은 수도를 뜻하는 보통명사에 불과하므로 서울의 공식 명칭을 그저 서울이라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 이승만 대통령에게 서울의 이름을 고치자고 건의했고 이승만도 생각 끝에 이름 공모를 했다. 그런데 이때 아첨꾼들이 이승만의 아호인 "우남(雩南)"을 서울의 새 이름으로 삼자고 주장한 것. 물론,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이름을 딴 워싱턴 D.C.의 사례를 들어 제안한 것이었으나, 이를 들은 외솔이 장난치냐면서 길길이 날뛴데다가, 이승만 본인조차도 "이건 아니다" 라고 생각하여 거부하였고, 직접 “한도(韓都)”라는 이름을 대신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1956년 서울시의회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당선되면서 이 계획은 유야무야되어 서울은 그저 서울이란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4.3. 세종실록지리지에서의 설명[편집]
5. 지리[편집]

5.1. 인구 추이[편집]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지방 이주민과 해외 교포들의 서울 유입으로 매우 급격한 인구 증가를 보였다. 수도권에 집중되었던 개발 정책에 1990년대 이후로 비수도권 주요 도시들이 쇠락하며 상대적으로 서울의 지위가 더욱 높아져 대한민국의 정치, 교육, 문화, 경제를 완전히 주도하는 형국이다.
서울의 인구 분산을 위해 정부는 1989년 경기도에 위성도시로 1기 신도시를 건설하면서 인구 유출이 시작되었다. 1992년 1,097만 명을 정점으로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해 2000년대 초까지 10년 이상 인구가 감소하다 2000년대 말에 재개발로 인구가 다시 증가하기도 했지만, 2010년대 들어 다시 감소하기 시작 2016년 5월에 1,000만 명 아래로 내려갔고, 6년 후인 2022년 5월엔 950만 명 아래까지 내려갔다. 하지만 유출 인구의 대다수는 인근 경기도, 인천광역시로 유입되었기 때문에 수도권의 인구는 여전히 증가세에 있으며 결국 전국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정부에서는 뒤늦게 균형 발전책으로 수도권 규제와 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도시 등을 만들어 각종 공공기관을 전국 각지로 이전하는 등 수도권 분산 정책을 펴고 있지만 수도권 집중 현상은 좀처럼 완화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수도권이 아닌 서울 자체로만 본다면 인구과밀 문제가 예전보다 나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서울의 인구가 이동한 경기도, 인천이 서울보다는 훨씬 넓은데다가 2010년대 이후로는 경기도, 인천도 자체적인 산업단지나 상권이 많이 발달했고 서울 근교뿐만 아니라 수도권에 속하지만 서울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화성, 평택 등의 인구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 등록인구 외에 고시원이나 원룸에 전입신고를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나 경기도에서 출퇴근하는 인구까지 포함하면 서울에서 생활하는 인구는 실질적으로는 등록인구보다 더 많다. 물론 서울에서 경기도로 출퇴근하는 인구도 많으므로 이 쪽은 제외해야 한다.
현재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도시권 인구는 2,600만여 명으로 세계 10위권에 해당된다. 한때 도시권 인구로 세계 4위권을 기록하기도 했으나 2000년대 이후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적지 않은 외국 대도시 권역의 인구가 서울을 따라잡았고, 대한민국의 인구가 감소세인지라 인구 순위가 떨어졌다.
5.2. 기후[편집]

6. 위상[편집]
6.1. 국제적인 위상[편집]
- AT커니에서 발표하는 Global Cities Index에서 서울은 13위를 기록했다.
- 일본의 모리기념재단이 발표하는 Global Power City Index(GPCI)에서 서울은 8위를 기록했다.
- 미국의 부동산 컨설팅그룹 JLL이 발표하는
- 영국의 씽크탱크 Z/Yen이 발표하는 Global Financial Centres index는 13위.[37] #
서울은 한강의 기적의 영향으로 급속한 개발의 힘도 강하게 미쳤기 때문에 전주나 경주에 비해서 '한국적인 미'는 제대로 살아있다고 보기 힘들다. 하지만 근 500년 전부터 수도였던 특성상 아직도 많은 유산이 남아있으며, 오리엔탈리즘을 좇아 이국적인 동양의 정취를 느끼고자 서울에 들른 외국인 관광객들은 오히려 처마와 고층 건물이 한곳에 공존하는 모습을 보고 신기함을 느껴 "과거와 현재가 잘 어우러진 메트로폴리탄"이라는 평을 한다. 특히 북촌한옥마을이나 남산골한옥마을, 경복궁이나 창덕궁, 창경궁을 포함한 여러 역사유산이 서울에 존재해 외국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며, 남대문시장 같은 재래시장 또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20세기 초반 이전만 해도 사대문 바깥쪽은 논밭과 산들로 어우러진 녹지였다. 이 지역들은 과거 경기도 소속의 지역들[38] 이었다가 서울시로 편입된 지역들이다. 지금은 사대문 밖 지역 중에서도 가장 호화롭고 부유한 지역인 강남 지역도 상당수 경기도 지역 소속이었다. 도시로 변한 건 20세기 이후이니 사대문 밖에는 전통적인 볼거리가 적다.
너무 서울이라는 도시에 익숙해진 많은 한국인들의 편견과는 달리, 팬데믹 기간 이외의 서울은 이미 전 세계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도시 중 하나다. 서울은 쇼핑 목적으로 뛰어난 관광지라 할 수 있다. 2014년 CNN에서 뽑은 세계 12대 쇼핑 도시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 각종 면세점과 백화점들은 관광객들의 지갑을 열게 만들었고, 때마침 2000년대부터 불어닥친 한류 열풍은 관광계의 큰 손인 중국인들을 대거 포섭하면서 꾸준히 많은 관광객들을 유치하게 되었다. 명동에서는 이미 은련카드와 알리페이의 광고가 도배될 정도.
서울 통계 정보 시스템을 통해 알아보면 대략 서울에 온 외국인 관광객 중 절반 정도가 중국인이다. 그리고 관광객의 대부분이 쇼핑을 껴서 즐기다 보니 관광객 규모 대비 수익률이 높은 것도 주목해야 한다. 신세계그룹, 현대백화점, 이랜드그룹 등의 유통업체들도 서울에 대형 SC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그렇다고 동아시아에서만 관광객이 많은 것은 아니고, 서구 관광객들도 300만 명이 넘는 수준을 유지 중이다. 다만 중국인의 비율이 너무 많아 외국인 관광객의 다변화가 필요하다는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6.2. 서울 공화국[편집]

서울은 단순히 수도가 아닌 대한민국 그 자체로 여겨질 정도로 대한민국의 역량 집중이 심한 지역이며, 이는 수도권 집중으로 더욱 심화되고 있다.
7. 수도로서의 서울[편집]
7.1. 수도권의 최대도시[편집]
서울특별시를 품 안에 끼고 있는 경기도와 인천광역시와는 애증으로 오가는 떼어낼 수 없는 필연 관계이다.[39] 같은 수도권이라는 것 때문에 공통점이 있기도 하고 과거 경기도 일부 지역이 서울로 편입되는 등 여러가지 변화도 있다. 전국체육대회에서는 영원한 맞수로 각각 1, 2위 상위권을 다투는 중이다. 2004년 노무현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 때는 두 지역이 단합하여 수도 이전을 반대하였다.
서울특별시는 내륙 도시로 항만 기능을 인천항과 평택·당진항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서울시민들이 사용하는 전기의 90% 이상은 인천광역시에서 생산되는데, 이로 인해 인천광역의 전기 자급률은 300%를 넘어 전국 1위이며 서울특별시의 쓰레기는 인천광역시 서구에 있는 수도권 매립지에서 처리된다. 이러한 이유들로 서울특별시과 인천광역시 사이에 심심찮게 갈등이 일어나고 있으며 서울특별시가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아 당분간은 갈등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외국 지도에서 배율에 따라 표기되는 도시의 숫자의 차이가 있으나 작아서 도시 하나밖에 쓸 수 없다면 남한 지역에는 서울특별시만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인천국제공항은 서울이 아니라 인천광역시에 위치한 공항임에도 대외적으로는 서울로 안내한다.
인천광역시와 경기도 모두 수도권 전철로 연결되며 수도권 전철로 연결되는 거대 도시권이다.[40] 해외에서도 "서울 메트로폴리스" 라는 표현을 쓴다. 도시 연담화인 메갈로폴리스와는 다르다. 다만, 이것이 서울특별시가 '완전한' 종주도시라는 것은 아니다. 수도권에는 서울을 제외하고도 인천, 수원, 안산 등 자체적인 산업, 업무 시설을 통해 자체 생활권을 구축하고 있으며 서울 통근권에는 포함되나 그 정도가 크지 않아 지역 경제 활동자의 과반 이상이 서울이 아닌 자기 지역에서 종사하고 있다. 실제로 인구이동 DB에 의하면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이거나 인천, 수원처럼 자체적인 생활권을 구축하고 있는 도시는 서울 통근자가 비율상 높지 않다. 수도권 전체를 일률적으로 서울과 서울의 위성도시로만 해석한다면 이는 반론의 여지가 너무 많다.
서울특별시 자체는 인구가 계속 줄고 있는 반면, 경기도와 인천광역시가 인구가 늘고 있는 이른바 교외화 현상이 심하다. 이 추세는 한국 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 수도나 마찬가지[41] 이며 미국은 아예 거의 모든 도시가 교외지에 사람이 살고 도심지(행정구역 상 해당 도시)는 해가 지면 유령 타운이 된다. 아무래도 서울은 개발된 지 오래된 지역이 많고 난개발되었거나 지나치게 지가가 높은 반면 인근 경기도와 인천광역시는 계획도시로 조성된 곳들이 많아 생활환경이 비교적 쾌적하고 지가도 상대적으로 저렴하여 상경한 지방민들이나 신혼부부들은 거의 경기도에 정착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고양시나 수원시 같은 인구 100만을 찍은 경기도 소속 도시들도 생기고 인천광역시는 "시"급 도시로는 인구로는 전국 3위일 정도로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42]
또한, 서울특별시에 소재한 많은 기업들이 인천광역시와 경기도의 신규 개발 지역에 이전하는 추세다.
7.2. 천도 논의[편집]
수도를 서울에서 타지로 옮기자는 논의는 의외로 꽤 오래 전인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 신민당 경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처음 수도이전론을 제기하였고 박정희 정권도 1970년대 중반 극비리에 수도 이전 계획을 연구하였다. 서울에 발생한 인구 집중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서울이 휴전선에서 멀지 않았고 북한의 장사정포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군사적 배경이 더 컸다.[43] 따라서 노무현 정부의 행정수도 계획과 다르게 통일 이전의 잠정적인 수도로서의 수도 이전안이 구상되었던 것이다. 이후 통일이 되면 서울로 원상 복귀할 생각이 있었던 셈. 당시 구상안에 따르면 후보지는 대전 인근으로 지금의 세종특별자치시와 상당히 비슷한 위치였다. 이후 1977년 7월 '임시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면서 공론화되어 신행정수도 부지 선정과 도시계획까지 진행 중이었으나, 박정희의 사망으로 유명무실해졌다.[44]
참여정부 시절은 이와는 좀 달라서, 지방분권을 위해 노무현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를 바탕으로 주요 행정기능을 충청권으로 모두 옮기는 수도 이전을 시도했다. 2004년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하며 시도하여 행정기능을 충남 연기·공주 지역으로 분산할 계획이었으나,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45] 에 따라 무산되고,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대체되었다. 이때 헌법재판소 다수 의견은 관습 헌법을 논거로 판단하였는데 정치권은 물론 법조계·학계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46]
결국 해당 사업은 수도 이전에서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로 이름을 바꾸고 규모를 축소한 사업이 되었다. 충청남도 연기군과 공주시, 충청북도 청원군 일부를 묶어 2012년 7월 1일 세종특별자치시라는 이름으로 출범했다. 2014년까지 몇 개의 행정부처를 이전하여 행정도시를 만드는 사업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지역 간의 찬반 대립으로 여러 곡절을 겪었지만, 행정도시 건설안 자체는 확정되었다.
한편 10차 개헌에서는 수도 관련 사업을 법률 위임사항으로 규정함으로서 위의 관습헌법 논란을 아예 없애고자 하므로 만일 개헌이 이루어진다면 행정수도 이전도 좀 더 쉬워질 수 있다.
7.3. 북한과의 인접성 및 안보 문제[편집]
간단히 요약하자면 서울이 북한과 너무 가깝다는 이야기이다.
헌법에 따른 명목상 영토로 보면 중앙에 가까운 위치인데, 남북분단으로 인해 서울의 위치가 실질적인 국경에 상당히 근접하게 되었다. 물론 수도가 반드시 영토의 한가운데 있어야 된다는 법은 없으나, 우호적인 이웃나라가 아닌 적대국의 전선에 가까이 수도 겸 최대도시가 있다는 점이 세계적으로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유사한 사례로는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및 아르메니아의 예레반이 있으나, 도시 규모로 치면 서울이 압도적으로 크다.[47]
만약 북한이 전쟁을 하기라도 한다면 국가 주요 시설과 인구 950만 명이 밀집해 있는 서울을 우선적으로 노릴 가능성이 높고, 공격하면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이유는 북한의 방사포, 장사정포[48] 등의 사정거리가 서울 시내까지 닿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49]
서울특별시는 준전방 지역이나, 수도 및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대도시라는 특성 때문에 후방[50] 으로 취급받는 것이다. '서울은 북위 38도선에 붙어있지도 않고, 철원군, 연천군처럼 휴전선에서 아주 가까운 도시들도 있는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으나, 1.4 후퇴와 휴전회담의 여파로 휴전선이 서부 전선에서 남쪽으로 눌려있는 듯한 모양으로 인해 중심지인 서울역 기준으로 가장 가까운 개풍군이 직선거리로 고작 39㎞에 불과하다. 서울특별시청에서 영종도 입구까지의 거리 또는 동탄역과 동두천시청까지의 거리도 대략 40㎞이다. 춘천시청에서 북한까지의 거리보다도 훨씬 가까우며 속초시청에서 대한민국 최북단까지의 거리를 비교해도 50㎞다. 게다가 서울특별시의 최서단인 강서구 아라뱃길 일대에서 한강 건너 관산반도까지 최단거리는 30㎞ 남짓이며, 고속도로를 따라 유일하게 열려있는 접촉선인 판문점으로 간다면 약 55㎞ 정도 될 것이다.[51]
그래서 예전에 북한 측이 군사분계선에서 가까이 있는 서울 불바다 위협을 종종 하곤 했다. # 무엇보다도 남북통일이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수도를 충청권으로 옮기자는 주장이 예전부터 괜히 나오는 게 아니며, 실제로 여러 기업들과 국가 기관이 세종특별자치시 또는 대전광역시로 옮겨간 것도 유사시 보호(보안)을 확보하기 위한 영향이 있다. 물론 통일부와 국방부는 항상 대북 경계를 유지해야 하므로 서울에 그대로 있다. 주한미군 기지도 용산 대신에 평택시로 이전한 이유도 북한의 사정권 및 전파 교란에서 더 떨어지기 위한 방책이다.
만일 서울이 수도가 아니었으면 서울은 향토사단 관할 지역이 아닌, 제1군단이 강북 서부 지역을, 제6군단이 강북 동북 지역을 관할하는 식으로 전방 군단 지역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서울 강서, 영등포와 광명, 시흥 일대는 인천권의 해안경비 상비사단인 제17보병사단 관할구역이 되었을 것이다. 아니면 한강 이남의 서부 지역을 (인접 접경 도시 김포처럼) 해병대가 관할했을 가능성도 있다.[52][53]
국제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면, 서울특별시는 군사적 (최)전방 지역에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도시다.[54] 미군기지가 용산에서 평택으로 이전했는데도 AFN FM 라디오 방송(102.7MHz) 서울 지역 송출이 유지되고 있는 것도 이런 측면 때문이다.[55] 1994년 그 유명한 북한의 서울 불바다 망언도 휴전선에서 서울이 멀지 않은 상황을 언급하고 나온 도발이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서울 (도시권) 인구가 2,800만인데 이런 거대한 도시가 DMZ 지척에 있다. 매우 위험하다."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2019년 12월 공개된 보도에 의하면 그는 취임 초에 '서울이 북한에서 가깝다는 것'에 불만을 갖고 "그들(서울 시민들)은 모두 이사해야 한다."라는 발언을 하기까지 했다. 누가 봐도 대북 선제 타격 카드를 만지작하던 것이다.
관점에 따라서 이는 '만약에' 전쟁이 났을 경우에만 발생하는 문제점이 아니라 평화로운 '지금'도 발생하는 문제이다. 평시에도 서울권의 안전을 위해 어마어마한 비용을 치르고 있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 대한민국의 징병제가 빡빡하게 돌아가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은 휴전선에서 차량으로 한 시간 이내로 도달하는 위치다. 따라서 전방이 한 번 털리면 예비군이고 뭐고 간에 동원할 여유가 없어지므로 육군 병력 감축을 비롯한 군사 전략 상의 변화, 개혁이 어렵다. 만약 지금의 상황에서 병력을 대폭 감축한다면 유사시 서울 절대 사수를 포기하고 일단 후퇴해서 싸우도록 전략을 수정한 후 전방(서울 포함)주민들에게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경우처럼 "이주를 하고 안 하고는 자유지만 유사시에 국가에선 책임질 수 없다."라고 통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남북관계의 앞길이 깜깜한데 지속된 징집 대상 인구 감소, 그리고 곧 마주할 인구 절벽으로 인해 가까운 미래에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으며, 이렇게 될 경우 수도 기능은 당연히 세종특별자치시 등 후방으로 이전할 수밖에 없다. 법적 수도를 서울로 유지하고 실질적인 수도 이전만 하든, 아예 헌법 개정을 포함하여 법을 바꾸든 말이다. 이렇게 되면 부동산 폭락도 그렇고 국제적인 투자, 브랜드, 비즈니스 등의 심각한 타격을 서울이 받게 되는 것이 불가피한데, 이러한 상황들이 예측 가능한 만큼 서울특별시로서는 한반도 평화와 안보 문제가 그만큼 중요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국가 안보 측면에서 보자면 수도를 서울로 하지 않고 대전, 대구, 광주, 부산, 전주 등 남부 내륙 지방이나 끄트머리 항구에 두는 게 더 나았다.[56] 현재 남한이 핵무기 외에는 모든 전력에서 북한을 압도하는 데다 미군 자동 참전까지 있는데도 안보 위협을 느끼는 것은 서울이 휴전선에서 너무 가까워 재래식 포격 사거리 안에 들어가고 기동 방어의 여유가 없다는 지리적인 불리함 탓이 크다. 군사적인 부분 외에 경제적인 부분을 봐도 휴전선 코앞이 남한의 심장부인 만큼 한 번 전쟁이 나면 그대로 완충 장치 없이 공격받게 되어 다치고 잃을 게 너무 많다는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판문점 선언 후 남북군사회담에서 북한 측이 양측 병력을 뒤로 물리자는 제의를 했을 때 남한 측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남부 지방에 수도를 두었다면 설령 북한군이 남침하여 한강 이북을 북한군에게 일시 빼앗겼다 해도 기동 방어를 통해 오히려 북한군을 끌어들여 섬멸할 공간의 여유가 충분했을 것이므로 훨씬 더 여유를 갖고 대북 군사 전략을 수립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57]
그러나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은 자칫 북한에게 우리가 강하니까 지레 겁먹고 피하는구나라는 메시지를 줄 수도 있고, 수도 이전 반대론자들이 "서울이 전방에 있는 게 오히려 수도 방어에 유리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수도 서울이 전방이라는 것이 전쟁 억제 효과를 해온 것이 사실이긴 하다. 수도는 특성상 인구가 많은 만큼 인적 자원이라는 강력한 자원을 쉽게 모을 수 있다보니 인류 역사상 수도의 위치는 해당 국가의 진출 방향을 보여주는 지표로도 활용되었는데 당장 고구려부터가 국내성을 수도로 삼다가 장수왕 시절에 백제와 신라로 진출하는 강력한 남진 정책을 펼치면서 수도를 보다 남쪽에 위치한 평양으로 옮겼었고, 고려 시대에는 (비록 중간에 좌절되어버리긴 헀다만) 반대로 옛 고구려 영토를 수복하겠다는 의지로 평양으로의 수도 이전을 추진하려 했던 적도 있었다. 어째 예시가 전부 평양이긴 하지만...[58] 즉 수도가 북쪽에 가깝기 때문에 여차하면 그대로 인구빨로 밀어붙일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북한에게 줄 수 있다는 것.[59]
게다가 청와대와 국회가 남쪽으로 이사 간다고 해서 수도권 수천만 명의 인구와 경제 기반이 함께 이사를 갈 수 있는 상황이 당연히 아니다. 수도가 서울이든 삼남 지방이든 간에, 국민의 절반이 수도권에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물론 천도를 한 이후에 10년, 20년 장기적으로 보자면 인구의 편중 문제와 국토의 균형 개발 문제 등이 상대적으로는 완화될 수 있겠으나, 수도권이 철원이나 연천 수준의 지역이 될 일은 없을 것이다. 천도를 하고 100년 넘게 남북통일이 안 된 상황이라면 모를까, 천도를 한다고 안보 부담이 크게 내려갈 것을 기대하긴 힘들다. 수도 이전의 골든 타임은 1960년대까지였기 때문이다.
7.4. 통일 수도 논란[편집]

훗날 남북통일이 이루어질 경우 서울의 수도 지위 유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서울은 한반도의 중앙에 가까운 위치, 현재의 남한은 물론 과거 백제와 조선 때도 수도로서 기능한 오랜 역사성, 한반도 최대도시라는 점 등이 서울 수도 유지론의 근거이다. 북한도 1972년 사회주의 헌법 제정 전까지는 오랫동안 헌법에서 서울을 수도로 지정했을 정도이다.[60]
하지만 통일 국가의 수도를 새롭게 선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가장 유력한 지역은 고려의 수도, 남북한이 모두 관할했던 경력, 개성공단으로 대표되는 남북화해 시도의 현장, 서울과 가까운 거리 등의 장점이 있는 개성이며 이외 평양, 철원, 파주 등이 후보로 거론되지만 개성에 비해서 경쟁력이 낮다고 평가된다.
7.5. 고령화와 인구 유출[편집]
대한민국의 고령화 추세에 따라 서울특별시도 역시 시내인구 평균연령이 높아지고 있으나, 서울특별시는 경기도나 인천광역시에 비해서 고령화가 더 빠르다는 게 문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서울특별시의 19세 이하 영유아, 아동 및 청소년층의 인구 비율은 전국 기준으로 1992년에는 7.88%, 2012년에는 3.87%고, 65세 이상 노년층 인구 비율은 전국 기준으로 1992년에는 0.98%, 2012년에는 2.17%이다. 반면에 경기도의 경우 19세 이하 인구 비율은 전국 기준으로 1992년에는 4.99%, 2012년에는 5.65%, 65세 이상 노년층 인구 비율은 전국 기준으로 1992년에는 0.71%, 2012년에는 2.23%다. 위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서울특별시의 경우 19세 이하 인구 비중이 전국 기준으로 1992년 7.88%에서 2012년 3.87%로 대폭 감소했지만, 경기도의 경우 19세 이하 인구 비중이 전국 기준으로 1992년 4.99%에서 2012년 5.65%으로 오히려 소폭 증가했다. 이는 확실하게 서울특별시가 늙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지역별 출생아수 통계자료를 봐도 마찬가지이다. 1992년에는 서울특별시 출생아수는 182,691명으로 전국 대비 25%를 차지했지만, 2012년에는 서울특별시 출생아수는 93,914명으로 전국 대비 19.38%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에 경기도는 1992년에는 출생아수 136,086명으로 전국 대비 18.62% 였지만, 2012년에는 출생아수는 124,747명으로 전국 대비 25.74%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간에 고령화 속도가 차이 나는 이유로는, 서울특별시의 높은 집값 때문에 젊은층 인구가 대거 경기도로 이동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또한 아이를 키우기 편하고 주거환경이 쾌적한 대규모 계획도시 지역이 희박해서 경기도나 인천광역시로 이주하는 수요 역시 많다.
2013년 통계에 따르면 서울특별시의 출산율은 전국 광역지자체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 기사 참고로 현재 서울특별시의 출산율은 0.6명 정도로, 멸절의 길에 들어선 수준이다.
2010년대 이후 서울특별시 인구의 감소세가 이어져, 서울올림픽이 열린 해부터 1,000만대를 유지해 온 인구가 2016년 5월 기준 28년 만에 무너졌다. 이는 과밀화에 따른 교외화로 서울특별시 인구가 경기도, 인천광역시로 이동하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2010년대 중반 이후로 서울특별시는 한국에서 인구 수로나 전체 인구 대비 비율로나 최대 인구순유출을 기록하고 있는 지역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출 인구가 경기도와 인천광역시로 이동했기 때문에 수도권으로의 집중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서울 자체의 과밀 문제는 예전보다 나아지고 있다.
7.6. 행정구역 개편 논의[편집]

8. 교통[편집]

전 세계적으로도 대중교통이 매우 잘 구축된 도시로 평가받는다.
9. 경제[편집]
서울의 GDP는 2019년 기준 약 433조 4,880억 원이며, 이는 경기도 478조 원의 다음인 한국 2위 규모이다. 한국의 중심인 만큼 각종 기업의 본사나 다국적 기업·기관의 한국 지사가 몰려있다. 2014년 미국의 브루킹스 연구소의 연구에 의하면 대한민국 수도권은 전 세계의 도시권역 중 도쿄, 뉴욕, 로스앤젤레스 다음인 세계 4위의 지역 총생산을 가지고 있는데 이 수치만으로도 5, 6위인 런던, 파리보다도 약 1,000억 달러 가까이 유의미하게 높으며, 3위인 LA와도 200억 달러 미만으로 큰 차이가 없는 편이다. 참고로 7, 8위는 오사카, 상하이이다.
교외화 현상으로 2010년대 이후 서울에 위치했던 기업들이 비교적 넓고 땅값이 싼 경기도, 인천의 새로 개발된 지역들로 이전하는 경우가 많아서 서울에 예전만큼 모든 기업과 일자리가 압도적으로 몰려 있다고 보기는 어렵게 되었다. 실제로 지역총생산에서는 경기도에 밀린 상황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강남구에 있던 IT 기업들 중 상당수가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판교테크노밸리로 이전한 것을 들 수 있다. 다만 여전히 수도권 중에서도 서울을 선호한다는 인식이 아직까지는 남아 있어서 LG의 경우 2017년 R&D 시설을 서울 강서구로 대거 집중시키기도 했다.[61] 또한 기업들의 공장이나 연구소는 몰라도, 본사는 아직까지 서울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금융업, 문화예술업 등의 서비스업 또한 아직 서울에 있는 경우가 많다.
9.1. 상권[편집]
10. 관광[편집]
국내 관광객 기준으로나, 외국인 관광객 기준으로나 넘사벽으로 압도적인 국내 1위 관광도시이다. 서울을 경제도시, 교육도시, 문화도시, 의료도시, 행정도시일 뿐만 아니라 서울은 한국 최대의 관광도시기도 하다. 당장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지자체를 합쳐야 서울에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 수를 넘어설 정도다.
조선의 궁궐 -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남산골 한옥마을, 남산, 인사동길, 명동, 북촌한옥마을, 롯데월드, 롯데월드타워, 63빌딩, 홍대거리, 이태원동, 신촌, 경리단길, 코엑스, 국립중앙박물관, 전쟁기념관, 서울역사박물관, 독립문, 서대문형무소 등.
물론 스키장이나 해수욕장 같은 경우는 서울에 없지만 서울과 교통으로 연결되지 않은 지역은 거의 없기 때문에[62] 서울 시민이 스키나 스노보드, 해수욕을 즐기기 위한 난이도는 다른 지역에 비해서 매우 낮은 편이다.
11. 도시 행정[편집]
11.1. 하수 처리[편집]
서울시의 하수는 원래는 한강, 중랑천, 청계천, 안양천 등지의 하천에 그대로 방류되었으나 1976년에 국내 최초로 청계천하수처리장(이후에 바로 옆 중랑하수처리장에 통폐합)이 생겼고 1978년에 바로 옆에 중랑천하수처리장(현 중랑물재생센터)이 생겼다. 당시 청계천하수처리장은 사대문안과 성북구, 동대문구(장한평 제외) 일부, 강북구 미아리를, 중랑천하수처리장은 나머지 강북 동북권(노원구, 강북구, 중랑구, 성동구 동부, 광진구)과 경기도 의정부시[63] 를 관할했다. 이 둘은 1980년대에 중랑하수처리장(현 중랑물재생센터)로 통합되었다. 1980년대에는 서울 서북권과 용산구를 관할하는 난지하수처리장(현 난지물재생센터), 서울 서남권(서초구 포함)과 경기 광명시[64] 를 관할하는 안양하수처리장(이후에 가양하수처리장으로 명칭변경. 현 서남물재생센터), 서울 강동권(+2014년까지의 경기 하남시)을 관할하는 탄천하수처리장(현 탄천물재생센터)이 건설되면서 서울시의 생활하수 대부분을 정화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같은 시기에 중랑하수처리장이 증축되었다. 2000년대 초반에 가양하수처리장과 탄천하수처리장은 민간 위탁으로 운영 주체가 변경되었고[65] 서울시내 하수처리장 명칭도 물재생센터로 변경되었다. 탄천하수처리장은 원래는 경기 하남시의 생활하수처리도 담당했지만 2014년 하남시에 자체하수처리장이 생기면서 관할이 일부 분리되었다.
구로구 항동 일대의 하수는 서울 서남물재생센터가 아닌 부천시가 처리하고 있다.
부천시, 안양시 등 서울시 하수처리 위탁 지역이 아닌 인접 위성도시들이 해당 도시 하수 일부를 서울시 하수도에 몰래 유입시킨 경우가 간혹 있다. 문서 사실은, 해당 지자체가 고의적으로 몰래 하수를 버린 것이라기보다는 수십 년 전에 지어진 하수관거 설계 문제 때문에 생긴 해프닝.
서울특별시의 하수처리구역은 다음과 같다. (2009년 당시 자료를 뼈대로 약간의 변동 사항을 반영)
- 서울특별시 전역 (부천시 위탁 하수처리구역인 구로구 항동 제외): 권역별로 서울특별시 중랑, 서남, 난지, 탄천물재생센터 처리
- 경기도 광명시 중 제2경인고속도로 이북 지역 (법정동 기준: 광명동, 철산동, 하안동, 소하동)[66] : 서울특별시 서남물재생센터 위탁처리
- 경기도 과천시 주암동 일부 (장군마을): 서울특별시 탄천물재생센터 위탁처리
- 경기도 하남시 배출 하수 일부: 2009년 당시에는 하남시 하수 전량 위탁처리. 2015년 하남시 자체 하수처리장 준공 이후로는 일부만 서울특별시 탄천물재생센터 위탁처리.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일부 (창릉천 이동 지역): 서울특별시 난지물재생센터 위탁처리
-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 일부 (수락리버시티): 서울특별시 중랑물재생센터 위탁처리
11.2. 사법[편집]
11.3. 공공기관[편집]
11.3.1. 본부 및 사업소[편집]
명칭 맨 앞이 '서울특별시'인 경우는 생략했다.
- 도시기반시설본부
- 상수도사업본부 http://arisu.seoul.go.kr
- 한강사업본부 https://hangang.seoul.go.kr
- 은평병원 https://ephosp.seoul.go.kr
- 차량정비센터
- 데이터센터
- 아동복지센터 https://child.seoul.go.kr
- 서북병원 https://sbhosp.seoul.go.kr
- 농업기술센터 https://agro.seoul.go.kr
- 서울대공원 https://grandpark.seoul.go.kr
- 인재개발원 http://hrd.seoul.go.kr
- 한성백제박물관 https://baekjemuseum.seoul.go.kr
- 체육시설관리사업소 https://stadium.seoul.go.kr
- 서울종합방재센터 https://119.seoul.go.kr
- 품질시험소 https://news.seoul.go.kr/citybuild/archives/209601
- 소방본부 https://fire.seoul.go.kr
- 건강가정지원센터 https://familyseoul.or.kr/
- 보건환경연구원 https://news.seoul.go.kr/welfare/life_health
- 공원녹지사업소 https://parks.seoul.go.kr
- 어린이병원 https://childhosp.seoul.go.kr
- 시립미술관 http://sema.seoul.go.kr
- 서울역사박물관 https://museum.seoul.kr
- 서울시립대학교 https://www.uos.ac.kr
- 도로사업소 (동부, 서부, 남부, 북부, 성동, 강서)
- 서울도서관 https://lib.seoul.go.kr
- 공무원수련원 http://yeonsu.eseoul.go.kr/main - 강원도 속초시에 있다.
- 서울역사편찬원 https://history.seoul.go.kr/
- 물재생센터 https://env.seoul.go.kr/water
- 서울시립과학관 http://science.seoul.go.kr
- 서울기록원 https://archives.seoul.go.kr/
11.3.2. 공사 및 출연 기관[편집]
서울특별시 홈페이지 공사·출연기관
- 공사
- 공단
- 출연기관
- 서울특별시 서울의료원
- 서울연구원 http://www.si.re.kr
- 서울산업진흥원 https://www.sba.seoul.kr
- 신용보증재단 http://www.seoulshinbo.co.kr
- 세종문화회관
- 여성가족재단 http://www.seoulwomen.or.kr
- 서울시복지재단 http://www.welfare.seoul.kr
- 서울문화재단 http://www.sfac.or.kr
- 서울시립교향악단
- 자원봉사센터 http://volunteer.seoul.go.kr
- 서울디자인재단 https://www.seouldesign.or.kr
- 서울장학재단 https://www.hissf.or.kr
-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 https://smile.seoul.kr
- 서울관광재단 https://www.sto.or.kr
- 50플러스재단
- 서울디지털재단
- 다산콜센터 https://www.120dasan.or.kr
- 서울기술연구원
-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 서울특별시 미디어재단 TBS https://tbs.seoul.kr
11.3.3. 그 외 관련 기관[편집]
12. 생활·문화[편집]
12.1. 주거 환경[편집]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이상인 2,600만 명이 몰려있는 수도권 속에서도 중심이다 보니 주거 문제가 크다.
주거 문제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의 인식은 지방에서 나고 자란 사람과 서울 거주민의 인식 차이가 매우 큰데, 지방의 경우는 부모님 집에서 독립하거나, 혹은 결혼 이전까지는 부모의 집에서 먹고 자기 때문에 주거비도 거의 들지 않고 이렇게 아껴서 저축한 비용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지방의 주택을 구입해 주거에 대한 문제 인식이 그렇게 크진 않다. 반면 서울 거주민들의 경우 서울로 상경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서울 태생들에게도 심각한 문제로 다가온다.
좁은 면적에 너무 많은 인구가 몰린 것도 문제지만, 박정희 정권부터 이어져 온 유구한 '부동산은 투기'라는 인식 때문에 부동산 시장이 심각하게 기형화되었기 때문이다. 부동산이 거주나 생활의 공간이라기보다는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왜곡되면서 비정상적으로 가격이 상승했고, 이는 대한민국의 빈익빈 부익부를 더욱 부추겼다.
비수도권에서는 저축한 돈으로 대출을 얻고 부모님에게 조금 도움을 받아서 결혼할 때 주거 공간을 얻어 독립하는 게 어느 정도는 무난하지만, 서울의 경우는 비정상적인 부동산 가격 때문에 이것이 서울 태생인 경우도 어렵다. 자치구마다 사정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주로 2010년대 이후로는 각 지역별로 젠트리피케이션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서울의 경우 1인 가구가 상당한 규모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타 지역과 서울의 주거 형태가 구분되는 아주 중요한 지점이다. 대학가는 물론, 대부분의 지하철역 근처에 오피스텔 건물이 정말 많고 그 층수도 높다. 과거에는 젊을 때 상경하고 직장을 잡은 뒤 약 2년쯤 지나 자리가 잡히면 결혼하고 가족의 형태가 된다는 게 일반적인 통념으로 1인 가구는 상경한 젊은이나 학생이 잠깐 경험하는 자취 정도의 이미지였지만, 이미 2000년대 들어서는 1인 가구도 가구 형태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세대들은 1인 가구를 가구 형태로 상정하지 않고 잠시 고생하는 시기 정도로 판단하고 있어서 여러 어려움이 생기는 것. 일반적으로는 월세, 전세, 반전세로 구성되고 그나마도 보증금이 부족하거나 없는 경우는 고시원 같은 열악한 난민촌 슬럼 같은 곳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나마 이것이 젊은 층의 경우에는 좀 낫지만, 문제는 1인 가구라는 거주 형태가 전 세대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12.2. 교육[편집]
남녀공학인 고등학교가 상당히 적다.[68] 과반수 이상이 남고, 여고뿐이며, 겨우 있는 남녀공학 고교들은 남녀분반을 시킨다. 이유는 강남쪽은 학구열, 강북쪽은 역사와 전통 보존 문제. 서울 소재의 남녀공학 고등학교는 서울의 30%도 되지 않는다.
중학교는 남녀공학의 경우 공립학교 한정 무조건 3년내내 전원 남녀합반 이지만, 고등학교는 그렇지 않다. 남녀공학에 남녀합반 시스템까지 갖춘 고등학교를 찾을려면 서울이 아니라 경기도에서 찾아야 한다.[69] 경기도는 상당히 많은 학교가 남녀공학이기 때문.
그러나 저출산 문제 때문에 서울 소재 남녀공학 고등학교들이 3년 내내 남녀합반 하는 쪽으로 변경 중에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출산율의 저조 때문에 생긴 일이기 때문에 출산율이 낮지 않았더라면 서울 소재 남녀공학 고등학교들은 전부다 남녀분반으로 유지되었을 것이다.
서울특별시의 교육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전체 교육의 축소판이자 한국적 교육열의 산실이다. 돼지엄마라고 하는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한 부정한 대입 정보통 집단까지 존재하는 등 극렬한 사교육 풍조의 대표. 다수 유망 대학의 소재는 '서울 내 대학교는 곧 명문대'라는 인식을 팽배하게 했고 수도권의 집중화를 가속시켰다.
특히나 강남구 대치동으로 대표되는 입시학원의 메카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전국에서 야간자율학습이 가장 빨리 자율화가 이루어질 정도. 노원구 중계동, 송파구 방이동, 광진구 광장동, 양천구 목동도 만만치 않다.[70][71]
용산구, 마포구, 서초구의 학군도 좋기로 소문이 나 있다.[72] 그러나 구로구, 금천구, 관악구, 중구, 종로구, 동대문구, 중랑구의 경우 학군이 썩 좋지 못하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중구와 종로구는 서울의 원도심이라 역사가 오래된 공립, 사립학교들이 예전부터 대거 위치해 있었고, 동대문구 또한 자사고가 2개나 위치한 곳으로 비교적 나쁘지 않은 학군들이다.
사실 학구열은 이렇지만, 교육에 대해서는 굉장히 진보적이다. 교육에 대해서 보수냐 진보냐 문제와 학구열은 별개이기 때문. 상술했듯 서울 소재의 몇 안 되는 남녀공학들이 남녀합반을 한다고 해도 3년 내내 하지 않았던 것은 순전히 서울의 전통 영향이지, 교육에 대해 보수적이어서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체벌이나 강제 야간자율학습은 전국에서 제일 먼저 사라졌다. 학생인권조례도 전국에서 2번째로 통과되었고, 상술했듯 서울의 중학교는 공립학교 기준으로 남녀공학일 경우에 남녀분반인 중학교가 단 1곳도 없다.
이 영향으로 서울 사람들에게 남녀분반 중학교를 언급하면 문화충격을 받거나 놀란다. 서울은 약 2000년 정도부터 관내 모든 공립 남녀공학 중학교가 3년 내내 남녀합반을 당연시 여겨왔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닌 30대들도 대부분 중학교 하나는 3년 내내 남녀합반만 다녔었다.
12.2.1. 초·중·고등학교[편집]
12.2.2. 대학[편집]
거점국립대학인 서울대학교, 특수대학인 육군사관학교, 국립각종학교인 한국예술종합학교, 국가중심국공립대학인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마찬가지로 국가중심국공립대학이며 서울시 직속인 서울시립대학교 등의 여러 국공립 대학들과 사립 종합대학이 다수 있다.
수험생들이 소위 '인서울'이라고 불리는 서울권 대학들을 선호함에 따라 위 대학들의 입학 성적들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랐다. 이는 지방 대학들의 존립 위기와 더불어 지방 도시들의 경쟁력 약화까지 불러올 수 있는 사회적 현상으로 대두되었다.
12.3. 의료기관[편집]
국내 의료기관 빅5라고 불리는 서울아산병원(2,715병상), 세브란스병원(2,427병상), 삼성서울병원(1,985병상), 서울대학교병원(1,762병상),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1,362병상),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이 모두 서울에 있다. 그 외 수많은 대학병원/종합병원을 비롯한 의료기관들이 잔뜩 있으며, 강남구와 서초구는 미용 목적의 수술/시술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시립 종합병원인 서울특별시 서울의료원을 중랑구에 두고 운영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많은 시립병원이 있다. 서울시 산하 병원의 목록에 대해서는 서울의료원 문서로.
12.4. 치안[편집]
대한민국은 세계 최상위권 수준의 치안을 보유하였으며, 따라서 대한민국의 수도이고 대한민국 정부의 주요기관이 몰려있는 서울은 전반적으로 매우 안전하다. 밤에 술을 마시고 길거리에 널부러져 자도 아무렇지 않게 아침에 일어날 수도 있고, 어두컴컴한 주택가 골목길을 통해 청소년들이나 여성이 혼자 다녀도 별 문제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길거리나 대중교통에서 소매치기 걱정 할 일이 거의 없고, 카페에서 공부하다 휴대폰이나 노트북을 그냥 테이블에 놔두고 잠깐 나갔다가 돌아와도 그대로 있는 경우가 많다.[73] 새벽 4시에 혼자서 편의점에 다녀오거나 산책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은 한국인들만 잘 모를 뿐이지, 전 세계에서는 일본이나 싱가포르 등에서나 또 볼 수 있는 매우 희귀한 경우이다. 그러나, 아무리 치안이 좋더라고 리스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조심하는 것을 권장한다. 도둑질, 소매치기 또는 다른 손해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경우가 덜 있어서 그렇지 사람들이 그것을 일반화하기 때문에 리스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사건을 당한 사람이 한 두명도 아니어서 치안이 좋더라도 항상 주의하는 것이 모두에게 좋다.
다만 거주, 유동 인구가 워낙 많기 때문에 범죄의 수 자체는 타 지역과 비교하여 꽤 많은 편이다. 2016년 기준으로 5개 강력 범죄가 가장 많은 곳은 중구였다. # 서울 범죄 통계 2017년 자료 그 외에 조폭, 마약 밀수 집단도 존재한다고 한다.
서울 남부권인 강남구, 영등포구, 송파구, 서초구, 관악구 일대는 서울시내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 치안이 비교적 나쁜 쪽에 속하는 곳이다. 2019년도 서울시 5대 강력범죄 발생건수 기준 상위 5위권 행정구 또한 서초구, 강남구 일대는 유흥가가 밀집해 지역경찰과 모종의 유착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 유착 사건이 제대로 까발려진 사례가 바로 승리 게이트. 다만, 비교적 그렇다는 것일 뿐이지, 다른 국가와는 달리 대낮에 활보할 때에도 경계심을 가져야 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치안이 불안하다고 거론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외지인들이 보기에는 다 똑같이 안전한 것.
12.5. 언어[편집]
- 관련 문서: 대한민국 표준어, 수도 방언, 경기 방언, 서울 사투리, 한국어의 방언/오해
수도는 특성상 가장 인구 이동이 빠른 지역으로서 언어 변화가 가장 빠르며,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특히 서울 방언은 표준어에 가까워지는 식으로 매우 빠르게 변화하며, 유행어의 전파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경기도는 황해도, 강원도, 충청도의 접경지대로서 황해 방언, 영서 방언, 충청 방언의 방언연속체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강력한 표준어 중심 정책으로 표준어와 빠르게 닮아 갔다. 예를 들어 옛 서울 방언에서 하다는 '허다'라고 발음되었고, 남부 서울 방언은 '해유'체를 자주 사용하였다. 이러한 특징이 매우 빠르게 소멸하는 것은 표준어 영향이 크다고 한다.
경기 북부는 황해 방언과 비슷한 특징을 많이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분단 이후 황해도와 교류가 끊기면서 언어적 교류가 불가능해졌다. 이로 인해 서울 방언은 당연히 남한의 모든 지역 방언과 가까워 지는 식으로 변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 방언이 북한 방언과 점점 가까워 진다면 그건 미스테리한 일이 될 것이다.
지방 출신 이주민들이 많은 만큼 개중에는 가족들의 영향으로 호남 방언, 동남 방언, 충청 방언이 가미된 언어를 구사하는 경우도 상당하다.[74] 또, 평소엔 표준어를 구사하지만 가족들이랑 대화할 땐 사투리를 쓰며 대화하는 경우도 있다.
12.6. 스포츠[편집]
13. 정치[편집]
14. 군사[편집]
사실상 대한민국 국방부와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가 있어 대한민국 국방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성이 압도적으로 높은 도시이기 때문에, 이 곳에도 군부대가, 구체적으로는 사령부 위주로 많이 포진되어 있다.
대한민국 육군에서는 수도방위사령부를 두고 서울 지역 육상, 저고도 방호 및 도심 내 주요시설 방위를 맡고 있다.[75] 또한 외곽 지역으로 가면 수방사 이외의 부대들(제17보병사단, 제30기갑여단, 제1공수특전여단)이 서울 내에 주둔하고 있으며, 이 부대들 역시 서울 내에 있는 특정 시설 방어가 부대 주요 임무에 포함되어 있다. 또한 용산구에도 아직 주한미군 일부가 용산기지에 주둔하고 있다.
대한민국 해군의 경우, 서울은 바다에 접한 영역이 없기 때문에 해군, 해병대 등 수상전을 전개하는 전투부대들은 주둔해 있지 않고, 유일하게 서울에서 근무하는 타 군종 부대로는 해군 재경대대가 있다. 해군 재경대대를 제외한 서울 시내에서 볼 수 있는 해군, 해병대 소속 장병들은 출타자가 아닌 이상 100% 국직부대 소속 장병이다.
대한민국 공군은 대부분의 부대가 후방에 위치해있지만 서울에도 일부 분포해있는데, 복무 자대를 성적 순으로 정하는 공군 특성상 선호도가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먼저 제3미사일방어여단의 여단본부가 서울 금천구, 3여단 예하 방공포대 하나가 우면산에 위치하여 서울 및 수도권 지역의 고고도 방호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공군본부의 직할 부대 중 하나인 항공안전단이 동작구에 위치해있는데, 서울 한복판에 있는 비전투부대라는 완벽한 조건 덕에 육군의 계룡대 근무지원단이나 국방부 근무지원단에 필적하는, 또는 그 이상의 선호도를 자랑한다.[76] 또한 구 용산기지에 파견된 공군기상단 연합기상대대가 용산구에 위치해있다. 서울에 있지는 않지만 성남시에 있는 서울공항이 강남구에 인접해있다.[77]
15. 하위 행정구역[78][편집]
[1] 2021년 12월 기준 국토교통부 국토 면적 현황[2] 2022년 11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 통계[3] # 적용 환율[4] # 적용 환율[5] 민선만으로 광역자치단체장 4선을 연임한 기록은 오세훈이 유일하다.[6] 경기도 과천시와 광명시 일대와 부천시 옥길동ㆍ역곡동 일부, 고양시 효자동 (북한산 인근), 하남시 감일지구와 초이동, 풍산동, 미사1동과 2동 일부, 시흥시 과림동도 사용.[7] 공교롭게도 북한의 평양시도 같은 지역번호를 사용한다.[8] 스팸 전화의 대부분이 02로 시작하는 이유는 본점을 왕래가 잦은 서울에 두기 때문이다.[9] 2030 서울도시기본계획에 따라 구분함.[10] 법률적으로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특별시로 한다'고 명백히 규정된 바는 없으나, 1982년 제정된 법률 제3600호 수도권정비계획법에서 수도권을 "서울특별시와 대통령령이 정하는 그 주변 지역"으로 정의하고 있어 수도가 서울특별시임을 상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헌재결 2004헌마554를 통해 대한민국의 수도는 성문헌법의 형태로 규정되어 있지 않으나 관습헌법상 서울특별시가 수도임이 명백하다고 판시하였으며, 덧붙여 이러한 사유로 인해 수도 변경은 하위 법령인 법률(신행정수도의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 제정의 방식이 아닌 동급인 성문헌법 개정의 방식으로 헌법 조항의 하나로 삽입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이미 '서울특별시 행정특례에 관한 법률'에서 성문법으로 수도로서의 지위가 규정되어 있었으나, 헌법에는 규정이 없었음에도 관습헌법이라고 인정한 것. 다만 엄밀히 말해 지방자치법 및 서울특별시 행정특례에 관한 법률에서는 서울이 수도임을 명확히 규정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수도로서의 서울에 대해 규율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헌재결 2004헌마554 문서 참고.[11] 가장 오래되었다(最古)고는 할 수 없다. 평양시는 휴전선 너머에 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BC 57년에 세워진 경주시보다는 역사가 약간 짧다.[12] 서울특별시 행정특례에 관한 법률. 이에 따라 본래 행정안전부장관의 권한인 행정부시장 2인 및 기획조정실장 임명제청권과 서울시청 소속 공무원에 대한 상훈수여 추천권을 시장이 가지고 있다.[13] 여타 광역자치단체(광역시, 특별자치시, 도, 특별자치도)의 수장은 차관급이다. 조선 시대에도 서울시장격인 한성부 판윤은 정2품 문관직으로 장관인 정2품 판서와 동급이었다. 반면, 현대의 도지사에 해당되는 관찰사는 차관인 종2품 참판과 동급으로 한성부 판윤보다 한 끗발 낮았다.[14] 의전서열상 장관급이나, 실질적인 정치적 위상이나 권한은 장관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실제 서울특별시장과 경기도지사는 대권 후보 직행 코스로 여겨지며, 유일한 지자체장 출신 대통령을 배출하기도 했다. 보통 여야의 서울시장 후보들만 봐도 대부분 다선의 중진 국회의원이나 총리 출신 등 장관보다 정치적 위상이 아득히 높다.[15] 1067~1076년?, 1104~1308년, 1356~1392년[16] 1394~1399년, 1405~1910년[17] 1948~1950년, 1953~현재[18] 다만 1910년부터 1945년까지는 일본 식민지 조선의 경성부로 격하되었다.[19] 현재 I·SEOUL·U를 대신해서 주로 쓰이고 있다.[20] "나와 너의 서울"이란 의미를 가진 슬로건이나, 뜻 전달이 잘 안 된다, 아이유가 떠오른다 등의 이유로 상당한 비판을 받고 있는 슬로건이기도 하다. "I Seoul You" = "전셋값 좀 올려야겠다", "I Busan You" = "나는 너와 영화 본다" 등으로 인터넷에서 패러디되고 있는데,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양한 예시를 볼 수 있다. 반면 이러한 논란과는 달리 세계적인 3대 디자인 상인 독일의 레드닷 어워드, IF 디자인 어워드, 미국 굿디자인상을 모두 수상하기도 했으며, 한국의 사회소비자원과 매일경제가 주최한 브랜드 어워드에서도 도시 브랜드 부문에서 3년 연속으로 대상을 수상하였다. # [21] 불어로 그냥 u만 쓰면 /y/, 즉 /ㅟ/ 발음이 난다.[22] 평양도 콘체비체 체계로는 Пхёнян(프효냔)이 맞겠지만 Пхеньян(프헤니얀)이라는 표기로 굳어져 이렇게 쓰이고 있다.[23] '평양'은 'Phjëng’jang'으로 표기한다.[24] 은유법이 아니다. 실제로 옛날에 출판된 책들을 보면 이런 표현들을 찾아볼 수 있다. '달'을 '위성'이라는 뜻의 일반명사로 쓰는 것과 같은 예.[25] 동읍면까지 내려가면 세종시 한솔동 등 몇 더 있다. 북한에는 자체로 명명한 지명들 중 새별군 같은 순우리말 지명이 있긴 하나, 거의 다 김씨일가를 찬양하는 단어들이므로 별 의미는 없다.[26] 서야벌(徐耶伐) 역시 서라벌과 같은 단어의 방언적 차이로 추정된다. 실제로 耶의 상고 한어 음가가 /*laː(라)/로 재구되며, 가야(加耶)가 가라(加羅)로 기록되기도 했던 것으로 보아 '야'와 '라'는 고대 한반도 남부에서 서로 통하는 표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27] '셔ᄫᅳᆯ 긔벼를 알ᄊᆡ ᄒᆞᄫᆞᅀᅡ 나ᅀᅡ가샤 모딘 도ᄌᆞᄀᆞᆯ 믈리시니ᅌᅵ다(詗此京耗 輕騎獨詣 維彼勅敵 遂能退之)' 등의 대목에서 등장한다.[28] 참고로 신라라는 나라 이름의 어원도 서라벌, 사로국 등 'ㅅㄹ' 계통의 이름이 어원으로 추정되므로, '신라'와 '서울'이라는 두 낱말이 거슬러 올라가면 동일 어원인 셈이기도 하다.[29] 이쪽도 서라벌과 같이 쇠 철(鐵)에 벌 원(原)이라 본 것이다. 다만, 철원 이전에는 '모을동비(毛乙冬非)'라는 지명이 사용되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이를 '텰두루빙', 곧 '철두루미'의 음역이라 해석하는 설도 존재한다.[30] 부여의 지명이 '사비'와 '소부리'로 갈리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으나, 대성팔족 중 하나이자 현지의 유력한 세력이었던 사(沙)씨와의 유사성을 근거로 사비는 현지의 고유지명이었고, 소부리는 그냥 수도를 뜻하는 일반명사였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물론 두 지명이 음가 ㄹ의 유무를 제외하면 음운적 유사성을 보이고 있으므로, 같은 지명을 다른 방식으로 표기한 것일 뿐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또한 沙는 한국 고유어를 음차하기 위해 빈번하게 쓰였던 글자였기에 단지 한자가 같다는 것만으로 연관성을 섣불리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31] 한반도 중부 및 북부 지방에서 쓰인 성을 뜻하는 '홀(忽)'에 대응하는 어휘로 마한 지역에서는 '비리(卑離)'가 쓰였는데, 이것이 후기 백제어에선 '부리(夫里)'로 나타난다. 고량부리(古良夫里), 소부리(所夫里) 등이 그 예시이다. 또한 이 어휘는 사벌(沙伐), 서라벌(徐羅伐), 비자벌(比自伐) 등에 쓰였던 진·변한 지역의 '벌(伐)'과도 대응된다. # 참고로 '부리'와 '벌'의 차이에 대해서는 마한 지역에서 받침의 개음절적 경향이 더 강했던 결과라고 추정하기도 한다.[32] 지금의 함경남도 안변군 서곡면에 해당하는 경곡현(𢈴谷縣)을 수을탄(首乙呑)이라고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33] 압록강 이북에서도 창암성(蒼嵓城)을 양암성(椋嵓城)이라고도 한 것으로 보아 푸를 창(蒼)과 푸조나무 량(椋)의 훈독이 동일했을 것으로 추측되며, 모두 '부소'라는 음가를 지녔을 것으로 보인다. 같은 부여계 언어인 옛 백제 사비성의 성곽 역시 '부소산성'이라 불리는 것을 보면 그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34] 신라의 서라벌과 백제의 소부리가 아예 동계 어휘라는 추정도 있으나, 백제어와 신라어가 동계였는가에 대해서는 학계의 주장이 엇갈린다. 참고로 고고학 등을 근거로 하여 삼국 모두 결국 예맥계가 주류가 되어 토착민을 정복하면서 형성되었다고 보는 건 같다. 물론 수렴진화의 경우처럼 우연히 비슷한 형태가 나타났을 가능성도 있다.[35]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전설일 뿐이지, 이러한 설이 실제로 사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민간어원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 만일 여말선초에 '설울'이라는 말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15세기 기준 雪의 한국 한자음은 '셜'이었고 '울타리'를 뜻하는 '울'의 어형은 '욿'이었으므로 '서울'의 15세기 어형 또한 '셜욿'~'셔욿'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1447년경 편찬된 《용비어천가》에서는 한자 京(서울 경)에 해당하는 고유어가 분명히 '셔ᄫᅳᆯ'로 나타나고 있다. 중세 국어 어휘에서 ㅸ은 대체로 ㅂ이 약화된 결과로 파악되는데, 만일 태조 이성계가 살던 14세기 말부터 서울이 '셜욿'의 형태로 존재했다면 조선 건국 이래 50년 넘게 지난 시점에서 갑자기 순경음 ㅂ이 난데없이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다. 그러나 신라의 '서라벌' 혹은 백제의 '소부리'를 어원으로 제시한다면 ㅂ이 약화되어 '셔ᄫᅳᆯ'의 ㅸ이 된 것이라는 명쾌한 해석이 가능하다.[36] 다만 여기서 말하는 한성은 오늘날의 서울특별시와는 범위가 좀 다르긴 하다.[37] 2021년 9월 기준 (GFCI 30). 역대 최고 순위는 6위. (2015년)[38] 다만 한성부 관할의 성저십리는 일제강점기 때 고양군에 편입되었다가 도로 서울시에 재편입했다.[39] 애초에 경기(京畿)라는 말 자체가 서울 주변이라는 의미다.[40] 심지어 수도권 전철의 경우는 동으로는 강원도 춘천시, 남으로는 충청남도 아산시까지도 연결된다.[41] 가장 비슷한 구성의 예로 필리핀의 마닐라가 있는데, 한국의 서울시와 비슷한 메트로마닐라의 면적은 613㎢이고 인구는 대략 1,300만 명이다. 그리고 메트로 마닐라를 위아래로 둘러싼 센트롤루존과 칼라바르손이 면적 37,000㎢에 인구가 2,600만 명이다. 베트남도 비슷하게 북쪽으로는 하노이 남쪽으로는 호치민을 중점으로 하는 도시권역에 인구 유입이 집중적으로 늘어나 대략 면적 15,000㎢에 2,000만 명씩 각각 모여살고 있고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42] 다만, 경상북도 지역의 경제 중심지 역할을 하며 자립적으로 인구가 증가한 대구광역시와 다르게 수도권 중심도시 서울의 영향력 아래 위성도시 역할로 인구가 증가하였기에 인천을 한국 제3의 도시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는 도시 자체의 규모로만 볼지, 도시가 주변 지역에 미치는 영향력까지 볼지 여부의 관점의 차이로 도시권으로 보면 대구광역시가 속한 대구권/대경권은 한국 3대 도시권이 맞지만 개별 도시로 들어가면 3대 도시로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그 주장 근거인 도쿄-요코하마의 격차가 서울-인천간의 격차보다 크며 일본은 한국과 달리 지역별 특색이 강한 데다 산업기반이 튼튼하며 확실한 광역권을 이룬 국내의 서울, 부산, 일본의 오사카, 나고야 등의 도시와는 달리 대구는 주변 도시들의 베드타운, 소비도시로의 중심 역할이 강하고 일본의 오사카, 나고야와는 달리 산업기반이 망했으며 인구로 보나 경제력으로 보나 대구는 완전히 인천에 추월당했다. 서울이 근거리에 있음에도 문화적으로도 1970년대 이전부터 지역에서 락, 재즈 등 음악이 번영했고 인천과 서울은 서로 맞닿고 있음에도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서울과 인천을 구분한다. 역사적으로도 근대 이후 인천은 줄곧 중요한 도시였다. 서울특별시민들은 인천광역시를 대한민국 제 3의 도시로 생각한다는 기사도 있다. #[43] 밀덕 일각에서는 "전쟁이 나면 서울 강북 지역은 일단 내주고 서울 한강 이남에서 방어전선 구축하고 위로 올라가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44] 당시 청와대 중화학공업기획단 산하에 행정수도이전팀을 설치하여 총9권 분량의 종합보고서 《행정수도건설을 위한 백지계획》을 작성하였다. 1990년대 이후 신도시에나 적용된 개념들이 당시 도시계획에 이미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45] 2004. 10. 21. 2004헌마554[46] 법률이 헌법에 위배되면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실효시킬 수 있으나, 법률이 다른 법률에 위배된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한 쪽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때는 특별법 우선의 원칙·신법 우선의 원칙이 적용되므로, 서울특별시 행정특례에 관한 법률과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상호 모순이 있으면 후자의 효력이 앞선다.[47] 게다가 이스라엘은 텔아비브가 최대도시이자 경제도시 역할을 해주고 있다.[48] 다만 장사정포는 포신 2개를 이어붙이는 등 억지로 사거리를 늘린 것이라 정확히 서울을 타격할 정도의 명중률은 기대할 수 없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또한 서울 북부 지역은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이 감싸고 있는 지형이라 피해가 적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49] 경기도 남부 지역도 안전하다고 할 수 없으며, 북한 일부 무기는 계룡대까지 닿는다. 오죽하면 예비군이나 민방위를 가면 서울에 핵이 떨어졌을 때의 피해에 대해 교육할 정도다.[50] 전방 군단이나 해안 경계 상비사단 관할구역이 아닌 향토사단 관할구역.[51] 다만 군사통제 구역이라 이동할 때 인가 차량 확인 및 검문 시간은 추가적으로 소요된다.[52] 북한에서 직선거리로 가장 가까운 서울 내 지점은 도봉구나 은평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한강 이남의 강서구이다. 과거 북한군이 남한군과 전력이 대등했을 때는 북한과 가까운 강서구보다 조금 더 먼 강북 일대의 방어 난이도가 더 높다고 평가되었다. 그 이유는 강서구 - 김포 방면으로는 한강 하구라는 훌륭한 자연 방어선이 존재하는 반면 강북 방면으로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울 북서쪽에는 임진강이 방어선 역할을 해줄 수 있지만 연천군이 있는 서울 북쪽에는 방어선이 될 지형이 부족하다.[53] 그런데 남북 간 군사력이 비교가 안 되는 현재로서는 북한군이 현실적으로 전선을 일시적으로나마 남쪽으로 내릴 능력이 거의 없어서 서울 어디든 북한군에 점령되는 위험은 전혀 없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전략적 문제는 북한군에 의한 서울 점령이 아니라 휴전선 너머의 장사정포 발포이다. 이렇게 보면 당연히 북한에서 직선거리가 가까운 쪽이 대체로 위험하다. 설상가상으로 지형적으로도 강서구 - 김포 방면은 산이 없는 개활지라 더 위험하다. 그나마 직선거리로 제일 가까운 개풍군 남부 지역 역시 저지대 개활지이기 때문에 산지가 많은 개성 북부 지역과는 달리 장사정포에 적합하지 않은 지역인 게 위안거리. 반면 서울 강북 지역은 예상 외로 상당히 안전한 편인데, 북한산을 비롯한 서울 북부의 산들이 강북 일대를 반원형으로 둘러싸서 방어막 역할을 톡톡히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의 장사정포가 강북에 위치한 산들을 넘지 못한다는 게 중론이나, 강서구 방면으로는 보호막이 될 산이 전혀없고 한강 하구까지 이어지는 드넓은 김포 평야만 펼쳐져 있어 유사시 장사정포 공격에 취약하다. 인천 본토 역시 마찬가지로 취약한 편이다. 정리하자면 전시 안전성은 서울 동남부 > 서울 강북 > 서울 서남부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54] 외국인들은 서울을 군사적 전방으로 인식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구글에서 seoul too 까지만 쳐도 close to north korea(북한과 가깝다)가 자동완성 검색 추천이 될 정도다. 실제로 Quora에 관련 글을 올린 사람들이 꽤 된다.[55] 이것은 서울에 살고 있는 미국인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56] 특히 대전광역시, 대구광역시는 분지 지형이라 방어에 유리하다.[57] 그러나 서울이 수도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역사성 있는 대도시였을 것이므로 철원, 연천 수준으로 생각하는 것은 무리이며, 잠시라도 서울을 빼앗기는 걸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는 주장도 충분히 가능하다.[58] 사실 상기한 고구려와 고려 시절의 평양 천도 내지 천도 시도는 단순히 국방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의미도 있었음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즉 기존 수도에 오래 터를 잡은 귀족들의 세가 너무 강하니 왕권 강화를 위해 일부러 그들의 연고지가 아닌 지역으로 천도해서 기존 귀족들을 약화시킬 정치적인 계산 또한 깔려있었던 것이다. 장수왕의 천도는 성공한 반면에 서경 천도 운동이 실패한것은 장수왕 시절에는 귀족 견제에 성공해서 성공적으로 천도가 가능했던 반면 서경 천도 운동은 귀족 견제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장수왕이 남진을 밀어붙인것은 중국이 점차 안정되면서 더 이상 중국으로 진출하기가 어려울 뿐더러 역으로 중국이 수도까지 밀고 들어올 가능성이 높아지자 안전을 위해 천도를 꾀한 감도 있으며, 서경 천도 운동이 실패한 것엔 이런 문제점 또한 제기된 탓도 크다. 뭣보다 서경 천도 운동은 사실 장수왕의 천도만큼이나 꼭 필요한게 아니였음에도 인종은 별 흥미가 없었는데 묘청이 무리수를 많이 쓴 행위이기도 했다.[59] 다만 이 부분은 우리가 좋다고 보긴 뭐한 게, 국제적으로는 대한민국이 전선 근처에 거대 도시권이 형성되는 것을 막지 못해 북한에게 엄청난 인질이 잡혀버려 이도 저도 못 하게 되었다는 평가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서울이 휴전 이후에 생긴 도시가 아니라서 방도가 없다는 반박 정도는 가능하겠으나, 서울이 휴전 이후 한강의 기적을 거치며 너무 비대해진 와중에 그것을 미리 예방하지 못한 사실 역시 현실이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말대로 서울의 인구를 진작에 남쪽으로 옮기고 서울의 경제적 기능 상당수를 부산이나 대전, 대구 등의 지역 요충지에 분산시켜야 했다.[60] 서울 수도 조항을 폐지한 이후로는 대체 조항으로 평양이 수도와는 미묘하게 다른 의미로 보이는 혁명의 중심도시로 지정되었다.[61] 다만 강서구의 경우 경기도와 가까운 한강 이남 외곽쪽에 있어서 서울의 전통적인 도심 지역인 강북의 종로구, 중구 일대와는 거리가 있다. 서울 내에서도 강북보다는 강남과 경기남부 쪽으로 경제적인 중심지가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62] 대표적인 낙후지역으로 손꼽히는 BYC도 서울행 버스는 다니며 지방 관광지를 소개하는 책자나 홈페이지에서 서울에서 올 수 있는 교통편은 꼬박꼬박 다 소개한다.[63] 1987년 자체 하수처리 시설 준공으로 관할에서 분리.[64] 하수처리장 건설 당시에 광명시의 예산 지분이 투입되었다.[65] 나머지 강북 지역 2곳은 서울시 직영으로 존치.[66] 옥길동, 노온사동, 가학동은 하수처리 미포함 지역. 일직동은 안양시 박달하수처리장 관할.[67] 교육청의 지방청이므로 교육부 산하.[68] 바로 옆에 있는 인천광역시에 비하면 양반. 여기는 남녀공학 고등학교가 서울보다도 더더욱 보기 드물고, 중학교도 남중/여중이 많다.[69] 용산구, 마포구, 종로구 등의 경우. 특성화고는 남녀공학이지만, 일반고 남녀공학은 아예 없거나 내지는 끽해야 1~2개가 끝이다.[70] 대치동, 중계동, 목동을 묶어서 3대 학군이라 한다.[71] 강남구, 서초구로 이루어진 강남 8학군이 대표적이다.[72] 특히 용산 용강중학교의 시험 문제는 서울 내에서도 어렵기로 유명하다.[73] 다만 순간적으로 도난당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항상 주의해야한다.[74] 물론 드물게 3대 이상 서울에서 살아온 토박이라면 20대 이하라 할지라도 전통적인 서울 억양의 흔적이 뚜렷이 나타난다.[75] 이 주요시설에는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청와대 등의 시설이 포함되며, 대통령의 거처인 청와대의 경우 청와대와 그 주변 지역만을 경비하는 경비단이 따로 편성되어 있다.[76] 물론 이들 자대는 국직이기 때문에 공군에서는 가장 기피되는 자대 중 하나다. 그래도 계근단은 국직 중에서는 그나마 악평이 없다.[77] 정확히는 강남구 끄트러미에 약간 붙어있다. 면적의 99.7% 이상은 당연히 성남시.[78] 2030 서울도시기본계획에 따라 구분함.[79] 전통적으로 도심을 4대문 안으로 보는 경향이 강한데, 이렇게 되면 도심은 종로구와 중구만 해당된다. 사실 1975년 이전에는 종로구와 중구가 4대문 안 지역에만 한정되어 있었으나 1975년 창신동, 신당동, 평창동 등이 종로구나 중구로 편입되어 지금은 종로구와 중구가 4대문 안 지역보다는 조금 넓은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서대문과 동대문이 서대문구나 동대문구가 아닌 종로구로 편입되었다.[80] 이렇게 할 경우 용산구의 포지션이 서북과 동북도 아니니 애매해진다. 그러다보니 용산구가 스리슬쩍 도심에 편은 아니고, 1914년 일제강점기 때 일본 제국이 경성부 성저십리를 절딴내어 고양군으로 넘겨버릴 때 일본군 주둔지였던 용산만 경성부로 남겨둔 게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이에 따라 보면 용산이 도심이라는 말에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굳이 용산구의 포지션을 가르자면 녹사평대로를 기준으로 서쪽은 서북, 동쪽은 동북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도심도 굳이 동북이냐 서북이냐를 가르자면 녹사평대로와 직결되는 우정국로 - 남대문로 - 남산3호터널을 기준으로 서쪽은 서북, 동쪽은 동북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명동에서 남쪽으로 7㎞ 가량 내려오면 구 반포역 인근이고 혜화역, 종로5가역에서 남쪽으로 8~10㎞ 가량 내려오면 서초역 인근이다.
[81] 다만 남부 지역(성북동, 동소문동, 삼선동, 보문동, 돈암동 일부)은 종로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곳인지라 범도심권으로 구분된다. 이 지역들은 1975년 동대문구 창신동·숭인동, 성동구 신당동·황학동이 각각 종로구, 중구로 편입될 때 명칭 및 구청 소재지 등 이유로 종로구에 편입되지 않았는데 편입만 안 되었을 뿐이지, 지리적 조건 등 여러 가지가 언급한 편입 지역과 동일하다.[82] 좀 더 세밀하게 나눌 때는 중랑/성동/광진/동대문을 동부(東部)권으로 보고 도봉/강북/성북/노원만을 동북(東北)권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방위적으로 볼때 4대문안 도심의 정동(East, 동대문 방향)과 동북(Northeast, 동소문 방향)으로 구분되기도 하고, 교통적, 문화적으로도 이 두 지역은 구분된다. (문화적으로 중랑구 북부 지역은 동북권(노원구)에 더 가깝기도 하다.)
[84] 어떤 기준에서는 강서/양천을 서남1권으로, 구로/금천/영등포를 서남2권으로, 동작/관악을 서남3권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85] 서초구가 지금은 동남권 중에서도 강남3구 중 한 곳으로 취급되지만 전통적으로 보면 영등포 권역이기도 했다. 현재의 강남대로를 기준으로 동쪽은 광주군에서 편입되어 성동구에 포함되었고, 서쪽은 시흥군에서 편입되어 영등포구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지리, 역사, 문화적으로 서초구는 영등포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후 현재의 서초구 지역도 영등포구에서 성동구로 이관되었고 그 후 성동구의 강남지역이 강남구로 분할되고 방배동을 제외한 현 서초구 지역과 현 강남구 지역이 동시에 개발되면서 강남화가 진행되어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다만 방배동과 구반포 일대는 강남구 신설시 강남구가 아닌 관악구에 소속되었다가 이후 강남구로 편입되었다.[86] 사실 서초구는 여러 기관에서 영등포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다. 농협도 여기에 포함되는데, 서초구는 중앙농협이나 영동농협 관할이 아닌 남서울농협 관할지역으로 동작구 사당동 및 관악구 남현동과 함께 묶인다. 단, 강남과 강동은 뜻이 미묘하게 다르다. 강동은 서울에 편입된 한강 이남 지역 중 서울 편입 이전에 경기도 광주군 소속이었던 지역을 말하며, 따라서 서초구는 강동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애초에 지금의 서초구 지역은 서울 편입 이전에 과천, 시흥군 소속이었고 서울 편입 이후에도 1963년부터 1973년까지 영등포구의 일부분이었으니 이는 당연한 것이다.[87] 생활 면에선 강남구에 붙고, 행정 면에선 강동구에 붙는다. 좀 붕 뜬 감이 있는 포지션.[88] 강 남쪽은 분명 강남쪽이나 이른바 강남3구와는 구분되는 포지션.[89] 어떤 기준에서는 서초/강남을 동남1권으로, 송파/강동을 동남2권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동남권에 부촌이 몰려있는 이유로 서울이 북한과 가깝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순서대로 버스 정류장 앞자리 번호(01-XXX~25-XXX)가 할당되어 있고, 총선이나 지선 때 개표 방송도 이 순서대로 한다.
16. 서울특별시 지역을 본관으로 한 성씨[편집]
17. 여담[편집]
- 인구가 많아 선거구도 많고,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든 탓도 있고[93] 여러 가지 이유로 정치적으로 '지역색'이 잘 나타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지역갈등이 두드러지지는 않으나, 다른 지방과의 충돌은 좀 있다. 이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말이 서울부심, 서울 촌놈. 요즘에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과 비수도권간의 지역감정이 심해지고 있다.
- 정치적인 중심지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 데다가, 언론의 관심을 받기에 유리해서 항상 갖가지 목적의 집회가 일어난다. 이것 때문에 의경의 근무 강도가 제일 높은 지역으로, 시위 때문에 도로 점거가 자주 일어나서 통제를 당하는 경우도 많다.
- 대한민국의 수도답게 서울을 배경으로 한 노래도 많다. 일제강점기에도 서울미치 같은 노래는 있었으나, 서울이 나온 해방 이후 최초의 노래는 1949년 나온 현인의 '럭키 서울'이다. 그 후에 나온 노래들을 발표순으로 정리하자면, 패티 김의 '서울의 찬가'(1966)[94] 와 '서울의 모정'(1975), 이용의 '서울'(1983)[95] , 이선희의 '서울의 밤'(1985), 조용필의 '서울 서울 서울'(1988), 김수희의 '서울여자'(1990), 보아의 '서울의 빛'(2003), 유키카의 '서울여자'(2020), 지코의 'Seoul Drift'(2022) 등이 있다.
- 김민기, 한대수와 함께 한국의 3대 저항 가수인 양병집이 1974년 발표한 첫 독집 앨범에 "서울하늘(1)","서울하늘(2)"라는 노래가 들어갔다. 서울의 빈부격차와 사창가, 공해 문제 등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곡이었는데 유신정권에서는 이런 노래를 좋게 볼 리 없었고, 아니나 다를까 빈부 격차를 나타낸다는 이유로 발매 3개월 만에 방송 금지 조치를 먹고 음반은 전부 회수되어서 불태워졌다.
- 설운도의 '나침반'(1984)은 서울 그 자체를 다룬 노래는 아니나 서울의 여러 지명이 나오기에 서울을 배경으로 한 노래다. 그 외에 동물원의 '혜화동'(1988)이나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1990), 싸이의 '강남스타일'(2012), 정형돈의 '강북멋쟁이'(2013) 등 서울 내 지명을 딴 노래들이 다수 있다.
- 의외로 외국 노래 중 서울을 배경으로 한 노래도 있다.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의 'Seoul Music(京城音楽)'(1981)이 그것이다. 사카모토 류이치가 작곡을 위해 서울로 인터뷰를 갔을 때 받았던 인상을 표현한 곡. 다만, 한국에서 발표한 서울을 배경으로 한 노래들이 밝은 이미지인 반면, 이 노래는 다소 멜로디가 무거운 느낌이다.
- 향토 음식이 유명세를 탄다 싶으면 갖가지 배리에이션을 내놓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개 원본보다 단맛이 강해지거나 진한 맛이 누그러지는 편으로 이게 역수출되어 본고장 물까지 흐린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춘천 음식인 닭갈비는 춘천식이 매운 맛이 강한 것에 비해 서울식은 단맛이 강하며, 부산/경남 음식인 돼지국밥도 서울에선 설렁탕 맛에 가깝다.
- 1960년대부터 진행된 급격한 산업화와 1980년대의 급격한 자동차 보급률[96] 로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의 대기의 질은 상당히 나빴다. 특히 도심, 영등포 쪽은 매캐한 매연으로 숨이 막혔을 지경.[97] 그 당시의 서울은 그야말로 잿빛 도시에 가까웠다. 그 이후 서울시내 공단 재개발, 경유 차량에 대한 환경 규제 강화, 시내버스 연료 천연가스화 등의 노력에 힘입어 과거보다 공기의 질은 그나마 나아진 편이다.
- 2013년에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하여 야간에만 운행하는 심야 버스를 개통했다.
- 냉전 당시 소련이 구상한 파멸의 날 기계 시스템에서 대전조차장과 함께 핵 공격 대상 지역이었다.
- 1970년대 이전에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가장 높았던 지역은 서울이었다. 2010년대 이후 현재 고령층에서 대학을 나온 여성은 대부분 서울 출신인 셈이다.
- 현재의 서울특별시 지역을 본관으로 한 성씨 중 가장 유명한 성씨는 한양 조씨, 양천 허씨, 금천 장씨이다. 이외에 한양 유씨, 한양 한씨, 서울 강씨 등도 있지만 그 숫자가 드물어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경기도 (최소 550만 명) 다음으로 두 번째로 가장 많은 지역이다. 2020년 2월 18일 신천지 사태부터 11월 19일까지만 해도 대구광역시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더 많았으나 11월 20일 서울이 대구의 확진자 수를 역전했다. 그러나 2022년 2월 경기도에 역전당했으며, 2022년 3월 5일부로 100만 명을 돌파했다.
- 서울특별시 지방직 공무원 시험은 2000년 이후 거주지 제한이 없어 경쟁률이 매우 높다. 그나마 과거에는 본적이 지방에 있는 사람들이 본적지가 있는 지방에서 공무원 시험을 볼 수 있어[98]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았으나 호주제 폐지 이후 경쟁률은 날로 치솟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서울특별시 교육공무원 시험은 수도권 거주자만 볼 수 있다.
- 2018년까지만 해도 서울특별시 지방직 공무원 시험은 타 지방직 공무원 시험과 다른 날에 치러졌다.
- 대한민국의 기초자치단체, 광역자치단체, 일반구, 행정시를 모두 통틀어 유일한 고유어(순우리말) 명칭 행정구역이다. 읍면동 이하까지 따진다면 세종특별자치시의 고담동, 도담동 등이 고유어를 쓴다.
18. 각종 매체의 서울[편집]
18.1. 해외 매체[편집]
각종 해외 매체들에서 서울을 위시한 한국의 묘사는 중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거의 서프라이즈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평범한 도시로 묘사된다는 것이다.[99] 또한 과거에는 비중도 상당히 적었으나 2000년대부터는 현지 촬영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매체에 등장하는 비중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한국이 나올 경우에는 십중팔구 서울이 나오게 된다.
태국 영화 헬로 스트레인저는 서울으로 여행온 태국 남녀의 로맨스를 다룬 내용으로, 서울 올 로케이션 촬영으로 진행되었다. 게스트하우스나 난타 공연, 소주, 산낙지 등의 친근한 소재들이 많아서 한국인도 즐겁게 볼 수 있다. 영화는 태국에서 흥행했으며 영화 개봉 이후 서울을 찾는 태국 관광객이 35% 늘었다고.
미국 드라마 24에서는 서울에서 꽤 잔혹한 고문이 자행되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대외 이미지 관련 질의에서 로스트와 함께 언급되었다.
미국 드라마 로스트에서는 주연 중 2명이 한국인 캐릭터라서 기본적으로는 고립된 섬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이지만 권진수와 백선화의 전사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서울이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빈도와는 별개로 로케도 안 한 채로 재현은 개판. 서울이 등장한 장면 일부.
실황 떠벌이 파로디우스의 디스코풍 스테이지인 1스테이지가 서울이라는 설정이다. 사실 오사카를 만들어놓고 이름만 서울이라고 붙인 것이다.
도미네이션즈의 부두 원정 목적지 중 하나로 등장한다.
2012년에 개봉한 본 레거시에서는 한국 주재 공작원이 자살하는 장면에서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 거리와 서울 지하철 3호선 오금역이 등장하며, 현지 로케이션이었다. 하지만 지나가는 장면이었고 흥행에서도 참패한 탓에 밑 두 항목만큼의 관심은 못 끌었다.
2014년에 발매된 콜 오브 듀티: 어드밴스드 워페어에선 2054년 미군이 드랍 포드를 타고 강하하던 도중에 북한군 대공포화를 얻어맞고, 전차와 저거너트 강화복이 돌아다니고 수직 이착륙기들이 날아다니는 전쟁터로 변한다.
소설과 소설을 원작으로 2012년[100] 에 개봉한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는 '네오 서울'(NEO SEOUL)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 '네오 서울'은 2144년이라는 먼 미래의 모습을 상상한 것이기 때문에 21세기 초인 현재의 서울과는 거의 상관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한반도에 세워졌다는 암시가 있다. 그나마 한글이 쓰여있는 간판이 전부다.
2015년에 개봉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도 서울이 등장한다. 2014년 4월에 대대적인 현지 로케이션을 감행했고, 유관 기관의 지원과 시민들의 관심과 협조속에서 촬영을 순조롭게 마쳤다. 촬영 비화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한국 촬영 문서 참고.
2015년 넷플릭스의 워쇼스키 남매[101] 감독의 드라마 Sense8에서는 주연 8명 중 하나인 배두나분의 박선이 살고 있는 도시로서 주요 배경이 되어 등장하고 한국 배우들로 한국 현지 로케이션으로 진행되었다. 로스트에서 난 터무니없는 굴욕을 확실히 떨쳤으며 어벤져스나 콜옵처럼 잠깐 거쳐가는 도시도 아니다! 그러나 드라마 자체가 영어권 시청자들의 편의 중점으로 제작되었기에 한국에서의 한국인끼리의 대화도 전부 영어 대사로 나온다. 설정상으로는 한국어를 쓰고 있는 것이겠지만 아무래도 모국인 입장에서는 몰입에 방해 요소가 되기도 한다.[102] 게다가 뜬금없는 분홍색 가발, 일체형 한복 등 서양인 관점의 오리엔탈리즘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2017년에 출시한 세인츠 로우 시리즈의 신작 Agents of Mayhem의 배경이 서울인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이 모티브로 설정된 건 실존 대도시를(모티브로) 배경으로 한 오픈월드게임 사상 처음이다.
2017년 3월에 개봉한 일본 특촬물 영화 가면라이더X슈퍼전대 초 슈퍼 히어로 대전의 초반부에 서울이 등장한다.
2020년 7월 만화가 박용제의 네이버 웹툰 갓 오브 하이스쿨이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MAPPA에 의해 애니화되면서 갓 오브 하이스쿨(TVA)의 주 배경인 서울이 그려졌다.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남산타워, 롯데타워, 한강, 코엑스, 트레이드타워 등 서울의 장소들이 나온다.[103] (해외 매체로 분류한 이유는 애니화를 일본 제작사에서 했기 때문이다.)
2021년 2월에 개봉한 미국 하이틴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에서 초반에 주인공의 가족이 서울에 놀러온 걸로 나온다.
슈퍼로봇대전 30에서 쿄스케 난부가 DBD 현상으로 전이해온 곳이 서울이라 화제가 되었다.
18.2. 국내 매체[편집]
한국 드라마나 영화의 배경이 되거나 주인공이 사는 지역의 대부분이 서울이라고 보면 된다.[104]
웹툰 심연의 하늘은 지구적인 재난이 일어난 시점의 서울을 다룬다.[105] 심연의 하늘을 포함한 슈퍼스트링 세계관 속 웹툰들은 대부분 서울이 주요 배경인데, 가히 막장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뒷세계에서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괴물들이 판을 친다.
크레이지레이싱 카트라이더에서는 코리아 테마의 '코리아 다이나믹 서울' 트랙이 나온다.
웹 소설 미래전사 김호철은 서울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로, 각종 괴수들이 서울의 랜드마크들을 침공한다.
19. 자매결연 지역 및 우호 교류 지역[편집]
서울시 자매 도시 현황
19.1. 자매결연 지역[편집]
대한민국의 수도이다 보니 자매결연도 각국의 수도와 맺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
1963년: 이란 제국 테헤란 (자매결연 연도 불명)[106] - 1968년: 타이완 타이베이
- 1971년: 터키 앙카라 (現 튀르키예 앙카라)
- 1973년: 미국 괌, 호놀룰루
- 197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 1977년: 브라질 상파울루
- 1982년: 콜롬비아 보고타
- 1984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 1988년: 일본 도쿄
- 1991년: 러시아 모스크바,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프랑스 파리
- 1992년: 멕시코 멕시코 시티, 중국 베이징
- 1995년: 몽골 울란바토르
- 1996년: 베트남 하노이, 폴란드 바르샤바
- 1997년: 이집트 카이로
- 2000년: 이탈리아 로마
- 2004년: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現 카자흐스탄 누르술탄)
- 2006년: 미국 워싱턴 D.C., 그리스 아테네, 태국 방콕
- 2007년: 캐나다 밴쿠버
- 2010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 2016년: 영국 런던
19.2. 우호 교류 지역[편집]
서울시 국내 타 시도와 우호 교류 협약 체결 현황
20. 출신 인물[편집]
20.1. 외국인[편집]
서울에서 태어난 외국인들도 있다. 보통 상사주재원, 외교관, 연구원 등의 자녀이나 일제강점기의 영향으로 서울에서 태어난 일본인도 있다. (재한 일본인)
- 이시카와 간시: 서울에서 태어났고 일본으로 가 일본군 육군과 항공자위대에서 근무했다. 항공막료장을 지냈다.
- 오야부 하루히코
- 도조 유코: 1939년생. 전범 도조 히데키의 손녀로, 할아버지의 악행을 미화하며 찬양한 극우 인물.
- 비비앙 크리어(Vivien Crea): 1952년에 서울에서 태어났고, 해안경비대 부사령관을 지냈다.
- 존 조: 한국계 미국인 배우.
- 니콜 빌더백(Nicole Bilderback): 1975년생 한국계 미국인 배우.
- 하인스 워드
- 데니스 로턴(Denyce Lawton): 1978년생 한국계 미국인 배우.
- 비비언 뱅(Vivian Bang): 1983년생 한국계 미국인 배우.
- 스티븐 연(연상엽): 한국계 미국인 배우.
- 제나 우슈코비츠: 한국계 미국인 배우.
- 이기홍: 1986년생 한국계 미국인 배우.
21. 둘러보기[편집]
22. 관련 문서[편집]
[90] 유홍기가 이 집안 출신이다. 지금은 강릉 유씨로 편입되었다.[91] 원래 공암 허씨였으나, 공암현이 양천으로 바뀌면서 양천 허씨가 되었다.[92] 강감찬을 시조로 한다. 금천은 서울 영등포 일대인데, 강감찬이 태어난 곳이 금천에 속한 낙성대이다. 강감찬이 본래 진주 강씨였으므로 금천 강씨 역시 진주 강씨의 지파이다.[93] 성저십리 내에서 몇 대에 걸쳐 산 서울토박이의 비율은 상당히 낮다. 그리고 그 얼마 없는 서울토박이도 1990년대 1기 신도시가 들어선 이후 일산, 분당, 평촌 등으로 흩어진 상황이다.[94] 곡 자체는 김현옥 전 서울시장 후원 하에 1966년에 나왔지만, 음반으로는 1969년에 수록됐다.[95] 허무송으로 더 유명하다. 내용은 '아아아~ 우리의 서울~ 우리의 서울~ 거리마다 푸'이다.[96] 당시 표현으로는 '마이카 시대.'[97] 공단 밀집 지역에서는 대로변의 '어제의 서울 교통사고'와 마찬가지로 도로변에 '오늘의 대기 환경 상황' 전광판이 있었다.[98] 본적이 경상북도인 서울 시민이 경상북도 공무원 시험을 본다든지 하는 식이다.[99] 이는 한국이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세계적으로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한 게 끽해야 2010년대 들어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 해외의 여러 창작자들에게 한국을 중국이나 일본처럼 아포칼립스의 대상으로 삼는 등 과감하게 다루기가 껄끄러운 것. 창작물 등 서브컬처와 관련한 한국의 국제적인 인지도가 아직까지는 신참의 이미지여서 해외에서도 잘 안 다루는 것이다.[100] 한국에서는 2013년 1월에 개봉했다.[101] 현재는 워쇼스키 자매이다.[102] 이경영, 명계남, 홍석천, 마동석, 이기찬, 차인표 등 대사가 전부 영어이기 때문에 영어가 유창하게 되는 배우들이 캐스팅 되었다.[103] 애초에 배경이 서울이니까 당연하다.[104] 경기도의 인구가 서울을 훌쩍 뛰어넘었음에도 이는 거의 변화가 없이 여전하다.[105] 단, 예외적으로 시즌 5의 주요 배경은 제주도이다.[106] 이란 측 자료에는 1963년 자매결연을 맺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대한민국 측 자료에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테헤란로 - 서울로 명명도 1977년 테헤란 시장 방한 기념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때 역시 자매결연을 맺은 바는 없다. 나무위키에선 대한민국 측 기록을 우선하여 취소선을 기입했다. 공식 자료에 의하면 2017년 10월에 자매결연이 아닌 우호 도시 체결을 맺은 것으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