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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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정병모(鄭秉謨)
생몰1872년 10월 18일 ~ 1945년 3월 10일
출생지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모현리
사망지전라남도 김제군
매장지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정병모는 1872년 10월 18일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모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이곳의 유지인 조사현(曺士鉉)·송대호 등과 접촉하면서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으며, 마침 국장에 참배하고 귀향한 윤백언(尹伯彦)도 이에 가담하여 함평 장날인 3월 26일을 기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사전준비를 하였다. 그는 김용언(金用彦)·윤태완(尹泰完)·이행록(李行錄) 등과 사전준비를 하면서 윤치영(尹致榮)·김재문(金在文)은 함평면, 김준령(金俊鈴)은 대동면, 모현기(牟顯基)·정영조(鄭永祚)는 그 밖의 다른 면의 책임자로 뽑았다.

1919년 3월 26일 오후 4시경 보통학교 학생과 청년·주민들로 수백명의 시위군중이 장날인 함평 장터에 모이자, 태극기를 나누어주고 조사현 등과 함께 시위군중의 선두에 서서 태극기를 휘두르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터를 시위행진하였다. 그러나 이때 긴급 출동한 일본 경찰 ·헌병의 야만적인 무력행사로 1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고 20여명이 체포되었다. 이때 그도 체포되었고, 1920년 5월 2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이후 김제군으로 이주하여 조용히 지내다 1945년 3월 1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정병모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7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